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이 중요한 이유

간판은 왜 중요할까? 어느 때 간판이 가장 중요한가?

 

가게 안에 들어가서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을 때다. 그럴 때 우리는 간판을 큰 기준으로 삼는 수밖에 없다. 책은 특성상 내용물의 질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품이다. 오죽하면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라는 영어 속담이 있겠는가. 화려한 장정에 으리으리한 추천사가 달린 책이 시시하기 이를 데 없을 수도 있고, 표지 디자인이 너무나 촌스러워 오래도록 손이 가지 않았던 서적이 막상 펼쳐 보니 대단한 작품일 수도 있다.

 

인증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그나마 독자를 만날 수 있고, 인증 마크를 얻지 못한 사람은 불합격자 취급을 받게 되어 더 외면당한다. 그럴수록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 시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공모전에 몰리는 작가 지망생들이 많아지면 간판의 가치도 그만큼 올라간다. 반면 미등단 작가의 풀은 작아지고, 그 결과 미등단 작가의 작품 수준과 다양성도 전반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일종의 자기 실현적 예언이자 악순환이 벌어진다.

 

다른 방법을 포기하고 몇 년 동안 인증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매달리는 사람이 생겨난다. 여러 인증 시험 중 어느 시험을 통과했느냐를 놓고 일종의 계급사회가 형성된다. 같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끼리 뭉쳐 다니며 패거리를 이룬다.

 

한쪽에서 폐쇄적인 엘리트 의식이 굳어질 때 반대쪽에서는 '문단 작가, 문단의 작품'이라면 덮어놓고 반대하는 반권위주의가 싹튼다. 거기에는 자신들이 좋은 작품을 써도 그 계급 구조를 뚫고 인정받기 어렵다는 불만도 깔려 있다.

 

나는 학벌주의와 한국 노동시장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한다.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라는 속담은 독서에 대한 격언이 아니다.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그만큼 사람의 실력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뜻도 된다.

인간 역시 경험재다

간판이 중요한 이유

간판은 왜 중요할까? 어느 때 간판이 가장 중요한가?

 

가게 안에 들어가서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을 때다. 그럴 때 우리는 간판을 큰 기준으로 삼는 수밖에 없다. 책은 특성상 내용물의 질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품이다. 오죽하면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라는 영어 속담이 있겠는가. 화려한 장정에 으리으리한 추천사가 달린 책이 시시하기 이를 데 없을 수도 있고, 표지 디자인이 너무나 촌스러워 오래도록 손이 가지 않았던 서적이 막상 펼쳐 보니 대단한 작품일 수도 있다.

 

인증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그나마 독자를 만날 수 있고, 인증 마크를 얻지 못한 사람은 불합격자 취급을 받게 되어 더 외면당한다. 그럴수록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 시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공모전에 몰리는 작가 지망생들이 많아지면 간판의 가치도 그만큼 올라간다. 반면 미등단 작가의 풀은 작아지고, 그 결과 미등단 작가의 작품 수준과 다양성도 전반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일종의 자기 실현적 예언이자 악순환이 벌어진다.

 

다른 방법을 포기하고 몇 년 동안 인증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매달리는 사람이 생겨난다. 여러 인증 시험 중 어느 시험을 통과했느냐를 놓고 일종의 계급사회가 형성된다. 같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끼리 뭉쳐 다니며 패거리를 이룬다.

 

한쪽에서 폐쇄적인 엘리트 의식이 굳어질 때 반대쪽에서는 '문단 작가, 문단의 작품'이라면 덮어놓고 반대하는 반권위주의가 싹튼다. 거기에는 자신들이 좋은 작품을 써도 그 계급 구조를 뚫고 인정받기 어렵다는 불만도 깔려 있다.

 

나는 학벌주의와 한국 노동시장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한다.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라는 속담은 독서에 대한 격언이 아니다.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그만큼 사람의 실력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뜻도 된다.

인간 역시 경험재다

특히 첫 직장을 구하는 대졸자 및 대졸 예정자의 사무직 업무 능력은 매우 판단하기 어렵다. 경력이 있다면 그동안의 실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할 수 있고, 함께 일한 동료들의 평판을 들어 볼 수도 있다.

 

기업 역시 노동시장에서 경험재인 인간을 채용할 때 보수적으로 행동한다. 계약직이나 인턴이 아닌 정규직 대졸 신입 사원 채용이라면 더 그렇다. 불경기에는 그런 경향이 더 강해진다. 아무 경력 없이 노동시장에 자신을 팔아야 하는 구직자들은 기업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하는데, 이 역시 본질은 '좋은 간판을 다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걸 '스펙'이라는 단어로 부르기도 한다. 학점, 자격증, 인턴 경험, 아르바이트 경력, 봉사 활동…. 그중 한국 기업들이 매우 중시한다고 알려진 간판이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다. 여기에는 이런 논리가 있다.

 

현대 기업에서 사무직 임직원의 업무는 대개 육체보다는 정신을 쓰는 노동이다. 조금 멋을 부려 표현한다면 '상징 분석(symbolic analysis)(') 작업이라고 한다. 다양한 영역에 걸쳐 추상적인 개념과 숫자를 다루고, 문제점을 파악해 해결하며,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기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수시로 해야 한다. 점점 더 그런 능력이 중요해진다.

 

20대 중후반의 젊은이가 지닌 상징 분석 능력은 그가 10년 전쯤 대학 입시에서 받은 점수와 어느 정도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국인들은 믿는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닐 거다. 학력고사든 대학수학능력평가든 그런 상징 분석 능력을 평가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 시험들은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은 젊은이들이 치르고, 또 가장 공정하게 치러지는 시험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추측이 얼마나 옳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독해력과 암기 능력은 뛰어나지만 표현력은 약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뭘 원하는지에 대해 눈치라고는 젬병인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은 시험 점수는 높겠지만 평범한 직장에서의 업무 능력은 낮을 것이다. 그저 시험 당일에 운이 없어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10대 후반까지는 자신의 상징 분석 능력을 계발하지 않다가, 대학에 들어와서야 공부를 시작하며 머리가 트인 인재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입시 고득점자=명문대 출신=일 잘할 것 같은 사람'이라는 거친 등식은 한국 사회에서 널리 통한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다른 평가 방법이 딱히 없으니까.

대학 졸업장은 공신력 있는 기관이나 브랜드의 품질보증 마크 같은 역할을 한다. 명문대 마크가 찍히면 노동시장에서 좋은 기회를 얻기 쉽다. 그런 간판이 없으면 자기 실력을 제대로 알리기 힘들다.

 

그렇게 간판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다가 마침내 인간의 가치를 상징하는 데까지 이르고야 만다. 그때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단순히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존재 증명을 위한 투쟁이 된다. 나중에 거둘 수 있는 예상 이익보다 훨씬 큰 사교육비를 들여 자녀의 대학 입시를 지원하게 된다.

 

명문대 졸업장을 얻기 위해 재수 학원에서 몇 년이나 고생하는 젊은이가 생긴다. 어느 대학 간판을 갖고 있느냐로 계급사회를 만든다. 패거리를 이룬다. 자신보다 나은 간판을 가진 사람 앞에서 위축되고, 못한 간판 앞에서 우월감을 맛본다. 여기서도 엘리트 의식과 피해 의식, 권위주의와 반권위주의가 동시에 무럭무럭 자란다.

 

한국 소설 시장과 노동시장에서 간판이 그토록 중요한 근본 원인은 그곳이 '깜깜이 시장'이기 때문이다. 책을 쓰고 만든 사람과 그 책을 읽을 사람, 구직자와 채용 기업 사이에 정보 비대칭성이 너무 크다. 정보가 적은 쪽은 손실을 피하는 안전한 선택을 하려 한다. 여기서 간판은 그 상품이 안전한지 그렇지 않은지 알려 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리고 그 간판으로 인해 신분 사회가 만들어진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부조리한데, 그 부조리를 더 키우는 공통점이 한 가지 더 있다.

어지간해서는
그 간판을 떼거나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간판의 영향력이 아주 오래간다. 이로 인해 시장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입시를 치를 때에는 모두 처절한 경쟁을 벌인다. 그런데 시험을 치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이후에는 모두 게을러진다. 높은 신분을 얻은 사람들은 안주해도 괜찮다는 유혹을 받게 된다. 업계 내부 경쟁은 진입 경쟁만큼 혹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개 힘든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점잖게 표현해 동업자 의식, 정확히 말해 끼리끼리 문화가 싹튼다. 그런 가운데 몇 번 재도전한 끝에도 낮은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좌절해서 자포자기한다.

 

'등단'이라는 간판은 일종의 자격증으로, 한번 등단하면 평생 등단 작가로 산다. 등단할 때 표절한 사실이 들통나 등단이 취소된다든가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데뷔 이후로 아무리 수준 낮은 작품들만 발표한다 해도 그는 여전히 등단 작가이고, 그런 간판을 이용할 수 있다. 미등단 작가나 작가 지망생은 그런 현실에 몹시 분개할지도 모르겠다. '명문대 졸업생'이라는 타이틀도 그렇다.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 인기가 있는 자격증들이 사정이 다 비슷하다. 취득할 때가 어렵지, 한번 따고 나면 업계에서 퇴출될 일은 거의 없다. 그 인기 자격증은 대체로 국가가 주는 직업 면허인 경우가 많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토록 되고 싶어 하는 한국 대기업 직원들의 업무 수행 능력은 어떨까. 외국 기업들에 비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 대기업은 어느 직원이 일을 잘하는지 제대로 평가해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하고 승진에도 반영하는가. 그렇게 합리적인 곳인가. 오히려 반대로 구조 조정을 해야 할 때조차 직원의 업무 능력이 아니라 가족이 몇 명인지를 따지는, 정실 문화와 온정주의가 지배하는 곳 아닌가.

 

대학은 어떤가. 소위 명문대라는 한국 대학에 들어가기가 어려운가, 거기서 졸업하기가 어려운가. 우수한 학생들을 더 우수한 인재로 키우는 곳 맞나.

 

이쯤에서 내게 '가뜩이나 치열한 무한 경쟁 사회에 더 경쟁을 불러일으키자는 것인가'라고 따질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아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간판을 둘러싼 살인적인 경쟁을 줄이자는 것이다. 사람들이 간판만 볼 수 있게 하지 말고,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을 살펴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사람들이 수시로 성을 드나들게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성벽을 무너뜨리자는 것이다. 그러면 보다 공평하게 기회가 돌아가고, 부조리한 계급제도 상당 부분 허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깜깜이 시장에 불을 밝혀서 간판의 위력을 떨어뜨리면 되지 않을까?

한국의 서평 문화

법조 출입을 처음 시작한 게 2007년입니다. 8년여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어느 변호사가 잘 하는 변호사인지 일반인 입장에서 알 방법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처음으로 소송 절차를 접하는 당사자는 당혹스럽습니다. TV나 영화로만 봤지 난생처음 접해 보는 생소한 시스템 안에서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땐 내 곁을 지켜 주며 모든 절차를 대신해 주고 나를 위해, 나의 이익을 위해 성심성의껏 싸워 주는 변호사를 찾는게 급선무입니다.

그런데 막상 소송에 들어가게 되면 좋은 변호사 찾기란 간단치 않습니다. 잘못 갔다가는 변호사 얼굴은 보지 못하고 사무장 얼굴만 보다 나오는 경우도 생깁니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물어보면 되겠지만 없다면 막막하죠. 법조 출입 기간 동안 믿을 만한 변호사 좀 알려 달라는 부탁을 수도 없이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변호사 시장은 '깜깜이 시장'인 듯합니다.

위의 글은 대한변협신문의 '법조기자실'이라는 코너에 2015년 3월 2일자로 올라온 칼럼*이다. 중앙일보 박민제 기자가 썼다.

*관련 기사: 국민이 원하는 변호사 찾기(대한변협신문, 2015.3.2)

 

소비자에게 대표적인 깜깜이 시장 중 하나가 법률 서비스 시장이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면 변호사 광고 글은 많이 찾을 수 있고, 변호사회의 서비스를 이용하면 변호사의 학교나 연수원 기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변호사가 재판정에서 얼마나 잘하는지는 문외한이 쉽게 알기 어렵다.

그런 때 많은 사람들이
간판에 의지하게 되지 않을까?
어느 대학 법대를 나왔는지, 사법고시 출신인지 로스쿨 출신인지 등을 따지게 되는 것 말이다.

윤성근 서울남부지방법원장도 같은 의견이다. 그는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전관예우가 '신화'라며, 사람들이 그 신화를 믿는 근본 이유는 변호사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관련 자료: 전관예우는 어디에 존재하나(한국경제신문, 2015.3.31)
 

"일반인은 누가 유능한 변호사인지 알기 어렵다. 의사의 경우는 전문의 제도나 단계별 의료 전달 체계가 있지만 변호사의 경우는 이런 제도도 없다. 그 결과 대형 법무법인이나 전관 출신 변호사에게 의뢰가 몰린다. (…) 변호사를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만 제공된다면 이런 불합리한 시장 왜곡은 사라질 것이다."

 

만약 어느 변호사가 어떤 소송을 잘 하는지, 재판에서 얼마나 이겼고 졌는지를 모든 사람이 금방 찾아볼 수 있게 한다면 어떨까? 그러면 이런 간판 문제는 금방 해결되지 않을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라면 중요한 소송을 다음 중 어느 변호사에게 맡기고 싶은가?

① 명문대를 나왔지만 재판에서는 줄줄이 지는 변호사.

② 법원이나 검찰에서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막 개업해 변호사로서는 검증되지 않은 전관 변호사.

③ 비명문대 출신이고 법원이나 검찰 고위직에 있어 본 적도 없지만 소송에서는 늘 이기는 변호사.

 

변호사의 진짜 실력은 그가 소송에서 얼마나 이기느냐다. 그런데 법률 서비스 시장의 고객들은 이 기초적인 자료를 모른다.

 

시험을 쳐서 합격해야 들어갈 수 있는 성안에 있는 전문직들이 성벽을 허물거나 성문을 넓히는 데 저항하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그리 드물지 않다. 그런 자격증을 얻을 수 있는 관문을 낮추려 하면 이미 자격증이 있는 이들이 가장 거세게 반발한다.

 

기획재정부가 공인회계사 선발 인원을 늘리려고 할 때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회장과 임원이 전원 사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보건복지부가 약대 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약사들이 반대 민원서를 제출했다. 반대 이유는 비슷비슷했다. "사람이 많아지면 서비스의 질이 낮아진다."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시험 합격자 수를 줄이는 것보다, 자격증은 쉽게 가질 수 있도록 하되 소비자들이 공급자의 수준을 비교할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하는 편이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어떤 상품을 사기 전에 그 물건의 품질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다면 간판은 힘을 잃는다. 간판으로 득을 보던 사람은 그런 정보 공개에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지원자들과 소비자들은 모두 이익이다. 업계 전체의 경쟁력도 높아지고, 간판으로 사람의 위아래를 정하는 악습도 사라진다. 중진, 원로라도 실력이 없으면 물러나고, 도전적인 신인이 그 자리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