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인간> 성공 스토리

<회색 인간>은 짧은 단편 24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이었다. 나는 그중 2편을 읽었다. 일본 SF 작가 호시 신이치나 미국 소설가 프레드릭 브라운의 작품들이 떠오르는 엽편들이었다. 기발한 설정과 군더더기 없는 진행, 그리고 반전. 무척 재미있었으나 엄청나게 감탄하지는 않았다. 장편소설공모전 심사를 하며 이 원고를 만났다면 '최상'을 매겼을까? 아닐 것 같다.

 

김민섭 작가는 그 책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오늘의 유머'(오유)라는 인터넷 커뮤니티 아시죠? 김동식 작가님이 거기에 올린 글을 모아서 만든 책이에요. 제가 거의 처음 올라온 글부터 봤어요.

김동식 작가는 2016년 5월경부터 '복날은 간다'라는 필명으로 오유의 공포게시판에 200자 원고지 20매 분량의 엽편을 올리기 시작했다. 김민섭 작가는 글쓴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채로 그 작품들을 읽었고, 꾸준한 수준과 어마어마한 생산력에 감탄했다. 100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50편이나 글이 올라왔던 것이다.

 

김동식 작가의 열정과 성실함에는 그저 경탄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 책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찬사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회색 인간>의 성공에는 작품 외적인 요소들이 있었다. 위에 거명한 작가들이 누리지 못한.

무엇보다 거대 커뮤니티인 오유 이용자들이 있었다. 김민섭 작가는 김동식 작가가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게시판에 올린 지 24시간 만에 오유 사용자들이 500질(1500권) 이상 구입했을 걸로 추정했다. 사용자들은 서점별 재고 현황을 공유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한 화면을 캡처한 이미지를 댓글로 올리며 구매를 인증했다. 김동식 작가와 김민섭 작가가 인증 댓글에 다시 댓글을 달며 그런 분위기를 독려했다.

 

<회색 인간>의 성공은 다른 기획자나 신인 작가가 재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특정 인물, 특정 배경 아래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는 결코 김동식 작가와 그의 작품을 폄하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만큼 그의 노력과 자세가 특출했다는 찬사이기도 하다.) 이런 방식은 문학공모전의 대안이나 보완책이 되기 어렵다.

 

나는 김민섭 작가에게, 만약 작가님이 출판사의 기획 위원이라면 김동식 작가를 발굴한 방식으로 다른 신인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고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찾아보겠느냐고 물었다.

해야 하는 수고인데… 기존에 하던 대로 계속 하려고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이 출간됐을 때 얼마나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에 대해 다들 확신이 없을 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