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록
Editor's Comment
'외환위기 20주년, 과거에서 미래를 배우다' 프로젝트가 성사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합니다. 박소령 PUBLY 대표, 임미진 중앙일보 기자, 제현주 공공그라운드 대표가 각각 쓴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
(2017.9 박소령의 글) 왜 우리나라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연결되어 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정갈하면서도 생생한 기록이 없는 걸까?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머물러 있던 질문이다.
대학원에서 접한 무수한 책과 기사, 그리고 하루에도 교내에서 수십 개씩 열리던 브라운백 미팅(brown bag meeting)*, 티타임, 세미나, 컨퍼런스들은 나에게 대단한 지적 자극을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뼈아프게 부러운 대상이기도 했다.
* 간단한 점심식사를 곁들인 토론모임. 마트 등에서 구입한 샌드위치와 같은 음식을 싼 종이가 갈색(brown)이라는 데서 유래됐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이들이 오랜 시간, 세대를 거쳐 축적해 온 경제, 문화적 자산이 보유한 힘을 단숨에 따라잡기엔 어렵다. 그러나 나는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어려울지언정 언젠가 내 다음, 그다음 세대는 모국의 지적 자산을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PUBLY를 만든 맥락에는 이런 경험과 생각이 요소요소 반영되어 있다.
"회고록 작업을 할 건데, 도와주겠느냐"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역임했다.)을 처음 만난 것은 중앙일보의 임미진 기자 덕분이다. 임미진 기자는 이헌재 전 장관의 IMF 외환위기 회고록인 「위기를 쏘다」의 신문 연재 및 책 출간 작업을 같이 했다. (원문 읽기)
(2017.9 임미진의 글) 통의동 이헌재 전 장관의 사무실은 4층이다. 창 밖엔 길을 따라 선 은행나무의 가지가 가득하다. 처음 그 사무실에 간 건 2011년 3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나는 단발머리에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 맨 구석에 자리를 잡고, 바로 타이핑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