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경제 성장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베트남 경제는 연 6% 이상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고, 베트남 정부가 2025년까지 도시화율을 5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을 만큼 빠른 속도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 인구의 35%를 차지하는 2030 세대가 경제개방 정책인 도이머이 정책* 이후에 태어나 자란 만큼 경제 관념이나 소비자 행동 패턴 등이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 '새롭게 한다', '쇄신'을 뜻하는 베트남어로, 1986년에 진행된 베트남의 개방·개혁 정책을 말한다.

 

이들은 앞서 우리나라가 그래왔듯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이 늘어날수록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입니다. 베트남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자 소득이 높은 도시인 호찌민에는 대형 단지 아파트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고, 중산층 인구도 늘어나면서 이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생겨나는 모양새입니다.

 

서울에서 호찌민으로 이사를 하며 새살림을 위한 쇼핑에 나섰습니다. 주거지를 옮기다 보니 자연히 소형가구부터 욕실 비품, 청소도구, 생활 소모품 등이 필요했습니다. 한국이었다면 무인양품이나 다이소에 갔겠지만 아쉽게도 호찌민에서는 두 브랜드를 쉽게 만날 수 없었습니다. 구글 지도를 뒤져보니 다이소는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고, 무인양품은 아예 없었습니다.

 

베트남의 주변 국가들의 상황은 어떨까요? 호찌민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반 거리인 태국 방콕에는 18개의 무인양품 매장이 있습니다. 1인당 GDP가 베트남보다 600달러 정도 높은 필리핀 마닐라에는 5개의 무인양품 매장이 있습니다.

 

타 국가와 다른 베트남의 경제 상황이나 라이프스타일 특징을 고려해, 호찌민에 '구찌'나 '루이비통' 같은 유명 명품 매장은 있지만 무인양품은 없는 이유를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동안 사치품을 살 만한 소비자층은 있으나 조금 비싸더라도 내 취향의 소모품을 사는 중산층이 좁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인양품 매장은 없지만, 호찌민에서 무인양품 제품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호찌민의 작은 문구 편집숍에서 노트와 볼펜 등 무인양품의 문구를 만날 수도 있고, 대형 아파트 단지의 일본슈퍼마켓에서 유니클로의 대표 제품을 파는 코너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베트남에 없는 이케아나 유니클로도 편집숍이나 오픈마켓의 형태로 상품을 제법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제품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만큼, 이들 브랜드가 베트남에도 알려져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 브랜드들이 베트남에 진출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알아보니, 유니클로는 2019년 말 첫 매장을 열 계획이라고 합니다. 무인양품은 2020년, 호찌민에 첫 매장을 오픈할 것으로 발표했습니다. 이케아의 베트남 진출 소식도 들려옵니다.

 

한편 한국의 JAJU(자주)는 한발 먼저 베트남에 도착했습니다.* 자주는 첫 해외 진출지로 베트남 호찌민을 선택한 만큼 대형 글로벌 브랜드와 어떠한 경쟁을 펼칠지 기대됩니다.

* 관련 기사: "K리빙 이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자주' 베트남 진출… 호찌민에 1호점 오픈 (뉴데일리경제, 2019.6.13)

베트남에 진출한 JAJU 매장 사진 ⓒ손혜진

약속이나 한 듯이 대형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베트남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국과 미국의 무역 분쟁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최근에는 중국의 대안으로서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베트남 정부의 파격적인 세금 혜택으로 해외자본이 활발히 유입되고 있기도 하죠.

 

벌써 몇 년째 세계 평균을 훨씬 웃도는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는 베트남은 분명 이전보다 형편이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겠죠. 이런 기회를 글로벌 브랜드들이 놓칠 리가 있나요.

 

이제 머지않아 호찌민 시내에서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대형 매장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7년 베트남에 H&M이 등장했을 때처럼 열렬한 환영을 받을 수도 있겠고요.* 이 브랜드들이 베트남에서 어떤 활약을 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 관련 기사: H&M welcomes over 2,000 customers on official opening day (Vietnam Investment Review, 2017.11.12)

'일본 스타일'로 성공 거둔 '미니소'

익숙한 브랜드들이 없는 베트남에서, 제 눈에 들어 온 브랜드는 미니소(Miniso)였습니다. 미니소는 베트남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는데요. 성장 동력으로 첫째는 일본 브랜드로 대변되는 고품질 인식, 두 번째로는 4만 3000VND(약 2200원)라는 저렴한 가격, 마지막으로 빅 모델 기용까지 세 가지 요소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니소는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를 표방하는 중국 브랜드입니다. 중국 회사가 일본 디자이너와 손을 잡고 만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죠.

 

등장 초기 미니소는 '다이소의 카피캣'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름부터도 다이소를 많이 닮았어요. 짝퉁이라는 비판과 의심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미니소는 어느새 세계 60여 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2017년 베트남에 진출한 이후 빠르게 세를 넓혀 벌써 매장 수만 40여 개에 달합니다.

 

베트남에서는 일본과 한국의 제품 이미지가 좋습니다.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품질은 좋다'가 전반적인 인식이죠. 일본 디자이너를 전면에 내세운 미니소의 전략은 그런 베트남에서 효과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미니소는 매장과 제품에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미니멀한 디자인과 가격 대비 좋은 품질로 일본 브랜드의 느낌을 살리고 있습니다.

 

공격적인 매장 확장도 미니소의 인기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미니소 매장은 주로 대형 쇼핑몰과 주요 상업지역에 있어 접근성이 높고, 대세감을 주기에도 적합합니다. 미니소는 하노이에 동시에 3개의 매장을 오픈하며 베트남에 등장했는데요. 당시 일본식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대규모 오픈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2008년 베트남에 매장을 오픈한 다이소 재팬은 등장 초기 4만 VND 제품으로 인기를 얻었으나 곧 슈퍼마켓 등에 더 저렴한 금액대의 물건들이 등장했고, 브랜드적인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해 현재는 규모를 축소해 운영하는 상황입니다. 반면 미니소는 생활용품을 넘어서 팬시·의류 등 패셔너블한 품목들을 앞세우면서 매장의 밝은 조명과 잘 정돈된 디스플레이로 베트남의 젊은 층에 어필하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한 베트남의 다이소는 원예, 청소, 세탁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생활용품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아이를 동반한 손님이 더 많이 보였습니다. 반면 비슷한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미니소를 찾는 연령층은 학생과 20대가 많다고 느꼈는데요. 다이소가 생필품을 사기 위한 실용적 목적으로 방문하는 곳이라면, 번화가에 위치한 미니소는 굳이 필요한 것이 없어도 오가며 가볍게 들르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마블과 위베어베어스 캐릭터 상품을 만날 수 있는 미니소 매장 ⓒ손혜진최근 마블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해 화제가 되었던 미니소는 마블 외에도 핑크팬더, 위베어베어스 등의 캐릭터와 정식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여 다양한 캐릭터 상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는 정품 캐릭터 제품을 만나기 힘들고 저품질의 카피 제품이 많은데, 그런 베트남에서 4만 VND(약 2000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마블 같은 유명 캐릭터 정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미니소만의 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점은 베트남 톱스타 '손뚱 M-TP'를 브랜드의 모델로 기용한 것입니다. 앞서 첫 번째 챕터에서 고비엣의 모델로 소개했던 손뚱 M-TP는 OPPO(모바일 브랜드), 펩시, 오리온 등 대형 브랜드들이 주로 기용하는 모델입니다. 매장 입구의 등신대부터 내부의 벽면의 큰 사진까지 미니소는 손뚱 M-TP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미니소 모델 '손뚱 M-TP' ⓒ손혜진미니소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손뚱의 콘서트 티켓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다른 국가에 진출한 미니소와는 사뭇 다른 양상입니다. 같은 미니소라도 태국이나 필리핀에서는 톱 모델을 활용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지 않거든요.

 

미니소 베트남은 대형 쇼핑몰 입점, 유명 캐릭터 콜라보 등으로 형성한 대세감을 손뚱이라는 톱스타로 이어갑니다. 무인양품·이케아와 같은 거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진출하기 전, 미니소가 베트남의 주요 소비층인 젊은 세대를 공략하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한국의 '느낌적인 느낌'을 팝니다, '무무소'와 '삼무'

한국 브랜드 느낌을 표방하는 무무소 간판 ⓒ손혜진베트남의 호찌민이나 하노이 등 대도시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무무소'나 '미니굿'을 한 번쯤은 마주쳤을 것입니다. 그만큼 접근성이 높은 관광중심지에 제법 큰 규모의 매장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니소가 일본 브랜드를 표방한다면 무무소와 미니굿은 한국 브랜드를 표방합니다. 다만 미니소가 '일본 디자이너와 함께 브랜드를 꾸린 것'을 내세우는 것과 비교하면 무무소와 미니굿은 한국 브랜드의 느낌적인 느낌만 가져다가 흉내를 내는 쪽에 가깝습니다.*

* 관련 기사: '무무소' 한국제품 아니었어?…'짝퉁 한류' 동남아 확산 (중앙일보, 2019.8.19)

 

2018년 8월, 한 베트남 교민신문에 칼럼이 실렸습니다. 한국 브랜드인 척하는 중국 브랜드인 무무소(MUMUSO)를 한국 기업인 롯데마트가 입점시킨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에도 기사화될 만큼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었습니다.* 이 일이 화제가 되자 롯데마트 측은 법적인 문제는 없으나 계약이 끝나는 2년 뒤에 무무소를 내보내겠다고 발표했죠.

* 관련 기사: 베트남 롯데마트에 '짝퉁 한국매장' 무무소 입점 빈축 (KBS NEWS, 2018.10.3)

 

우리로서는 뭔가 빼앗긴 것 같고 왠지 억울하지만, 무무소나 미니굿의 입장에서는 한국 브랜드처럼 보이는 전략이 제법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브랜드 모두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려나가며 빠르게 세를 키우고 있으니까요.

 

무무소와 미니굿의 브랜드 전략은 한국 브랜드와 상품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신뢰를 반증합니다. 동시에 한국 브랜드들이 경계해야 할 전략이죠. 저가 중국의 브랜드들의 무분별한 '한국 느낌' 차용은 한국 브랜드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고, 실제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매장이 들어서는 길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브랜드들이 한국적인 느낌만 가져다 쓰는 것을 덮어놓고 비난만 할 수 없습니다. 프랑스와는 상관없지만 브랜드 이름에 '파리'라는 도시 이름을 넣어 프랑스 느낌이 나게 만든 '파리바게뜨'처럼, 이 또한 그들의 전략이자 생존 방식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 관련 기사: [짜오!베트남]당당해진 짝퉁 브랜드체인..'파리바게뜨' '뚜레쥬르'와 뭐가 다른가 (비즈니스플러스, 2018.11.19)

 

다만 경제성장과 더불어 중산층의 증가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베트남 시장에서 '흉내 내기 전략'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베트남에 진출한 '자주' 같은 진짜 한국 브랜드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을 때도 이들 브랜드가 동일한 전략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무무소와 미니굿 사이의 차별점은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두 곳 모두 한국적 느낌을 주는 방법은 한국 브랜드라고 홍보하기, 한국어와 한글 사용, 일부 한국 제품 판매 등에 있습니다. 무무소와 미니굿은 둘 다 한글로 된 상표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무무소는 '무궁생활', 미니굿은 '삼무'죠. 한국인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할 이름이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베트남 사람들에겐 한글 사용 자체가 두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한국의 것으로 인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무무소는 더 노골적으로 한국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무무소 베트남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한국어와 영어로 된 상표등록증이 게시되어 있고, 매장 개업식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대거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미니굿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니굿은 이름부터 로고와 컬러까지 미니소를 적극적으로 카피하고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컨셉을 내세웠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일본 브랜드(사실은 중국 브랜드지만)인 미니소를 따라 한 한국 브랜드 미니굿처럼 보일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미니굿 매장에 들어서면 점원들이 한국어로 인사합니다. 브랜드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영락없는 한국 브랜드겠죠.

제품이 한국 브랜드인 것처럼 홍보하는 '미니굿' ⓒ손혜진어색한 한국어가 쓰인 미니굿 제품들 ⓒ손혜진탁상용 거울을 사러 집 앞 미니소 매장을 찾았다가 한참을 웃은 적이 있습니다. 제품에 크게 적혀 있는 한국어가 하나도 말이 안 됐기 때문이죠. 번역기로 대강 돌린 문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데다가 한국이라면 제품에 절대 안 쓸 것 같은 폰트로 디자인되어 있어 조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무무소가 한국 제품을 베껴 판매하다가 한국 정부의 항의와 베트남 정부로부터 벌금형을 받은 뒤* 두 브랜드 모두 노골적으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제품을 줄였지만, 아직도 매장 곳곳에는 한국어를 사용한 제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진짜 한국 제품을 진열하기도 하니, 더욱 교묘합니다.

* 관련 기사: "상품 99%가 중국산" 베트남서 적발된 '짝퉁 한국매장' 무무소 (연합뉴스, 2018.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