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자유를 허하라

체커(CHEQUER)는 카카오 초창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던 황인서 대표와 오픈소스 개발자인 장기영 기술책임이사, 앤트위즈 창업자 양용성 제품책임이사가 의기투합해 만든 데이터베이스 개발·관리 솔루션 기업이다. 2016년 12월, 공동창업자 3명은 양용성 이사가 개발하던 SQL게이트(SQLGate)를 한국을 넘어 세계시장에 선보이겠다고 뜻을 모았다.

 

체커가 선보인 SQL게이트는 데이터베이스 관리 소프트웨어로 기업의 데이터 업무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솔루션이다. 대기업과 제조, 금융, 방송, 통신 등 국내 2만여 곳에서 SQL게이트를 활용하고 있다. 누적 라이선스는 5만 5000건을 돌파했다. 데이터베이스 개발·관리 솔루션에 블록체인을 결합한 보안 솔루션도 시장에 나올 준비를 마쳤다.

 

체커는 공동창업자 3인이 모였을 때부터 원격근무를 시작했다. 양용성 이사가 체커 합류 이전 제주도에 이주해 생활하던 터라 자연스레 원격근무가 이뤄졌다. 황인서 대표는 "원격근무 준비 과정이 특별하다기보다 물리적으로 떨어진 채로 시작한 만큼 시스템이 잘 받쳐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전한다. 현재 체커는 서울시 강서구와 제주도 표선면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2018년 기준 18명의 체커 구성원은 서울과 제주, 두 곳뿐 아니라 원하는 어느 곳에서든 일할 수 있다.

리모트워크에 대해 안내한 체커의 핸드북 (자료 제공: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체커에는 일정을 확인하거나 업무량을 체크하는 구성원이 따로 없다. 정해진 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 각자 알아서 자율적으로 근무하며 목표치를 달성하면 된다. 물론 진행 중인 업무에 완료 일정이 있을 경우에는 이를 준수해야 한다.

 

2017년에는 양용성 이사가 한 달간 치앙마이에서 일했다. 황인서 대표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어떤 일을 하는지 진행 상황이 서로에게 공유되고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고 밝혔다.

 

하루에 몇 시간 일해야 한다는 규정 또한 없다. 반차나 반반차라는 개념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4시간 이하 일정은 따로 팀 내에서 시간을 조율하면서 활용할 수 있다. 부족한 업무 시간은 자율로 채우면 된다. 휴가는 1년 최대 30일까지로 정했다. 이유를 설명하거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다. 회의나 프로젝트 등 협업 스케줄을 미리 조절만 한다면 가능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사무실에서 일하기 싫다면
다른 곳에서 일해도 상관없다
나아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구성원 모두가 볼 수 있는 캘린더에 '휴가'라고 기록하면 된다. 구성원은 내부에서 사용하는 소통 툴 아지트에 시차와 출퇴근 시간, 외부 일정을 기록한다. 보고용이 아니라 회의나 함께해야 할 일정이 있을 때 구성원에게 미리 알리는 용도로 쓰인다.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면 '회의, 다른 팀과 협업, 일정 조율을 잘해야 한다는 것'. 회사가 언제까지 무엇을 달성할 것인지, 또 팀별로 구체적인 업무를 언제까지 할 것인지 목표를 세우고 이를 수행해야 한다.

핵심은 잘 짜인 시스템과 신뢰 공동체

업무 효율성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구성원이 장시간 앉아 일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는 조직이 있는 반면, 하고 싶은 대로 놔둬도 구성원 스스로 일할 역량을 끌어올려 일하게 되는 조직이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자유롭게 일하는 문화다. 일하는 장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무실에 나오느냐 나오지 않느냐의 차이는 기호 차이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구성원 중 혼자 밥을 먹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나오는 사람도 있다. 결국 상황에 따라 개인이 판단하면 되는 일이다.

체커의 원격근무 시스템은 체커의 핵심가치 중 하나인 자유와 맞닿아 있다. 황인서 대표는 이렇게 덧붙인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일하며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이 소프트웨어 분야 산업에서 핵심역량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는 지식을 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분야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스스로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낼 때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원격근무를 통해 자율성을 높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불안하지는 않나요?

황 대표가 답한다.

전혀요.

굳은 믿음의 기저에는 촘촘하게 쌓아올린 업무 시스템이 있다. 체커는 아지트, 슬랙, 지라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협업 툴을 통해 구성원과 정보를 공유한다. 업무와 협업 상황, 회사 내부 이슈와 공지사항 등은 구성원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어디에서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VPN(Virtual Private Network)도 구축해뒀다.

시스템은 구성원 간
신뢰 연결고리를 촘촘하게 만든다

구성원이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업무 툴에 알림이 온다.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나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구성원이 확인하고 있다는 피드백이 온다. 의심할 이유가 없다. 시스템으로 연동되어 있다. 각자가 서로를 믿으며 일한다. 의심할 이유도 없고 그럴 경우도 없다.

체커에서 일하는 모습 (자료 제공: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투명한 정보 공개에서 나오는 책임감

투명한 정보 공개는 구성원 스스로에게 책임을 부여한다. 서로를 믿으면서 일하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두가 나눠 갖는 구조다. 체커는 구성원이 사용하는 포털에 직군별 업무부터 매출, 각자에게 부여된 법인카드 사용내역 등 민감한 정보를 제외한 회사의 모든 정보를 공개한다.
투명한 정보 공개는
구성원 스스로 움직이게 만든다

예컨대 포털에 공개된 구독률과 매달, 분기별 수익을 보면서 대표보다 더 고민하는 이들은 구성원이다. 마케팅팀은 매출을 높이는 방법을, 개발팀은 품질 개선을, 각자가 주어진 자리에서 회사를 더 많이 알릴 방법을 고민하고 스스로 방법을 찾아 나선다.

구성원에게 따로 각자의 책임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가 답을 찾는다. 구성원이 일하기 좋은 환경과 문화가 갖춰졌을 때 구성원과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신뢰와 책임으로 연결되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이는 황인서 대표를 주축으로 한 구성원이다. 카카오 근무 시절 자유롭게 일하는 문화를 경험한 황 대표는 그가 보고 듣고 겪은 것 중 가장 좋은 것만 체커에 담았다. 신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원격근무, 수평적 소통 구조, 투명한 정보 공개, 구성원 모두에게 주어지는 법인카드 등이 그것이다. 모두 신뢰 공동체 안에서 자유롭게 결정하되,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사람보다 중요한 건 없다

한국에서 탄생한 글로벌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들고 싶다. 나아가 체커에는 정말 뛰어난 사람과 좋은 문화가 있어서 즐겁고 재미있게 일하면서 자신도 성장할 수 있는 회사로 알려졌으면 좋겠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가장 공을 들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채용이다. 서로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이나 커리어는 기본이다. 그다음 신뢰할 수 있는 인재인지, 회사 문화에 적합한 인물인지 경험, 역량, 문화, 자기주도성 네 가지 척도에 따라 평가한다. 네 가지 요소를 골고루 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량은 자기주도성이다. 스스로 충분히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사람, 구성원 모두가 잘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누가 일을 시키거나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서 하는 동료라는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 채용 과정은 이를 검증하는 단계다. 자신의 행동이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는지, 누군가와 함께하면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면 언제였는지를 묻는다. 체커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 또 구성원과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주로 본다.

체커에 입사하면 누구도 일을 시키거나 강제하지 않는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신입 구성원이 입사 후 일주일간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는 아지트에 기록된 업무 현황과 회사 정보를 익히는 일이다. 아지트에는 신입 구성원의 자기소개는 물론 회의 과정, 결론, 매출, 수익 등 공개할 수 있는 모든 정보가 담겨있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이 속한 팀과 함께 일하는 동료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자기 일을 찾는 것이 신입 구성원에게 맡겨진 첫 번째 과제다.

 

그러다 보니 내부에서는 채용에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다. 좋은 인재를 구하는 일은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 정성이 들어가는 법이다.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좋은 동료를 모으기 위해 황인서 대표가 택한 방법은 좋은 리더들을 모아두는 것. 함께 일하고 배우고 싶은 리더를 체커로 영입했다.

 

카카오, P&G, 법무법인 등 다양한 경험을 갖춘 인재들이 구성원으로 합류했다. 성장에 대한 갈증도 리더와 지식을 나누고 싶은 구성원이 모여 함께 해결한다. 최근 체커 구성원은 SQLD 자격증 스터디를 시작했다. 황인서 대표는 "업무를 잘하기 위해 하는 것이니 당연히 업무시간에 진행된다"며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만든 스터디에 스스로 참여하고 성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원격근무는 일을 잘하기 위해 도입한 문화

시스템 안에서 불편한 점은 없었을까. 황 대표는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고 답한다. 급하게 회의해야 하는 상황에서 구성원이 없을 때가 그렇다. 하지만 회사 운영에 지장을 줄 정도의 큰 불편은 아니다. 정 회의가 급하면 휴대폰 영상통화를 활용하면 된다. 이마저도 캘린더에서 미리 일정을 조율할 수 있어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 면대면으로 대화할 때 빨리 끝나는 일을 문서로 만든 후 공유하는 점도 불편함으로 꼽았다. 역시나 큰 불편은 아니다. 황 대표는 말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당사자끼리 얘기하고 끝나는 사안을 문서로 정리해 구성원과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볼 수도 있다. 원격근무의 방점은 원격이 아니다. 복지도 아니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도입한 회사의 문화다. 구성원 간의 신뢰, 원격근무가 가능한 시스템이 갖춰졌을 때 추천한다.

체커는 원격근무를 비롯한 체커의 문화, 비전, 미션, 사람에 대한 철학, 일하는 방식 등을 핸드북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구성원과 예비 체커인을 위한 일종의 안내서다. 2018년에만 구성원 10명이 합류한 만큼 구성원이 겪는 혼란을 줄여주고 좀 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앞으로도 새로운 시스템이 생기거나 체커 내 새로운 문화가 피어나면 핸드북에 고스란히 기록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