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계절에서 정치의 계절로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주목을 받은 데다가, 외부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자 각종 루머가 나돌았다. 급기야는 "이헌재가 호남 출신 행장들을 다 자른다."는 음해가 청와대로 들어가기까지 한다. 

이런 음해 속에서도 1999년 5월 개각 때 나는 유임됐다. 금감위의 구조조정 작업이 정점을 향해 치닫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수장을 교체하기가 번거로웠을 것이다. 해외 여론도 신경 쓰였을 것이다. 정치권의 공격과 달리 해외에선 한국의 구조조정에 대해 호평이 많았다. 그 무렵 해외 유력 매체들이 잇따라 나를 '올해의 구조조정 기관장'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 관련 기사: '홍콩誌 '구조조정 기관장'에 이헌재 금감위장 뽑혀' (중앙일보, 1999.4.29)

 

개각 이후 일하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관계 부처 장관들과 협의가 잘되지 않았다. 청와대 쪽과의 소통은 끊기다시피 했다. 복잡한 구조조정이 대충 마무리된 1999년 말, 나는 한광옥 비서실장에게 사의를 표했다. '이만하면 됐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생각지도 않은 중책을 맡았고, 내 뜻을 모두 펼쳐 보였다. 남은 아쉬움은 없었다.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재정경제부 장관설'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2000년 1월, 박태준 자민련 총재가 국무총리에 임명되고 엿새 만에 나는 재경부 장관에 내정된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떠났어야 했다. 이미 경제의 계절은 끝나고 정치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