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단 작가를 차별하는가

'비명문대 출신은 절대 안 돼.'라는 팻말을 노골적으로 입구에 써 붙인 조직은 없다. 비명문대 출신도 능력과 실적이 굉장히 출중하면 인정을 받는다. 입사 시험에 합격하고, 승진하고, 조직의 장이 될 수 있다.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걸출한 인재라면. 그러나 그렇게 현격한 차이를 보여 주지 못하는 한 비명문대 출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배제를 당한다. 그들은 종종 명문대 출신과 같은 출발선에서 시합을 시작하지 못하며, 핸디캡을 져야 한다.

 

누군가의 악의가 없어도 그런 학벌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관문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부문에서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좋은 대학 나온 지원자가 조금 더 낫겠지.'라는 정도로만 생각해도 배제가 일어난다. '좋은 대학을 졸업했다.'는 말은 종종 '지원자가 검증됐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예외적으로 비명문대 출신을 발탁했을 때 인사권자는 '내가 맞게 판단한 걸까.'라는 불안에 시달린다.

 

이는 많은 이들이 명문대 졸업생 수준의 '일관성과 품질'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명문대는 수십 년간 꾸준히 학업 능력이 뛰어난 입학생들을 받았고, 그 학생들은 대체로 비명문대 학생들보다 유리한 여건에서 잘 배웠다. 그들 중 상당수가 실력이 뛰어난 졸업생이 되어 사회로 나갔다. 이 역시 의심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명문대 졸업장은
일종의
품질 인증 마크가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도 어떤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우리는 채용이나 승진에서 절대 학벌 차별을 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데, 아마 정말 그런 곳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조직이 몇 있다고 해서 비명문대 출신이 사회에서 당하는 배제와 불이익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분명히 밝혀 둔다. '누군가의 거대한 악의가 없어도 부조리가 발생할 수 있다.'라는 말은, '현재 아무도 악의가 없다.'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과거에 어떤 시험을 합격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넘어선 우월 의식을 틀림없이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