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할 준비는 되어 있다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9년에 발간된 <2020 트렌드 노트: 혼자만의 시공간>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콘텐츠 발행일: 2022.11.14]

퀄리티와 디테일이 생명인 굿즈 시장에 다소 이단아적인 닭 한 마리가 등장했다. 삐뚤빼뚤한 눈에 '처갓집 양념치킨' 로고가 새겨진 앞치마를 매고 있다. 이 조악한 닭 인형 '처돌이'는 2019년 어린이날을 맞아 처갓집 양념치킨이 신제품 프로모션 차원에서 'the화이트 치킨' 사은품으로 내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행사 첫날 1만 개의 처돌이가 모두 동나자 처갓집 치킨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고 2차분 준비에 돌입했고, 중고나라에 프리미엄이 붙은 처돌이 인형이 거래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처돌이가 이미 2016년에 나온 굿즈(goods)라는 사실이다. 당시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처돌이가 2019년의 '대란템'으로 거듭난 이유는 무엇일까? 처돌이는 어느 유명 블로거의 치킨 리뷰가 인기를 끌면서 유명해졌다. "처갓집 치킨의 맛은 처돌았지만 처돌이는 처돌지 않았다고 해요"라는 멘트가 이른바 대박을 치고 온라인상에서 밈(meme)화되며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이 글이 워낙 인기 있다 보니 '처돌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아 '덕후'를 대신하는 열광 지칭 명사가 된 것이다. 기존의 '덕후'와 차이가 있다면, 처돌이는 조금 더 사소한 행동이나 동작에 대해서도 과하게 몰입하는 열광을 표현한다는 점이다.

©북스톤

"저 오늘 드디어 흑화당 먹으러 가요! 기대돼요ㅠㅠㅠ 저 흑당 처돌이라 보이는 밀크티는 다 먹어보고 있거든요ㅠㅠㅠ" "지민이 머리 쓸어 넘기는 행동 처돌이 나야나"

 

처돌이는 맹목적 열광이라는 관점에서 '컬트(cult)'와 맥락을 같이하지만, 그보다는 덜 진지한 대신 훨씬 대중적으로 사용된다. 처돌이뿐 아니라 '광인(팡인)', '성애자' 등 다양한 표현들이 단순 편애를 넘어 극성적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열광할 준비는 되어 있다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9년에 발간된 <2020 트렌드 노트: 혼자만의 시공간>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콘텐츠 발행일: 2022.11.14]

퀄리티와 디테일이 생명인 굿즈 시장에 다소 이단아적인 닭 한 마리가 등장했다. 삐뚤빼뚤한 눈에 '처갓집 양념치킨' 로고가 새겨진 앞치마를 매고 있다. 이 조악한 닭 인형 '처돌이'는 2019년 어린이날을 맞아 처갓집 양념치킨이 신제품 프로모션 차원에서 'the화이트 치킨' 사은품으로 내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행사 첫날 1만 개의 처돌이가 모두 동나자 처갓집 치킨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고 2차분 준비에 돌입했고, 중고나라에 프리미엄이 붙은 처돌이 인형이 거래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처돌이가 이미 2016년에 나온 굿즈(goods)라는 사실이다. 당시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처돌이가 2019년의 '대란템'으로 거듭난 이유는 무엇일까? 처돌이는 어느 유명 블로거의 치킨 리뷰가 인기를 끌면서 유명해졌다. "처갓집 치킨의 맛은 처돌았지만 처돌이는 처돌지 않았다고 해요"라는 멘트가 이른바 대박을 치고 온라인상에서 밈(meme)화되며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이 글이 워낙 인기 있다 보니 '처돌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아 '덕후'를 대신하는 열광 지칭 명사가 된 것이다. 기존의 '덕후'와 차이가 있다면, 처돌이는 조금 더 사소한 행동이나 동작에 대해서도 과하게 몰입하는 열광을 표현한다는 점이다.

©북스톤

"저 오늘 드디어 흑화당 먹으러 가요! 기대돼요ㅠㅠㅠ 저 흑당 처돌이라 보이는 밀크티는 다 먹어보고 있거든요ㅠㅠㅠ" "지민이 머리 쓸어 넘기는 행동 처돌이 나야나"

 

처돌이는 맹목적 열광이라는 관점에서 '컬트(cult)'와 맥락을 같이하지만, 그보다는 덜 진지한 대신 훨씬 대중적으로 사용된다. 처돌이뿐 아니라 '광인(팡인)', '성애자' 등 다양한 표현들이 단순 편애를 넘어 극성적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무언가를 '미치도록' 좋아한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유튜버, 인스타 셀럽, 아이돌, 배우, 심지어 셀럽 강아지 등에도 열광할 준비는 되어 있으며 그 열광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브랜드가 아니라 사람에 충성한다

2018년 9월, 별다른 이벤트도 없이 전 세계 소셜 피드를 뜨겁게 달군 브랜드가 있다. '셀린느(Celine)'다. 남성들에게는 다소 생소할지 몰라도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 여성들에겐 루이비통보다, 크리스찬 디올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감을 지닌 브랜드였다.

 

존재감의 핵심은 '피비 파일로(Phoebe Philo)'라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피비 파일로는 셀린느의 연매출을 2억 유로에서 7억 유로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셀린느에서 지난 9월 일어난 일은 꽤 단순했다. 셀린느의 수장이 그녀에서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으로 바뀌었고 피비 파일로 시절의 인스타그램 피드가 모두 지워지고 에디 슬리먼의 세계관에 맞는 사진이 올라왔다. 리더가 바뀌면 으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을 지켜 보는 온라인 피드는 분노로 가득 찼다. 피비 파일로가 셀린느와 함께한 모든 추억과 역사를 없앴다는 것이다.

 

그러고 얼마 후 'oldceline'란 계정이 생겨났다. 이 계정은 1년이 채 안 돼 30만 명의 팔로워를 확보했는데, 셀린느 공식 계정의 6분의 1에 해당한다. 주목할 점은 브랜드가 운영하는 공식 계정이 아니라, 피비 파일로의 팬들이 지난 10년을 기리며 만든 일종의 팬페이지라는 사실이다.

 

 
 
 
 
 
 
 
 
 
 
 
 
 

Oldie but goodie #oldceline

Shinyoung Kim 💛(@i_am_shinyoung)님의 공유 게시물님,

* 셀린느 제품 사진에 '#oldceline' 해시태그를 달았다.

 

사람들은 셀린느와 올드셀린느를 구별했고, 소장한 제품 사진에 굳이 '#올드셀린느(#oldceline)'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올드셀린느의 중고 가격은 30%나 올랐다. 올드셀린느에 대한 글을 살펴보면 이 현상이 단순한 향수를 넘어 개인에 대한 '열광'임을 알 수 있다.

 

팬들은 '셀린느'라는 브랜드보다 '피비 파일로'라는 개인을 더 많이 사랑했으며, 그녀는 말 그대로 워너비였다. 광고 모델이나 브랜드의 아우라가 아니라 디렉터 자체가 소비자의 이상형이었던 것이다.

 

명품 브랜드에서 디렉터의 역량과 존재감이 커진 지는 이미 오래지만, 피비 파일로처럼 개인의 존재감이 브랜드보다 더 커져서 스스로 브랜드의 연대기를 창조한 사례는 많지 않다. 왜 그녀에게만 이러한 열광이 따르는 것일까? 그 답은 그녀가 드러낸 '사람'으로서의 면모에 있다.

 

피비 파일로는 셀린느로 오기 전부터 화제의 인물이었다. 잊혀져가던 명품 브랜드 끌로에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벽히 재탄생시키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수십억 유로의 이익을 내고 톱 5 안에 드는 날, 나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2년간 휴식을 취할 것이다.

그녀는 2006년 첫 아이를 출산하고 끌로에를 떠나며 퇴사 이유로 '가족과의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고, 단숨에 이해시켰으며, 더 열광하게 했다. 밤 11시까지 일하지는 않겠다는 소신, 스스로를 '엄마이자 여동생, 친구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라고 말하는 균형 잡힌 역할 정체성과 같은 그녀의 철학과 태도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 관련 기사: 일과 가사의 균형, (노트폴리오 매거진, 2018.12.19)

 

소비자들은 디자이너로서 그녀의 심미안과 독보적인 스타일에 그치지 않고 '인간 피비 파일로'의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한 것이다. 그것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 바로 그녀의 셀린느였다. 디자이너 본인이 브랜드이자 페르소나였던 것이다.

 

셀린느 제품을 산다는 것은 피비 파일로 같은 라이프스타일, 즉 '생활하는 여성, 일과 삶의 균형을 잘 맞추는 건강한 여성, 남자에게 예뻐 보이는 옷보다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는 여성, 현대적이고 지적이며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여성'의 이미지에 공감하고 동조하며, 그런 삶을 사는 여성이길 바란다는 뜻이다.

피비 파일로의 사례는 소비자의 페르소나를 상상해서 구현하기보다는, 매력적인 셀러의 페르소나를 창조하고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단순히 브랜드에 열광하던 시기를 넘어 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든 '개인의 서사'에 주목하는 때가 왔다.

 

엔터테인먼트, 가구, 가전까지 셀러의 페르소나는 전방위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츠타야(Tsutaya)에는 '마스다 무네아키', 마켓컬리에는 골드만삭스(Goldmansachs)와 맥킨지(Mckinsey) 출신의 '김슬아'가 있다. 그뿐인가, 프리츠한센의 천재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Jaime Hayon)', CJ오쇼핑 A+G(엣지)의 '한혜연', 심지어 최근에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빅히트로 이적한 비주얼 디렉터 '민희진'까지 브랜드를 넘어서는 개인의 '이름'이 산업 곳곳에 존재한다.

 

이라는 책에서 저자 레이첼 보츠먼(Rachel Botsman)은 "이제 신뢰와 영향력은 제도보다 개인에게 존재한다"고 말했다. 조직보다 '개인'에 열광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다. 한 명의 개인이 거대기관보다 중요하게 느껴지고, 하나라도 더 팔려는 장삿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브랜드보다는 분명한 컨셉과 철학이 담긴 개인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는 시대다. 효율을 지상과제 삼아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거대기업과 공룡기업에는 '열광'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사랑받기 위해 우리 브랜드가 취할 전략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브랜드 역시 '사람' 같아져야 한다. 인격이 있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우리 브랜드를 대표하는 디렉터, 우리 브랜드 셀러의 페르소나가 있어야 한다.

 

우리 브랜드를 누가 만드는지 생각할 때 떠오르는 얼굴이 조금 더 멋져야 할 필요가 있다. 기름지고 탐욕스런 얼굴, 구치소나 법원을 들락거리며 찍힌 감색 정장의 고개 숙인 모습…. 이런 연상은 브랜드에 도움이 될 리 없을뿐더러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캐릭터 또한 그런 모습이 전혀 아니다.

 

숫자에 매몰돼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보다, 건강하고 진솔하며 철학과 취향이 있는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꼭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우리 브랜드를 대표할 '사람'을 발굴하고 그와 함께 우리 브랜드를 알리는 일은 '열광 시대의 브랜딩'에 너무나 필요한 일이다.

사생활이 자산이다, 라이프스타일을 판다는 것

'사람을 닮은 브랜드'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라이프'이고 그다음은 '라이프스타일'이다. 라이프는 팩트를 기반으로 한다. 그가 비혼인지, 기혼이라면 육아를 하는지, 직업은 있는지, 반려동물은 키우는지와 같은 사생활이 바로 라이프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공감할 수 있는 라이프,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는 일상은 무엇일까? 가장 빈번하게 말하는 것이 가장 관심 있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면,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부르는 'OO일상'은 크게 3가지로 육아, 반려, 직장이다.

©북스톤, 생활변화관측소

'나도 육아가 힘든데…', '나도 직장생활이 버거운데…', '아이가 예뻐서', '강아지가 귀여워서'와 같이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말을 걸 여지가 생기는 지점들이다. 과거 부모님들이 정직하고 성실하라고 가르쳤듯이, 오늘날은 소통과 공감이 인간성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라이프를 기꺼이 공개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소통과 공감만으로는 그들에게 '열광'할 수 없다.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것은 소통이 아닌 팬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떠벌이 소통왕이 아니라 사람들이 열광하는 인플루언서 혹은 셀럽을 만드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만의 단단한 가치관이나 능력이 있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특별한 라이프스타일로 인식된다. 한 번 비건 레스토랑에 간 것은 경험에 불과하지만 3년간 비건(vegan)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가치관으로 인정받는다. 한우 홍보대사였던 이효리가 돌연 채식 선언을 한 뒤로 채식의 대명사가 되기까지 숱한 비웃음과 비아냥이 따랐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요리 솜씨가 좋아 자신만의 레시피를 공유한다거나, 자신만의 안목으로 전례 없는 인테리어를 선보이는 것은 취향과 솜씨, 시간을 모두 필요로 하기에 더 어렵다.

©북스톤

팬덤을 넘어 아우라를 가진 열광의 단계로 넘어가는 데 중요한 것은 커리어라고도 불리는 개인의 '역사'다. 인스타그램 피드의 히스토리, 유튜브의 동영상 아카이브 등이 '역사'를 증명해주기도 한다. 가치관과 능력이 어우러져 오랜 시간 동안 하나의 역사를 만들 때 사람들은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고 응원하고 열광한다.

 

'대체될 수 없는 라이프스타일을 만들라'는 말이 자기계발서의 한 줄 요약 같은 뻔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은 사람을 위한 조언이 아니라 '인격이 있는 브랜드'를 위한 조언이다. 우리 브랜드를 대표하는 셀러는 소비를 제안하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관과 능력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표현방식의 감도가 깊거나 명민할수록 열광할 이유는 더 많아진다.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열렬히 말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있고, 좋아하는 것을 사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삶을 사는 사람. 좋아하는 것들이 통일된 맥락으로 묶인다는 것은 그가 고유한 철학과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소비자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브랜드가 지향해야 할 라이프스타일 표현의 핵심이다.

 

어떤 브랜드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매거진을 발간한다. 배달의민족과 <매거진 B>가 함께하는 <매거진 F>, 패션 브랜드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의 <아크네 페이퍼(Acne Paper)>, HM그룹의 COS가 발행하는 <코스 매거진(Cos Magazine)> 등이 담아내는 것은 그들의 제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1년에 두 번 발간되는 <코스 매거진>의 2019년 봄·여름호 주제는 '빛'으로, 천문학자 캐시 비바스(Kathy Vivas), 밝은 빛을 작품에 담는 영화감독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 햇빛의 건축가 마리나 타바숨(Marina Tabassum) 등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자신들의 철학과 취향을 우회적으로, 아주 정성껏 우아하게 표현하는 작업이다.

섬세한 큐레이터에서 과감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한동안 소비를 제안하는 인간의 역할이 '큐레이션'에 있다고 보는 것이 트렌드였다. 큐레이터의 안목과 관점에 기반한 새로운 기획을 통해 선택지를 줄여주는 것이 소비자의 취향을 '맞추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이에 반해 새로운 취향을 제안하는 '인간'의 역할이란 고유한 아우라를 발산하는 완성형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브랜드 페르소나는 섬세한 큐레이터가 아니라 과감하고 창조적인 디렉터가 되어야 한다. 개인의 희귀한 매력을 탁월함이라는 아우라로 전환시키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디렉터가 해야 할 일이다.

 

2018년 3월 루이비통 남성복 부문의 새로운 수장으로 임명된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는 그런 점에서 예시가 되기에 적합하다.* 떠오르는 스트리트 브랜드인 '오프화이트(Off-White)'의 수장인 버질 아블로는 루이비통 브랜드 역사상 첫 흑인 디자이너일 뿐 아니라, 건축학도 출신으로 정식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주목 받았다.

* 관련 기사: 루이비통은 왜 버질아블로를 선택했나 (하이엔드캠프)

 

디자이너 출신이 아닌 그가 루이비통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명품 브랜딩의 핵심은 과감한 디자인이 아니라 브랜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디렉팅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첫 컬렉션은 대성공이었다. 소셜 피드상의 관심이 매출로 직결되는 요즘, 그에 대한 관심만큼 매출 역시 크게 증가했다고 알려졌다. 440만이라는 엄청난 팔로워를 보유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개인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예술가, 좋아하는 건축 등 모든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찍어 올린다.

 

SNS뿐 아니라 인터뷰를 통해서도 개인적 취향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은퇴하면 꽃꽂이에만 전념하고 싶다고 밝히더니 루이비통의 2020 S/S 컬렉션에서 꽃 취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이 그 브랜드로 구현되고, 단순 소비자가 아닌 '팬'을 자처하는 이들은 그것에 열광한다.

 

 
 
 
 
 
 
 
 
 
 
 
 
 
 
 

@virgilabloh님의 공유 게시물님,

*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취향을 표현하는 버질 아블로

 

이처럼 크레이에티브 디렉터의 역할은 수집과 전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제작과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해 브랜드의 톤앤매너를 결정하고 그의 고유한 아우라를 브랜드에 이식하는 것이다.

 

최근 3년 새 소셜미디어 상에서 '아트 디렉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언급량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영리해진 소비자들은 이제 그 브랜드의 브랜드 디렉팅을 누가 맡는지, 누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고 아티스틱 디렉터인지 감별해내고 그들의 이름을 외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소비자가 믿고 따르는 '워너비'다. 그런 워너비가 디렉팅하는 브랜드의 제품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한 인간의 역사와 철학을 담은 매력적인 콘텐츠가 된다. 그 콘텐츠를 구입함으로써 소비자들은 그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의 브랜드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모색하고 발굴해야 한다. 언제나 또 영원히, '사람'은 브랜드의 중심에 있을 것이다. 고객에 대한 배려, 고객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이제 우리 브랜드를 대표하는 '사람'을 중심에 놓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