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인터뷰 날짜 : 2016년 4월 21일, 5월 19일, 6월 17일, 7월 9일/18일, 8월 15일/28일
만난 장소 : KAIST 연구실/인근 식당

눈이 안보이도록 웃었다. 화장이 고왔고, 옷차림은 하늘하늘했다. 박사, 그것도 KAIST 물리학 박사라는 엄청난 타이틀과 쉽게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보였다. '안 그렇게 생겼는데 공부 잘하는구나!' 소리깨나 들었겠다 싶었다. 

 

김세정 연구원은 부잣집 막내딸 테가 났다. 몇 번을 만나도 맺힌 데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급식지원을 받았던 것을. 선생님이 말려서 학생회장 선거에도 나가지 못했고, 아버지처럼 군인이 되고 싶어 육사에 지원했다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던 것을. 서른두 해 동안 차곡차곡 쌓아올린 슬픔과 분노와 외로움의 힘으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도 몰랐다.

 

 

그는 서강대 05학번이다. 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KAIST에 진학해 '앞뒤로 여자는 나 혼자뿐인' 석박사 과정을 보냈다. 박사 후 연구원으로 보낸 과정까지 대전에서 보낸 기간만 8년이다. 최근에 영향력이 큰 학술지 「Advanced Materials」에 논문 하나를 썼고, 해외 박사후 과정을 알아보고 있다. 결혼이나 출산 같은 일들이 마음에 걸리지만, 일단은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기 위해 해외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작가 장강명의 소설 제목*처럼 결코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것은 아니다. 언제고 다시 돌아올 생각은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김세정 연구원에게 한국 사회란 하고 싶은 연구와 가정을 꾸리는 일을 함께 해나가기에 벅찬 세상이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세상이라지만 떠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아 보였다. 

*「한국이 싫어서」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한국에서 찾을 수 없어 호주로 이민을 떠난 20대 직장인의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입니다. -PUB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