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Personal, Contextual

호텔 '바운더리(BOUNDARY - Restaurant, Rooms & Rooftop)'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영국의 전설적인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인 테렌스 콘란 경(Sir. Terence Conran)의 이름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설적인(legendary)이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쇼디치(Shoreditch)에 가장 처음 만들어진 디자인 호텔로서의 상징성과 테렌스 콘란이라는 유명 인사의 조합은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였다.

바운더리의 출입구.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작은 로비와 리셉션으로 이어진다. ©김양아

바운더리가 2008년 쇼디치 지역에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런던시는 이 호텔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하나의 건축물이 그 인근 지역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

10년이 지난 지금도 바운더리는 여전히 쇼디치의 중심에서 그 상징적인 지위를 지키고 있다. 테렌스 콘란의 명성에 기대었다고 하기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이곳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다. 그것이 오픈한 지 10년이 지난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바운더리를 이번 프로젝트에 포함시킨 가장 중요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에이스 호텔 런던, 몬드리안 런던 등 최근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호텔들의 격전지이자, 최근 런던의 모든 문화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이스트 런던의 핵심 지역인 쇼디치에서, 3개의 레스토랑과 17개의 호텔 룸만으로 바운더리가 현재의 위치를 지켜온 비결은 무엇일까?

 

바운더리는 다양한 영역이 교차하는 쇼디치 지역의 특성을 매우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엄청난 부를 지닌 사람들과 일반 노동자 계급들이 함께 살아가는 쇼디치 지역에 위치한다는 것은 곧 다양한 계층과 커뮤니티가 바운더리라는 공간 안에 혼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이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올라서 사람들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지 않는 한은.

 

Simple, Personal, Contextual

호텔 '바운더리(BOUNDARY - Restaurant, Rooms & Rooftop)'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영국의 전설적인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인 테렌스 콘란 경(Sir. Terence Conran)의 이름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설적인(legendary)이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쇼디치(Shoreditch)에 가장 처음 만들어진 디자인 호텔로서의 상징성과 테렌스 콘란이라는 유명 인사의 조합은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였다.

바운더리의 출입구.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작은 로비와 리셉션으로 이어진다. ©김양아

바운더리가 2008년 쇼디치 지역에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런던시는 이 호텔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하나의 건축물이 그 인근 지역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

10년이 지난 지금도 바운더리는 여전히 쇼디치의 중심에서 그 상징적인 지위를 지키고 있다. 테렌스 콘란의 명성에 기대었다고 하기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이곳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다. 그것이 오픈한 지 10년이 지난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바운더리를 이번 프로젝트에 포함시킨 가장 중요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에이스 호텔 런던, 몬드리안 런던 등 최근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호텔들의 격전지이자, 최근 런던의 모든 문화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이스트 런던의 핵심 지역인 쇼디치에서, 3개의 레스토랑과 17개의 호텔 룸만으로 바운더리가 현재의 위치를 지켜온 비결은 무엇일까?

 

바운더리는 다양한 영역이 교차하는 쇼디치 지역의 특성을 매우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엄청난 부를 지닌 사람들과 일반 노동자 계급들이 함께 살아가는 쇼디치 지역에 위치한다는 것은 곧 다양한 계층과 커뮤니티가 바운더리라는 공간 안에 혼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이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올라서 사람들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지 않는 한은.

 

단순히 그 지역의 오래된 건축물 하나를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바운더리는 처음부터 쇼디치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운더리가 앞으로도 여전히 쇼디치 지역의 중심으로 남아 있을지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집을 닮은 Lobby와 Reception

바운더리의 로비는 매우 작고 협소하다. 호텔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쪽으로 작은 책상이 하나 놓인 저곳이 리셉션이 맞는지 조금은 당황스럽게 느껴질 만큼.


그렇지만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좀 전의 당황스러움은 사라지고 곧 좋은 느낌이 찾아온다. 개별 투숙객 한 명 한 명을 스태프들이 직접 응대하기 때문이다. 코트를 벗고 작은 리셉션 데스크 앞에 앉아 차나 커피를 마시며 여행은 어땠는지 이번 런던 방문에서는 어디를 가고 싶은지, 마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바운더리의 투숙객과 스태프의 자연스러운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야기 중간에 잠시 리셉션에 인사를 하러 들른 다른 투숙객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단순히 리셉션 데스크에 서서 룸넘버를 알려주는 스태프들이 아닌, 쇼디치에 위치한 나의 또 다른 집에 방문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 바운더리의 방문객 중 실제 지역 주민이 많은 특성을 고려한 동선 구성이다.

바운더리의 로비와 소박한 느낌의 리셉션. 지나가던 누구라도 비를 피하러 들어오거나 우산을 빌려갈 수 있도록, 문 바로 앞에 놓인 우산꽂이와 의자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김양아

체크인을 마치면, 스태프가 직접 투숙객이 묵을 방으로 함께 짐을 들고 올라간다. 17개의 룸으로 구성된 바운더리는 각각의 방을 디자인 한 게스트 디자이너에 따라 다른 특성이 있다. 스태프는 개별 방의 특성에 대해 친구와 대화를 나누듯 투숙객에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전해 준다. 마치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이 방은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다락방이고, 벽의 이 그림은 우리 할머니가 제일 아끼는 그림이야"와 같은 소소한 정보들을 전해 주는 것처럼.

혼자 떠난 출장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 준 바운더리의 스태프들. 점심은 어디서 먹었는지, 오늘 저녁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동네를 지나가다 친구와 마주쳐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투숙 기간 내내 좋은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김양아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친근감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형태로 내가 머무르게 될 방이 가진 이야기를 듣게 되면, 이 공간은 더 이상 하나의 호텔 방으로만 남지 않게 된다. 책상 위에 놓인 조명 하나, 벽에 걸린 작품 하나하나가 내가 아는 나만의 이야기를 담은 새로운 공간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바운더리에서의 여정은 이렇듯 단순히 스태프들의 친절한 서비스가 아닌, 철저하게 투숙객 개개인의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지점에서 시작된다.

예술 공동체의 영감을 담은 Rooms

바운더리에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장의 사진이었다. 영국식 패치워크 작업으로 만들어진 암체어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정갈한 형태의 조명이 놓여 있던 런던의 어떤 방. 그 자체로 런던을 보여주고 있는 사진 속의 공간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스튜어트 웨스트웰(Stuart Westwell)의 패치워크 의자가 인상적인 바운더리 룸의 전경 ©Paul Raeside

디자인이란 이런 것이구나
너무 많은 것을 담지 않아도,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구나
나중에서야 이 의자가 영국의 디자이너인 스튜어트 웨스트웰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테렌스 콘란이 디자인한 최초의 호텔이라는 이름보다 이 사진 한 장이 준 놀라움이 그 어떤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 이상으로 강렬했다.

 

처음 테렌스 콘란이 호텔을 만들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테렌스 콘란이 콘란샵의 제품을 바탕으로 바운더리의 모든 베드룸 디자인을 맡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테렌스 콘란은 바운더리의 17개 베드룸 중 본인의 이름을 딴 스위트룸을 제외한 나머지 16개의 베드룸을 게스트 디자이너들과 협업했다.

바운더리 17개의 룸 중 테렌스 콘란이 직접 디자인한 테렌스 콘란 스위트룸(Terence Conran Suite)의 전경 ©Paul Raeside

12개의 일반룸과 5개의 스위트룸으로 나누어진 바운더리의 베드룸은, 테렌스 콘란이 직접 선정한 신진 디자이너 혹은 우리의 삶에 다양한 족적을 남긴 디자이너들의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았다. 바우하우스(Bauhaus) 사조를 대표하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와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부터, 모더니즘 가구 디자인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 찰스 앤 레이 임스 (Charles & Ray Eames) 등 1800년대부터 현재의 Apple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모든 디자이너들의 작품 세계를 하나의 공간 안에서 모두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테렌스 콘란이 생각하는 17개의 베드룸은, 단순히 전설적인 디자이너들의 작품 세계를 반영한 공간을 재현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영국을 대표하는 신진 디자이너들과의 콜라보레이션 작업 또한 동일한 비중으로 진행되었다. 예술가들의 커뮤니티 및 신진 아티스트들을 그 지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본질적인 부분으로 생각했던 테렌스 콘란의 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예술 공동체는
지역 정체성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바운더리에서 내가 투숙했던 방도 영국의 신진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맡은 코너 룸(Corner Room) 중 하나였다. 커다란 창문으로부터 보이는 쇼디치 지역의 풍경과 테이블 위의 조명만으로도 내가 지금 런던에 머무르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단정하고 간결한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바운더리 룸(Boundary Room)의 내부 ©Paul Raeside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바운더리의 17개 룸은 모두 다른 17명의 디자이너가 디자인했지만, 동시에 바운더리 베드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몇 가지 공통된 특성이 있다.

 

첫째, 각 방마다 사용된 컬러들의 조합과 독특한 디테일은 물론, 방 안 빼곡히 놓여 있는 테렌스 콘란의 저서들과 다양한 각 분야의 디자인 서적들이 창조성(Creative Spirit)에 대한 테렌스 콘란의 경외를 보여준다. 둘째, 런던의 크리에이티브 센터로 불리는 쇼디치 지역의 특성이다. 바운더리의 룸은 이 두 가지 모두를 우리에게 직접 보여준다.

 

그저 런던의 트렌디한 디자인 호텔로 바운더리를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바운더리의 룸 안에 들어오는 순간 평범하게만 느껴지는 침대와 옷장, 책상과 의자에 몹시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운더리의 진정한 매력은 호사스러운 카펫이 깔린 반짝이는 대리석 타일의 호텔방이 아니다. 그보다는 창밖으로 보이는 쇼디치의 풍경과 모던한 가구, 방 안 곳곳에 놓인 손때 묻은 서적들을 통해 런던에서도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일상과 같은 편안함이 더 본질에 가까울 것이다.

바운더리의 아침을 깨우는 Albion Café

바운더리에 있는 3개의 레스토랑은 단지 17개의 룸만을 보유하고 있는 바운더리의 핵심 수익원인 동시에, 쇼디치 지역의 대표적인 공간이다.

 

바운더리를 대표하는 1층의 '알비온(Albion)'은 쇼디치 지역 주민들의 일상과 항상 마주하는 친숙한 공간이다. 근처의 벤처 기업에서 일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그들의 맥북을 들고 나와 알비온의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근처에 사는 부부가 신선한 빵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 그곳에 들르기도 한다.

 

바운더리 지하에 위치한 격식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인 '트라트라(Tratra)'의 경우, 사람들은 극장에서와 같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근사한 저녁 시간을 즐기기도 할 것이다. 알비온과 트라트라를 지나 옥상으로 올라가면 쇼디치 지역의 유명한 루프탑이자 바운더리의 핵심인 루프탑 '오랑제리(Orangery)'가 보여주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 이곳은 레스토랑 식사 전에 사람들이 가볍게 칵테일 한 잔을 하러 들르는 곳이자, 근처의 직장인들이나 가족들이 주말 브런치를 위해 자주 들르기도 하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공간이다.

 

각각의 고유한 특성이 있는 3개 레스토랑에 대한 리뷰는, 단순히 호텔에 위치한 F&B 공간 소개가 아닌, 그 자체로 바운더리가 위치한 쇼디치 지역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이제 카페 알비온부터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알비온은 카페이자 작은 가게이다. 내부에는 베이커리와 케이크 카운터가 있고, 대부분의 음식은 영국산이다.

- 바운더리 홈페이지

바운더리 홈페이지의 설명 그대로, 알비온은 바운더리를 대표하는 카페이자 베이커리, 동시에 영국식의 다양하고 신선한 유기농 식재료를 판매하는 그로서리(Grocery, 식료품점)이다. 특히 바운더리에는 데일스포드 오가닉(Daylesford Organic), 닐스야드 데어리(Neals Yard Dairy) 등 영국 최고의 다양한 델리 브랜드들을 비롯, 자체 생산하는 알비온 와인을 비롯한 다양한 음료가 구비되어 있다.

 

매장 앞에 놓인 다양하고 신선한 식재료들과 거리에서 마주 보이는 커다란 유리창 사이로 진열된 색색의 식료품들은,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매장 안으로 들어와 이곳을 경험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알비온의 브랜드 스티커는, 마치 영국의 신선한 유기농 식료품을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다. 매장의 안팎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다양한 영국식 식료품들 ©김양아

알비온의 테이블웨어는 모두 콘란앤파트너스(Conran and Partners)에서 직접 제작한 것이다. 테이블마다 놓인 하얀색의 식기들이 너무 예뻐서 살짝 뒤집어 보았더니, 영국의 대표 브랜드인 웨지우드(Wedgwood)가 쓰여 있어 처음엔 웨지우드의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는 줄로만 알았다. 후에, 바운더리의 매니저에게 확인한 바로는, 언제나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식기를 만들어 달라고 웨지우드에서 재스퍼 콘란(Jasper Conran)*에게 의뢰한 제품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 간결하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정평이 난 영국 디자이너. 현재 콘란샵의 수장이자 테렌스 콘란의 아들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탄생한 웨지우드의 재스퍼 콘란 라인을 언제나 이곳 알비온에서 만날 수 있다. 마치 콘란 경이 이야기했던 '영국의 감성적인 실용주의'를 그들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알비온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붉은색의 티 포트. 바운더리의 지역 정체성을 보여준다. 또한, 재스퍼 콘란이 디자인한 웨지우드 식기에 담겨 나오는 전통적인 영국식 아침을 맛볼 수도 있다. ©김양아

붉은색은 알비온을 대표하는 색이다. 특히, 비가 내리는 날이나 아침이면 알비온의 테이블에는 대부분 붉은색 티 포트가 놓여 있어, 붉은색 철제 의자와 함께 런더너(Londoner)들이 사랑하는 알비온만의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토마스 헤더윅이 디자인한 2층 버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영국을 대표하는 색이자, 쇼디치의 레드 처치 스트릿(Red Church Street)에 위치한 붉은색 벽돌 건물인 바운더리의 위치적 특성을 반영한 색이다.

마치 쇼디치의 중심이라는
정체성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알비온의 아침이 특별한 이유는, 런던의 유명 셀러브리티나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힙스터들이 이곳에 자주 방문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오늘의 쇼디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1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알비온을 언제나 처음과 같이 쇼디치 지역의 중심 공간으로 만들어 온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바운더리의 낮과 밤, Rooftop Orangery

바운더리의 정식 명칭이 'Boundary – Restaurant, Rooms and Rooftop'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루프탑은 단순히 호텔 내부에 위치한 F&B 공간이 아니다. 다른 2곳의 레스토랑과 함께 바운더리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자,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보다 중요한 공간적 의미가 있다.

루프탑의 낮 풍경. 친구들과 점심 한 끼를 하러 찾아온 사람들, 아이를 눕혀 놓고 풍경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 젊은 부모와 근처 직장인들의 모습까지 다양한 이 곳의 일상을 한눈에 경험할 수 있다. ©김양아

루프탑 오랑제리는 이스트 런던의 근사한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시트러스, 레몬, 미모사, 귤나무(calamondin) 등 다양한 나무들로 가득 찬 공간이다. 오랑제리는 사람들에게 햇살이 좋은 날이면 마치 풍경이 근사한 정원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알비온이 매일 퇴근길에 들르는 식료품점이자 아침 출근길에 커피와 크로아상을 사러 가는 동네의 카페와 같다면, 루프탑 오랑제리는 언제든 찾아와서 자연스러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원과 같은 역할을 한다.

 

루프탑 오랑제리의 메뉴는 매우 간소하다. 하루 종일 주문 가능한 All-Day 메뉴와 Drinks & Cocktails, 와인 리스트가 전체 메뉴의 전부다. 그럼에도 특별한 점은 해산물과 꼬치류(skewers)를 바탕으로 하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먹기 좋은 Sharing Menu들을 대표 메뉴로 하는 것이다. 날씨가 좋은 여름밤이면 쇼디치 지역의 근사한 풍경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바비큐를 맛볼 수 있는 것도 이곳 오랑제리만의 인기 요인이다.

루프탑 오랑제리의 중앙에 위치한 벽난로는 밤이 되면 이곳을 밝히는 또 하나의 풍경이 된다. ©김양아 / 루프탑에서의 저녁 시간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 ©Paul Raeside

루프탑이라는 공간의 대표적인 특성은 도심 속 힐링 공간이라는 점이다. 탁 트인 조망을 선사하는 유리한 입지 조건과 그곳에서 바라보는 근사한 풍경, 시원한 바람과 함께, 언제든 찾아와서 쉼과 여유를 얻고 갈 수 있는 편안함이 사람들을 루프탑으로 끊임없이 이끄는 요인일 것이다. 바운더리의 루프탑 오랑제리도 이와 같다. 다만 루프탑의 일반적인 특성 외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쇼디치 지역의 특성을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런던의 카나리 워프(Canary Wharf) 지역 및 쇼디치의 풍경을 360도로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파노라마 뷰와 함께, 저녁이 되면 쇼디치의 밤을 밝히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변신한다. 친구들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러 놀러 온 사람들,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 오랑제리의 대표 메뉴를 즐기러 온 사람들, 하루의 피로를 근사한 야경과 함께 씻어 보내기 위해 찾아온 근처의 직장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린다.

이 모든 것이
오랑제리만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루프탑 오랑제리의 외부 전경. 중앙에 위치한 올리브 나무가 인상적이다. ©Paul Raeside

루프탑 오랑제리의 중앙에는 100년 이상의 세월을 간직한 올리브 나무가 심어져 있다. 루프탑 정원을 담당한 디자이너 니콜라 레스비럴(Nicola Lesbirel)이 2008년 루프탑의 정식 오픈을 기념하며 이 곳의 사람들에게 선사한 선물이기도 하다. 부침이 심한 이스트 런던 지역의 흥망과 언제나 조금은 흐리고 비 내리는 런던의 하늘을 지켜볼 수 있는 이 루프탑에 올 때면, 바운더리 홈페이지의 설명 한 구절이 떠오른다.

지금 당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잊지 말라.

아마도 이 올리브 나무가 건재하는 한, 루프탑 오랑제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곳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매우 천천히 자라지만, 변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더 하는 올리브 나무의 특성처럼. 트렌디하지도 않고, 다른 루프탑 공간과 완전히 차별화되는 특성이 없어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쇼디치 지역의 핵심 공간으로서 묵묵히 그 위치를 지켜 왔듯이, 앞으로의 10년도 혹은 그 이상의 시간도 오랑제리는 이곳에서 언제나 사람들을 맞이할 것이라 기대해 본다.

바운더리의 저녁을 책임지는 Tratra

바운더리의 지하에 위치한 트라트라는 2016년 영국에서 활동하는 유명 프렌치 셰프이자 요리 서적 저술가인 스테판 레이노드(Stéphane Reynaud)를 대표 셰프로 하여 오픈한 최신 공간이다. 이곳에서 10년 이상의 시간을 지켜온 다른 2곳의 레스토랑과는 다르게, 트라트라는 현재 런던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쇼디치 지역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트라트라의 전경. 입구의 고급스러운 바 공간과 안쪽의 레스토랑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김양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쇼디치 지역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다. 특히, 이 지역에 위치한 많은 광고 및 홍보대행사 및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의 오피스들을 비롯해 쇼디치 지역의 개발로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들까지 우리가 흔히 힙스터라 부르는 계층들도 쇼디치 지역의 큰 축이다. 여행이나 출장으로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거리나 레스토랑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부류이다.


2016년 오픈한 트라트라는 이러한 쇼디치의 변화를 반영하여 바운더리에서 가장 호화스럽고 장식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바운더리의 그 어떤 공간보다도 드라마틱하고 웅장한 인테리어에서 보이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느낌과 프렌치 헤드 셰프를 보유하고 있는 트라트라의 특성은, 마치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지는 않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연상하게끔 한다.

 

그러나 실제로 트라트라는, 바운더리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공간이면서도 감각적이고 캐주얼한 느낌의 일러스트를 활용하여 메뉴와 가격대에 대한 부담을 줄였다. 동시에 모든 메뉴는 셰어링(sharing)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여러 사람이 어울려 함께 이곳을 찾는 경우가 많은 바운더리 방문객의 특성 또한 놓치지 않는다.

트라트라의 메뉴 중 일부(2017년 9월 기준) ©Tratra

메뉴판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섹션 중 하나는 바로 두 번째인 'Stephane's Charcuterie' 항목이다. 고기 요리를 주 종목으로 하는 스테판 레이노드라는 셰프의 특성을, "나는 도축업자의 손자야. 그래서 샤퀴테리*를 가장 좋아하지.(I am the grandson of a butcher so charcuterie is a favorite)"라는 위트 넘치는 문구로 표현한 재치가 재밌다.

* 베이컨, 햄, 소시지와 같은 육류 가공품을 통칭하는 단어

쇼디치의 세련된 런더너들이 많이 방문하는 트라트라의 저녁. 구운 소의 골수를 쵸리쵸, 트러플 오일을 뿌린 크루통과 함께 먹는 오른쪽 사진의 'Os a Moelle' 요리는 스테판 레이노드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 ©김양아

트라트라의 바에서는 스테판 레이노드가 구성한 런던 최고의 소믈리에 팀이 프렌치 와인과 함께 다양한 칵테일을 대표 메뉴로 제공한다. 특히 와인은 트라트라의 바 메뉴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바운더리가 중요하게 내세우는 소비자 친화적 가격 정책(customer-friendly pricing policy) 덕분에, 최상급의 프렌치 와인을 좋은 가격에 마실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트라트라는 모든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공간이다. 주로 셰어링을 하며, 불빛이 켜진 한 음식을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위와 같은 스테판 레이노드의 말처럼, 트라트라는 분위기만으로도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공간이면서, 훌륭한 가격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런더너와 쇼디치의 오늘을 보여주는 곳

테렌스 콘란은 "디자인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작용하는 예술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전설적인 거장들의 디자인을 호텔방에 자연스럽게 머무르면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은 바운더리만의 가장 강력한 특징이자 매력일 것이다.

 

물론 바운더리의 매력은 방에서 그치지 않는다. 알비온에서 붉은색의 티 포트에 담긴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쇼디치의 풍경을 바라보거나, 영국식의 유기농 식재료가 가득한 식료품 코너에서 현지인처럼 다양한 식재료를 쇼핑해 보는 것도 좋겠다. 밤이 되면, 멋지게 꾸미고 트라트라를 방문해도 좋겠다. 아마도 트라트라의 다정하고 유쾌한 스태프들이 스테판 레이노드가 펼치는 근사한 프렌치 다이닝의 세계로 당신을 이끌어줄 테니.

 

런더너의 오늘과 쇼디치라는 지역의 오늘을 보여주는 곳. 컨텍스추얼(Contextual, 지역의 사회 문화적인 환경)의 정수를 이곳 바운더리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 혹은 출장으로 런던에 오게 된다면, 바운더리에 머무르는 것은 어떨까. 특히, 런던에서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나만의 경계(boundary)가 필요한 사람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