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슬로워크(slowalk)는 조직과 사회의 변화에 기여하는 방법을 연구, 실행, 적용하는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회사다. 조직의 가치와 철학을 반영한 브랜드를 만들고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솔루션을 제안하고 있다. 2017년에는 사회혁신 영역의 개발자와 디자이너에게 보다 나은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로 UFO팩토리와 한 식구가 됐다.

 

2005년 설립한 슬로워크와 2013년부터 기술로 사회 변화를 이끌어온 UFO팩토리가 함께 만들어온 조직은 1100여 곳, 이들의 손을 거친 브랜드는 700여 개에 달한다. 2018년 기준 구성원 63명이 슬로워크를 만들고 있다.

 

슬로워크의 원격근무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합병 전 두 기업은 원격근무를 경험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한솥밥을 먹게 되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구성원이 늘어난 만큼 일하는 모습도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소셜임팩트, 디지털사업, 디지털아카이브, 인터널브랜드, 캠페이닝브랜드, 빠띠, 스티비로 구성된 7개 사업부와 운영본부는 각자 성향에 따라 일하고 있다.

 

빠띠 사업부의 경우 구성원이 일하는 동안 행아웃에 접속해 있는 때도 있다. 떨어져 있지만 소리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한다. 생활소음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 듣는다는 전제하에 본인의 상황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전체 구성원이 원격근무를 하는 디지털 사업부의 경우 매일 오전에 화상회의를 진행한다. 2018년에는 팀원 전체가 태국 코사무이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누군가는 남산도서관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제주에서 일한다. 서로의 경험은 블로그를 통해 공유된다. 조성도 이사는 말한다.

큰 틀에서 원격근무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조성된 문화다.

사무실에 나온다고 해서 꼭 일을 한다고 볼 수는 없다. 집에서 업무를 본다고 일을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일하는 장소가 바뀐다고 해서 일하지 않는 건 아니다.

슬로워커에게
어디서 어떻게 일하는지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구성원과 회사가 신뢰를 통해 연결되고 서로가 어느 자리에 있든 제 몫을 해내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유지되는 문화다.

돌고래와 나무늘보가 있는 성수동 아지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 마련된 사무실은 슬로워커의 거점이다. 어디서 일해도 상관은 없지만 원격근무를 하는 구성원과 그렇지 않은 구성원 모두를 위한 장소로 마련됐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편에는 출퇴근 구성원을 위한 책상 30여 개가 놓여있다. 자리에서 꾸준히 일하는 구성원을 위해 마련해둔 '나무늘보*'의 공간이다. 이동하지 않고 주로 사무실에 출근하는 구성원이 사용한다.

* 슬로워크는 내부에서 사무실 근무자는 나무늘보, 원격근무자는 돌고래라고 부른다.

 

나무늘보 반대편은 여럿이 앉을 수 있는 탁자가 놓여있다. 떼 지어 몰려다닌다는 뜻의 '돌고래 테이블'이다. 원격근무를 하는 구성원을 위한 자리다. 자리는 나뉘어 있지만 나무늘보에 자리를 둔 구성원이 돌고래 테이블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다.

 

돌고래 테이블에 있는 구성원도 더욱 조용한 공간이 필요할 때 나무늘보 자리를 찾는다. 그도 아니면 슬로워크가 입주한 헤이그라운드 내 공간에서 업무를 본다. 집중해서 해야 할 때와 약간의 소음이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을 때, 본인 상태에 따라 결정한다.

 

흩어져 있다 보니 전 직원이 모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서로의 얼굴을 보는 건 두 달에 한 번 열리는 타운홀 미팅에서다. 그래서 마련한 곳이 '원더월'이다. 원더월을 두고 조성도 이사는 "곁에 있지 않아도 함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구성원 각자가 좋아하는 사진을 붙여놓을 수 있도록 한 원더월은 따로 떨어져 있어도 언제든 구성원을 떠올릴 수 있도록 꾸며졌다.

생산성 도구는 진화 중

슬로워크는 다양한 생산성 도구를 사용하며 일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G스위트, 빠띠, 슬랙, 지라, 컨플루언스로 업무를 진행하고 구성원과 업무 현황을 공유한다. 업무를 시작할 때는 슬랙 어텐던스 봇에서 업무 시작과 끝을 알린다. 업무 시간을 기록하는 이유는 과도한 업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휴가는 따로 기록하지 않는다. 얼마를 쓰건 구성원 마음이다. 조성도 이사는 "슬로워크의 핵심가치인 자율과 책임에 따라 자율적으로 휴가를 사용하면 된다"라고 설명한다.

 

커뮤니케이션은 비동기식으로 이뤄진다. 필요한 말은 한 번에 답할 수 있도록 상대방이 잠깐 사이 메시지를 확인해도 한 번에 답을 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권한다.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할 때는 상관없지만, 원격근무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서다.

 

다양한 생산성 도구를 활용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모든 업무를 매끄럽게 진행하기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따른다. 사업부서와 조직에 맞는 도구, 이를 사용하는 문화를 고민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원격근무라는 구조를 가져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곳의 제도를 슬로워크에 이식하기엔 결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원격근무가 업무를 잘하기 위한 하나의 문화라면, 구성원이 하나하나 만들면서 학습할 수밖에 없다.

슬로워크는 원격근무 중 구성원이 스스로 경험하며 필요한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가도록 여지를 두고 있다. 그래야 더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현재는 모든 도구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차츰 도구를 줄여나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기능이 중첩되면 하나로 통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빠띠의 경우 컨플루언스와 위키 기능 추가가 마무리되면 컨플루언스를 대체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디지털사업부 구성원은 "생산성 도구가 좋아진 만큼 잘 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부 소통 규칙을 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의사결정 방식, 정보 공유 범위, 업무에 적합한 생산성 도구를 고르는 일까지 구성원이 함께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은 태도에서 나온다

회사 입장에서 성과라고 볼 수 있는 첫 번째 지표는 수익. 두 번째는 사업부가 회사의 미션을 추구하는지 여부다. 다른 사업부를 도우려는 태도, 하나의 공동체를 중요시했는지를 본다. 이는 수익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다. 나, 우리 팀만 중요하다는 태도는 회사 입장에서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원격근무는
시작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원격으로 근무하는 사람과 이들이 만들어내는 문화가 성장과 선순환을 이뤄야 지속 가능하다. 이를 만들어 가는 것도 결국 사람이기에, 슬로워크는 서류전형부터 실무 면접, 경영진 면접에 이르는 채용 과정에서 회사의 미션을 공유할 수 있는 인재를 검증하고 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슬로워크가 가장 비중을 두는 요소는 '태도'다.

실력은 배울 수 있다. 못하는 건 배우고 학습하면 된다. 이 모든 것의 전제는 배우려는 의지와 받아들이려는 태도다. 툴 쓰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상관없다. 배우면 된다. 하지만 툴 쓰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맞지 않는다고 본다.

새로운 구성원이 오면 신입사원 교육인 이른바 '금귤 과정'을 한 달간 진행한다. 슬로워크의 업무방식과 문화를 체득한 오렌지가 되기 전 거치는 입문 과정이다. 이 시간에는 이메일과 슬랙, 빠띠, 지라 등 실제 업무에 활용되는 도구를 시연해보고 적응기를 거친다. 비대면으로 소통할 때 유의해야 할 점도 이 기간에 다룬다.

 

예컨대 '카카오톡처럼 대화하지 말자'는 것도 그중 하나다. 상대방 답을 기다리고 순차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방식 대신 비동기식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익힌다. 조성도 이사는 금귤 과정을 두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같은 기본 과정을 두는 이유는 본인이 원격근무를 하지 않아도 원격근무를 하는 사람과 일을 하기 때문이다.

기존 구성원은 팀 회고와 신호등 체크리스트를 진행한다. 따로 또 같이 일하는 구성원이 겪는 문제를 면밀히 살펴보기 위한 제도다. 팀 회고는 팀원이 정한 목표를 완수했는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회사 미션을 실천했는지에 대해 이뤄지는 팀 차원의 점검이다.

이후에는 1년에 3번, 모든 사업부가 참여하는 신호등 체크리스트가 진행된다. 미션 부합도, 팀 구성원 만족도, 수익목표 달성, 고객 피드백 등을 빨간색, 주황색, 초록색 등 다섯 단계로 표시하고 이를 통해 업무와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수익목표 달성 현황 등을 점검한다.

다양성이 꽃피는 문화를 위해

원격근무는 조직의 다양성 측면에서 중요하다. 각자 일이 잘되는 시간과 환경이 있다. 하나의 정해진 환경에서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각자의 개인과 사정도 존재한다. 구성원 개개인이 가진 결을 무시하고 같은 시간, 한 공간에서 일하라는 건 어떻게 보면 폭력적이지 않을까.

일하는 방식에서
다양성을 열어둔 만큼
슬로워크 내 구성원의 삶도
다채로움을 추구한다
누군가는 육아를 하면서 자기 일을 한다. 건강상 이유로 출퇴근이 어려운 사람도 커리어를 유지한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원격근무 문화가 개개인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고 누군가의 다름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는 셈이다.

 

슬로워크는 그들이 만들어온 원격 근무 문화를 슬로워크 라이프 핸드북에 담을 예정이다. 라이프 핸드북은 신입 구성원에게 지급되던 온보딩 가이드를 발전시킨 형태다. 기존 온보딩 가이드에는 팀 소개와 오피스 프로그램 설치 방법, 호칭, 업무 툴 소개 등 회사 생활에 필요한 사항이 담겨있었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라이프 핸드북은 업무에 언제든 참고할 수 있도록 채워 나간다. 슬로워크가 일하는 방식을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만큼, 원격근무를 위한 툴킷 제작도 염두에 두고 있다.

ⓒ슬로워크

가까운 미래에는 슬로워커가 일할 수 있는 거점도 추가로 마련할 계획이다. 전 세계 어디서도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지원하는 구상이다. 조성도 이사는 말한다.

그때가 오면 구성원 중 누군가 '이번 한 달은 후쿠오카에서 일하고 올게요'라고 말하는 게 자연스러워질지도 모른다.

그 무렵 슬로워크는 어떤 목적을 이뤘을까. 조 이사는 이렇게 답했다.

슬로워크 구성원이 꾸는 꿈도 실현되어 있지 않을까. 빠띠가 염원하는 민주적인 세상을, 스티비가 꿈꾸는 마케터의 저녁 있는 삶을 이루는 것이다. 여러 꿈을 꾸게 하는 세상, 꿈이 현실로 이어져 또 다른 꿈을 만드는 길목에 슬로워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