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뭘 찾을지 알고 준비했다'고 말하는 듯한 큐레이션
존재 자체가 예술 작품
가끔 신촌에 있는 헌책방에 갑니다. 작은 가게 안에 잔뜩 쌓인 책을 구경하고 좋아하는 잡지의 과월호를 구매하기도 합니다. 저는 헌책방의 무심한 분위기가 좋습니다. 일반 서점에서는 책을 넘겨보다 자칫 흠이라도 날까 봐 조심스럽지만, 헌책방에서는 그런 걱정이 없는 것도 좋습니다. 여기저기 쌓인 책 중 아는 제목을 보면 반갑고, 오래된 책 표지를 보면서 시대의 흐름을 절감하기도 합니다.
휴먼 릴레이션스(Human Relations)는 파워하우스 아레나의 직원 마크의 소개를 받아 제가 뉴욕에서 방문한 세 번째 헌책방입니다. (파워하우스 아레나 편 참조) 상상했던 뉴욕 동네 헌책방의 이미지에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넓지 않은 공간을 꽉 채우는 헌책, 눅눅한 냄새, 매끈하게 닦은 마룻바닥, 구석에 숨어 있는 책을 척척 찾아내는 직원, 공기를 타고 흐르는 클래식 음악이 클리셰처럼 딱 들어맞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은 이곳을 채우는 헌책 컬렉션입니다.
휴먼 릴레이션스는 약간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들어서면 큰 공간이 하나 있고, 그 안에 책장으로 사방을 막아 만든 조그만 방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작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상당히 많은 책을 구비합니다. 책꽂이를 차례로 줄 세워 놓지 않아 돌아볼 때 움직임이 편하고, 방안의 방 구조로 독특한 공간감을 줍니다. 작은 방에 들어가면 무척 아늑한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