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의 삶

Editor's Comment

이 리포트는 2018년 12월 출간한 <리모트워크로 스타트업(하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를
재구성 및 편집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조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지 못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렇게 직장인 대부분은 어김없이 돌아오는 월요일을 괴로워하고 종종 야근과 휴일 근무에 시달린다. 정착하고 싶은 마음과 원하는 삶은 은퇴 후로 미루며 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몇 년 전부터 주목받아온 게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는 말이다. 디지털 노마드란 용어 자체는 프랑스 경제학자 자크 아틸리가 1997년 자신의 저서 <21세기사전(Dictionaire du XXIe siecle)>에서 처음 소개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사무실로 출근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일하는 문화를 말한다. 유목민(Nomad)과 비슷한 생활방식이지만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르는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가 일하는 모습 (자료 제공: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작가이자 포브스 기자 출신인 카비 굽타(Kavi Gupta)는 디지털 노마드 관련 기사를 기고하고 자신의 경험을 다룬 책을 발행하면서 주로 일의 미래에 관한 글을 쓴다. 그 역시 직장에서 겪은 고충과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삶을 선택한 계기에 대해 말한다.

내가 속해 있던 근무 환경에서 겪은 어려움 때문에 그리 행복하지 않았고 근무 환경에 기여하는 방법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스타트업이나 창업가는 앱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지만 반드시 거대한 무언가를 바꿀 필요는 없다. 그저 당신의 직장을 당신이 지내기 좀 더 행복할 수 있게 만들면 된다.

디지털 노마디즘은 자신이 하는 일에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과 자신의 능력 혹은 기술만큼이나 자율성을 지니는 게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상기시킨다. 디지털 노마드 역시 여느 직장인과 다름없이 철저한 자기 관리와 책임감을 갖고 일하며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이다. 차이가 있다면 사무실에서 일할 것인지 아닌지 스스로 선택하고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비 굽타는 디지털 노마드가 되면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면서 자율적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회사를 위해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며 창업자나 상사나 팀원이 동의한다면 바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더 큰 도시로 이주하거나 타국으로 이민을 가야 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일과 삶을 꾸려갈 새로운 방식을 선택할 기회와 마주하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삶은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의 일상이자 가까운 미래의 모습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래의 일하는 방식

리모트워크(Remote Work)는 한마디로 원격 근무를 말한다. 비대면, 그러니까 얼굴을 맞대지 않고 근무하는 업무방식을 말하는 것. 이 같은 근무 환경이 탄생한 건 기술을 통해 어디서나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 없이 비대면 업무가 가능해진 상황도 작용한다. 또 이를 통해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시간이나 공간 제약을 벗어나 유연한 업무 환경이 조성되었음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리모트워크는 업무 환경을 통해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스마트워크의 일종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사실 리모트워크가 근래에 새롭게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재택근무 역시 리모트워크의 한 형태로 과거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리모트워크를 시행하는 기업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새로운 일하기 방식으로 리모트워크가 주목받는 것이다.

 

리모트워크의 장점은 일하는 장소와 시간을 개인의 자율성에 맡겨 업무 효율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매일 사무실로 통근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는 대신 스스로 일하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줄이고 효율성과 생산성은 높일 수 있다.

 

미국: 텔레워크촉진법 이후 성장세

이 같은 장점은 데이터가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의 소셜미디어 스타트업 버퍼(Buffer)가 전 세계 90개국에서 활동 중인 리모트워커 19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8 리모트워크 리포트'에 따르면 90% 이상 응답자가 앞으로도 리모트워크로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뿐 아니라 주위에 추천하겠다는 비율도 94%로 나타나 리모트워크로 인한 근로자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으로 확인됐다.

 

리모트워크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일조한다. 재택근무를 통해 불필요한 이동을 줄이면 차량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감소시킬 수 있어 환경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다. 리모트워크 도입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동에 투입되는 인구가 줄었고, 기업은 생산성 악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때 리모트워크와 같은 유연근무제 등을 도입하면 노동인구 감소에 따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업무 생산성, 노동력 감소, 일과 삶의 균형, 환경문제 해결 등을 이유로 정부 차원에서 리모트워크를 적극 도입하기 시작됐다. 미국의 경우 2010년 텔레워크촉진법이 추진되면서 스마트워크가 본격화됐고 리모트워크 인구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글로벌워크플레이스애널리틱스(Global Workplace Analytics)와 플렉스잡(Flexjob)이 발간한 2017 텔레커뮤팅 리포트에 따르면 2005~2015년까지 10년간 정기적으로 리모트워크를 하는 노동인구는 115% 늘었다. 이는 400만 명으로 미국 전체 노동인구 중 2.9%를 차지하는 수치다. 리모트워크를 도입하는 기업도 소규모 스타트업에서부터 대기업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2020년까지 미국 노동인구 중 무려 73%가 모바일워커로 일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출처: 2017 텔레커뮤팅 리포트 (자료 제공: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미국에서 리모트워크 현상을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은 실리콘밸리다. 테크 스타트업의 성지인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 업무 유연 제도를 포함해 리모트워크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실리콘밸리에서 리모트워크가 활성화된 가장 큰 이유는 유능한 테크 인재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집값은 일반 직장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치솟고 있다. 비싼 주거비용과 생활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인재는 주변 지역인 포틀랜드와 오리건 등으로 이주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실리콘밸리가 아닌 외부지역에서 인재를 구하고 유연한 업무 환경을 제공하는 일이 매우 일상화되고 있다.

 

스타트업 뿐 아니라 투자자에게도 리모트워크가 매력적인 건 마찬가지다. 지난 2014년 설립한 스타트업 깃랩(Gitlab)은 개발 소스코드 공유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이 기업의 경우 250명에 이르는 직원이 있지만 전 세계 39개국에 흩어져서 일한다.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은 창업자인 시드 시브란지 단 한 명이다.

 

하지만 이 기업은 창업 3년 만에 4550만 달러(한화 약 517억 원)를 투자받는 등 주목받고 있다. 리모트워크를 훌륭히 문화로 소화해냈을 뿐 아니라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라스 렉키 허머 윈블랜드 벤처파트너스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투자한 스타트업 4곳 중 2곳은 사무실이 없어요. 직원이 다섯 명이 될지 100명이 될지 모르는 회사가 5년 임대 계약부터 맺는 게 우스꽝스러운 일 아닐까요.

사무실이 없다는 건 과거에는 미쳤다고 생각했을 만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똑똑한 일로 평가받는다.

 

대기업과 인재 뺏기 전쟁을 치러야 하는 작은 스타트업은 업무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유연근무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인재를 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등 실리콘밸리의 테크 자이언트들은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인턴에게조차 스타트업의 2배에 가까운 연봉을 제시한다.

 

이런 경쟁적 환경 탓에 이미 실리콘밸리에서는 현지 인재를 구하는 것은 아예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지에 머물러야 하는 기업 대표와 기타 인력은 소수로 두고, 국경을 넘어 인도나 중국 인재로 CTO 자리를 채우는 일도 볼 수 있다. 미국의 거대 기업도 유연근무제를 통한 리모트워크에 동참하고 있다. 델, 아마존 등도 리모트워크를 허용한다.

 

코워킹스페이스 성장과도 무관치 않다

물론 일부 대기업은 리모트워크를 허용했다가 번복하기도 했다. 대기업 중 대표적인 리모트워크 실패 사례로 불리는 야후를 비롯해 뱅크오브아메리카, 애트나 그리고 최근엔 IBM까지 야심 차게 리모트워크 프로그램을 도입했다가 아주 없애거나 일부만 남겨놓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리모트워크 실패에도 여전히 리모트워크 트렌드는 미국 내에서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리모트워크의 지속적인 성장은
코워킹스페이스의 성장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미국 뉴욕에서 탄생한 위워크는 설립 8년 만에 전 세계 23개국 287개 지역에 오피스를 열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코워킹스페이스는 주로 리모트워커가 일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코워킹스페이스의 성공은 리모트워크 활성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스타트업 단일 기업 투자로는 최대 금액인 44억 달러를 투자하며 위워크의 가능성에 배팅하기도 했다*. 위워크에 따르면 대기업의 위워크 공간 대여가 증가하고 있어 위워크가 대기업 직원의 리모트워크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 2017년 기준 투자 금액. 얼마 전에는 위워크에 대한 소프트뱅크의 투자 축소 기사가 나기도 했다. / 관련 기사: 잘나가던 공유 오피스 위워크 '거품' 끼었나…소프트뱅크, 투자 대폭 축소 (한국경제, 2019.1.14)

위워크 오피스 내부 (자료 제공: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일본: 일하는 방식 변화 추진

일본 역시 정부가 나서서 근로자의 재택근무를 장려하고 있다. 일본은 심지어 2018년부터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매해 7월 24일을 원격근무의 날로 지정하고 리모트워크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리모트워크 운동 추진 주무처인 총무성은 업무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직원 900여 명이 리모트워크에 동참하고 있다.

 

일본이 이처럼 리모트워크를 장려하는 이유는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급격하게 감소하는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육아와 가사로 인해 출근하기 어려운 여성 인력을 위해 유연근무 제도를 활용하고, 이동이 불편한 고령자는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하면서 지금까지 노동인구에 속하지 못했던 인력을 일터로 끌어들이고 있다.

일본은 국정 정책의 하나로
일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진해왔다
과거 빠른 경제성장을 견인한 고강도 업무방식이 더는 효율적이지 않다는 판단 아래, 일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통한 업무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는 것이다.

 

일본 기업 역시 국가 정책에 따라 직원의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데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일본 전자제품업체 후지쯔는 2017년부터 정직원 3만 5000명이 원할 경우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자동차회사 도요타 역시 2016년부터 사무직과 기술직 직원을 대상으로 단계적 재택근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18년에는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이 통과되면서 노동시간 상한 규제와 노동 대가를 시간이 아닌 성과로 측정하는 방식 도입 등 일본 근로자의 업무방식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 관련 자료: 일본 노동개혁의 최근 동향과 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8.7.9)

 

EU·영국: 리모트워크 확산 중

유럽의 경우
미국과 일본보다 더 활발하게
리모트워크를 도입하고 있다
유럽은 2002년 EU 텔레워크에 관한 유럽기본협약(The European Framework Agreement on Telework)에 따라 국가별로 리모트워크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 국가 중 스마트워크를 가장 활발히 실행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경우 2007년 기준 전 사업체 중 49%가 스마트워크를 실시하고 있으며, 수도인 암스테르담 주변에 스마트워크 센터 99개를 운영하며 리모트워커를 위한 제반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도 리모트워크와 유연 근무제가 증가하는 추세다. 영국 통계청은 2012~2016년 사이 영국 내 유연근무가 12.35% 증가했고, 영국노동조합은 지난 10년간 리모트워크 인구가 24만 1000명 늘어났다고 밝혔다. 오드몽키(OddsMonkey)가 발행한 리포트는 영국 노동인구 중 절반이 2020년까지 리모트워크를 따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담았다.*

* 관련 기사: Half of the UK workforce to work remotely by 2020 (smallbusiness.co.uk, 2017.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