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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한국 사회와 위기

한국 사회와 위기

대화를 시작하며

이헌재: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아무리 젊어야 50대인데, 오늘 이렇게 젊은 세대와 만나니 가슴 설레기도 하고, 약간 두렵기도 하고 그래요.

 

저는 쉽게 말하면 원시시대는 지났지만 농경시대인입니다. 여러분은 첨단시대를 사는 사람이죠. 우리나라처럼 압축적 변화가 일어나는 데서는 시대적 격차가 굉장히 커요. 그게 우리 사회의 세대 간 격차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 생략하고요. 단지 어떤 생각으로 책을 썼는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6.25 전쟁 사진전을 보면, 스냅사진 하나하나마다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죠. '그때는 피난살이가 이렇게 어려웠구나', '사람이 처참하게 죽었구나' 이런 식으로 외환위기도 글로 풀어낸 스냅사진처럼 표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영화가 아니라 한 컷 한 컷의 스냅샷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주면 좋겠습니다.©손현저는 어제(11월 15일) 절망감 비슷한 걸 느꼈어요. 포항에서 지진이 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있을 수능을 연기해 버렸어요. 그건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한다는 소리거든요. 포항에서 지진이 나서 13개 학교가 피해를 보았는데 어째서 그걸로 인해 전국의 시스템이 마비되고 수능을 뒤로 미뤄야만 했느냐, 다른 문제가 생겼을 때 과연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이냐,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냐, 이런 걸 생각했어요.

 

외환위기가 끝날 당시에도 비슷한 기분이었어요. 국민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외환위기를 극복했는데, 그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는지 아니면 극복 뒤에 오는 허탈감이나 좌절감 혹은 절망감이 더 큰지, 그게 자신이 없더라고요. 일단 위기는 넘었는데, 그다음 진행 경과에 따른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가 우리 경제나 사회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하면 우려가 됐어요. 책을 쓸 때도 상당히 참담한 기분이었고요. 책에 보면 '운명'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게 그래서입니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말할 때 정확하게 '외환위기'라든지 '경제적 위기'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IMF 위기'라고 칭하고 있어요. 그 심리 기저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IMF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당했다'는 거죠. 그래서 나한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라고 좀 떠넘겨야만 마음이 편한 심리가 있었을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던 거죠. 우리나라가 잘못돼서 내가 이렇게 힘들어졌다는 걸 참을 수 없으니까 그냥 'IMF 위기다'라고 말함으로써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고자 하는 측면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이런 거예요.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고 일제 침략도 받고, 6.25로 나라가 거의 없어질 뻔하며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죠. 외환위기는 경제 관리 체제로 들어간 겁니다. 그러니까 경제 주권을 상당 기간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겉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졌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애를 썼고, 애를 써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죠. 그러나 사실상 상당 기간,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9개월 정도는 우리 정부가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을 겪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머릿속에서 '외환위기'라고 하면 그냥 'IMF 위기'로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다, 이 위기를 빨리 끝내야겠다'라고 생각하다 보니 덮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많았어요. 덮고 넘어가다 보니 책임질 건 책임져야 하고 고통을 분담할 건 분담해야 하는데, 그런 문제가 차분하게 진행되지 않았어요. '외환위기의 졸업이다', '우리는 이제 잊고 싶다'라며 마침표를 찍고 넘어가 버렸던 거죠.

 

마침표를 찍어 놓고 나니까 그다음에 어떤 상황이 진행되는지는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거예요. 위기 이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무도 치열하게 검토하지 않았던 거죠.

제대로 책임지고
고통을 분담했는지
사회에 어떤 지각 변동이
일어났는지 그로 인해
누가 가장 큰 고통을 받았는지
들여다보지 않은 채
덮고 넘어갔어요

외환위기는 우리가 과거사 문제 이야기하듯 비슷하게 넘어가 버리고 여기까지 왔어요. 20년이 지나 보니까 뭔가 이게 잘 해결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미래도 불안하고, 뭔가 찜찜한 거죠. 그래서 아마 이런 자리도 만들고 싶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요.

 

개인적으로는 외환위기 이후 그런 분위기 때문에 「위기를 쏘다」라는 책을 구술하기 전까지 한 번도 공식적으로 외환위기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책을 구술한 이후에도 외환위기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한 적이 없고요. 아마 이 자리가 책 구술 이후 처음으로 여러분과 제 나름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현주: 안녕하세요, 제현주입니다. 이헌재 전 장관이 외환위기를 'IMF라는 외부 기관에 의해서 구조조정 프로세스가 강제되고 거기서 빨리 벗어나 마침표를 찍는 것에 방점을 두고 난 다음, 그 시기를 돌아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고 정리했는데, 저는 크게 공감합니다.

 

저 역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위기를 쏘다」를 읽으면서 제가 경험한 그 시기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는데요. PUBLY 프로젝트 저자 소개에도 있지만 저는 1998년에 학부를 졸업한, 저주받은 94학번이라고 불리는 세대입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대학원을 갔죠. 저도 대학원을 갔고요. 꼭 그것 때문은 아니었지만. (웃음)

 

저는 2000년에 맥킨지(McKinsey & Company)라는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 했던 많은 프로젝트가 이헌재 전 장관이 진행한 여러 구조조정 작업의 여파가 쏟아져 내려온 컨설팅 프로젝트였습니다. 은행 쪽에서 압박을 많이 받은 그룹사가 울며 겨자 먹기로 맥킨지를 불러 꽤 긴 시간 구조조정 프로젝트를 했는데요. 사실 제가 느낀 바도 같아요. 국가 차원에서 빨리 IMF를 졸업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종결되면 돌아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기업 차원에서도 똑같이 있는 거죠.

 

흥미로우면서도 슬픈 사실은 위기에서 벗어나는 일이 그 기업의 체질이 잘 개선되고 구조조정이 잘 끝나서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시장 환경이 위기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숫자 등 겉으로 보기에 급박한 위기들이 사라지고, 그러고 나면 구조조정을 계속해나갈 동력이 없어져 버리는 거죠. 그러면 회사 차원에서는 컨설턴트를 계속 눈앞에 두는 일을 별로 탐탁지 않아해요. '우리는 이제 괜찮다'고 느끼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서 느끼는 건, 위기를 잘 극복했는가는 그 순간을 넘어섰는지 아닌지보다 다음 위기가 돌아왔을 때 그 기업이 어떤 모습이냐에 달린 것 같아요. 정부나 국가 차원으로 돌아가도 비슷한 문제고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를 겪고 구조조정을 거친 후 과연 그것을 잘 극복했는지는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충분히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충분한 판단과 평가가 이루어졌는지를 두고 생각하면, 이헌재 전 장관의 말대로 위기를 충분히 돌아볼 여유가 우리에게 없었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두 분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20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체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과연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다고 판단하고 평가하는지도요. 또 박지웅 대표의 IMF 경험을 들어보고 싶네요.

 

박지웅: 네, 박지웅입니다. 사실 제가 1982년생이거든요. 그래서 IMF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던 시기였고요.

 

이 프로젝트에 초대해주셔서「위기를 쏘다」를 세 번 정도 읽었습니다. 그런데 책에 나오는 당시 상황이 제가 경제 주체로서 활동하지 않던 시기여서 그런지 마치 드라마 결말을 신문기사로 먼저 보고, 1화부터 다시 보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20년이라는 시간이 매우 길다고 느꼈습니다.

©최우창제가 책을 읽으면서 좀 의아하게 느꼈던 부분들이 있었는데요. 외환위기 수습 과정에서 이루어진 많은 일에 대해 정부가 상세한 방향까지 다 지시하고, 그에 따라 기업과 독대하여 협상하는 부분이 여러 대목에 걸쳐서 나와요. IMF 체제에 있었음을 고려하더라도, '이 정도까지 진행되었어야 하는 거였나' 싶기도 했고요.

 

저는 사실 개별 기업들을 대하지 거시 경제(macro-economy)를 보지는 않는데요. 20년이 지난 지금, 제가 체감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부분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의구심도 약간 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점은 단시간에 많은 일이 이루어졌다는 건데요. 예를 들면 '은행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라든지, '채권 시가 평가'에 관한 부분이라든지, 기본적인 회계나 공시 제도에 대한 틀이 그때 다 생겼어요. 제가 경제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이것들이 모두 당연한 사항이었는데, 그 당연함이 생긴 지가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거죠. 한국 경제의 단기간 성장으로 인한 피로감을 사회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책에 보면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거든요. 과거에 위기였고, 앞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위기를 대응하는 차원에서 '매뉴얼'이라는 단어도 나오고, 상반되는 개념이지만 '암묵지'라는 단어도 나오고요.

 

제가 몸담은 곳이 조금 더 변화가 많은 업계라 그런지는 몰라도, 위기를 두고 과거에 일어난 일을 복기하고 회고하는 과정이 의미는 있겠지만, 미래를 예측하거나 대응하는 데는 과거의 복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화두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요. 책 뒷부분에 보면, 창의 국가와 창업과 교육에 대한 화두가 많이 나옵니다. 이 키워드는 제가 일하면서 가장 많이 부딪치는 것들이고요.

 

과거의 시장 참가자들이 실제 느낀 바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이래야 할 것 같다', '이런 게 중요할 것 같다'라고 말씀해주신 걸 글로 접할 때,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제 입장에서는 정말 녹록지 않는다고 느꼈거든요. 이런 관점에서 여러 가지 화두를 같이 나눠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한국 사회와 위기(1)

이헌재: 우리나라가 지금 선진국 문턱에 있다고들 하죠. 제 기억이 맞다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시장 경제'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이후부터 시장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겼고, 노태우 대통령 때 미국에서 중국과 소련이라는 북방 경제 쪽으로 경제 지평을 넓히는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 때 '세계화'라는 개념을 들고 나오면서 가트(GATT)*, 우루과이라운드(UR)** 등으로 경제 개방을 했죠.

*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 and Trade)으로 1947년 제네바에서 23개국이 모여 조인했다.

** 1986년 우루과이에서 열린 GATT 회의의 제8차 다자간 무역 협상. 각 나라의 시장 개방을 확대하고 서비스, 지적재산권, 무역 관련 투자 등에 대한 국제 규범을 마련하고자 했으며 수차례의 협상을 거쳐 1994년 타결되었다. 이에 따라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설립되었다.

 

이렇게 경제 발전 단계마다 충격이 오고 부담이 쌓여갔는데, 결국 그걸 견디지 못한 겁니다. 그 당시에 기본적으로 몇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요. 첫 번째는 투명성(transparency)이었어요. 두 번째는 행위자에게 일종의 책임감(responsibility/accountability)이 부족했습니다. 세 번째는 시스템을 이끌고 나가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정립이 하나도 안 되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 경제 시스템이 부서져 버렸어요.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냐고 한다면, 투명성은 어느 정도 진행됐다고 봅니다. 책임감에 대한 부분은 반쯤 생긴 것 같아요. 그리고 거버넌스가 고민이에요. 이 단어를 우리말로 정확히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포스코(POSCO)를 뉴욕에 상장할 때 다급해서 '기업지배구조'라는 단어로 번역했어요. 사실 그건 졸렬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배'라는 말이 나쁘잖아요. 그렇다고 '의사결정구조'라고 하니까 너무 길고, '시스템관리구조'라고 하니까 거리가 멀어서 선택한 단어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사불란한 지휘명령 체계에서 사는 게 몸에 배어있었기 때문에 '기업지배구조'라고 말하면 머리에 들어와요. '사장, 부사장, 이사 등의 포지션을 어떻게 뽑느냐, 국가가 어떻게 대통령을 뽑느냐' 이런 사항을 다룬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거죠. 

 

이 부분이 국가 시스템 전체에 걸려 있어요. 그러다 보니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책임이 자꾸 위로 올라갑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무책임 사회가 되어간다는 말이죠. 각자 맡아야 할 단위에서 책임 있는 행동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위로 올려버리고 마는 심리가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에 아무도 책임을 안 지고 외면하려는 현상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위기는 오지만, 우리는 '위기가 올 거야, 올지도 몰라, 그러나 나만 어떻게 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국가라고 하는 다원적 시스템이 같이 대응해서 움직여나간다거나 각 분야가 자기 나름대로 무엇을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제쳐놓고, '우선 나부터'를 외치는 사회가 되지 않겠냐는 우려가 남았어요.©손현제가 2000년에 정부를 떠나면서 김대중 대통령한테 세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첫째, 위기 이후 관리(post-crisis management)가 필요하다. 위기 때 쓴 정책을 평시(平時)의 정책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걸 위해서 모든 시스템과 정책을 점검할 필요가 있으니 우선 주거와 교육 문제를 검토해달라, 특히 피해를 많이 본 서민층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건의했어요. 둘째, 미래에 어떻게 먹고살 건지, 어떻게 자생력을 키울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셋째, 외환위기 당시 대미 관계도, 대일 관계도 아주 나빴단 말이죠. 그래서 미국과 일본이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이참에 한국에 버릇을 가르쳐야겠다는 경향이 강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층적이고 다양한 국가 간 관계를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구체적인 건의를 하고 떠났어요.

* 「위기를 쏘다」 (중앙북스) 302~304페이지

 

그런데 아까 제현주 대표가 말했듯 외환위기를 극복했다는 생각에 기업도 구조조정에 손을 놓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빠져나가고, 국가도 같은 상황이다 보니까 문제가 계속 쌓였어요.

 

최근 IMF에서 또 경고했죠. 구조조정의 골든 타임을 놓치지 말라고. 그렇다면 우리나라 은행이나 금융 회사들의 밸런스 시트(balance sheet, 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보면서 '많이 좋아졌다. 이제 우리 체질이 강건해졌다'라고 말할 수 있는 데까지 와 있느냐,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박지웅 대표가 이야기한 미래에 대한 논의는 조금 후에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제현주: 오늘 이야기 나누어야 할 큰 주제를 두 분께서 딱 맞게 짚어주셔서 하나씩 풀어가면 좋겠습니다. 저는 일단 '책임이 집중되어서 위로 계속 올라가는' 현상에 매우 공감합니다.

 

저 역시 기업 단위의 일을 많이 했는데요. 컨설팅 회사와 투자 은행, 그다음 프라이빗에쿼티(PEF)*에서 일할 때까지 모두 기업 레벨에서 매번의 딜(deal) 혹은 매 프로젝트 단위로 사안을 봤어요. 그러다 칼라일(Carlyle Group)에서 나오고 나서야 '아, 프라이빗에쿼티가 이런 역할을 하고 이런 효과를 일으키는구나, 거시 경제 안에서 내가 이런 일을 했던 거구나' 생각했어요. 오히려 나중에서야 이런 이해가 많이 생겼고, 제가 했던 일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굉장히 알고 싶어졌어요. 요즘 다시 임팩트 투자** 일을 하면서는 일할 때부터 의미와 책임을 생각하자고 다짐하는데요.

* Private Equity Fund. 기업에 대한 경영권 참여 목적의 투자를 통해 경영 참여, 사업구조 또는 지배구조 개선의 방법으로 투자 기업의 가치를 높여 그 수익을 사원에게 배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상법상 합자회사 형태의 펀드를 의미한다. 

** Impact Investment. 사회적 가치 창출과 재무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투자로, 이러한 목적에 맞는 사업이나 기업을 찾아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한다.

 

그렇게 제가 회사들을 보면서 생각했던 여러 기억을 떠올리면, '책임이 집중돼서 계속 위로 올라간다'는 말에 수긍이 가요. 계속 내 뒤를 쳐다보는 거죠. 사실 모든 대기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지금 대기업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셨는데요. (웃음)

 

이것은 공무원들과 이야기할 때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일의 기본적인 목표나 미션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게 되는 거죠. 나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일만 골라서 한다는 사실은 현 상태(status quo)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기를 최대한 피한다는 걸 말해요. 또 감독하는 사람 역시 자기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런 시도를 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죠.

 

컨설팅을 하는 동안 회사의 낮은 직급 사람들이 하고 싶었거나 변화를 위해 나름 준비해온 일들을 전부 외부자의 의견으로 만들어서 오너나 CEO에게 가져가는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당시만 해도 지금 같지 않아서 글로벌 네트워크나 해외의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들여오는 자체가 의미 있는 노력이었어요. 하지만 내부적으로 뚫릴 수 없는 대화의 벽 또한 존재했죠.

* 특정 경영 활동에 있어 최적의 성과를 가져온다고 받아들여진 표준 절차 및 운영 방법

 

나중에 되돌아보니까, 모두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발언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생겨난 현상들이 모여 엄청나게 큰 컨설팅 시장을 이루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이게 뭘 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회사 밖은 지옥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나오죠. 더 윗세대, 기성세대로 갈수록 이런 생각을 많이 해서 아무리 창업 생태계와 스타트업이 커진다고 하더라도 그건 다른 세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특히 외환위기 때의 경험으로 인해 위험 기피(risk-averse) 현상이 심해지고 더 조심스러워진 측면이 많지 않나 싶어요.

책임이 집중되어
위로 올라가는 현상과 연결해서
살펴보고 싶은 주제가
'사회가 거대 담론을 즐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위기를 쏘다」를 읽으면서 제 마음 깊이 와 닿았던 구절 중 하나를 꼽자면 이 말이었거든요.

공동체 전체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그 바람에 미시 담론이 사라졌다. 문제가 커질수록 해법은 안 나오고 논의만 무성해지는 법이다.

많은 정책 논의 혹은 우리 산업에 대한 논의를 할 때마다 느끼는 부분이에요. 항상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고…'라고 하면서 점점 더 큰 문제로 가고, 그러다 보면 정부 정책 문제로 모든 논의가 깔때기처럼 귀결되고 마는 거죠. 그래서 산업의 문제를 정부 정책 문제로 바로 환원하는 논의가 흔해졌다고 느끼고요. 물론 정부 정책이 문제가 있을 때도 아주 많죠.

 

사실 행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헌재 전 장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민간 주체가 스스로 해야 할 일에 대한 논의는 넘겨버리고 공론의 장에서는 그런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요. 대신 정부 정책, 컨트롤 타워, 산업 정책이 어떠한지 이야기하며 시간을 많이 쓴다고 느끼는데, 왜 그럴까요? 이 현상이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강력하게 일어났던 경험이나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어요.

 

어떤 논의를 하다가도 결국은 큰 문제로 흘러가는 현상이 무슨 의미인지, 어떻게 뚫을 수 있을지 두 분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창업 정책의 문제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생겨났어요. 창업 생태계에 흐르는 자금이 정부 출자가 많다 보니까 더욱 그런 지점이 있고요.

 

이헌재: 여기 리스크 관리를 담당하는 분들이 많이 오셨더라고요. 아마 현장에서 느끼겠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리스크를 가지고 있어요. 매일 똑같은 길을 출근해도 실은 매일 똑같은 게 아니거든요. 사회 전체에 리스크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외면하기 시작하면 해법이 안 나오죠.

 

그리고 위기 솔루션을 자꾸 국가나 교육같이 큰 단위에서 찾으려고 하면 논의만 점점 무성해지고 더 복잡해져요. 오히려 거꾸로, 조그맣게 쪼개어 내려가 자기가 서 있는 그 지점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최선이냐' 질문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많은 사람이 저를 보고 준비되어 있었다고 말했지만, 저인들 그때 그러한 위험 상황이 닥치리라는 사실을 알고 준비했던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단지 교과서나 외국 리포트에서 읽은 정도지요.

그 상황을 현실적으로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최선을 다해
극복할 것인지
자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그게 중요해요

제가 늘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애들을 데리고 여덟 살, 아홉 살, 열 살이 될 때까지 등교를 시키곤 하죠. 이 아동은 성장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리스크 대응 능력이 떨어져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다음 별안간 어떤 위기나 변화가 왔을 때 당황하는 거죠.

 

그 예가 남대문 화재*예요. 남대문 화재가 났을 때 기왓장 몇 장 깨고 물 뿌렸으면 끝났을 겁니다. 우왕좌왕하고 위에 보고하고 아래 보고하고 왔다 갔다 하다가 불이 번졌단 말이죠. 불이 번지니까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게 돼서 낡은 목조 건물이 한 시간 만에 주저앉은 거예요.

* 관련 기사: '안타까운 숭례문 화재 전소 붕괴' (뉴시스, 2008.2.11)

 

마찬가지로 우리도 리스크를 대응할 수 있는 훈련과 교육이 안 되어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국가가 해결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니까 중소기업도 농업도 모두 논의를 할 때 정부 지원이 모자라다며 이야기를 시작해요.

 

제가 요새 임팩트 금융에 관심이 있어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미 머리가 의존적 구조로 되어 있어요. 독자적으로 문제를 풀어내고 거기에 '내가 이렇게 문제를 풀려면 이런 도움이 필요하고, 이 도움을 받기 위해서 이렇게 행동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접근이 안 돼요. '우선 국회에 포럼을 크게 만들어서 입법 활동을 하고 예산을 잡아야겠다' 이런 걸 중요시하죠.

©손현저도 외환위기 이전에는 '스트레스 테스트'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우리나라가 전 세계 최초로 금융기관 스트레스 테스트를 했거든요. 그리고 미국에서 2008년 위기가 왔을 때 우리가 한 매뉴얼을 가져다가 스트레스 테스트를 했습니다. 그때 체크 리스트 몇 개만 바꿔서 자산건전성분류기준(Forward Looking Criteria)*을 만들었어요.

* 미래의 채무상환 능력을 반영하여 자산건전성을 분류한 것으로, 금융감독원에서는 채무상환능력, 연체기간, 부도여부 등을 결정 기준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가 ABS(Asset Backed Securities, 자산유동화증권)*라는 시스템도 만들었어요. 이론적으로는 미국에서 만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상품화된 건 우리나라가 처음이에요. ABS를 매각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공적자금의 투입 시기를 미루고 투입 규모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론스타, 골드만삭스에다 우리나라 채권을 싸게 팔아먹었다는 둥 별소리가 다 나왔지만, 그걸 통해서 우리가 유동성을 확보하고 위기를 넘어갔어요.

* 금융기관 또는 기업이 보유한 자산을 담보로 발행되는 증권

 

그런데 그걸 흉내 낸 게 미국의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 주택저당증권)*입니다. 모기지(mortgage, 주택담보대출)를 증권화(Securitization)한 것이죠. 그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CDS(Credit Default Swap, 신용부도스와프)**로 갔고, 그다음 2008년 위기까지 간 거죠.

* ABS의 일종으로, 주택담보대출로 인해 금융기관이 취득한 주택저당채권을 자산으로 발행한 증권

** 부도 발생시 대출 원리금이나 채권 회수가 불가능해지는 위험에 대비한 신용파생상품으로, 채무자의 신용위험만 따로 분리해 매매하며 손실위험에 대한 보증보험과 유사한 기능을 한다.

 

우리는 ABS를 만들어서 실제로 상용화했고 스트레스 테스트도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끝났어요. 그다음부턴 스트레스 테스트 이야기만 나오면 '지겨워, 이제 그건 없었던 일이야'라고 하죠. 그건 기업도 마찬가지예요. 기업도 '지금 잘 나가고 있으니 쓸데없이 그런 소리 말라'고 해요.

 

모든 게 한 번 지나가고 정지된 상태예요. 왜냐하면 주도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어쩔 수가 없겠죠. 정부 주도 체제 아래에서 우리가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책에도 이야기했지만, 교육 제도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나름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30~40대가 전면에 나서야 해요. 부모한테 저항도 해보고 절망도 해보고 스펙을 쌓다가 화가 나서 때려치우기도 해본 세대입니다. 반면 순치된 세대는 이미 그 세대의 방식으로 훈련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위기가 왔을 때 똑같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제현주: 아직 위기가 닥치지 않았을 때 위기를 말하는 내부자에게는 긍정적인 평가가 별로 없어요. 영화 <해운대>에서도 보면, 미리 경고했는데 해일이 닥치지 않으면 발언자는 완전히 망가지고, 위기가 닥쳤다고 해서 발언자를 기억하고 고마워하지 않죠. 이렇듯 내부적으로 위기를 말한다는 일 자체가 늘 위험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걸 말할 수 있거나 말하게 만드는 장치가 사회나 조직에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고 위기를 자연스럽게 준비하기는 어려운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헌재: 저는 생각을 조금 달리하는데요. '위기, 위기'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자기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일부러 호들갑 떨 필요도 없어요.

 

예를 들어, 중국과의 관계가 위기 상황에 빠졌다고 해봅시다. 중국과의 관계가 어려우니까 우리 경제가 망할 거라고 반응할 필요도 없잖아요?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생각하고 대응 방안을 찾아서 행동하면 그것의 총화로 사회 시스템과 힘이 되는 거지. 위기 자체를 거대 담론화해버린다고 어떤 대책이 나올 수 있을까요.

 

제현주: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저는 두 가지 층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일의 흐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과는 별개로, 중요한 위기 신호를 발견했을 때에도 말을 꺼내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거죠. 저는 그 두 개가 약간 다른 층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정부로 모든 책임을 몰아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에서 내리는 정책도 민간을 다소 아이처럼 바라보는 방식이 매우 많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떤 분야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 자리에서 정부 정책을 설계하는 분들과 이야기할 때도 '우리가 이만큼을 넣으면 민간에서 그것을 받아서 몇 배(multiply)의 효과가 일어날 것이냐'를 생각하기보다는 '우리가 그린 그림이 이것인데, 우리 자원을 어떻게 넣느냐?'를 더 생각해요.

 

그러니까 실제 민간 주체를 축으로 어떻게 시스템이 자율적으로 돌아가게 할 것인지까지 나아가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는 느낌을 받게 되더라고요. 또한 30~40대가 더 열심히 나서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고 저 역시 원칙적으로는 동의가 되는데요, 30~40대도 이미 순치가 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어요. 저도 40대지만요.

 

이헌재: 30~40대는 순치의 측면보다도 살아야 할 시간이 더 많이 남았잖아요. 그러니까 자기 생존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60대쯤 돼서는 살아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지금까지 산대로 계속 살지, 세상을 바꾸겠냐는 거죠. 그런 심리 기저가 있기 때문에 30~40대가 나서라는 이야기예요.

 

제현주: 어쩔 수 없이 그 과제와 책임이 주어지는 세대이긴 해요. 그런데 제가 만나는 30~40대, 특히 IMF 이후 청소년기를 겪은 세대를 보면 만성적인 위기 감각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되더라고요.

 

이헌재: 그렇지요. 뭔가 불안하고.

 

제현주: '아버지가 갑자기 한순간에 망하는 걸 봤어, 언제든 내 발밑이 꺼질 수 있어,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감각이 엄청나게 퍼져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리스크에 대한 회피 성향이 훨씬 강해요. 제 판단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인이 되어 분별력이 있을 때 IMF를 겪은 것과 청소년기에 IMF를 경험한 것이 차이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인지 그 세대는 스스로 야심을 최대한 줄여나가는 정서가 퍼져 있는 게 아닌가 싶고요.

 

박지웅 대표는 현재 가장 야심 찬 세대의 사람들과 일하고 있고, 또 그 세대이기도 하니 이러한 세대적 정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박지웅: '위를 쳐다본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든 생각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벤처캐피탈을 하고 싶어서 일을 시작했을 때 제가 생각하던 그림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가장 싫어하고 이해되지 않는 단어가 '중소기업'이거든요.

 

용어는 어떤 연유가 있어서 생긴 거고, 사람들의 사고 일부를 지배하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이 일을 하면서 만난 40~50대분들을 보면, 소위 좋은 회사라고 불리는 기업을 찾는 기준이 이미 머릿속에 구분되어 있습니다. 일단 대기업이 있고, 우리가 투자하는 건 '좋은 중소기업'이라는 생각입니다.©손현벤처캐피탈은 미국에서 먼저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유명한 벤처캐피탈 홈페이지에 가면 본인들이 투자한 회사들이 나와 있어요. '내가 구글, 애플 이런 회사의 초창기에 투자했다'는 메시지죠. 그런데 제가 벤처캐피탈에 들어가기 전, 학교 선배 중 이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을 찾아가 이것저것 물어봤는데요. 그들이 투자한 회사 중 잘 된 케이스를 보면 일반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회사인 거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대기업에 납품하는 벤더(vendor)인 거예요.

 

한편 미국 회사나 벤처캐피탈 혹은 미국에서 창업하는 팀을 만나보면 이렇게들 말합니다.

나는 구글을 만들고 싶어서 창업한 거지 구글에 납품하려고 창업한 게 아니다.

한국은 40~50대가 대기업에서 나와 창업을 하고 투자를 검토하다 보니, 그들의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힌 인식 때문에 중소기업이라는 단어가 생겼어요. 그게 창업하는 사람들의 인식에도 어떤 한계(ceiling)를 그어버린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았고요.

 

저는 2010년 전후로 그 인식이 조금 깨졌다고 보는데요. 놀랍게도 여기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 유학파라고 생각해요. 1980년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에 고등학교나 대학교 학부를 미국에서 보낸 사람들 말입니다. 이들은 한국에 들어왔을 때 그러한 한계 인식이 없어요. 애초에 중소기업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나는 그냥 회사를 만든 거고, 이 회사는 대기업이라고 정의하는 회사보다 당연히 더 커질 수 있다'라고 믿고요. 

 

두 번째는 정부 쪽과 관련해서 시장 참가자 모두의 머릿속에 창업하는 사람을 지원 대상이라고 여기는 인식이 있다고 자주 느끼는데요. 정부뿐만 아니라, 심지어 창업하는 사람들조차도 대다수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창업 붐이 일기 시작했을 때 초기 자금이 부족하다고 말하면 초기 자금을 제공하는 정부 정책이 쏟아져 나왔어요. 거기서 끝나지 않고, 판로 개척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또 판로 개척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이 나왔죠. 이 양상이 어디까지 전개되냐면, 요즘은 50~100억 원 정도의 투자금이 부족하다고 하면 그것에 대한 정부 지원이 나와요.

 

시장에서 창업하는 사람 중 일부 또는 대다수가 이러한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정부가 그걸 받아서 호응하는 거고, 그러다 보면 정부 관계자들의 인식이 여기에 한정되는 이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중소기업이 되고 싶은 많은 창업자는 자기 자신을 지원의 대상이라고 여기며 정부를 바라보고, 정부는 놀랍게도 다시 호응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창업이 거의 B2G 비즈니스처럼 되어버렸거든요.

 

결국 이게 돌고 돌아 경제 주체 개개인의 인식을 만들고, 그 인식이 탄생한 배경의 총합이 경제를 만듭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개인적인 관점에서 좀 더 많은 고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11 한국 사회와 위기 마침.

독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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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

    기획 취지, 내용의 전문성, 통찰, 관점 간 화학작용, 거시담론으로부터 개인이 발 딛고 선 자리에 도달하고야 마는 무수한 영감에 이르기까지, 개인적으로 꼽는 퍼블리 최고의 아티클이었습니다. 한국어로 된, 나아가 당사자-한국에 대한 기록과 연구, 지적 자산 축적 작업에 경의와 응원을 보냅니다.

  • 김**

    10점 만점에 100점 드리고 싶은 좋은 프로젝트입니다.

가능성 열린 사회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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