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음식 트렌드를 이끈다

스웨덴 이주를 결정했을 때, 나에게 큰 고민 중 하나는 음식이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결국 의식주인데, 과연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고살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미식가는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다양한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생활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던 나이기에, 스웨덴 음식들이 입에 잘 맞을지 걱정이었다.

 

안타깝게도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는 아니었다. 오히려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음식이 맛없기로 손꼽히는 나라 중 하나였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면 이케아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트볼이나 팬케이크인데, 단출하면서도 외식 가격은 상당히 높은 편이라 관광객들에게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스웨덴 음식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되어버린 이케아의 미트볼. 실제로 스웨덴 음식 수출의 90%는 이케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IKEA

하지만, 스웨덴에 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 건강한 식문화와 까다로운 식재료 선택에 있어서만큼은 스웨덴인들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스웨덴인들은 지방, 설탕, 밀가루 등 현대인의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것들은 얄미울 정도로 피하고, 채식 위주의 가벼운 식사만 한다. 소, 돼지고기 등 붉은 고기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고, 과음이나 과식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극히 거북해한다.


최근 전 세계적인 웰빙 열풍과 건강한 음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스웨덴 음식은 점차 유럽에서 '건강'과 '트렌드'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음식으로 놀림받는 국가가 아니라, 음식을 먹기 위해 관광객이 찾아오는 국가가 된 것이다.

 

최근 스웨덴 내에서 아시아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한중일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의 요리법을 접목한 건강하고 색다른 음식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보기 어려웠던 다양한 아시안 퓨전 레스토랑들이 스톡홀름 시내에 즐비하며, 많은 스웨덴인들이 비빔밥과 김치 정도는 잘 알고, 즐겨 먹는다. 주변 친구들 중에도 직접 김치를 담가보고 싶어 하거나, 한국의 김을 구해 색다른 요리를 만들어내는 친구도 있다는 것이 다소 신기하게 느껴진다.

간편한 DIY 식사, 밀 키트

스웨덴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이
일반화되어 있다
스웨덴인들은 대부분 오후 4~5시경에 퇴근하며, 야근이나 회식이 거의 없다. 점심을 샌드위치, 샐러드 등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저녁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외식을 하기보다 집에서 가족과 요리해 먹는 것을 즐긴다. 많은 유럽 국가들처럼 스웨덴에서도 음식 배달 서비스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역시 특별한 모임이 있지 않다면 직접 해 먹는 음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웨덴 가정은 맞벌이이다 보니, 매일 식사를 준비해 먹는 것이 불편한 것이 쉽지는 않다. 메뉴 선택에서부터 재료 준비, 요리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매일같이 집에서 식사를 준비해 먹는 것은 일찍 퇴근하는 스웨덴인들에게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고 싶기는 하지만, 이를 위한 번거로움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가 바로 '밀키트(meal kit) 배송 서비스'이다. 정량에 맞춰 준비된 재료들을 정기적으로 집으로 배송받고, 함께 포함된 요리법에 따라 15분 내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이러한 밀 키트 서비스는 최근 스웨덴뿐만 아니라 미국/유럽 등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수많은 세계 밀 키트 서비스를 처음 도입한 것이 바로 2008년에 설립된 스웨덴의 스타트업 Linas Matkasse이다.

밀 키트 서비스의 원조, Linas Matkasse

Linas Matkasse(리나스 맛카세)는 온라인 마트와 배달 음식의 중간에 있는 서비스라 할 수 있다. 정기 배송을 신청하면 박스 안에 각각의 조리 단계를 사진과 함께 설명한 조리법과 요리에 필요한 양만큼 손질된 신선한 식재료를 배달해 준다. 메뉴를 고민하고, 장을 보고, 식자재를 손질하는 과정을 건너뜀으로써 소비자가 빠른 시간에 쉽고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메뉴는 매주 바뀐다. 모든 식재료는 매주 같은 요일에 배달되며, 웹사이트를 통해 요리 시범을 볼 수 있다.

스웨덴의 스타트업 Linas Matkasse는 음식 조리법과 이에 맞춰진 정량의 식자재를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밀 키트 스타트업 서비스의 원조이다. ©Linas Matkasse

4인분 기준으로 주 5일 치 식재료를 모두 주문한다면 약 10만 원 수준이다. 스웨덴의 높은 외식 물가를 생각할 때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다. 또한 버리는 식재료가 없기 때문에 그냥 시장을 봐서 스스로 요리할 때보다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또한 고객 스스로
물건을 만들면서
더 큰 기쁨을 느끼게 되는
이케아 효과(IKEA effect)가
적용된다

* 매일 메뉴를 고민할 필요 없이 요일별로 새로운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도와주는 Linas Matkasse의 홍보 영상 ©Linas Matkasse

 

현재는 Linas Matkassse가 스웨덴 밀 키트 시장에서 1위이긴 하지만, 대형 온라인 리테일 업체들도 유사 서비스를 도입하고, 다양한 신생 사업자들이 등장하며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Linas Matkasse에게 영감을 받아 미국 시장에 밀 키트를 도입한 스타트업 Blue Apron은 원조를 뛰어넘어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Blue Apron의 설립자 Matt Salzberg는 인구 천만 명의 작은 시장에서 단기간 내 5천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한 Linas Matkasse를 보고, 미국 시장에서도 성공할 것을 확신했다고 한다. 그는 2012년 Blue Apron을 설립하고, 현재 월 4천만 달러 매출을 내는 대형 업체(기업가치 20억 달러)로 성장시켰다.

 

이밖에 Linas Matkasse를 모방하여 현지 시장 특성 및 요리에 따라 최적화된 수많은 밀 키트 업체들이 미국, 유럽, 아시아에서도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150여 개 밀 키트 업체들이 운영 중이고, 현재 세계적으로 22억 달러 (한화 약 2조 4천억 원) 수준의 밀키트 시장이 있다고 추정된다.

 

이러한 경쟁자들의 등장에 Linas Matkasse는 위기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CEO이자 공동창업자인 Nikas Aronsson은 오히려 여유롭다. 세계 시장은 여전히 크고, 이러한 모방자들이 각 시장에서 밀 키트 서비스를 알리며, 사업 모델에 대한 '초기 교육비'를 절감하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 세계 크고 작은 업체에 영감을 준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성공적으로 시장을 개척해준 덕분에, 우리도 더 손쉽게 해당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Nikas Aronsson, Linas Matkasse CEO & 공동창업자

Linas Matkasse는 수많은 경쟁사들과의 차별성을 확보하고, 스웨덴 내 1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Klubb Lina'라는 고객 멤버십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음식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친구를 소개해온 고객에게 포인트를 부여해주고, 이를 통해 주방용품이나 호텔 숙박권, 잡지 구독권 등을 포함한 프리미엄 기프트를 제공한다. 해당 멤버십 고객을 위해 개발된 별도의 피트니스 비디오도 있다고 한다.

 

장기 우수 이용 고객은 별도로 선발되어 각종 행사 초청 및 특별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정기 구독 방식의 서비스인 만큼 멤버십을 활용한 신규 고객 유치 및 이탈 방지를 위해 세심히 노력하는 것이 느껴진다.

 

스웨덴에서 시작된 작은 스타트업의 아이디어가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의 식사 문화를 성공적으로 바꾸어 나가고 있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리하게 요리의 즐거움을 경험하고, 가족들과 집에서 식사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건강한 식문화의 확산을 바라며

한국도 최근 몇 년간 집에서 간편하게 해 먹는 요리에 대한 니즈가 크게 증가했다. 빠르고 간단히 요리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TV 채널들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건강한 식습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직접 요리하는 것에 대한 니즈는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정기 배송을 신청하면 박스 안에 각각의 조리 단계를 사진과 함께 설명한 조리법과 요리에 필요한 양만큼 손질된 신선한 식재료를 배달해 준다. ©Linas Matkasse

시작은 Linas Matkasse였지만, 이로부터 영감을 받은 수많은 업체들이 전 세계에서 등장해 각 국가들의 조리법과 식재료를 기반으로 성공적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다양한 밀 키트 업체가 등장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에서 운영하는 '잇츠온', GS리테일의 '심플리 쿡'이나 2015년에 설립된 프렙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갈비찜, 월남쌈, 감바스에서 이유식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다양한 음식의 조리법과 재료를 제공하고 있다.

 

아직까지 대세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바쁜 일상에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는 서비스는 한국에서도 분명 더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 지친 많은 한국인들이 요리의 즐거움과 함께 가족과 집에서 식사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