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눈으로 본 베트남

2018년 여름, 해외사업팀에 지원해 발령이 났습니다. 회사는 첫 해외 진출지로 베트남을 선택했습니다. 마케터인 제게 주어진 일은 베트남 시장을 이해하고, 우리 서비스를 무사히 런칭하는 일이었어요. 발령 후 한국으로 복귀하기까지 베트남에서 머문 10개월 동안 베트남의 브랜드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회사 서비스와 관련된 IT 브랜드와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하며 마주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 관심이 많이 생겼죠.빽빽한 건물이 인상적인 베트남 호찌민 전경 ⓒ손혜진2018년 기준으로 베트남은 일본에 이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여행한 나라, 약 7000개에 달하는 한국 기업이 진출한 나라, 인구 규모로는 세계 14위(약 9600만 명), 평균 연령 31세에 최근 5년 연속 경제성장률이 6%를 웃도는 나라(한국은 2.7~3.2%)입니다.

 

중국과의 접근성, 젊은 노동인구, 정부의 개방 정책 등으로 미·중 경제 대립 상황에서 중국을 대신할 포스트 차이나로 각광받는 나라이기도 하죠.*

* 관련 기사: "미·중 무역전쟁 최대 승자는 베트남" (중앙일보, 2019.9.26)

 

그런데 휴양지, 관광지가 아닌 경제 활동지로서의 베트남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아마 저와 비슷한 아쉬움을 느낀 분들이 적지 않을 텐데요.


더 넓은 시장에 관심이 있는 마케터, 베트남으로의 해외사업이나 근무를 계획 중인 직장인, 또 경제 활동지로서의 베트남을 궁금해하는 분들께 제가 베트남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공유하려 합니다.

 

베트남에서는 어떤 브랜드가 잘하고 있고, 어떤 브랜드가 인기를 얻고 있으며, 그 브랜드는 소비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쌓아가고 있을까요? 마케터의 눈으로 포착한 베트남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광고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동남아, 그리고 베트남 '그랩'

2018년 3월, 우버(Uber)가 동남아시아(이하 동남아)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수년간 이어져 온 그랩(Grab)과의 소모전 끝에 그랩 주식의 27.5%를 받고 동남아 영업권을 넘겨주었죠. '제2의 우버'가 원조를 이긴 꼴입니다.* 현재 그랩의 시장가치는 약 12조 원, 베트남의 시장점유율은 92%입니다.

* 관련 기사: '동남아 우버' 그랩, 원조를 뛰어넘다…36세 CEO 안토니 탄의 질주 (중앙일보, 2018.3.26)

 

그랩이 어떻게 우버를 이겼는지는 여러 측면에서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동남아 출신의 그랩이 우버보다 동남아의 지역적 특성을 더 잘 이해한 덕분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베트남은 이동통신 보급률이 높은 데 비해, PC 인터넷 보급률은 낮다. (출처: 한국인터넷진흥원 / 가공: 퍼블리)소득 수준이 낮고,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있지 않은 까닭에 동남아 국가의 인터넷 사용자 대부분은 PC를 거치지 않고 바로 모바일로 건너뛰었습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대중교통이 덜 발달했고, 그 틈을 오토바이가 메우고 있습니다.

* 관련 기사: DIGITAL IN SOUTHEAST ASIA IN 2017 (we are social, 2017.2.16)

 

말레이시아에서 차량 호출 서비스로 시작한 그랩은 이러한 동남아의 지역적 특성을 우버보다 더 잘 알았고, 사업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4륜 차량뿐만 아니라, 우버에는 없지만 동남아에서는 일반적인 오토바이 택시 호출을 서비스로 제공했죠.

 

최근에는 차량 호출 서비스를 뛰어넘어 물류·푸드·금융까지 빠르게 영역을 확장해 슈퍼 앱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버는 그랩에 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 관련 기사: 동남아 차량공유 `그랩`…이젠 금융업 향해 질주 (매일경제, 2019.10.8)

 

특히 동남아 국가 중 인터넷 보급률이 높고, 도시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베트남은 그랩에도 무척 의미 있는 시장입니다. 그랩은 베트남 진출 이후 5년간 1억 달러(약 1170억 원)를 투자했으며, 그랩의 R&D 센터 6개 중 하나도 호찌민에 있습니다.

 

베트남 그랩의 성장 속도는 매우 빠릅니다. 우버가 떠난 후 여러 경쟁자가 등장했는데요. 그랩은 그 누구보다 공격적인 투자로 경쟁자들을 제치고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2018년 5월에 런칭한 그랩푸드(GrabFood)는 6개월 만에 주문 수가 25배 늘어났습니다.

 

이에 그랩은 자체 모바일 결제 수단인 그랩 페이(GrabPay) 서비스를 런칭했는데요. 온라인 전자결제를 선호하지 않고 여전히 현금 사용률이 80%에 육박하는 동남아 지역에서, 스마트폰 앱만 설치하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그랩 페이는 베트남뿐 아니라 동남아 권역의 최대 결제 서비스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 관련 기사: 동남아 인구 70% 은행 계좌 없어… 테크핀 무한 가능성 (매일경제, 2019.9.26)

 

이 챕터에서는 우버라는 공룡을 이기고 명실상부 동남아 패권자로 떠오른 그랩의 브랜드 마케팅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과연 그랩은 어떻게 베트남 이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베트남을 사로잡은 '1등다운' 브랜드 마케팅

1. 라이더에 의한, 라이더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그랩카를 타고 출근하는 길, 차 안에는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요. 드라이버가 뒤돌아 라디오에서 나오는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광고는 우리(드라이버) 광고예요.

말 그대로 '그랩 드라이버'를 위한 광고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소속 드라이버(라이더)의 자긍심을 높여 주기 위해 라디오 광고를 집행하는 곳이 바로 그랩입니다.

 

베트남에는 '쎄옴(xe ôm)'*이라 불리는 전통적인 오토바이 택시가 있는데요. 하지만 택시와는 달리 쎄옴에는 택시캡과 미터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쎄옴을 타기 위해서는 쎄옴 기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찾아가거나 쎄옴이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했고, 요금 흥정도 해야 했습니다. 기업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직된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어려웠죠. 그래서인지 그랩 등장 이전에는 오토바이만 있으면 뛰어들 수 있는 저소득 일용직으로 인식되었습니다.

* 베트남 도로의 특성상 오토바이가 차보다 더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에 급히 어디를 가야 하거나, 택시비를 절약하고 싶을 때 이용한다. 자주 이용하는 경우 기사와 손님이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아뒀다가 필요할 때 콜택시처럼 불러서 타기도 한다. (출처: 베트남의 다양한 교통수단)

 

그런데 그랩이 등장하면서부터 쎄옴의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랩을 통해 라이더들은 마냥 고객을 기다리거나 힘들게 가격을 흥정할 필요가 없어졌고,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랩과의 계약을 통해 소속감을 얻게 되었고, 일정한 퀄리티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 직업으로서의 전문성도 얻었습니다.

 

차량호출 서비스의 라이더는 서비스 제공자이자 동시에 고객입니다. 서비스와 라이더는 고용 관계가 아닌 계약 관계인데요. 서비스는 플랫폼에서 라이더와 고객을 연결해주고, 라이더는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를 받고, 일부를 중개 수수료로 서비스에 지불합니다. 이 수수료가 서비스에는 주요 수입원이 되죠. 그랩은 베트남에서 가장 많은 라이더*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 2018년 10월 기준, 17만 5000명

 

호찌민이나 하노이에서 아무 때나 도로를 향해 사진을 찍는다면 앵글 안에 그랩 라이더가 한두 명은 꼭 들어있을 정도입니다. 서울시에 등록된 택시가 7만여 대라고 하니, 그러면 좀 비교가 될까요? 이는 경쟁 브랜드 고비엣(GoViet, 2만 5000명), 비(be, 1만 명)과 비교했을 때 거의 17배나 많은 수준입니다.

 

무엇보다 그랩은 강력한 라이더 독점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라이더들이 다른 경쟁 앱을 설치할 경우, 그랩 계정은 차단됩니다. 타 서비스에 동시 근무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 고비엣, 비와 다른 점입니다.

 

경쟁 브랜드보다 나은 그랩의 보상정책과 월등한 고객수요가 라이더 독점 정책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더불어 라이더의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적극적으로 펼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9년 8월 그랩은 '라이더에게 감사하는 날'이라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별 5점 주기, 감사 인사 댓글 달기, 선물 보내기 등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캠페인의 주된 목적은 라이더의 자부심, 그리고 라이더에 대한 인식 제고에 있었습니다.그랩의 '라이더에게 감사하는 날' 캠페인 ⓒGrabVN그랩은 이처럼 라이더를 위한 캠페인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라이더의 로열티를 높이기 위한 그랩의 프로그램 중 하나는 파트너(라이더) 커뮤니티 미팅입니다. 공연, 새로운 기능과 정책 소개, 라이더 교류를 위한 행사인데요. 한 마디로 '라이더의 밤'이랄까요. 지난 6월 하노이에서 열린 이 행사는 2륜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백 명의 라이더들이 참여했습니다.

 

한편 그랩은 라이더들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브랜딩 캠페인에도 활용합니다. 어느 날, 베트남 동료로부터 지금 SNS에서 화제인 '감동적인 영상'이라며 링크가 하나 도착합니다. 그랩푸드의 '등 보 브어(đừng bỏ bữa 끼니를 거르지 마세요)' 캠페인 영상이었죠.

 

* 그랩푸드의 '등 보 브어(đừng bỏ bữa 끼니를 거르지 마세요)' 캠페인 영상 ⓒGrab Official

 

식사를 챙기기 바쁜 도시인들의 생활을 그랩 푸드 라이더의 시점으로 그린 영상인데요. 영상 속 라이더는 도시인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제공하는 해결사이자 동시에 자신도 그 한 끼가 필요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이 영상은 1700만 뷰를 기록하며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라이더를 저소득 노동자가 아닌 도시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친근한 직업인으로 그린 이 영상은 고객을 감동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랩 라이더의 직업의식을 고취시키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스타 마케팅: 베트남 최고 인기 톱스타가 궁금하다면?

베트남 서비스 런칭을 앞두고, 현지를 잘 이해하는 광고 에이전시를 찾기 위해 여러 곳과 미팅을 했는데요. 만나는 에이전시마다 주요 클라이언트로 '그랩'을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랩이 시장 1등이라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에이전시를 쓸 수 있을까 궁금해졌죠. 처음에는 에이전시가 과장 또는 거짓으로 소개하거나, 그랩이 변덕을 부려 자주 에이전시를 바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그랩의 캠페인을 여러 개 만나게 되면서 의심은 놀라움으로 변했습니다. 눈만 돌리면 그랩 광고가 보인다고 할 만큼 그랩이 캠페인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모델을 기용해 이런 규모로 광고를 하려면 우리가 만난 에이전시들 전부로도 부족할 것 같았습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베트남 인기 1위부터 10위까지의 스타들을 모두 광고에 기용한 느낌이었습니다.

 

* 베트남 국민 가수 '미떰(Mỹ Tâm)'이 출연한 그랩 광고. 유튜브 동영상 조회 수가 3900만에 육박한다. ⓒGrab Official

 

2018년 말, 그랩은 홈 화면을 개편하면서 베트남 국민가수 '미떰(Mỹ Tâm)'을 모델로 기용해 '껀 지 그랩 나이(cần gì Grab nấy! 무엇이 필요하든 그랩)' 이라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쳤습니다.

 

주요 서비스인 차량 호출뿐 아니라 음식배달·택배 등 메뉴 기능이 홈 화면에 추가되어 서비스 개편이 이뤄진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는 베트남에 진출한 고비엣(GoViet)이 시장을 휘저으면서, 그랩의 독주가 공격 받고 있는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이때 그랩은 베트남 인기 1위의 미떰을 모델로 선택하고, 엄청난 물량공세를 퍼부었습니다. 호찌민시의 어떤 다리를 건너든 미떰의 그랩 광고를 만날 수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랩의 광고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랩 베트남이 주력하는 서비스들마다 톱 모델을 기용하고, 엄청난 매체비를 쏟아부었습니다. 별도 모델이 있는 서비스만 해도 그랩 페이, 그랩 바이크(GrabBike, 2륜 차량호출), 그랩 딜리버리(GrabExpress, 퀵배송), 서브스크립션(그랩의 서비스를 묶어 월 단위로 구독) 등 네 가지가 훌쩍 넘습니다.

 

베트남의 인기 광고 매체*인 엘리베이터 포스터 광고 매체사의 귀띔으로는 그랩이 연간 해당 매체에 쓰는 비용이 자동차나 전자광고주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매체 하나만 해도 그 정도니, 전체 매체비는 훨씬 대단하겠죠.

* 베트남에서는 엘리베이터 포스터가 주요 광고 수단 중 하나다. (챕터 5 참고)

 

많은 브랜드가 캠페인 간에 강약을 조절합니다. 큰 캠페인을 진행하고 난 뒤에는 조금 쉬어가거나 작은 캠페인으로 호흡을 가다듬죠. 하지만 그랩의 광고 캠페인은 강약중강약이 아니라 '강강강강강'입니다. "우리는 1등이고, 바이크도 전자지갑도 푸드든 퀵이든 그 어느 하나 놓치지 않겠어! 너희가 들어올 틈은 없다고!"라고 주장하는 듯합니다.

 

실제로 그랩은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교통·푸드·물류·금융 등의 서비스를 한 곳에서 제공하고, 또 널리 홍보함으로써 베트남 내에서 슈퍼 앱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3. 사회 공헌: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 메인 스폰서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도대체 어떤 서비스를 홍보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랩 광고를 만났습니다. 분명 그랩 광고이기는 한데 광고 제품이 바이크도, 푸드도 아니고 그저 가족들이 선물을 들고 있는 화면만 보이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본 것은 그랩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 광고였습니다. 그랩이 선두 브랜드로서 다른 경쟁 브랜드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영역은 바로 CSR입니다.

그랩의 CSR 마케팅 ⓒGrab그랩은 1등이 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우리가 대세다'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보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라면 보통 대기업이 할만한 CSR을 아직 10살도 안 된 그랩이 그것도 본진(싱가포르)도 아닌 베트남에서 벌이고 있는 것이죠.

 

특히 그랩은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후원하면서 메인 스폰서로서 1등 브랜드의 입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최근 베트남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국가대표 감독인 박항서 감독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죠.

 

이 밖에도 그랩 리워드(GrabRewards, 그랩의 서비스를 이용하면 적립되는 포인트)로 기부를 받아 사회시설에 전달하는 행사를 앱과 SNS는 물론 매스 미디어를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오지에 사는 어린이들의 편의를 위해 등굣길에 도로를 놓아주는 등 여러 CSR 정책을 통해 꾸준히 사회 공헌에 힘쓰고 있습니다.

 

몇몇 영역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고 발표하기는 했으나, 아직 그랩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투자 유치를 통해 자본력을 갖춘 1등 슈퍼 앱 그랩이기에 국가대표 축구팀의 스폰서나 활발한 사회공헌활동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버 베트남의 뒷이야기

우버의 동남아 영업권이 그랩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우버 베트남은 야심 차게 반전을 노리기도 했습니다. 그 증거는 우버 베트남의 리브랜딩 프로젝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4륜 운송이 시작점이었던 우버는 동남아 2륜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던 그랩을 따라오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2륜 운송 서비스 모델이 없었던 만큼 우버 본사와 통일된 브랜딩을 펼치기에도 어려움이 있었을 테고요.

이에 우버 베트남은 우버의 2륜 서비스 리브랜딩을 결정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결과물이 2017년 9월 세상에 나왔지만, 우버의 퇴장과 함께 프로젝트도 6개월 만에 막을 내리고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철수 전 우버의 리브랜딩은 쿨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중고시장에서 비라이더들에게 활발히 거래될 만큼 디자인이 매력적이기도 했죠. 하지만 더 이상 우버는 베트남에 없습니다. 우버가 퇴장한 지 어느덧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거리에서는 우버의 헬멧과 재킷을 볼 수 있다는 게 우버에 조금의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1등으로서의 위엄을 보여주고 있으나 썩 매력적인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갖추지 못한 그랩에는 하나의 숙제가 되겠지요.

그랩을 잡아라! (1) - 인도네시아 유니콘, '고비엣'의 등장

호찌민에서 만난 고비엣 라이더 ⓒ손혜진2018년 8월 고비엣(GoViet)이 베트남에 상륙합니다. 고비엣은 인도네시아에 본사를 둔 고젝(GoJek)의 베트남 브랜드인데요. 베트남에 진출하며 인도네시아에서 쓰던 이름과 브랜드 컬러, 로고를 모두 바꿨습니다.

 

외국 브랜드인 고젝은 이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로컬라이징을 선언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된 차량 공유서비스 고젝은 'Go'와 인도네시아어로 오토바이 택시를 의미하는 'ojek'의 합성어입니다. 브랜드 이름이 인도네시아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랩과 다르게 고젝은 해외 진출 시, 브랜드명을 바꾸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는 '고비엣(GoViet)', 태국에는 '겟(Get)'으로 진출했죠. 고비엣의 '비엣(Viet)'은 물론 베트남(Vietnam)을 의미하고요.

 

그런 고비엣이 브랜드 컬러로 베트남 국기와 같은 빨강을 선택한 것도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죠. 고젝이 그랩과 같은 초록 계열 컬러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름과 함께 컬러도 바꿀 수밖에 없었겠지만, 브랜드 이름에 베트남이 들어가는 순간 빨강이 아닌 다른 컬러는 상상할 수 없지 않았을까요?

 

고비엣의 브랜드 심볼은 바퀴와 별입니다. 베트남 국기에 상징적인 노란 색 별이 들어가는 만큼, 고비엣 BI의 별은 자연스럽게 베트남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고비엣을 베트남 기업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비엣의 로컬라이징 전략이 통했던 것일까요? 고비엣은 런칭 1개월 만에 150만 다운로드를 달성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버의 퇴장 이후, 필연적으로 그랩의 서비스 이용 요금은 높은 폭으로 올랐습니다. 이 때문에 우버를 그리워하고, 그랩의 독주를 경계하는 이용자들도 나타났죠. 그 시기에 고비엣이 등장했습니다. 고비엣은 이용요금 5000VND(한국 돈으로는 약 250원, 참고로 베트남의 버스비는 6000VND 정도) 이벤트를 진행하며 폭발적으로 세를 넓혀갔습니다.*

* 관련 기사: 그랩, 베트남에만 총 1억 달러 투자…동남아서 '그랩'vs'고젝' 경쟁 치열 (아시아투데이, 2019.3.7)

 

고비엣은 공식 런칭 3개월 만에 음식배달 서비스인 고푸드(GoFood)까지 선보이며, 대대적인 매스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고비엣은 이때 인기 가수이자 배우 '손뚱 M-TP(SƠN TÙNG M-TP)'를 모델로 채택합니다. 손뚱 M-TP는 그랩의 모델 미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베트남 인기 스타인데요. 미떰에 대적할 만한 유일한 모델이기도 하고, 아티스트로서의 확고한 아이덴티티와 개성 있는 행보로 깊은 인상을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베트남 인기 스타 '손뚱 M-TP'가 출연한 고푸드 광고 ⓒGoViet Official

 

미떰에 비하면 호불호가 다소 갈리기는 하지만, 도전자인 고비엣에게 손뚱 M-TP보다 좋은 카드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미떰과 손뚱이라는 대결 구도만으로도, 그랩과 비교했을 때 규모나 서비스 면에서 아직 한참 모자란 고비엣이 그랩의 라이벌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비엣에게도 라이더는 중요한 고객입니다. 런칭 전부터 빠른 속도로 라이더를 모집하며 화제가 되었던 고비엣도 그랩처럼 파트너 라이더를 위한 대규모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다만 라이더 수수료 면제 등의 정책으로 라이더의 지지를 받았던 고비엣이 최근 라이더 지급 정책을 변경하며 수많은 라이더들의 항의*를 받고, 그랩으로 시위성 이동을 하는 등 위태로운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 관련 기사: 베트남 호찌민 오토바이 앱 운전자들이 뿔났다 (뉴스핌, 2019.7.19)

 

고비엣과 라이더들의 갈등이 고비엣의 브랜드에 이미지에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런칭 초반의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런칭 1년이 되기도 전에 CEO가 두 번이나 물러날 만큼 고비엣의 내부 사정이 그리 장밋빛은 아닌 것으로 보이고요. 그랩의 방어와 다른 도전자들의 공격에 고비엣이 어떤 브랜드 전략으로 대응할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 고비엣 라이더를 위한 대규모 행사 영상 ⓒGoViet Official

그랩을 잡아라! (2) - 베트남 토종 기업 '비'의 브랜딩

고비엣이 베트남 브랜드인 척 등장한 외국 브랜드라면 비(Be)는 베트남 토종기업을 표방하는 브랜드입니다. 동남아의 양대 유니콘인 그랩과 고젝에 비할 자본력은 아니겠으나 베트남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현지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강점이 될 것 같습니다.

 

비는 런칭 초기부터 주요 지점에서 빌보드(billboard, 옥외 광고판) 광고를 시작했습니다. 아직 지하철이 없는 베트남 대중교통 상황을 감안했을 때, 빌보드는 주목도가 높은 매체입니다. 이 점을 고려했을 때, 비의 초반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 이 빌보드 광고가 긍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비 그룹(Be Group)이 주요 빌보드를 소유한 매체와 밀접한 관계라, 좋은 금액으로 주요 지점에 광고를 진행할 수 있었다는 소식을 베트남 마케터들로부터 듣기도 했습니다.

Be와 영화 <범블비>가 함께 진행한 캠페인 ⓒBe2018년 12월 비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등장했습니다. 무려 5성급 호텔에 기자를 초대해 런칭 행사를 열었고, 곧이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범블비>와 콜라보해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크리스마스라는 시즌 이슈와 비와 이름과 브랜드 컬러가 같은 <범블비>의 개봉에 맞춰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한 것만 놓고 본다면 비는 꽤나 영리한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런칭을 기념하는 행사로써도 제법 잘 어울렸고요.

 

다만 브랜드 런칭 초반에 큰 규모의 캠페인을 진행한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차량호출 서비스의 안정성은 앱의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운영, 그리고 라이더 공급 및 숙련도에도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라이더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큰 규모의 캠페인을 진행해 수요가 늘면 고객은 처음부터 불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주변 동료들도 런칭 초기 비를 이용해 차량을 호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도무지 차량이 잡히지를 않더군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만큼 런칭 캠페인이 임팩트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운영이 조금 더 안정화된 후에 진행했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 같습니다.

 

런칭 캠페인 시기 선정의 아쉬움만 제외하자면 비의 브랜딩은 꽤나 일관적이고 안정적입니다. 이름에서 쉽게 꿀벌(Bee)을 연상할 수 있듯, 로고와 유니폼에도 꿀벌 무늬를 십분 활용했습니다. 심지어 라이더 센터의 이름까지 'BeHive(벌집)'로 하고, 간판 역시 벌집무늬로 디자인했죠.

 

흥미로운 점은 비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작업한 회사가 우버 베트남의 리브랜딩을 담당한 회사와 같다는 점입니다. 비주얼 아이덴티티의 일관성뿐만 아니라 라이더 유니폼을 보아도 비가 브랜딩에 많은 투자를 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 라이더의 유니폼 ⓒ손혜진멀리서 보기에도 비의 유니폼은 그랩이나 고비엣의 유니폼에 비해 퀄리티가 훨씬 더 좋아 보입니다. 베트남 특히 호찌민 지역은 자외선 지수가 높고 우기가 있어 날씨의 변동이 극심합니다. 이런 날씨에는 옷 색이 바래기 쉽기 때문에, 거리에서 고비엣이나 그랩의 빛바랜 유니폼을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의 유니폼 컬러는 등장 후 6개월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변화 없이 멀리서도 잘 보입니다.

 

임팩트 있는 런칭 캠페인 이후, 비의 행보는 다소 조용합니다. 하지만 지난 8월 퀵서비스 '비 딜리버리(Be Delivery)'를 런칭하는 등 곧 푸드 딜리버리와 핀테크 시장에도 곧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주요 서비스가 더 오픈하면 다시 한번 대대적인 마케팅 캠페인을 펼칠 수도 있겠습니다.

* 관련 기사: 베트남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비 그룹, 배송 서비스 개시 (뉴스핌, 2019.8.7)

라이더 대 연합! 그랩, 고비엣, 비 라이더가 모여 있다. ⓒ손혜진

동남아에서 우버를 몰아낸 그랩의 기세가 대단하지만, 그 기세에 도전하는 고비엣과 비도 만만치 않은 상대입니다. 앞으로 이들 서비스가 어떤 브랜드로 성장해 갈지 무척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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