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웠던 공적 자금 조성과 투입
1998년 5월에 확정된 1차 공적 자금은 64조 원이었다. 이 숫자를 처음 들고 나온 건 재정경제부의 의뢰를 받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다. 어떻게 계산했느냐. 어찌 보면 주먹구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금융 부실을 메우는 데 쓸 돈이 공적 자금이다. 앞으로 금융 부실이 얼마나 늘어날지를 그때 어떻게 예측하겠는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기업이 쓰러져가던 때, 바닥이 어디인지 짐작도 되지 않던 때였다.
1998년 3월까지 확정된 부실 채권 규모가 47조 원. KDI는 여기에 2를 곱해 100조 원이란 숫자를 산출했다. 향후 부실이 100조 원 수준으로 불어날 걸로 추산한 것이다. 금융회사가 자구노력으로 절반을 메운다고 생각해 50조 원 정도만 정부가 조성하자는 주장이었다. 거기에 이미 조성돼 투입됐던 자금 14조 원을 더한 게 64조 원이란 숫자의 등장 배경이었다.
금감위 자문관을 맡았던 최범수 현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이 당시 KDI에서 공적 자금 규모를 추산한 금융팀의 일원이었다.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공적 자금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묻는 건 화재 현장에서 '불을 끄려면 물이 몇 리터나 필요하겠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불이 얼마나 번질지 누가 알겠는가. 한 가지 분명한 건 화재 진압을 빨리 시작할수록 물이 적게 든다는 거다. 공적 자금도 마찬가지였다. 빨리 투입할수록 적게 든다.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중략) 공적 자금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대기업 부실을 청소해 주는 돈이다. 가장 중요한 건 자구노력이다. 팔 건 팔고, 끌어올 건 끌어오고, 정말 어떻게 해도 메워지지 않는 최소한의 구멍만 공적 자금으로 메워야 한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전망이 너무 엇나간 게 문제였다. 이듬해 8월에 워크아웃에 들어간 대우그룹 하나에만 30조 원 가까운 공적 자금이 투입됐다. 2000년 이후 현대그룹에 들어간 공적 자금도 10조 원을 넘겼다. 하긴 그때만 해도 5대 그룹 중 하나가 쓰러질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