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트렌드에서 깊은 인사이트까지, PUBLY만 알면 됩니다

멤버십을 이용하면 96개 리포트, 945개의 콘텐츠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멤버십 더 알아보기
#3

들이닥친 위기 속에 큰 틀을 짜다

이헌재 이헌재 외 2명
들이닥친 위기 속에 큰 틀을 짜다
1997년 말은 심각한 위기였다

위기라는 단어는 평범해졌다. 매일같이 신문에서 그 단어를 만난다.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제 진짜 위기를 잊었는가

1997년 말의 위기는 지금 이 정도가 아니었다. 무서운 풍경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시장이 무너졌다. 연말 연쇄부도 먹구름(27일), '금융업 정리해고' 입법 진통(28일), 전 업종 정리해고 조기 단행(29일)*, 종금사 5~6곳만 생존(30일), 개인부도 들이닥친다(31일)⋯⋯. 1997년 12월 말의 중앙일보 1면 톱 기사들**이다. 하루에 100여 개의 기업이 부도를 냈다. 외환 금고는 텅텅 비었다 했다. 나라는 풍랑 속 조각배 같았다. (중략)

* 관련 기사: '全업종 정리해고 조기 단행' (중앙일보, 1997.12.29)

** 1997년 12월 말 당시 중앙일보 지면: [12.27] [12.28] [12.29] [12.30] [12.31]

 

YS 정부도 '뭔가 심각하다'는 낌새를 채고 있었다. 그해 1월 한보철강이 무너졌다. 정부는 금융개혁위원회(금개위)를 꾸렸다. "금융 부문을 수술하겠다."고 나섰다. 서른한 명의 위원 중 나도 한 명이었다.

 

* 한보철강 부도(~10분23초) 소식을 보도한 MBC 뉴스데스크(1997.1.23) ©MBC

 

하지만 수술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가 얼마나 심각한 응급 상황인지를 인식하는 이는 소수였다. 금개위에선 틀이 큰 논의들이 오갔다. "중소기업 지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중앙은행과 금융 감독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한마디로 한가했다. 당시 나는 한국조세연구원 자문위원, 권한 없는 자문역인 셈이다. "이렇게 한가한 논의를 할 때가 아니다."는 말을 꺼낼 위치가 아니었다. 우울한 마음만 커져갔다. 금개위 자문위원을 맡은 젊은 학자들과 가끔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을 뿐이었다.

요즘 은행 대출 부실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닙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소속 전문위원 최범수가 내게 자료를 보여줬다. 은행 대출의 15퍼센트가 6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이라는 통계였다. 이 통계가 한 경제신문에 흘러 나가는 바람에 정부는 발칵 뒤집힌다. 정부는 이후 부실채권 관련 통계를 아예 발표하지 못하게 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또 다른 위원은 "잠재적 부실까지 따지면 부실채권이 30퍼센트 안팎일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중략)

갑자기 몰아닥친 위기,
모라토리엄을 말하다

PUBLY 멤버십에 가입하시고, 모든 콘텐츠를 읽으세요.

이런 콘텐츠는 어떠세요?

멤버십 더 알아보기

독자 리뷰

현재까지 296명이 읽은 콘텐츠입니다

  • 김**

    10점 만점에 100점 드리고 싶은 좋은 프로젝트입니다.

  • 노**

    의미있고 가치있는 접근이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