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인들이여, 당당하게 진화하라

광고인으로서, 나아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할까?

 

2017 칸 광고제 기간 중 워크샵, 밋업(meet-up), 브레인데이트(Braindates)*, 이노베이션 스타트업 멘토링 등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킹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각계 인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액센츄어에서 구축한 네트워킹 플랫폼 세션으로, 온라인 플랫폼 상에서 데이트 상대를 매칭하듯 등록자의 프로필을 분석해 적합한 네트워킹 상대를 매칭 해준다.

 

업계 인맥을 동원해 인터뷰를 진행했고, 인상적인 세션은 끝나고 연사를 쫓아가 질문을 하기도 했다. 현직 광고인, 업계 리더와 나눈 다양한 이야기를 주요 관련 세션과 함께 정리해보겠다.

업스트리밍: 가치 사슬의 상위로 올라가라

브레인데이트에 등록을 했더니, 나의 이력을 보고 광고 플래너(Account Planner)*였던 사람이 지금은 혁신을 담당하고 있다고 신기해하면서 연락이 왔다. 광고 플래너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 광고회사의 브랜드 및 캠페인 전략 수립 담당자

 

연락을 한 사람은 바로 WARC 런던 지사의 담당자, 제시카 올리버(Jessica Oliver)였다. 제일기획에 플래너로 재직할 당시부터 매주 뉴스레터를 받아보던 WARC는 브랜드, 광고, 마케팅 관련 지식 데이터베이스이다. 

 

WARC는 특히 전략 플래닝 중심으로 구성된 케이스 스터디와 리포트, 데이터베이스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발간하고 있다. 2017년 칸에서는 후반부에 WARC가 주관한 세미나가 시리즈로 열렸다. 그중 'The Future of Strategy(전략의 미래)'라는 세션이 특히 인상 깊었다. 

 

맥켄(McCann), TBWA, 미디어컴(Mediacom), 그레이(Grey) 등 발표자가 모두 전통적 에이전시를 대표하고 있기에, 세션 참석 전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광고인들이여, 당당하게 진화하라

광고인으로서, 나아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할까?

 

2017 칸 광고제 기간 중 워크샵, 밋업(meet-up), 브레인데이트(Braindates)*, 이노베이션 스타트업 멘토링 등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킹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각계 인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액센츄어에서 구축한 네트워킹 플랫폼 세션으로, 온라인 플랫폼 상에서 데이트 상대를 매칭하듯 등록자의 프로필을 분석해 적합한 네트워킹 상대를 매칭 해준다.

 

업계 인맥을 동원해 인터뷰를 진행했고, 인상적인 세션은 끝나고 연사를 쫓아가 질문을 하기도 했다. 현직 광고인, 업계 리더와 나눈 다양한 이야기를 주요 관련 세션과 함께 정리해보겠다.

업스트리밍: 가치 사슬의 상위로 올라가라

브레인데이트에 등록을 했더니, 나의 이력을 보고 광고 플래너(Account Planner)*였던 사람이 지금은 혁신을 담당하고 있다고 신기해하면서 연락이 왔다. 광고 플래너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 광고회사의 브랜드 및 캠페인 전략 수립 담당자

 

연락을 한 사람은 바로 WARC 런던 지사의 담당자, 제시카 올리버(Jessica Oliver)였다. 제일기획에 플래너로 재직할 당시부터 매주 뉴스레터를 받아보던 WARC는 브랜드, 광고, 마케팅 관련 지식 데이터베이스이다. 

 

WARC는 특히 전략 플래닝 중심으로 구성된 케이스 스터디와 리포트, 데이터베이스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발간하고 있다. 2017년 칸에서는 후반부에 WARC가 주관한 세미나가 시리즈로 열렸다. 그중 'The Future of Strategy(전략의 미래)'라는 세션이 특히 인상 깊었다. 

 

맥켄(McCann), TBWA, 미디어컴(Mediacom), 그레이(Grey) 등 발표자가 모두 전통적 에이전시를 대표하고 있기에, 세션 참석 전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세션 현장에 들어가 보니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일주일 내내 존재론적 위기감에 시달리고 있었을 광고인들은 WARC의 소개 발언부터 세션 끝까지 발언 내용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Session: The Future of Strategy(전략의 미래)
Hosted by: WARC, McCann, TBWA, Mediacom, Grey
Speakers: Hristos Varouhas(TBWA Media Arts Lab), Lucy Jameson(former CEO of Grey London)

광고인으로서 우리의 역할은 갈수록 더 광범위해지고 있고, 광고인들 대부분이 그 때문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문제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업스트리밍(upstreaming)' 요구도 이전보다 많다. 동시에 세부적인 사항까지 챙겨야 하는 프로젝트들도 늘어나고 있다.

 

경영 컨설팅 업계의 약진도 무시할 수 없다. WARC가 진행한 서면 인터뷰 조사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에이전시 CSO(Chief Strategy Officer)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든 클라이언트가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전략 컨설팅 업체와 같이 일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가끔은 도대체 한 회의실에 몇 명의 CSO가 같이 앉아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곤 합니다.

WARC 세션 발표 중인 TBWA 연사 ©장원정

TBWA Media Arts Lab의 크리스토스 바루하스(Hristos Varouhas)는 짤막한 발표자료를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The Future of Strategy(전략의 미래) 세션 일부

미디어의 파편화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거시적 사고 능력'이 중요하다. 이 능력을 키우지 못하면 우리 업계는 모두 죽은 거나 다름없다. 만약 당신이 아직도 대세로 자리잡은 디지털 기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미 일자리를 잃었거나, 곧 잃을 것이다.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분야가 처음 생겼을 때, 대부분의 광고 플래너들은 디지털 분야를 잘 알지 못했고, 심지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야의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곤 했다.

그런데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 아직도 그러고 있다면, 당신은 아마 스스로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광고인들에게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데, 대부분의 경우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이다. 자존심을 버려라. 그 누구도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열린 마음을 가져야한다.

만약 다른 팀이나 다른 회사의 누군가가 당신이 할 줄 모르는 것을 할 줄 안다면, 그의 지식과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곧바로 티가 나게 되어있고, 결국은 클라이언트도 눈치채게 된다.
소비자의
'기본적인 욕구(WHAT)'는
바뀌지 않았지만, 그 욕구를
'어떻게 충족할 것인가(HOW)'는
엄청나게 바뀌었다
여러 미디어 중 별책부록 정도에 불과했던 디지털이 이제는 핵심 줄기가 되었고, 그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당신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당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과 경쟁하려 하지 말고, 상호 보완 관계를 맺어라. 우리는 모두 하이브리드형 인간이 되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모든 복잡성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세션에서 다룬 내용은 내가 생각해 온 것과 매우 비슷했다. 기억을 되살리자면 제일기획 본사에서 플래너로 근무하던 시절, 디지털 마케팅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 같은 존재였다. SEO*, CPM**, CPP***등 온갖 모르는 용어와 데이터들이 난무하고,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개념들의 차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 SEO(Search Engine Optimization): 검색 엔진 최적화

** CPM(Cost Per Mille): 1,000회 노출 당 지불하는 광고 비용

*** CPP(Cost Per Period): 기간 기준으로 지불하는 광고 비용 

 

불행인지, 다행인지, 제일기획은 큰 회사였기 때문에 다른 부서에 디지털 분야를 잘 아는 동료들이 따로 있었다. 덕분에 나는 그 세계를 전혀 몰라도 큰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어렵거나 껄끄러운 건 피하다 보면 평생 안 해도 될 것이라고 나도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발표자의 말처럼, 디지털 마케팅은 눈 감고 숨어 있다 보니 지나가는 태풍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리를 떡하니 잡고 주인을 몰아낸 새 주인 같았다.

 

직급이 올라가 더 큰 프로젝트를 책임지게 될수록 프로젝트의 핵심적 부분을 완벽하게 알지 못한 채 클라이언트와 이야기해야 했다. 그리고 직접 매체 예산을 집행하는 클라이언트가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되었다.

 

광고 회사를 나와, 스타트업에 몸을 담아보니 그 필요성은 더욱 뼈저리게 와 닿았다. 지금껏 대충 개념 정도만 알고 살아왔던 소셜미디어 광고, SEO, 뉴스레터 마케팅은 이미 디지털 마케팅의 필수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혁신으로 중무장했지만 예산은 빠듯한 스타트업들은 디지털 마케팅을 '주 무기'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주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투입하는 비용(input) 대비 강력한 성과(output)을 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걸 모르고 있자니, 아무리 광고 회사에 오래 다녔다 해도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나 다름없었다. 각종 온/오프라인 강좌에 등록해 기본 개념을 두루 익히기 시작했고, 그것이 기존의 경험과 맞물려 시너지를 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스타트업 컨설팅을 하며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체험을 통해 실전은 이론과는 또 다름을 배울 수 있었다. 

광고인을 위한 4가지 조언

무엇보다도 WARC 세미나에서는 작년까지 그레이 런던(Grey London)의 CEO였던 루시 제임슨(Lucy Jameson)의 발표가 가장 인상 깊었다.

 

루시 제임슨은 플래너로 광고계에 첫 발을 내디뎌 그레이 런던 CEO 자리까지 올라섰다가 돌연 사표를 냈다고 한다.

 

회사를 떠난 후 1년의 휴식 기간 동안, 뭔가 새로운 것을 더 배우기 위해 페이스북과 벤처캐피털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오랜 친구가 스타트업을 시작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지금은 새로운 개념의 회사를 세우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Grey London 전 CEO 루시 제임슨 ©장원정

발표 제목은 '상류로 이동하라(Moving Upstream)'로, 가치 사슬에서 보다 높은 단계로 이동하는 것을 뜻한다. 루시 제임슨은 발표를 통해 다소 강한 어조로 광고인들에게 조언을 했다. 그녀의 4가지 조언은 다음과 같다.

* The Future of Strategy(전략의 미래) 세션 일부

1. 정신 차려라, 컨설턴트가 몰려오고 있다

광고인들은 기본적으로 크리에이티브하고 역량이 뛰어나다. 그런데 왜 이런 크리에이티브와 역량을 좀 더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아직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한 마디 하겠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애드 블록커(AdBlocker)*를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우리가 우리 평생의 커리어를 바쳐 피땀 흘려 만들고 있는 바로 그 결과물(광고)들을, 사람들은 심지어 돈을 내면서까지 피하고 싶어 한다!
* 웹 페이지 광고를 차단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우리 광고인들이 가지고 있는 스킬이 무엇인가. 사람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무언가를 원하도록 만드는 것 아닌가.

지금 이에 대한 수요는 정말 많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그 수요를 광고인들이 아닌 엉뚱한 사람들이 채우고 있다는 데 있다.

컨설턴트들이 몰려오고 있다. 실리콘 밸리의 수많은 테크 기업들이 마케팅과 광고를 인하우스(in-house), 즉 사내에서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애플이나 트위터가 대표적인 예다.

인공지능 스타트업들이 우리가 하던 일을 대신할 로봇들을 만들고 있다.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가 무섭게 크고 있다.

그럼에도 원래 있던 틀에 갇혀, 근본적으로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들이 산적해 있는 기회를 보지 못하고 그저 지나치는 광고인들이 너무 많다.

2. 거시적인 안목(helicopter view)을 키워라

수많은 경영 컨설턴트들을 만나 보았는데, 이들 중 대다수는 에너지, 부동산, 금융 등 특정 분야에 집중해 커리어를 개발하고 있었다.

따라서 역량을 집중하는 분야는 매우 깊이 알 수 있지만, 해당 분야에서 벗어나면 아주 얕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광고인들은 어느 특정 업계 혹은 분야만 평생 담당한다기보다 다양한 업종을 골고루 넘나들며 경험한다. 이것은 일반 컨설턴트들보다 업스트리밍을 더 잘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열쇠라고 생각한다.
광고인들만큼
문화(culture)와
상업(commerce)의
교차점을 잘 이해하고, 
가지고 놀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기계로 자른 듯 딱 떨어지지 않고, 풍부하고 복잡하며 뒤죽박죽이게 마련이다. 보통 이 부분에서 컨설턴트들은 두통을 호소한다. 왜냐하면 복잡하다 못해 뒤죽박죽인 요소와 변수들은 엑셀 스프레드시트에 깔끔하게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시스템, 프로세스 같은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광고인들은 바로 그런 복잡성을, 휴먼 인사이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 온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무기를 십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3. 재무회계와 현금의 흐름, 사업의 본질을 이해하라

나를 포함한 에이전시에 있는 동료들의 대부분이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광고인들 대부분은 태생적으로 재무나 회계 같은 '숫자'에 약하다.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광고 에이전시에 입사한 사람도 태반이다. 그런데 숫자에서 벗어난 일을 찾아 들어갔으니 앞으로 숫자와 거리를 두고 있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오산이다.
당신의 클라이언트가
실제로 어떻게,
어떤 구조와 흐름으로
돈을 벌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사업의 구조가 더욱 복잡해지고 있는 요즘, 모든 클라이언트는 무한한 시나리오와 옵션 사이에서 끊임없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광고인은 순식간에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한다는 비난을 듣게 될 수밖에 없다.

이건 정말 큰 문제이다. 지금 당신의 클라이언트를 잘 챙기는 것을 넘어, 앞으로 갈수록 파편화될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재무 지식을 필수로 갖추어야 한다. 당신이 나처럼 재무회계와 현금흐름 같은 주제를 병적으로 피해 온 사람이라면, 이 분야를 키우기 위해 무엇이든지 해라.

직장을 떠나 풀타임으로 수업을 듣는 것이 여의치 않으면 파트타임이나 온라인 MBA를 들어라. 경영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어라. 시간을 내 기업의 연차 보고서를 찾아 읽어라.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를 인정하고 주변에 도움을 구해라. 회사 안의 재무팀이나 회계팀 사람들과 좀 더 친해져라. 그들 대부분은 워낙 회사에서 자기들끼리만 친하고 친구가 별로 없어서, 누군가 친근하게 대해주면 정말 좋아한다.

재무제표의 구조를 이해하고 클라이언트사의 재무제표, 당신 회사의 재무제표를 숙지하라. 계약서를 대충 보지 말고, 하나하나 뜯어보고 마음속에 잘 새겨 두어라.

처음엔 쉽지 않겠지만 자금의 흐름을 이해하고 나면 더 깊이 있는 인사이트와 솔루션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클라이언트에게도 훨씬 고차원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4. 실제로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보라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 더 나아가서는 회사를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라. 당장 지금 직업을 그만두고 창업 전선으로 뛰어들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직접 결과물을 만들어보기 시작하는 그 순간, 우리가 수년간 클라이언트에게 말로만 조언하던 것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보며 미처 보지 못했던 것에 눈을 뜨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를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잠시라도 테이블 반대쪽에 앉아 클라이언트가 되어 보는 순간,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예산 한 푼 한 푼이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은 결국 돈을 벌어야 하는, 비즈니스라는 것을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간단한 부업을 해보거나, 작은 비영리 단체에 한 번 몸을 담아보라. 재무제표가 있는 어떤 조직을 직접 운영해 보고 나면 비즈니스에 대한 기본적인 감각은 훨씬 더 날이 설 것이다. 

그렇게 날이 선 감각으로 보다 더 고차원적인, 업스트리밍 된 단계에서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된다.

크리에이티비티라는 무기를 활용하면

Session: Meetup - "I'm Feeling Lucky"(운 좋은 예감)
Hosted by:
Dollar Shave Club
Speakers: Matt Knapp, Alec Brownstein

WARC 세미나 이후, 달러 셰이브 클럽(Dollar Shave Club)*의 밋업(Meetup)을 듣기 위해 뛰어갔다. 밋업이란, 야외에서 소규모 그룹 인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세션이다. 대부분 스무 명 남짓한 청중이 유명한 발표자와 함께 둘러앉아 발표를 듣고 개인적인 질문을 마음껏 던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세계 최초의 구독제 면도기 멤버십 서비스를 만들어 내 큰 성공을 거두고 질레트사에 성공적으로 인수되어 아직도 브랜드와 모든 비즈니스를 독립적으로 집행하고 있는 스타트업

 

원래 광고 회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알렉 브라운스타인(Alec Brownstein, VP of Creative, Dollar Shave Club)은 광고 회사를 떠나 스타트업의 마케팅을 담당하게 되니 매일 같은 브랜드만 생각해야 돼서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클라이언트가 되어 보니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마케팅이다

단순히 우리가 내보내는 광고뿐만 아니라, 우리 고객들이 제품을 배송받아 박스를 여는 그 순간의 느낌이 어떤지, 어떤 냄새가 나는지, 불만이나 질문이 있어 핫라인에 전화했을 때 어떤 느낌을 받는지 그 모든 접점을 관리하는 것이 마케팅이었던 것이다.

 

만약 광고 회사에서 하던 것처럼 그저 광고만 만들었다면 금새 지겨워질 수 있었겠지만, 우리 브랜드의 모든 접점을 어떻게 하면 더 잘 관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나의 일이라고 깨닫고 나니 지겨울 틈 없이 바쁘다고 덧붙였다.

달러 셰이브 클럽 밋업 세션 ©장원정

달러 셰이브 클럽은 직접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는 테크 기업이다. 알렉 브라운스타인은 이런 인하우스(in-house) 마케팅의 장점을 설파했다.

 

가장 큰 장점은 광고를 집행하자마자 얼마나 효율이 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분석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달러 셰이브 클럽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유연성과 연결된다. 한번은 열심히 만든 광고를 페이스북에 집행했는데 반응이 썩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두 시간 만에 집행을 중지하고 소재를 바꾼 적도 있다고 했다.

 

또한 인하우스로 모든 것을 제작할 경우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언제나 건전한 비판 의식을 가지고 있으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어떤 결과물도 소중하지 않다. 바꾸어 말하면 특정 결과물만 소중한 것은 아니기에 언제든 파기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삼고 모든 과정에 임한다.

뭔가가 잘되지 않아 그것을 수정하거나 중지해야 할 때도 쓸데없이 자존심을 상해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오히려 바로 개선책을 찾는 데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같은 미디어 환경에서는 그래야만 한다. 브랜드가 만들어 내는 콘텐츠와 메시지를 일부러 찾는 소비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더 재미있는 콘텐츠가 많은데 말이다. 광고인들을 위한 조언 한마디를 부탁하는 청중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계속 백미러만 보면서 운전을 한다면, 곧 당연히 사고가 나겠죠? 주변에 어떤 장애물들이 있거나 겁이 나더라도 어쨌든 계속 앞을 보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전진하세요.

COGY*라는 휠체어를 개발해 이노베이션 라이언 쇼트리스트에 오른 하쿠호도의 팀도 비슷한 내용으로 조언을 한 기억이 있어 정리해 보겠다.
* 일본어로 걸어갈 때 나는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 코기코기(コギコギ)를 본떠 이름 붙인 것

 

걸음마를 갓 시작한 아기를 들어 바닥에 발을 닿게 하면, 그 순간 양 발을 번갈아 가며 앞으로 뻗어 자연스레 걸어 나가는 움직임을 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인체에 앞으로 보행하려 하는 반사 신경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쿠호도 COGY 프로젝트 팀 ©장원정

하쿠호도의 코기 휠체어는 바로 이 반사 신경을 응용한 세계 최초의 페달형 휠체어다. 물론 하쿠호도가 먼저 아이디어를 낸 것이 아니다. 기술이나 아이디어는 너무 좋은데 그것을 제대로 마케팅할 줄 모르는 작은 발명가들이나 스타트업들을 골라 브랜딩과 컨셉을 다듬어 주고 마케팅 및 홍보를 대행해 주는 식으로 발전시킨 하쿠호도 케틀(Hakuhodo Kettle)의 결과물 중 하나였다.

 

몇 년 전만 해도 초기 하쿠호도 케틀의 형태는 사내 벤처같이 직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형태였다. 예컨대 북카페가 아닌 북비어(맥줏집에 서점이 같이 있는 형태) 같은 프로젝트 등으로 주목을 받았었다. 그러나 사내 벤처 형태로 추진하며 직원들의 아이디어에 의존하다 보니 아이디어는 참신해도 사업성이나 확장성은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그래서 방향을 수정한 것이 아닐까 추론해 본다.

 

그들의 발표를 들은 후 인터뷰를 요청하는 내게 하쿠호도 Disruption Lab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토시 치카야마 사토시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하쿠호도는 일본에서 아주 큰 회사입니다. 클라이언트를 고를 수 있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요즈음 케틀을 통해 사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혁신의 규모가 큰 회사들을 돕는 게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코기 휠체어의 발명가는 한다 야스노부 박사이다. 너무나 멋진 제품을 만들었으면서도 이것을 어떻게 멋지게 포장해서 팔아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고 한다.

 

하쿠호도는 바로 이런 경우에 그들이 가진 크리에이티브 역량을 정말 가치 있게 쓸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제품을 보다 사람들이 가지고 싶게 포장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스토리텔링할 수 있는지에 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코기의 브랜딩부터 제품 디자인 및 판매 홍보까지 하쿠호도에서 도맡아 진행했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업스트리밍을 해야 한다는 목표 의식과 일맥상통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쿠호도는 이미 인하우스 관점으로 접근하여, 광고주의 비즈니스 솔루션까지 함께 고민하고 있었다. 또한 기술이 필요한 스타트업에게 광고회사가 가진 적절한 기술/노하우를 제공하여 부가가치를 창조하고 있었다.

 

크리에이티비티라는 무기를 활용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보다 상위 차원의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저 광고 한 편, 캠페인 하나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조금 더 멀리 내다보며 클라이언트와 함께 고민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