손하빈의 잘 읽고 꾸준히 생각하기
예전에는 특별한 무언가를 보거나 듣고 갑자기 떠오르는 기발한 생각이 영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영감은 꾸준히 생각이 축적된 가운데, 어떤 계기로 물 밑에 잠잠히 자고 있던 생각이 창의적인 산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했던 말이 제가 생각하는 영감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해줍니다. 하루키 같이 성공한 작가는 갑자기 창의적인 생각이 떠올라서 책을 쓸 것만 같죠. 하지만 그는 성실히 글을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하루 꾸준히 끌어당겨 자꾸자꾸 뒤로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당신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합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마케터가 즉발적인 아이디어만 생각한다면, 아주 단기간에는 반응을 이끌 수 있겠죠.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메시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메시지를 남기기 위한 가장 좋은 도구는 책입니다. 책은 꾸준히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영감의 도구입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마케터로서 영감을 받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의 카테고리와 대표적인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행동경제학, 행동을 바꾸는 마케팅
<스위치>
마케터는 소비자·사용자의 마음에 변화를 주어,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람입니다. 관심 없던 브랜드가 좋아지면, 그 회사가 제공하는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라이프스타일도 바뀌죠. 마케팅과 행동경제학 모두 이런 변화의 영역을 탐구하기 때문에, 두 분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하빈의 잘 읽고 꾸준히 생각하기
예전에는 특별한 무언가를 보거나 듣고 갑자기 떠오르는 기발한 생각이 영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영감은 꾸준히 생각이 축적된 가운데, 어떤 계기로 물 밑에 잠잠히 자고 있던 생각이 창의적인 산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했던 말이 제가 생각하는 영감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해줍니다. 하루키 같이 성공한 작가는 갑자기 창의적인 생각이 떠올라서 책을 쓸 것만 같죠. 하지만 그는 성실히 글을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하루 꾸준히 끌어당겨 자꾸자꾸 뒤로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당신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합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마케터가 즉발적인 아이디어만 생각한다면, 아주 단기간에는 반응을 이끌 수 있겠죠.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메시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메시지를 남기기 위한 가장 좋은 도구는 책입니다. 책은 꾸준히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영감의 도구입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마케터로서 영감을 받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의 카테고리와 대표적인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행동경제학, 행동을 바꾸는 마케팅
<스위치>
마케터는 소비자·사용자의 마음에 변화를 주어,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람입니다. 관심 없던 브랜드가 좋아지면, 그 회사가 제공하는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라이프스타일도 바뀌죠. 마케팅과 행동경제학 모두 이런 변화의 영역을 탐구하기 때문에, 두 분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야에서 첫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책은 <스위치(원제: Switch)>입니다. 댄 히스와 칩 히스 형제가 공동 집필한 책으로, '어떻게 사람들의 행동을 자발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에어비앤비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어떻게 하면 브랜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하던 시기에 이 책이 좋은 답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후에도 <스위치>는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늘 새로운 영감을 줍니다.
이 책의 키워드는 '기수와 코끼리'입니다. 기수는 이성을 상징하고 코끼리는 감정을 상징합니다. 기수가 아무리 방향키를 잡으려고 해도, 코끼리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 기수는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코끼리가 훨씬 크고, 힘도 좋으니까요. 그래서 이 책은 사람들의 행동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부분을 움직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어비앤비를 잘 모르는 사람들, 타인의 집에 머문다는 경험 자체를 불편해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에어비앤비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에어비앤비 브랜드를 마케팅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었죠.
광고 콘텐츠에서 에어비앤비의 기능적인 장점이나 가성비를 이야기하지 않았던 이유도 코끼리를 먼저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머무는 여행'의 가치에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실제로 에어비앤비의 감성 가득한 마케팅은 사람들이 여행의 가치를 새롭게 생각하고 시도하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틱!>과 <컨테이저스>
두 번째로는, 책 두 권을 묶어 함께 소개하려고 합니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어떻게 하면 우리 브랜드가 입소문이 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참고하기 좋은 책이고, 같이 읽으면 시너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스틱!(원제: Made to Stick)>은 <스위치>의 히스 형제가 쓴 다른 책입니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착 달라붙는 메시지를 만드는 법에 대한 책입니다. 메시지가 아무리 좋아도 잘 기억나지 않거나 발음하기 어려우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그 이야기를 퍼뜨리지 않습니다. 반면 입에 착 달라붙는 메시지는 구전되기 쉽습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이 슬로건을 만들 당시 이 책이 많은 영감을 많이 주었습니다. <스틱!>을 읽지 않고 슬로건을 생각했다면 의미 전달과 현지화에만 신경썼을 것 같은데, 책을 읽고 고민한 덕에 '퍼지는 것'에 대한 고려를 많이 했습니다.
<컨테이저스(원제: Contagious: Why Things Catch On)>라는 책도 '입소문이 어떻게 전염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나 서비스도, 소문내고 싶지 않으면 사람들은 퍼뜨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브랜드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게 만들지 고민할 때 이 책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컨테이저스>에서는 무언가가 널리 확산될 가능성, 즉 전염성의 일곱 가지 원칙을 이야기하는데요. 그중 하나가 사회적 화폐(social currency)입니다. 입소문은 브랜드가 돈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브랜드 이야기를 퍼뜨리는 이유는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인데요. 돈으로 물건을 사듯 좋은 이야기나 화제를 공유함으로써 좋은 이미지를 살 수 있는 사회적 화폐는 사람들이 공유 행위를 하는데 매우 중요한 동기가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 자신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자발적으로 공유합니다. 반대로 물질적 보상을 제공하는 순간, 보상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공유의 자발적인 동기는 사라집니다.
* <아이들이 찍은 여행이야기 #안녕꼬마감독님> ⓒAirbnb
사용자가 참여하는 스토리북 제작 프로젝트나 아이들이 찍은 영상으로 만든 '안녕 꼬마감독님' 프로젝트는 모두 참여를 통해 자부심을 줄 수 있는 소셜 화폐를 고려한 결과입니다. '에어비앤비로 여행한 이야기가 자랑거리가 되게 한다'는 목표 아래 사람들의 내적 동기를 자극한 것이죠. 물질적 보상은 없었지만, 참여자들은 책 저자와 영상물 감독이 된다는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카피를 만드는 분이나, 고객의 자발적인 참여를 고민하는 마케터 혹은 기획자라면, 이 두 책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전략과 기획
<링크>와 <제프리 무어의 캐즘 마케팅>
<링크>와 <제프리 무어의 캐즘 마케팅>은 입사할 때 에어비앤비 지사장이었던 이준규 대표가 적극적으로 추천했고, 마케팅뿐 아니라 기획을 하면서 전략적인 생각을 하는데 도움을 준 책들입니다. 이 책을 회사 사람들과 같이 읽느라 '꺼내읽어요'라는 사내 북클럽도 탄생했습니다.
<링크(원제: Linked: The New Science of Networks)>는 네트워크의 이론·현실적 측면 모두를 고려해서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과학책이라 어려운 용어가 많이 나오지만, 인플루언서 마케팅이나 커뮤니티 형성에 고민이 있는 마케터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연결을 이해하고 마케팅에 접목할 수 있을까'라는 관심사와 잘 어울리겠죠.
<제프리 무어의 캐즘 마케팅(원제: Crossing the Chasm)>은 '살아보는 여행을 브랜딩하기'에서도 언급했습니다. 새로운 기술, 제품, 서비스를 판매하는 스타트업이 캐즘, 즉 간극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초창기 에어비앤비 마케팅 방향을 고민할 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두 책을 열심히 읽고 고민하는 가운데, 보고 들었던 각종 경험이 좋은 기획을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케팅을 공부하고 시도한다고 해서, 마케팅 관련 책만 읽는 것은 오히려 여러 생각을 하는데 제한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다른 분야의 책을 마케터의 관점으로 읽어보세요.
소설, 스토리텔링의 결정체
마지막으로 소설입니다. 저는 소설을 가능한 많이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읽을거리가 많은 요즘에도, 적어도 한 달에 두 권 정도는 읽고 있습니다.
소설은 이야기꾼들이 만든 최고의 작품입니다. 작가가 묘사한 인물과 상황을 중심으로 상상력을 능동적으로 발휘해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독서와 공감 행위가 필요한 장르입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스토리텔링의 힘과 스토리 설계를 간접적이지만 많이 배웁니다.
마케팅에서 이런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대부분 아실 거예요. 소설은 현실의 인물을 투영한 결과라 생각하기에, 마케터가 타인의 심리와 입장을 고민해볼 수 있는 장르입니다. 많이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소설에서 나온 캐릭터와 현실의 인물이 겹치며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주로 문학동네와 민음사의 신진 작가 소설을 사서 읽습니다. 최근에는 고전 소설도 보려고 해요. 만약 소설을 많이 안 읽으신다면,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과정을 매우 상세하게 이야기해주기 때문에, 마케터와 기획자의 입장에서 읽어본다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번 챕터에서는 책을 하나하나 소개하기보다는 영감을 받는 데 책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전달하려 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배경지식과 식견을 갖춘 뒤 경험하는 것은 같은 체험에서도 다른 영감을 줍니다. 그래서 영감이 떠오를 수 있게 꾸준히 생각을 축적하는 행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행위 중 하나를 꼽으라면, 독서입니다.
책을 통해 얻은 귀중한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으면 카페에서, 영화에서, 여행에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영감이 촉발되기도 합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와 함께 읽는다면 더 좋을 거예요. 저는 위의 책 중 대부분을 동료와 토론하며 읽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방법입니다. 다른 분들도 반드시 책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생각을 축적하는 경로를 만드시길 바랍니다.
이육헌이 말하는 잡식의 방법
영감을 얻는 방법에 대해 글을 쓰기로 하고 나니 막막함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과연 영감을 얻으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가, 그리고 그 영감을 정말로 일에 잘 적용했던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불현듯 찾아온 멍한 기분 때문입니다.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해나가는 일 모두가 크고 아름다운 영감에 비롯되진 않았을지언정, 차곡차곡 쌓아온 레퍼런스와 이래저래 주워 먹은 잡지식의 누적과 폭발로 탄생한 것은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고쳐먹고 글을 쓰려 합니다. 앞으로 소개할 내용들이 '유레카'를 외치며 영감을 줄 만한 단초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쉽고 빠르게 따라 할 수 있는 내용일지도 모르겠네요.
둘러보기, 구경하기, 공부하기
스타트업의 업무 영역은 정말 넓고, 빠르게 변합니다. 마케터의 일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 게 바로 '제품'이 아닐까 싶은데요. 상품 시장과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는 마케터의 특성상, 시장의 반응을 제품에 전달하고 녹여내는 시작과 완성되거나 개선된 제품을 시장에 잘 전달하는 끝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양한 제품이 새로이 등장하고 또 순위로 표시되는 앱스토어를 둘러보는 일을 좋아합니다. 새로운 앱을 잘 설치하지 않는 시대라고는 합니다만, 여전히 어디선가 치고 올라오는 언더독들이 있습니다. 앱스토어에서 어떤 기준과 키워드로 앱을 큐레이션 하는지 확인하다 보면, 우리의 제품과 메시지를 어떻게 가다듬어야 할지 명확히 할 수 있을 테고요.
최근에는 프로덕트 헌트라는 서비스를 곧잘 사용합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빌보드 차트라고도 불리는 이 사이트에는 새로운 기술, 기능, 제품과 서비스가 올라 옵니다. 사용자는 개별 제품에 투표하고, 총평과 장단점을 코멘트하기도 합니다. 특히 이 커뮤니티엔 테크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기획자·개발자·디자이너·마케터들이 많습니다. 오늘도 지구 반대편 어디선가 론칭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이곳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초기 입소문 유도와 개선점 발굴을 기대하면서요.
앱스토어와 프로덕트 헌트 외에도, 새롭고 아름다운 제품을 잘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북마크에 넣어두고 둘러보곤 합니다. '새로운 발견'이라는 이름의 구글 크롬 즐겨찾기 폴더 안에는 프로덕트 헌트를 비롯하여 팬시, 핀터레스트, 킥스타터, 인디고고, 와디즈, 텀블벅, 디스코, 그리고 29cm와 미스터 포터가 들어 있네요.
여기저기서 주워 담은 제품들과 관련한 내용을 기록하고 소개하고 싶어서, 리마커블 프로덕츠(Remarkable Products)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고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이직과 정신없는 일정 탓에 잠시 쉬고 있지만, 곧 다시 돌아올 거예요.
앞서 언급한 사이트들에서 단순히 제품만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직접 사용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듣기도 합니다. 또 짧게라도 리뷰를 남기는 등의 과정을 통해 조금 더 곱씹으며 공부합니다. 그러다 보면 최근 제품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기능이나 메시지에 더 예민해집니다. 이를 어떻게 우리 제품의 기능과 메시지에 접목할지도 고민하죠.
월간지
잡지야말로 다양한 잡지식의 원천이자 영감의 보고입니다. 정보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가 버리는 요즘, 잡지는 한 달이라는 긴 호흡으로 취재하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사진을 찍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니까요. SNS에서 사진 몇 장, 동영상 몇 개로 빠르게 소비되던 인물과 제품, 공간을 붙잡아두고 더 깊이 뜯어본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콘텐츠의 집합체입니다.
저는 올해로 서른 살이 된 남성인지라, 실제 소비생활과 가장 맞닿아있는 남성지를 주로 봅니다.
비록 잡지에 등장하는 제품이나 자동차를 구매할 여력은 제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명품으로 분류되는 높은 가격대의 제품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구경하고, 동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엿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습니다.
패션과 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가장 동시대적이고 깊은 고민이 담긴 기사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잡지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입니다. 잡지에는 평소 SNS 피드나 포털 뉴스였다면 그냥 넘겨버렸을 주제와 분야의 기사들을 정독하게 만드는 힘이 있거든요.
트레바리 독서모임을 알리면서 많이 이야기했던 메시지 중 하나가 '평소 혼자였다면 읽지 않았을 책을 읽게 된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잡지 또한 마찬가지의 효용을 지닌다는 생각입니다.
이달의 잡지를 읽는다는 행위는, 놓치지 말아야 할 이슈와 그에 대한 생각, 새로이 등장한 제품, 그리고 공간을 소개받는다는 뜻이 아닐까요? 잡지가 담고 있는 내용은 소셜 미디어의 생생함과는 거리가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반대로, 고심 끝에 큐레이션 한 아이템을 한 달여의 취재 기간 동안 깊게 들여다본 결과물입니다. 잘 정제된 글과 사진은 물론, 편집 디자인으로 이루어진 지면 그 자체가 영감의 중요한 원천입니다.
수다
트레바리는 전체 직원이 열 명 남짓 되는 작은 팀과 같은 회사인지라, 각자의 업무가 꽤 다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오며 가며 동료들과 함께 떠는 수다가 업무에 도움을 주는 영감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영감의 원천인 앱스토어, 프로덕트 헌트, 잡지들이 간접적으로 업무에 도움이 된다면, 동료들과의 수다는 곧바로 실행 가능한 형태로 변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직접적인 영감의 원천이 아닐까 싶습니다.
앱스토어와 프로덕트 헌트에서 발견해 써본 서비스와 제품에 관한 이야기, 잡지에서 읽은 재미난 기사는 물론, 휴일에 만난 다른 분야 사람들과의 대화, 북토크나 컨퍼런스 행사 진행, 면도기의 구매 프로세스와 인상적이었던 언박싱(unboxing), 이래저래 들려오는 소문에 대한 이야기 등을 동료들과 같이 마구마구 늘어놓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스파크가 튀고, 그런 경험을 어떻게 업무와 연결 지어 녹여낼지 함께 고민합니다. 크루들 모두가 '기승전 트레바리'일 정도로 업무 생각을 쉽게 놓지 않는 사람들이어서일까요?
그래서 주간회의가 삼천포로 빠지는 일이 많은데, 이를 특별히 막지는 않습니다. 시간을 조금 더 쓰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 하는 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간회의 중 혹은 그 외 시간에 동료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이건 이렇게 트레바리 업무에 끼얹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예 동료 서너 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TF라는 이름을 달고, 이런저런 주제를 가지고 스터디를 하면서 실행으로 연결해 보기도 합니다. 아직은 작은 조직이라서 이런 유연함이 가능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 1시간~1시간 30분 정도 TF가 모입니다. 2018년 1~4월 시즌에는 '브랜딩', '서비스에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끼얹기', 'CS 정책 개선하기', '지표 중심으로 조직 운영하기'와 같은 주제로, 각자의 연구를 공유하고 이를 어떻게 트레바리 서비스에 결합할지 논의했습니다.
실제로 CS 정책의 개선 방향이나, 지표 중심 조직 운영 방안과 같은 내용들은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하여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환불률, 독서모임 참석률 등 주요 지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업무를 조직하는 것이죠.
영감의 세 가지 원천 중, 앞서 설명한 두 가지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인 동료들과 수다 떨기는 '그 영감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업무에 녹여낼지' 생각하는 이야기죠. 동시에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꾸준히 호기심을 지니고 여기저기 빨대를 꽂으세요. 그리고 쭉쭉 빨아들인 자원을 동료들과 나누면서 발전시켜 보세요. 여기저기서 얻어낸 소소한 영감을 단순히 영감에서 그치게 할 것이 아니라, 내 식대로 풀어서 남들에게 설명하세요. 그리고 나와 다른 배경지식을 가진 동료들이 이를 듣고 다시 건네는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그렇게 외부에서 가져온 영감이라는 자극제는, 어느새 업무에 잘 녹아드는 영양분으로 기능할 겁니다.
마케터, 영감의 사칙연산
지금까지 네 명의 마케터가 각자 영감을 얻고 활용하는 법을 들여다봤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위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영감에 필요한 것은 사칙연산입니다.
- 더하기(+): 많이 보고 듣고 느끼며 꾸준히 경험 자산을 축적하고
- 빼기(-): 다시 채우기 위해 비움의 시간을 갖습니다
- 나누기(÷): 사람들과 영감을 나눔으로써
- 곱하기(×): 아이디어에 시너지를 일으켜 발전·확장합니다
더하기와 빼기는 영감을 얻는 방법, 나누기와 곱하기는 영감을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나누기'입니다. 아이디어의 실현은 나누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험을 나눈 이 글 역시 여러분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