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존재의 의미

서점을 취재할 당시와 원고를 쓸 때, 내 상황은 많이 변했다. 취재 때 나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었고, 서점의 일은 다른 무엇보다 '내 일'이었다. 더 많은 이가 책을 읽고 더 많은 서점이 생기고 그런 곳에서 사람들이 더 많은 책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관심사는 더 많은 사람이 온라인 서점 대신 동네 서점을 찾게 하려면 서점은 어떤 곳이어야 할까, 그런 서점이 지속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원고를 쓰던 무렵, 나는 시애틀 주민이 되었고 책을 만드는 사람에서 장사꾼이 되었다. 환경이 달라지니 관심도 달라졌다. 아침 여덟 시에 일과를 시작해 집에 돌아오면 밤 열 시였다. 하루 종일 손님을 상대하고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음료수 냉장고를 채우거나 음식을 포장할 때 넣어야 하는 작은 소스를 만들었다.

 

식당에서 쓰는 포크와 음식 포장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포크를 냅킨에 감아 두는 일을 비롯해서 식당에서 쓰이는 온갖 소모품이 비거나 모자라지 않은지 확인해 채워 넣고 몇 군데나 되는 마켓을 번갈아 가며 돌아야 했다.

 

때로는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돕고 그릇에 밥을 퍼서 준비해 손님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였다. 그렇게 하루를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책 읽을 시간은커녕 잠잘 시간도 부족해 이따금 써야 할 원고와 마감 기한을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왔다.

 

마감을 한 번 어기고 두 번 어기고, 이때까지는 꼭 마쳐야지 마음먹은 시간을 몇 번이고 흘려보내면서 자책과 함께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돌이켜 볼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고 그 내용으로 무언가를 생산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 책을 기획해 만들어 파는 것으로 생계를 해결했던 사람으로서 책과 서점의 필요를 역설하기는 쉬웠다.

ⓒ이현주

그러나 대부분 시간을 그 일과 아무 상관 없는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책이나 서점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자문해 보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시간에 쫓기고 피로에 찌든 이에게 잠깐의 단잠이나 산책보다 책 읽기를 권할 만큼 확신이 있나 스스로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