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인 신인
엘리트들이 한계에 부딪히는 영역이 한곳 더 있다.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작품'을 알아보는 분야다. 전복적인 작품은, 문자 그대로 체제를 전복하려 든다. 따라서 구체제의 엘리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에 저항하게 되기 쉽다. 상상을 뛰어넘는 혁명적인 작품은 엘리트의 상상력 밖에 있다.
그러므로 엘리트는 그런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 종종 엘리트들이 일반인보다 더 느리다. 왜냐하면 자기 상상력 바깥에 뭔가가 더 있다는 사실은, 엘리트보다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서 '그러니까 비평가들은 다 바보 멍청이고, 공모전은 전부 헛짓거리'라고 주장하는 게 절대 아니다. 평론가와 공모전의 역할에 대한 내 견해는 오히려 그 정반대에 가깝다.
내가 말하려는 바는, 전문가들의 합의제 심사로는 놓치기 쉬운 뛰어난 신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대중문화 영역에서 그렇고, 아주 낯선 주장을 펼치는 신인인 경우에 그렇다. 그러니 신인이 데뷔하는 방법이 공모전밖에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입사 시험 문제들
한국은 수십 년 동안 모방과 추격이라는 전략에 기댔다. 우리보다 앞선 나라, 앞선 기업들이 있으니 그들이 간 길을 열심히 연구해 그걸 따라잡는 방식이었다. 이런 일은 엘리트들이, 모범생들이 잘한다.
한국의 대표 수출 상품인 휴대전화기를 예로 들어 보자. 중국의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할지 별로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장 점유율 1, 2위인 삼성전자와 애플의 최신형 모델과 비슷한 제품을 만들면 된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모델이 될 회사는 없다. 애플과 삼성전자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며, 똑같이 답을 모른다. '내년에는 어떤 제품이 잘 팔릴까? 5년 뒤에는? 10년 뒤에는?' 사실 5년 뒤나 10년 뒤에 휴대전화기라는 제품이 세상에 존재할지 존재하지 않을지도 우리는 정확히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