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들의 다양한 독서 수준을 보여주는 큐레이션

수익은 전액
노숙인과 에이즈 환자를 위해
사용됩니다

1990년, 5명의 에이즈 퇴치 활동가들이 뉴욕에서 에이즈로 고통받는 노숙인들을 돕기 위한 단체를 결성했습니다. 단체명은 '하우징 웍스(housing works)'. 번역하면 '보금자리는 효과가 있다' 쯤 됩니다. 이들은 노숙하는 에이즈 환자들이 지낼 곳이 있다면 건강하고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에이즈의 확산 또한 저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현재 하우징 웍스는 뉴욕에 서점 1개와 자선 상점 14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 앤 카페(Housing Works Bookstore & Cafe, 이하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의 한쪽 벽에 적힌 미션이 이들의 지향점을 보여줍니다.

Housing Works is a healing community of people living with and affected by HIV/AIDS. Our mission is to end the dual crises of homelessness and AIDS through relentless advocacy, the provision of lifesaving services, and entrepreneurial businesses that sustain our efforts.

 

하우징 웍스는 에이즈 환자와 에이즈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한 커뮤니티이다. 우리는 에이즈와 노숙이라는 이중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이들에게 끊임없는 지지와 삶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위한 사업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뉴요커들의 다양한 독서 수준을 보여주는 큐레이션

수익은 전액
노숙인과 에이즈 환자를 위해
사용됩니다

1990년, 5명의 에이즈 퇴치 활동가들이 뉴욕에서 에이즈로 고통받는 노숙인들을 돕기 위한 단체를 결성했습니다. 단체명은 '하우징 웍스(housing works)'. 번역하면 '보금자리는 효과가 있다' 쯤 됩니다. 이들은 노숙하는 에이즈 환자들이 지낼 곳이 있다면 건강하고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에이즈의 확산 또한 저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현재 하우징 웍스는 뉴욕에 서점 1개와 자선 상점 14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 앤 카페(Housing Works Bookstore & Cafe, 이하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의 한쪽 벽에 적힌 미션이 이들의 지향점을 보여줍니다.

Housing Works is a healing community of people living with and affected by HIV/AIDS. Our mission is to end the dual crises of homelessness and AIDS through relentless advocacy, the provision of lifesaving services, and entrepreneurial businesses that sustain our efforts.

 

하우징 웍스는 에이즈 환자와 에이즈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한 커뮤니티이다. 우리는 에이즈와 노숙이라는 이중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이들에게 끊임없는 지지와 삶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위한 사업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에 들어서면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대체 무슨 냄새인가 생각하며 돌아보다 냄새의 원인을 알았습니다. 바로 이곳에 들어찬 어마어마한 양의 헌책입니다. 주인들이 쓰던 책에 벤 각종 생활 냄새가 이곳을 채우는 것이죠. 놀랍게도, 이 책들은 모두 기증된 것입니다. 단돈 몇 달러라도 받고 책을 파는 게 이득일 텐데, 좋은 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뉴요커들 덕분에 수많은 책이 모였습니다.

 

책을 골라서 매입하는 게 아니라 기증받기 때문에, 의미 있는 큐레이션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소설, 인문사회, 경제경영, 청소년, 전기 등 일반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카테고리는 거의 다 갖췄고, 젠더와 성소수자 관련 책도 따로 분류해 놓을 정도로 충분한 수량이 있습니다. 각 카테고리는 저자의 성에 따라 순서대로 꽂혀 있어 원하는 책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기증받은 책으로 다양한 카테고리의 서가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은 뉴욕 사람들이 그만큼 책을 다양하게 읽는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둘러보니,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수 클리볼드(Sue Klebold)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와 청소년 베스트셀러인 '아름다운 아이(Wonder)', 그리고 미국의 거장 작가 앨리스 먼로(Alice Monroe)와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David Foster Wallace)의 작품성 있는 소설들도 보입니다.

읽는 내내 눈물을 참지 못했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왼쪽)와 미국 거장 작가들의 소설들(오른쪽) ⓒ안유정

기증된 책으로 꾸린 이곳에는 독특한 강점이 있습니다. 바로 독특한 카테고리를 만들어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복층 구조의 위층에는 뉴에이지 & 오컬트(New Age & Occult) 그리고 신화학 & 민속학(Mythology & Folklore) 서가가 있습니다. 일반 서점에서는 보기 드문 카테고리입니다. 그런데 이 서가에는 책이 몇 권 없습니다. 어쩌면 빈 서가를 보고 집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오컬트 책을 떠올린 고객들에게서 몇 권 기증받겠다는 속셈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장르를 콕 집어 기증된 책이 모여 서가를 채우면, 고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큐레이션 또한 가능합니다.

뉴에이지와 오컬트, 신화학과 민속학 서가 ⓒ안유정

놀거리가 풍부한 지역 커뮤니티의 공간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는 오래된 도서관이나 대저택의 서재 같습니다. 실제로 처음부터 아이비리그 대학의 도서관을 본떠 만들었다고 합니다. 나선형 계단과 높은 천장, 나무 바닥, 은은한 조명이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서점 자체도 매력이 넘치지만,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 역할에 충실하려 합니다. 공간 활용법에서 이러한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려면 공간이 쉽게 확보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서가를 모두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언제든 많은 손님을 맞거나 대형 이벤트를 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내부의 카페는 이곳의 정식 명칭이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 앤 카페'이듯, 서가만큼이나 존재감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공간의 반 이상이 카페 테이블로 채워져 사람들이 편안히 머물도록 배려했습니다. 손님들은 테이블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친구와 만나고, 가끔은 모르는 사람과 동석해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눕니다. 종종 맨해튼에 거주하는 작가들이 글을 쓰러 오기도 합니다.

복층 구조는 독특하고 넓은 공간감을 조성하고, 공간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카페는 편안한 쉼터가 됩니다. ⓒ안유정

또한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에서는 다양한 이벤트를 열어 서점에 생전 오지 않던 사람들에게도 방문 동기를 부여합니다. 책 할인 판매는 물론(제가 갔던 날에는 예술서를 1달러에 파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콘서트, 북 토크, 스탠드업 코미디쇼, 술을 곁들인 보드게임의 밤 등 재미있는 이벤트가 지역 주민들의 놀거리가 됩니다. 서점이 책을 사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지역의 복합 문화 공간이 된 좋은 예입니다. 저녁이면 이벤트에 참여하러 모여든 동네 사람들 덕분에, 낮과는 다른 종류의 활기가 넘칩니다.

좋은 의도는 효율적이고 똑똑한 운영에서 완성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원봉사자입니다. 좋은 의도를 가진 곳에 자연히 좋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죠. 그러나 운영은 '좋은 게 좋은' 식이 아니라 체계적인 시스템에 따라 이뤄집니다. 전체 2명의 정직원 중 1명은 책 정리와 전반적인 운영을 관리하고, 1명은 카페를 총괄합니다. 자원봉사자는 미리 스케줄을 등록해서 4시간 단위로 교대합니다. 보수는 없지만 모두가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며, 근무 시간을 엄격하게 지킵니다.

 

좋은 의도를 기반으로 한 공간이지만, 이를 이용해 똑 부러지게 부수입을 올리기도 합니다.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에서는 개인이 행사를 위해 장소를 대여할 수 있도록 합니다. 보통 회사 연말 파티나 대형 워크숍에 많이 쓰이고, 가끔 결혼식이 열리기도 합니다. 결혼식의 경우, 장소 대여와 기본 세팅에 4,000달러(약 460만 원)의 비용이 들고, 옵션에 따라 비용이 더 올라갑니다. 책으로 둘러싸인 멋진 공간에서의 결혼식이라니, 생각만 해도 무척 뜻깊고 설렙니다.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에서는 개인이 파티와 결혼식을 열 수 있습니다. ©The Knot

확실하고 똑똑한 운영으로,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의 매출은 2016 회계연도 기준 약 218만 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25억 원입니다.* 모단체인 하우징 웍스의 총자산은 약 4,118만 달러(약 467억 원), 총매출은 9,500만 달러(약 1,072억 원)로, 작지 않은 규모입니다. 자선 상점의 매출은 1,667만 달러(약 189억 원)입니다. 비영리로 운영되지만, 명확한 목표와 영리한 전략 덕분에 매출과 재무 상태는 지속적으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 출처: 'Housing Works, Inc. and Affiliates 2015 재무보고서', (Housing works, Inc. and Affiliates 2016.06.30)

 

하우징 웍스는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큰 규모로 성장했지만, 존재의 이유를 잊지 않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아갑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과 좋은 목표에 대한 공감대, 그리고 중고 서점 자체로도 뒤지지 않는 경쟁력이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를 지속적으로 발전하게 합니다. 계단 난간에 잔뜩 붙여 놓은 후원자들의 이름을 보니 오랫동안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여 더욱 안심이 됩니다.

 

주소: 126 Crosby St, New York, NY 10012 [지도 보기]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 공간 둘러보기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 앤 카페 정문 ⓒ안유정
한국과 달리, 전기와 회고록(Memoir)은 미국에서 꽤 인기 있는 장르입니다. ⓒ안유정
중고 서점에서도 인기 있는 젠더 서가 ⓒ안유정
성 소수자를 위한 코너. 서가가 꽉 차있습니다. ⓒ안유정
저 멀리 ‘BAR' 사인이 눈에 띕니다. ⓒ안유정
한적한 2층의 모습 ⓒ안유정
잊지 말자는 듯, 미션을 크게 적어놓았습니다. ⓒ안유정
청소년 도서 코너 ⓒ안유정
청소년 베스트셀러 ‘아름다운 아이’와 시리즈물 ⓒ안유정
음반과 음악 도서를 함께 진열해 놓았습니다. ⓒ안유정
후원자들의 명단을 2층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 붙여 두었습니다. ⓒ안유정

직원과의 대화: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것"

추천 책을 들고 웃어 보이는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 직원 ⓒ안유정

안유정(이하 생략):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 앤 카페의 가장 큰 강점은?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 직원(이하 생략): 이곳은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의 천국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정확히 뭘 찾을지 모르고 들어오지만, 늘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것을 찾게 된다.

둘러보니 새 책이 없는데?

이 안의 모든 책과 음반은 기증된 것이다. 판매 수익은 모두 노숙인을 위한 주택 공급과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한 자선단체에 기부된다. 물론 우리는 서점이기 때문에 책을 많이 파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무조건 매출을 높이는 데에 중점을 두지는 않는다.

운영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 텐데?

우리는 수익에서 딱 필요한 금액만 쓴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도 정직원을 포함해서 전체 6명밖에 없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최대한 조직을 작게 운영한다.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좋은 목적을 위해 모였다. 여기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 한다. 우리 모두 일을 즐기고, 이것이 고객들이 자주 방문하게 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책은 어떻게 큐레이션 하는가?

직원 각자가 맡은 섹션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책이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잘 보이도록 진열한다. 여기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이 무척 중요하다. 중고책만 있는 이 공간의 특성상, 좋은 책이 잘 발견되어야 한다. 보고, 찾고, 발견하는 것. 그게 이 서점의 핵심이니까. 그리고 이렇게 잘 발견되도록 만드는 것은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의 일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많나?

2명의 직원 외에는 모두 자원봉사자이다. 나도 처음에는 자원봉사자로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과 이곳에서 일하는 게 너무 좋아서 얼마 전 직원으로 취업했다. 여기는 그냥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다. 무엇보다, 책을 너무 좋아하는데 책이 이렇게나 많지 않은가. 책에 둘러싸여 하루 종일 일하는 게 너무나 좋다.

하루에 몇 시간쯤 일하는가?

나는 직원이라 6-8시간 정도 일하고, 자원봉사자들은 4시간 단위로 교대한다.

베스트셀러도 진열하는가?

베스트셀러 섹션을 만들어 놓지는 않는다. 대신 자원봉사자 추천 도서 섹션이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좋아하거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 진열된다. 그중 베스트셀러 도서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 손님들은 무작정 베스트셀러를 찾기보단 자신들이 신뢰하는 특정 사람들에게서 책 추천을 받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고객들이 추천을 받아가나?

물론. 많은 고객들이 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때마다 책을 찾아주기는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만족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웃음). 그래서 보통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자원봉사자 추천 도서 코너로 데려가는 편이다.

주 고객층은 누구인가?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카페에 앉아 일하려는 사람, 책을 보며 시간을 때우다 가려는 사람 등 연령층과 오는 목적이 다양하다. 수요일 아침마다 동화책 읽어주는 시간이 있는데, 이때는 아이들이 많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