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인터뷰 일시/장소 : 2016년 9월 5, 6일/이메일과 카카오톡
로봇계 안팎으로 그의 명성은 높았다. '서울과학고 전설의 1기'였고, 'KAIST 기계공학과 최초의 여교수'라고 했다. 천하여걸이라고 했다. 남자 여럿 찜 쪄 먹는 배짱과 카리스마의 소유자라고 했다. 하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는 못했다. 처음 그를 만나려고 수소문한 순간, 이미 미국 어바인으로 안식년을 떠나고 없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와 연결됐다. 박수경 교수는 이 프로젝트의 의의에 선뜻 동의해주었고, 이메일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그는 페이스북도 스카이프도 쓰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메일과 '카톡'이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메일 이후 두어 달 넘게 수차례의 문답이 오갔다. 본격적인 질의응답은 가장 마지막 순간에 이뤄졌다. 그가 긴 회신을 보내면, 내가 카톡으로 궁금증을 보내고, 그가 추가로 응답하는 방식이었다.
보이스톡도 몇 차례 사용했다. 수화기 너머로 그가 처한 온갖 현실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의 새벽기도 전후, 운전하는 시간이 가장 조용했다. 그의 두 아들은 와글거리며 학교로 떠났고, 지인들이 놀러온 집은 북적이고 있었다. 나의 등 뒤에서도 아직 어린 아들이 잠결에 엄마를 불러댔다. 우리들은 서로의 처지를 미루어 짐작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천하여걸은 생각보다 '드세지' 않았다. 차분하고 유쾌했으며 배려심이 넘쳤다. 그는 자신의 성취가 과대 포장되는 걸 경계했고, 그 과정에 도움을 준 이들을 놓치고 지나가게 될 것을 우려했다. 바깥에서 보기에 대단해 보이는 과학고 1기도, KAIST 최초의 기계과 여교수도 다 별 게 아니라는 태도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 그 자체라고 했다. 생존, 하루하루 치열한 전쟁과 전투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것. 그가 조심스럽게 골라 내놓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