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스가 없다면 벤츠를 꿈꾸지 마라

저의 첫 직장은 대전에 있는 작은 치과였습니다. 치기공을 전공했는데도 손으로 치아 보철물을 만드는 게 너무 적성에 맞지 않아 다른 일을 찾던 중에, '치과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구하고 있던 치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 치과 용어들이 쏟아졌습니다. 단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환자들이 실시간으로 물어보는 질문에도 전혀 대답하지 못했고요. 진료실에서 원장님과 치위생사들이 쓰는 용어도 못 알아 들었어요. 외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죠.

이승희는 센스가 없어도 너무 없다.

엄청 혼나면서 내가 쓸모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에 괴로웠어요. 하지만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치기공사가 되지 않으려고 도망친 것인데, 이곳에서마저 나가면 저는 갈 곳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오기로 버텼습니다.

 

여느 때처럼 센스가 없다며 또 혼난 날, 울면서 집에 가다 기분 전환할 겸 서점에 갔어요. 그때 평대에 딱 보이는 책이 하나 있었습니다. 순간 '아, 이 책이다!' 싶었어요.

내 삶을 바꾼 책, <센스가 없다면 벤츠를 꿈꾸지 마라> ⓒ브레인스토어

이 책을 읽으면 센스 있는 사람이 될 줄 알았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절실했거든요. 그런데 웬걸, 아무리 읽어도 어떻게 하면 센스가 생기는지 안 알려주는 겁니다. 그래서 무작정 작가에게 메일을 썼습니다. "센스 책인데 어떻게 센스를 기를 수 있는지 왜 안 알려주시나요. 전 내일도 센스 없다고 혼날 것 같아요…."

 

며칠 후에 회신이 왔습니다.

이런 메일을 처음 받아봐서 당황스럽네요. 자기소개부터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생각해도 앞뒤 없이 보낸 굉장히 무례한 메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고 저의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알리는 메일을 썼습니다. 작가는 제 상황을 듣곤, 시간이 된다면 서울에서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며칠 후 고대하던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따로 해줄 말은 없고,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서 강의를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그의 회사에 방문해서 1:1 강의를 들을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강의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는 광고기획자였고, 1시간 동안 본인이 맡았던 브랜드 이야기를 해줬어요. 일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여러 활동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들었죠. 그때 그 사람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느낌이었달까요? 이미 제 머릿속은 '센스를 어떻게 키우지?'라는 물음표가 아니라 '나도 저 사람과 같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느낌표로 가득 찼습니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마케팅 관련 책을 읽고 세미나를 들었어요. 치과에서 일했던 4년 동안 평일에는 치과 일에 매진하고 매주 주말이면 공부하러 서울로 향했습니다. 너무 재밌었습니다. 대전에는 마케팅 스터디가 없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런 열정이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 모르겠어요. 

 

점점 배운 게 쌓이기 시작하는데, 어딘가에 잘 정리해두고 싶더라고요. 네이버 블로그가 막 붐을 일으켰을 때라, 저도 제 블로그를 만들어서 배운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2010년이에요. 

블로그로 배운 마케팅

그러던 어느 날 방문자 수가 확 뛰는 겁니다. 특정 키워드 검색에 따라 블로그가 노출되면서 사람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혼자 정리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이 댓글을 남기니 신기했습니다.

 

2010년에는 블로그를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만 해도 검색에 잘 잡혔죠.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니까 저도 관리에 재미가 붙었어요. 하루 평균 2~3천 명씩 들어오는 블로그가 되었고, 어떤 날엔 제 글이 상위에 노출돼 영향력이 생기기도 했어요. 물건 협찬 제안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방문자 수가 많은 블로그가 되니 치과 원장님이 바로 인지하더라고요. 어느 날 저를 불러서 병원 홍보 블로그 운영을 맡아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저도 이 병원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기뻤습니다. 그래서 데스크, 상담, 블로그 관리를 병행했죠.

 

공식 채널은 편하게 운영할 수 있었던 개인 블로그와는 또 달랐습니다. 제 마음대로 포스팅할 수 없었기에, 원장님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하면서 콘텐츠를 채워나갔습니다. 

 

당시 제겐 '어떻게 하면 우리 병원 관련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잘 보이게 할까?', '어떻게 우리 치과에 내원하게 할까?'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매일 통계 페이지를 보고 수백 번씩 검색어를 입력하며, 어떤 제목과 내용을 배치해야 우리 병원 블로그가 노출되는지 이해해 나갔습니다. 블로그 이외의 다른 영역까지도 눈을 돌렸죠. 더 적극적으로 네이버 포털의 모든 영역에 우리 치과 콘텐츠를 채우고 퍼뜨렸어요. 

 

'어떻게 하면 상위에 노출시키지?' 병원 홍보 블로그 운영으로 시작했던 저의 도전은 언제부터인가 검색 시 상위 노출 방법을 공부하며 실험하는 데까지 닿아 있었습니다. 노출되지 않는 콘텐츠가 있으면 네이버 고객센터에 메일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검색 마케팅 전략 및 콘텐츠 산업 전반에 관한 감각을 익혔습니다. 정말 열정만 있었던 것 같아요. 

 

데스크·상담·블로그 관리를 병행하다가, 병원 온라인 마케팅 업무만 전담하게 됐어요. 페이스북에 병원 페이지를 만들고, 카카오톡 채널을 만들어서 원장과 함께 온라인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신규 환자에게 내원 경로를 물어보면, '온라인을 통해 정보를 접했다'라고 답하는 비율이 1년 만에 0%에서 70%로 늘어났어요.

 

거의 모든 업무를 혼자 해야 했기 때문에 세세하게 잘 챙기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다른 치과보다 발 빠르게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대전 시내의 치과 원장들이 제가 있던 병원을 경계했습니다. '대전 치과'의 검색 결과가 우리 병원으로 도배되어 있었으니, 다른 병원에서 그 글들을 안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병원 대부분은 온라인 마케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죠.

 

이렇게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시작했던 병원 블로그 업무가 온라인 마케팅으로, 더 시간이 지나니 병원 마케팅 전반을 다루는 일로 발전했습니다. 

 

블로그가 마케팅을 공부하기에 정말 좋은 이유가 몇 가지 있어요. 우선 블로그 서비스를 통해 플랫폼과 채널에 대해서 공부하게 돼요. 또 콘텐츠 기획, 검색엔진에 대한 최적화, 방문자 분석, 재방문 유도, 통계 보는 법, 방문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등에 관해서도 고민하게 되죠. 여기에다 블로그를 성실하게 관리하며 끈기까지 기를 수 있어요.

 

마케터가 되고 싶은 분들로부터 '마케팅을 위해서 지금 당장 뭘 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저는 항상 "블로그를 운영해보세요."라고 대답합니다. 이 안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블로그 형식도 좋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 자신에게 친근한 채널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마케터가 놓쳐서는 안 될 세 가지

첫째, 관찰

제가 지금 1년 차 이승희를 다시 만난다면, 1년 차 이승희는 제게 이렇게 묻겠죠. "어떻게 하면 센스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센스는 관찰이다

센스는 태어날 때부터 갖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관심을 갖고 사물을 관찰하면 생긴다는 사실을 지금의 저는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치과 원장님의 눈빛, 환자들의 행동만 봐도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승희 너 참 센스 있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대상에 대한 애정이 생기면 관찰하게 되고, 세심하고 날카로운 감각이 발휘되기 마련이죠.

 

-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여성중앙> 2014년 8월호 인터뷰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할까 하루 종일 생각합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죠. 그렇게 오래 만나면 척하면 척, 하는 사이가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관찰력을 키우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어떤 대상을 사랑하면 됩니다.

 

배달의민족(이하 배민) 마케팅 자문을 맡고 있는 신병철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도적으로 사랑하라.

자신이 속한 조직의 브랜드를 처음부터 좋아하지는 않았던 사람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입사할 때와 달리, 저는 홍보를 담당하면서 이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점점 바뀌었습니다. 마케터라면 브랜드를 의도적으로 사랑하고, 브랜드의 대상에게도 애정을 갖고 관찰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양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반대예요. 아이디어에 집중하지 않아야 해요. 문제 찾기가 우선입니다. 아이디어는 발상이 아니라 연상이에요. 문제 설정에 뒤따라 나오는 생각의 더미일 뿐입니다. 문제점만 잘 파악하면, 해결점이 될 아이디어는 차고 넘칠 것입니다.

 

저 역시 처음 마케팅을 시작했을 때도, 번뜩이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정보를 통해 우리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문제 인식에서 시작했죠. 

 

둘째, 피드백

이렇게 문제를 파악한 뒤엔, 차고 넘치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피드백에 귀 기울이고, 그 내용을 쭉쭉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나에 대한 비판 같아서 힘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내가 작업한 결과물과 나의 태도에 대한 피드백인지 생각합니다. 저 자신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피드백이라면 다 수용하려고 합니다.

 

방법은 하나예요. 물어보고 또 물어봤습니다. 일을 할 때마다 결과물이 어떤지 주변 사람들에게 무수히 물어봤어요. 모두가 바빠 보이기 때문에 요청하기 부담스럽긴 하지만, 상황을 잘 파악한 다음 피드백을 받는 편이에요.

 

가장 만만한 상대인 동기와 친구들에게는 항상 받아요. 큰 행사를 준비할 때는 오프라인 행사를 많이 해봤던 선임들에게, 카피가 막힐 때는 배민의 글쓰기 코드를 가장 잘 아는 동료들에게 물어보고요.* 결과물이 대중에 나가기 전에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봐줄 수 있는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도 평가를 부탁합니다. 피드백 요청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 관련 글: 피드백하는 법 (출처: 이승희 저자 브런치)

 

잘하는 사람들은 이미 어떤 경지에 도달했고, 누구보다 자기 일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잘하는 사람들 옆에 계속 있으세요. 그렇게 처음에는 받아들이는 양이 차고 넘쳐야 합니다. 그것이 곧 피드백입니다. 계속 흡수하다 보면, 보는 눈이 점차 생긴다고 믿습니다. 

 

셋째, 인간에 대한 이해

마케팅에서 중요한 또 다른 부분은 인간에 대한 이해입니다. 브랜드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나의, 우리 브랜드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까? 왜 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까?'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입니다. 저도 항상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참 어렵습니다. 저 자신조차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세상 만물과 사람에 대해 관심을 쏟는 일은 마케터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 같습니다.

 

제 나름의 몇 가지 방식을 꼽자면, 인문학과 심리학 관련 책을 사서 공부해보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언어를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관찰
피드백 흡수
인간에 대한 이해

마케터가 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세 가지 미덕입니다.

배달의민족에서 배운다

병원 마케팅을 하며 보낸 시간이 4년쯤 되었을 때인 2014년 2월,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현재 배민 마케팅실의 장인성 이사였습니다. 

장인성 이사와 주고받은 페이스북 메시지 ⓒ이승희

당시 저희는 페친이었어요. 페이스북을 통해 제가 한 일을 지켜보고는, 이직 제안을 한 것입니다. 배민은 자취생인 제가 정말 좋아하는 브랜드였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혼자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막막했던 것도 많았기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더 배우고 싶었습니다. 면접 때 김봉진 대표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많이 배울 수 있을 거예요.

당시 배민은 잘 알려지지 않은 조그만 스타트업이었죠. 병원에서 몇 년 동안 자리 잡아놓은 것이 아깝지 않냐며, 이직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말렸습니다. 하지만 마케팅을 잘 배우고 싶다는 욕심 하나로 이직을 선택했습니다.

이번 고비가 지나면 다음 고비가 온다. ⓒ이승희

예상했던 것처럼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병원에 있다가 IT 회사로 왔던 저는 회사 메일을 어떻게 쓰는지도 전혀 몰랐어요. 무수한 회의 속에서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어느 날은 책임님이 저를 보더니 한마디 하더라고요. "왜 아무것도 적지 않아요? 회의록은 기본이에요. 모르겠으면 다 써요. 아주 세세한 것까지 다 기록해요."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자국이 낫다.(The palest ink is better than the best memory)

 

- 중국 속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배민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취해서 회의할 때마다 가만히 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때부터 회의록을 적고 있습니다. 당연히 하는 것조차 왜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면 새로 온 사람들은 더 알기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정말 몰랐거든요. 

 

제 기록법은 이렇습니다.

아이폰 메모 앱(왼쪽), 에버노트 목록(오른쪽) ⓒ이승희

PC를 사용할 때는 구글 문서와 스프레드시트를, 모바일 환경에서는 아이폰 메모 앱, 에버노트, 카카오톡 '나에게 채팅하기' 기능을 사용합니다. 회의록을 작성할 때는 일시, 회의 목적, 내용에 기반해 날짜와 주제별로 나눠요.

 

팀원들은 개인 회의록을 더 발전시킨 버전인 프로젝트 리포트를 쓰고 있어요. 이 캠페인을 왜 하는지,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그래서 어떻게 진행했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담겨 있죠.
 
아무 말도 못 했던 회의가 정말 많았습니다. 주제를 두고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내야 하는 회의에 들어갈 때면, 도통 생각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머리와 몸에 쌓아둔 자원이 하나도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몇 주 동안 아무 말도 못 했더니 되게 비참하더라고요. 

좋은 서비스를 경험해 본 사람이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어요. 마케터는 경험이 재산이에요. 살까 말까 망설임이 들면 그냥 다 사세요. 좋은 물건을 써보고 경험해보지 않으면 그것을 만들 수 없으니까요.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잘하고 잘 만드는지 경험해봐야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어요. 좋은 것을 알아야 내가 더 욕심낼 수 있어요.

 

- 장인성, <마케터의 일>

마케터에겐 다른 직군보다 경험이 훨씬 더 중요해요. 경험이 많아야 사람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다른 마케터들에 비해 경험이 많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대전에서 막 서울로 왔을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서울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이 좋은지, 대학생들이 자주 가는 곳은 어딘지, 뮤직 페스티벌이 뭔지, 브랜드 제품 팝업스토어가 뭔지, 이런 지식이 전무했으니까요.

 

그래서 미친 듯이 경험 자산에 투자했습니다. 새로 생긴 카페, 서점, 식당과 같은 공간에 그 누구보다도 빨리 가보려 했고, 사람도 많이 만났고, 영화, 드라마, 예능은 물론 책도 장르 불문하고 많이 읽으려고 했습니다. 여행도 많이 갔습니다. 방송 출연으로 유명한 최현석 셰프의 말이 떠오르네요.

많이 먹어야 미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지난 몇 년 동안 주말이면 쉬지 않고 부지런히 다녔습니다. 그런 탓인지, 최근에 심리검사를 해봤더니 '업무를 위해서 경험을 하는 유형'이라고 나오더라고요. 웃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이렇게 경험 자산을 쌓으면서 체득한 습관이 있어요. 감동받고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입니다.

 

마케팅은 절대 혼자 할 수 없잖아요. 저뿐만 아니라 배민 마케팅실 모든 멤버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요. 모든 경험을 혼자 다 해볼 수 없기 때문이죠. 공유 형식은 글일 수도, 말일 수도 있습니다. 밥 먹을 때, 회의할 때, 이동할 때 우리의 공유는 계속 이루어집니다. 제가 못해본 경험을 들으며 상상하기도 하고, 또 시간을 내서 함께 그 경험을 해보기도 합니다. 지금 이 글을 네 명의 마케터가 모여서 쓰는 이유도 같은 이유겠죠.

 

마케터에게 배민은 더 어려운 브랜드입니다. 역할이 배달 앱 마케팅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죠. 앱 할인 프로모션과 온·오프라인 행사는 물론, 서체도 알려야 하고 회사 브랜드 관련 상품도 팔아야 합니다. 책도 만들어요. 저는 앱 마케터였다가, 책 마케터였다가, 폰트 마케터가 되곤 합니다.

ⓒ우아한형제들

그래서 병원에 다닐 때처럼 수단에만 집중할 수 없습니다. 이승희라는 사람의 그릇을 키워야만 실무를 할 때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대단한 것은 없습니다. 특히 실무자들이 매일 하는 일들은 대단해 보이는 것을 이뤄내기 위해 꾸준히 해야만 하는 일, 쭉 뻗은 직선 속 점 같은 일이 많습니다. 배민 마케터들은 대단해 보이는 1%를 위해 쓸데없어 보이는 99%의 일을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99%를 이루는 실무 이야기,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저의 경험과 기록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