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서 실친으로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9년에 발간된 <2020 트렌드 노트: 혼자만의 시공간>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미움받을 용기>, <자존감 수업>, <신경 끄기의 기술>,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로 이어지는 베스트셀러 목록은 인간관계에 지친 한국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내면의 안정과 행복을 찾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실제 데이터를 살펴보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연관어는 꾸준히 '사람'이 1위, '마음'이 2위다. 한국인의 행복에는 여전히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다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에는 변화가 보인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고 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까? 한국인들은 '행복'을 언급하면서 '사랑', '아이', '가족'은 점점 덜 말하고 있다. 반면 '친구'의 언급량 순위는 2010년 10위에서 시작해 2014년 8위로 올라선 이후 꾸준히 순위가 유지되고 있다.

 

이미 소셜미디어에서 일상어처럼 쓰이고 있는 '실친'은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실제 만나는 친구를 의미한다. 예전이었다면 친구 중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서 만난 친구에게 '인친', '트친' 등의 특별한 이름을 붙여주었겠지만 이제는 '실제 친구'도 구분해서 불러야 할 만큼 친구라는 단어의 의미가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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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친은 탁월한 취향과 안목으로 예쁘고, 맛있고, 귀여운 것들을 추천해주는 친구다. 나는 인친을 팔로우하며 그들의 추천맛집과 아이템을 소비한다.

 

페친은 다양하고 새로운 것들을 추천해주는 친구이며, 정치문제에서 불우이웃돕기까지 다양한 이슈를 타고 모여 서로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올리며 응원하는 서포터이기도 하다.

 

덕후들의 성지 트위터에서 만난 트친은 나와 취미·취향이 똑같은 친구들이다. 특히 실친과는 섣불리 공유하기 어려운 덕심을 공유하는 관계다.

학교친구보다 동네친구

이제는 인맥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학교친구나 동창보다는 가까운 곳에 살면서 많은 시간과 자원을 들이지 않고도 편하게 만나 수다 떨 수 있는 동네친구가 소중한 실친이 되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2015년 3분기 이후 '동네친구'의 언급량이 '학교친구'를 넘어섰고, 2018년 2분기부터는 동네친구에 대한 관심이 학교친구에 대한 관심의 2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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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친구 찾기 활동도 이러한 니즈를 반영하여 온라인으로 만난 친구관계를 실친관계로 확장하도록 돕는 사교모임 앱으로 세분화하며 발전했다. 사교모임 앱은 대부분 거리를 설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효율적인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지나치게 먼 거리는 만남에서 얻을 수 있는 정서적 만족감을 해치는 방해요인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사교모임 앱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알고리즘은 바로 취향과 관심사다. 함께 덕질하는 트친들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매개로 친구를 만들면 친해지기가 훨씬 쉽다.

밀레니얼 맘과 베이비부머의 온라인 친구 찾기

온라인 친구를 오프라인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는 것이 10~20대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새로운 현상일 것 같지만, 의외로 온라인 친구를 가장 부지런히 오프라인으로 확장해가는 공간은 바로 밀레니얼 맘들의 놀이터, 맘카페다.

 

사실 친구가 가장 필요한 그룹은 싱글도 학생도 아니라 아이 키우는 엄마라 할 수 있다. 함께 놀 형제자매가 없는 외동아이들이 늘면서 엄마들은 이제 집안일과 아이 돌봄에 더해 아이와 놀아줄 의무까지 짊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대화 수준이 다른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을 즐기기란 너무 어렵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유튜브만 보여주면 아이의 뇌 발달에 좋지 않다고 하니 죄책감이 너무 크다.

 

아이와 엄마가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친구 관계는 곧 엄마의 친구관계를 의미한다. 맘들에게도 결혼과 출산 전에 사귄 친구들이 있지만, 삶의 선택지가 다양해지면서 현재 비슷한 삶의 과정을 지나고 있지 않은 옛 친구들과 어울리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자연스레 아이뿐 아니라 엄마들도 새로운 관계를 필요로 하게 된다. 특히 결혼, 임신과 출산, 이직, 이주 등의 이유로 새로운 곳에 정착하게 된 엄마들은 지역 커뮤니티(맘카페)에서 적극적으로 친구를 찾는다.

 

"이제 곧 부산으로 이사 가네요 동해에서 살다가 20살 때 부산 내려가서 10년을 살다가 다시 동해 올라와서 산 지 4년 만에 다시 부산으로 컴백(?) 하네요 예전엔 대학생 직장인이라 이런건 몰랐는데 이젠 애 놓고 사는 엄마라 그런지 맘카페 부터 가입하고 있네요 용호동으로 이사가구요 28갤 3갤 형제맘이에요 같은 동네 비슷한 개월수 맘 있음 친해지고 싶네요 ~~ 대학때 친구들이 아직 다 미혼이라 이젠 애들 데리고 만나기도 쉽지가 않네요 ㅎㅎ"

 

맘카페는 조리원을 대체하는 훌륭한 온라인 채널이다. 이곳에서는 조리원 동기처럼 엄마의 나이, 아이의 개월 수가 비슷한 친구는 물론이고 동네와 성향, 나아가 취미까지도 맞출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이제 밀레니얼 맘들은 친구 찾기 플랫폼으로 인스타그램도 활용한다. 최근 맘카페에서 친구 찾는 글들을 보면 대부분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알려주며 DM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실제 '이사'의 연관어로 '친구'의 언급량은 꾸준히 늘었고, 그중에서도 인스타그램에서의 언급량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맘카페'의 연관어로 '친구'의 언급량은 '남편'의 6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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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맘들이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하기를 원하는 이유는 인스타그램을 일상적으로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일상생활, 경제수준, 취향과 취미까지 한 번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모적인 인간관계를 피하고 효율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밀레니얼에게 득보다 실이 많은 인간관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이슈다. 그런 점에서 맘카페의 댓글만 보는 것보다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확인하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방안이다.

 

맘들 다음으로 친구가 필요한 이들을 들라면 시니어를 꼽아야 한다. 시니어 커뮤니티에서 '걱정'의 연관어로 '혼자'는 다른 세대에 비해 훨씬 상위에 랭크된다. 70~80대의 현실을 목도한 베이비부머들은 자신의 미래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미리 친구 찾기를 시도한다. 온라인 친구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극복하고 다음카페 동호회에 가입해 활발하게 활동하며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렇듯 온라인 친구 찾기는 젊은 세대만의 활동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시니어 세대는 지구상 어느 나라 어떤 또래들보다 높은 디지털 수용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온라인 친구를 찾고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디지털 시장에 이들의 니즈를 해결할 플랫폼은 부족하기만 하다.

디지털 세대, 관계의 문법: 묻지 않는다, 드러낼 뿐이다

변화한 디지털 세대의 문법은, 먼저 친구 하자고 제안하지 않는 것이다. 디지털 세대는 친구가 될 의향을 대외적으로 표시한 사람에게만 말을 건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친하게 지내자고 말을 거는 게 아니라, 관계 맺고 싶다는 의사를 프로필 등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본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으로 공식이 바뀌었다.

 

이제는 질문하거나 제안하기보다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선택하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에게 선택받고자 노력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그에 부합하는 이가 찾아와 서로가 만족하는 효율적인 관계를 맺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렇듯 관계의 문법은 인간관계에서 어색함과 불편함을 줄이고 만족도와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니 기존 관계의 책임과 의무를 덜어내고, 효율적이고 만족도 높은 인간관계를 도울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