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와 창업의 빈도는 반비례한다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0년 8월에 발간된 <스타트업 바이블 1>과 2013년 1월에 발간된 <스타트업 바이블 2>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코닥(Kodak), 허쉬스(Hershey's), 쿠어스(Coors) 등 대기업이 창립된 시점은 놀랍게도 1873년 주식시장 붕괴와 함께 찾아온 경제공황 때였다. 1930년 대공황 기간에는 휴렛 팩커드(HP), 폴라로이드(Polaroid),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exas Instruments) 등이 작은 스타트업으로 시작했다.

 

그밖에도 오늘의 실리콘밸리를 있게 한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s)와 인텔 등 굴지의 반도체 기업들은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았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창업되었으며, 1974년에는 빌 게이츠(Bill Gates)와 폴 알렌(Paul Allen)이 유가 폭등의 불황 속에서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라는 위대한 기업을 창립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최악의 불경기로 기록되는 2009년, 미국의 젊은이들은 그 어떤 호경기보다 창업에 더 열중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잔뜩 움츠리고 있는 경제적 위기를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삼는 도전적인 창업가의 전통을 2009년의 젊은 창업자들이 자랑스럽게 이어나간 것이다.

 

불경기의 창업은 어렵지만 그만큼 매력적이다. 경쟁자가 적어 투자받을 수 있는 돈이 그만큼 시장에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쁘면 평범한 사람들은 현재 직장에 어떻게든 남고자 한다. 창업에 뜻을 두었다가도 경제 상황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비슷한 아이디어로 창업하는 경쟁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벤처 캐피털들도 불경기에는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 그들 역시 타 기관에서 투자받아 재투자하는 입장이므로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예비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기에도 유망한 스타트업에 대해서만큼은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정말 괜찮은 사업을 시작한다면 경기가 나쁠수록 더 쉽게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

 

불경기에 투자를 유치하려면, 이 시기에 맞는 가장 적절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2000년 초, 닷컴 버블이 붕괴되면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의 투자유치 전략은 이전과 비교해 극단적으로 달라졌다. 그중 이들이 반드시 지키는 몇 가지 가이드라인은 성공적인 투자유치에 매우 효과적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이드 1: 사업계획서에 시간 낭비하지 말라

백 장 짜리 사업계획서가 사업의 성공을 보장하던 때가 있었다. 1999년, 스탠퍼드(Stanford) 대학교에는 사업계획서 쓰는 요령을 가르치는 강의가 개설되었으며, 학생들이 대하소설에 버금가는 사업계획서를 쓰기 위해 캠퍼스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광경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당시 벤처 캐피털 기업과 미팅을 하기 위해서는 잘 짜인 사업계획서와 발표용 파워포인트 자료를 반드시 준비해야 했다. 이 사업계획서에는 향후 5년간의 재무제표가 포함되어야 하며, 창업 2년째부터는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하키 스틱(Hockey Stick) 모양의 그래프를 잘 그려야 했다.

 

사업계획서는 많은 이들의 피드백을 거쳐 수차례 수정 과정을 밟아야 했다. 이렇게 추상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완성하는 데만 최소 1~2개월이 소요됐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사업계획서가 너무 길면 일단 아무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통의 전화와 이메일을 받는 투자자들에게 백 장 짜리 사업계획서를 읽을 만한 시간적 여유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업계획서에 공을 너무 많이 들이면 실제 실행 능력을 의심받을 수 있다. 계획에만 지나치게 치중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으면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그렇다고 아무런 계획 없이 말로만 설명하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간단명료한 사업 개요(executive summary)를 한두 장 분량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내용도 어려워할 필요가 없다. 창업자 자신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더불어 아이디어와 실행방안, 수익 모델, 창업 팀 등에 대해 짤막하게 명기함으로써 직접 만나 대화할 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때 유의할 점은 매출에 대한 계획을 지나치게 거창하거나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인터넷 산업에서 스타트업의 5년 후 매출을 예측하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점치는 수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숫자를 부풀리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그럴듯한 예상 매출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투자자들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인구 13억 명 중 단 1%만 우리 제품을 구매한다고 해도 우리는 5년 후 수백억 원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다'는 식의 숫자놀음 말이다.

 

하지만 이 1%라는 수치는 대체 어디에서 나왔단 말인가? 중국인들 중 1%가 제품을 구매할 것이라는 예측은 결코 타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부풀린 계획은 설명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저 1~2년간의 보수적인 매출 계획을 제공하는 것이 투자유치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가이드 2: 프로토타입을 빨리 만들어라

사업계획서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 시간을 아껴 실제 제품을 만드는 데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투자받을 수 있는 시절은 이미 지나갔고, 아마도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마음가짐이 분명한 투자자라면 절대 아이디어에만 투자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느 정도 구체화된 제품이 실제 시장에서 사용자들의 반응을 얻어야만 비로소 30분 정도의 미팅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따라서 투자를 받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개념검증(proof of concept) 작업이다. 즉 아이디어를 제품화해 시장성을 테스트해보는 일이다.

 

아이디어의 시장 가능성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우선 프로토타입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면 시간과 돈,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일에는 자원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

 

특히 웹서비스를 준비한다면 더욱 쉽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훌륭한 툴들을 이용해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이를 더도 말고 3개월만 돌려보면 아이디어의 시장성을 금세 알 수 있다.

    

만약 시장에서 반응이 전혀 없다면 투자자에게도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때는 다른 제품을 시도하거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 성과는 얻지 못했더라도 어찌 되었거나 시간 낭비를 최소화한 셈이다. 반대로 시장에서 어느 정도 반응을 얻었다면 고객 사용도를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두고, 그에 따른 추가 작업을 위해 투자를 유치하면 좋을 것이다.

    

잘 알고 지내는 창업자 후배들 중 A와 B가 있다. 두 사람은 모두 뛰어난 두뇌와 추진력의 소유자인데, 비슷한 아이디어로 투자유치에 뛰어들었다. 그중 A는 꼬박 3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그럴듯한 사업계획서를 만들었다. 실제로 읽어본 사업계획서는 굉장히 논리 정연하고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년 넘게 그의 아이디어는 아직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종이 위의 글자로만 남아 있다.

    

반면, B는 처음부터 아예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가진 돈을 털어 웹프로그래머 한 명을 채용했다. 머릿속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3개월 후에 베타 사이트를 오픈했고, 단순한 프로토타입을 통해 적당한 수의 사용자를 영입할 수 있었다.

 

그는 사이트를 오픈한 지 6개월 만에 꽤 유명한 엔젤 투자자로부터 50만 달러(한화 약 6억 원)를 유치할 수 있었는데, 그 돈으로 개발자를 영입하고 제품을 개선해 현재 더 높은 밸류에이션에 시리즈 A 투자를 받을 계획을 갖고 있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A보다는 B를 더 선호한다. 따라서 투자를 받고자 한다면 최대한 빨리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라. 아무리 불경기라도 시장성이 검증된 아이디어에는 반드시 투자가 몰리게 되어 있다.

    

가이드 3: 엔지니어를 우대하라

엔지니어를 많이 채용하고 이들을 우대하는 전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타트업 초기 단계에는 영업, 마케팅, 홍보 같은 비즈니스 관련 인력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웹서비스의 특성상 초기에는 대대적인 마케팅이 필요 없기 때문에, 비즈니스 관련 인력은 매출 발생 이전 시점에는 회사에 방해가 될 뿐이다. 이들은 기업이 정상 궤도에 오른 후에 채용해도 늦지 않다.

    

반면, 똑똑한 엔지니어로 구성된 창업 팀은 스타트업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스타트업에 수준 높은 엔지니어가 포진하고 있으면 투자자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VC는 'NO'라고 말하지 않는다

벤처 창업자라면 벤처 캐피털(VC)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안다. 2007년 미국 벤처 캐피털 협회 발표를 보면 벤처 캐피털들이 검토하는 100개의 스타트업 중에 10개가 집중 검토 대상이 되며, 그중 1개만이 투자 유치를 받는다. 창업자로선 투자받을 확률 1%다.

 

투자받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나도 뮤직쉐이크를 운영하면서 투자 유치를 여러 번 시도해봤고, 조언을 맡은 다른 벤처의 투자 유치를 많이 도와봤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왜 이리 어머니가 많은지 모르겠다. 가끔 성공했다.

 

많은 창업자는 대부분 벤처 캐피털과의 미팅 후 기대에 부푼다. 투자 가능성이 1%인데도 말이다.

귀사의 아이디어는 정말 흥미롭고 가능성이 많아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회사에서 투자하기에는 약간 이른 감이 있네요. 조금 더 시장에서 반응이 생기면 그때 다시 한번 꼭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계속 비즈니스 진행 사항을 업데이트해주세요.

이건 '저희가 곧 투자하겠습니다.'가 아니다. 영양가 없고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다. 까칠한 벤처 캐피털이라면 같은 말을 '별로 신통치 않은 비즈니스네요. 나중에 봐요.'라고 한다.

 

벤처 캐피털이 당장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한마디로 제품이 별로여서다. 벤처 캐피털은 시장의 크기, 창업투자 회사의 성격, 경기, 지리적 문제 등 부수적인 부분을 둘러대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제품이다. 벤처 캐피털은 기본적으로 돈을 굴리는 자본가다. 하지만 일반적인 자본가에서 한 발 더 나가, 큰 위험을 감수한 투자를 하고 큰 수익을 챙기는 모험적인 투자자다.

 

이런 투자자가 아무리 불경기고, 미국이 아닌 외국에 있는 회사라고 기막힌 제품에 투자를 안 할까? 페이스북의 '좋아요'가 웹을 점령할 줄 알았으면 천하의 수전노도 지갑을 열었을 것이다.

 

왜 VC는 핑계가 많을까? 예의를 차리느라고? 아니다. VC는 절대로 창업자에게 직설적으로 'NO'라고 하지 않고, 해서도 안 된다. 방금 만난 이 청년이 지금은 볼품없지만, 제2의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가 혹시라도 되면 큰일이다. 우리한테 앙심을 품고 있으면 안 된다. 투자자는 항상 창업자와의 끈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당장 투자는 안 해도 보험 차원에서 '어장관리'를 한다.

VC가 튕길 때 쓰는 멘트

VC는 (제품이 좋지 않아서) ‘이런 제품에는 투자 못 하겠어요. 다음에 오세요’라는 거절을 이렇게 말한다:

- 창업팀은 정말 맘에 들지만, 아직은 저희가 투자하기에는 이른 단계인 거 같습니다.
- 매우 큰 잠재력이 있지만, 불경기라 저희 회사는 현재 대부분의 투자를 중단한 상황입니다.
- 저희는 주로 벤처가 조금 더 성장하고, 매출이 어느 정도 발생하는 단계에서 투자합니다.
- 상당히 흥미롭지만, 우리 회사는 외국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 우리도 현재 펀드가 거의 소진돼서, 다음 펀드를 완료하고 다시 고려하겠습니다.
- 투자는 하고 싶지만, 지금 저희가 관리하는 벤처가 워낙 많아서.
- 이 제품이 정말로 시장에서 팔릴 거라는 충분한 데이터가 생기면 그때 다시 한번 고려하겠습니다.
- 당신의 팀과 제품은 정말 좋은데, 우리가 주로 투자하는 분야인 IT 서비스가 아니라서 어렵겠습니다.

VC한테 이런 변명을 들으면 거절한 것이니 시간 낭비하지 마라. 괜한 기대를 하고, 계속 자료를 만들고, 계속 전화하고 찾아다니지 마라. 그 시간에 제품을 개선하라.
나도 내 제품이 나쁜 걸 모르고 VC의 줄듯 말 듯한 표현에 여러 번 혹했다. 불경기 핑계를 대는 VC가 경기가 나아지면 정말 투자하리라 믿었다. 그래서 비즈니스 진행 사항이 있으면 알려달라던 VC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VC는 답변이 늦거나, 결국 연락이 끊겼다. 우리 비즈니스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어장관리' VC를 다시 찾을 때는 '신분 상승'에 준하는 매출 증가나 높아진 사용자 수치를 들고 가야 한다. 상황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해법은 제품 자체다. 첫 미팅에서 안 차였다고 해도, 똑같은 상태의 제품과 비즈니스를 들고 같은 투자자를 찾아가는 것은 결국 투자자를 귀찮게 하는 일이다.

 

내 벤처가 투자를 못 받으면 이유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해야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가끔 가벼운 안부 전화라도 하면서 투자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라. 기회가 좋으면 당장에라도 당신 사무실로 달려와 투자 계약서를 내미는 게 모든 투자자의 기본 성향이다.

 

그렇다고 한 번 거절로 너무 낙심 말라. 탁월한 제품을 찾는 투자금은 넘쳐난다. 대신 소수 벤처에 돈이 몰려 있다. 훌륭한 제품을 들고 소수의 벤처 대열에 끼면 된다.

에버노트도 창업 초기에는 돈이 없었다

에버노트(Evernote)를 아시는지? 전 세계 1500만 명 이상이 이용하고 월 100만 명 이상이 신규 등록하는 온라인 노트 혁명 에버노트를 모른다면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사용해보길 권장한다. 나는 인터넷에서 찾는 모든 자료를 에버노트에 저장한다. 사진, 글, 음악, 이메일 다 들어간다. 이렇게 탁월한 서비스가 있나 감탄했다.©에버노트

그런데 창업자 겸 CEO인 필 리빈(Phil Libin)은 35세에 성인식을 치렀다며 당시를 회고한다. 2007년 말, 에버노트의 가용 자금은 바닥을 보였다. 초기에 투자자들의 입질은 많았다. 하지만 수익모델이 없다고 다들 손들었다. 필 리빈이 아무리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보내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운명의 날, 장소는 자기 집, 때는 새벽 3시. '내일 출근하면 전 직원을 해고하겠다.'고 결정했다. 자려고 불을 끄는데, 새 이메일이 왔다는 알람이 울렸다. 혹시나 투자자가? 벌떡 일어나서 확인했지만, 최근 들어 부쩍 많이 오는 애호가 편지였다.

 

스웨덴에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보냈는데 에버노트가 자기 인생을 바꿨다는, 별로 새롭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메일의 마지막 줄이 재밌었다.

혹시 돈이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

필 리빈은 잠이 달아났다.

안 그래도 우리가 돈이 좀 궁해요. 얼마 정도 생각하시는지?

바로 답변이 왔다.

50만 달러(한화 약 6억 원)면 될까요?

에버노트는 50만 달러짜리 단비를 맞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쑥쑥 컸다. 2011년 기준 1000만 달러(약 120억 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VC 투자액과 회사 수익을 합한 금액이다.

 

우리는 VC나 엔젤 투자자만 생각하는데, 세상엔 부자가 훨씬 많다. 그리고 부자는 재산을 늘리려고 항상 좋은 투자 기회를 찾는다. 부자는 우리의 고객일 수도 있고 우리와 전혀 다른 곳에서 사는 사람일 수도 있다. 우스갯소리로, 어느 길거리 거지는 퇴근 시간에 운전기사가 벤츠를 몰고 모시러 온다고 하지 않던가.

 

언제 어디서 미래의 투자자와 부딪힐지 모른다. 누가 부자인지, 누가 투자자가 될지 모르니 창업자는 항상 모든 사람을 친절하고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아마도 에버노트의 필 리빈이 고객 이메일을 그냥 무시했다면 우리는 에버노트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귀인(貴人)을 만났다. 뮤직쉐이크 자금이 바닥날 무렵, 나는 공격적으로 투자 유치 시도를 했다. 모든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실리콘밸리와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VC 소개는 다 받아서 미팅했지만, 다 퇴짜였다.

 

2009년, 마지막으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길거리 커피숍에서 긴 미팅을 했다. 나는 마치 내일은 없다는 각오로 열변을 토하면서 뮤직쉐이크가 얼마나 유망한 투자 상품인지를 역설했다. 인간적으로 친해진 VC라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VC는 이번에는 투자하지 못하지만 계속 연락하자며 자리를 떴다.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막상 거절을 당하니 충격이 컸다. 그냥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한 모금 들이밀었다. '자, 이젠 어떻게 하지?' 그때 가까운 테이블에 있던 40대 아저씨가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엿들으려고 한 거는 아닌데, 선생님 목소리가 커서 들었습니다(내 목소리가 좀 크긴 크다). 무슨 음악 관련 IT 서비스 같은데 저한테 좀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요?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요.

사실 지치고 짜증 나서 무뚝뚝하게 설명했다. 질문이 많이 나왔지만, 건성으로 답했다. 동네 아저씨같이 생긴 백인이 뭘 알겠어? 우리가 하는 인터넷 사용자 제작 음악 서비스가 얼마나 복잡한데. 몇 분 후, 동네 아저씨는 짧게 인사 후 자리를 떠났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저는 존 크라프트(Jon Kraft)라고 해요. 저도 판도라 미디어(Pandora Media)라는 음악 관련된 스타트업에서 일해봐서 관심을 뒀습니다.

다음날 알아보니 존 크라프트는 귀인이었다. 2011년에 상장한 판도라 미디어의 공동 창업자이자 초대 CEO였다. 그때 내가 온 정성을 쏟았다면 과연 투자받았을까? 어쨌든 나는 귀인을 몰라보고 박대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정성과 열성으로 사람을 대하는 습관을 들였다. 우리 비즈니스에 관심을 보이면 노인, 어린아이, 옷차림이 허름한 사람이라도 친절하게 모셨다.


세상은 넓고 언제 어디서 투자자를 만날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