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업들이 한국식 조직 문화를 버리려고 할까?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9년 10월에 발간된 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재구성했습니다.

1) 조직의 수평화와 다양성을 위해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SK와 다른 대기업들이 신입 사원 공개 채용 제도, 이른바 공채를 폐지하기 시작했다.* 한국적 조직 문화로 대표되는 것 중 하나가 공채를 통한 기수 문화다. 기수를 통해 선후배 관계가 구축되고, 조직의 위계 구조도 강화되었다.

 

전형적인 군대 문화와 같은 조직 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공채가 폐지되면 기수 문화도 위축되고 장기적으로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도 신입 사원을 공채로 뽑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필요한 인재를 부서별로 수시 채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공채는 위계 구조만 강화한 게 아니라 다양성도 부족하게 만들었다. 변화한 오늘날의 산업 환경은 창의적이고 혁신적 사고를 하는 인재를 요구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성별, 인종별, 국가별 다양성을 인재 채용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다양성 부분에서 아주 취약하다. 즉 공채의 폐지는 조직의 수평화를 위해서도, 조직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셈이다.

 

2) 남성 위주 채용 환경의 변화

현재 국내 초중고 교사의 4분의 3 정도가 여성인데, 이는 성적순으로 뽑았기 때문이다. 9급 공무원 합격자 10명 중 6명 정도가 여성이다. 이 또한 성적순으로 뽑아서다. 그런데 공채로 뽑힌 대기업 4년제 대졸 신입 사원의 경우 10명 중 7명 정도가 남자다. 성적순으로만 뽑은 것 같진 않아 보인다. 과거에는 더 심했다. 10명 중 8~9명 이상이 남자였던 곳도 많았다.

 

왜 기업들이 한국식 조직 문화를 버리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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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2019년 10월에 발간된 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재구성했습니다.

1) 조직의 수평화와 다양성을 위해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SK와 다른 대기업들이 신입 사원 공개 채용 제도, 이른바 공채를 폐지하기 시작했다.* 한국적 조직 문화로 대표되는 것 중 하나가 공채를 통한 기수 문화다. 기수를 통해 선후배 관계가 구축되고, 조직의 위계 구조도 강화되었다.

 

전형적인 군대 문화와 같은 조직 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공채가 폐지되면 기수 문화도 위축되고 장기적으로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도 신입 사원을 공채로 뽑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필요한 인재를 부서별로 수시 채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공채는 위계 구조만 강화한 게 아니라 다양성도 부족하게 만들었다. 변화한 오늘날의 산업 환경은 창의적이고 혁신적 사고를 하는 인재를 요구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성별, 인종별, 국가별 다양성을 인재 채용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다양성 부분에서 아주 취약하다. 즉 공채의 폐지는 조직의 수평화를 위해서도, 조직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셈이다.

 

2) 남성 위주 채용 환경의 변화

현재 국내 초중고 교사의 4분의 3 정도가 여성인데, 이는 성적순으로 뽑았기 때문이다. 9급 공무원 합격자 10명 중 6명 정도가 여성이다. 이 또한 성적순으로 뽑아서다. 그런데 공채로 뽑힌 대기업 4년제 대졸 신입 사원의 경우 10명 중 7명 정도가 남자다. 성적순으로만 뽑은 것 같진 않아 보인다. 과거에는 더 심했다. 10명 중 8~9명 이상이 남자였던 곳도 많았다.

 

그동안 대기업의 공채에서는 남성 중심적 채용이 이뤄졌다. 한국에서 대기업 공채가 확산된 시기는 1960~1970년대로, 경제 개발 계획을 추진하던 군사 정권 때 급속도로 기업이 성장하고 대기업이 대거 출현하면서부터다. 정부 정책과 맞물려 정기 공채가 이뤄졌고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늘려 갔다.

 

1970~1980년대 대기업 공채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사람들은 바로 전역 장교였다. 군사 정권과 공채는 이렇게 뗄 수 없는 관계였고, 그래선지 대기업의 조직 문화에 군대 문화가 자연스럽게 확산되었다. 이러다 보니 공채에서는 남성 위주의 채용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뜩이나 남녀 차별이 극심한 사회라서 대학 교육에서도 남녀가 고루 혜택을 받지 못하던 시대였기에 대졸자 중 남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민간 기업 최초의 공채는 1957년 삼성물산공사였고, 삼성이 그룹 차원으로 신입 사원 공채를 시작한 것은 1967년이다. 그런데 대졸 여성 공채를 처음 시작한 시기는 1992년이다.

 

지금은 남녀를 막론하고 누구나 대학을 갈 정도로 대학 교육 혜택에서 남녀 차별이 없다. 성적 장학금도 주로 여학생들이 받을 정도다. 대학을 가는 거나 대학에서 성적을 받는 거나 남녀 상관없이 실력 위주다. 그런데 아직 대기업 신입 사원 공채의 문에서는 그렇지 않은 듯 보인다. 결국 공채의 폐지와 수시 채용은 남성 위주였던 채용 환경의 변화로도 이어질 것이다.

 

모든 산업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이야기하고, IT를 모르는 기업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물리적인 힘을 잘 쓰거나 야근도 척척 할 정도로 체력이 좋거나, 목소리가 커서 사람을 잘 통솔하고 관리하는 것은 결코 보편적인 인재 자질이 아니다. 모두에게 이런 자질이 필요하다고 여겼던 게 과거의 한국 기업이었고, 그래서 남성 위주 채용에 대한 문제의식도 희박했다.

 

하지만 현재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일수록 다양성 보고서를 매년 발표하며, 여성 인재들이 조직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남녀 다양성이 고루 확보된 경영진을 가진 기업들이 더 좋은 성과를 드러낸다는 보고서가 경영 컨설팅 업계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에게는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과거식 조직 문화를 버리도록 요구되고 있다.

 

3) 역할과 능력 중심의 조직 문화 혁신

최근 들어 대기업 CEO들이 자주 강조하는 것이 조직 문화 혁신이다. 한국 대기업들 사이에서 애자일(agile)이 유행어가 되고, 수평화를 위해 직급, 사무실 환경, 보고 체계와 평가 시스템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민첩하다는 뜻의 애자일은 일을 그냥 빨리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빨리 하는 것'이다.*

* 관련 기사: 디지털경제, 혁신 키워드는 '민첩한 조직' (한국경제, 2019.5.16)

 

사실 빨리빨리는 한국인들이 그동안 제일 잘해 왔다. 위계 구조 중심인 한국 기업들은 속도에서 강력하다. 상사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밤을 새워서라도 어떻게든 일정을 맞춘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론 빠른 변화의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 산업의 변화도 빠르고, 시장도 소비자도 빨리 바뀐다. 이런 빠른 변화에 대응하려면 각 업무 역할을 맡은 이들의 전문성이 의사 결정에서 중요해져야 한다.

 

위계 구조 중심에서는 직급 높은 사람이 모든 것을 판단한다. 디자인 시안의 최종 결정권자가 디자인 책임자가 아니라 그 회사에서 가장 높은 직급인 CEO가 된다. 이러다 보면 결제가 올라가는 과정에서 비전문가의 즉흥적 견해 때문에 배가 산으로 가기 일쑤다.

 

최종 결정된 디자인의 제품이 성공을 하면 CEO가 칭찬받고, 실패하면 CEO가 비판받는다. 이런 위계 구조에서는 CEO가 뭐든지 잘하는 만능 전문성을 가져야 하지만 현실에선 그게 불가능하다. 위계 구조 중심에서는 비전문가가 직급이 높다는 이유로 의사 결정을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스포츠 팀의 경우 유능한 인재는 루키 때부터 주목을 받는다. 그건 그의 역할을 남들이 투명하게 볼 수 있어서다. 그 팀의 감독이나 구단주의 몸값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선수의 몸값이 올라간다. 그 선수를 지속적으로 주목하게 되고, 스카우트도 이뤄진다. 스포츠 팀에선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기업이 스포츠 팀 같아야 한다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다.

 

어떤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그 회사의 CEO가 아니라 그 프로젝트를 주도한 직원의 가치가 높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위계 구조 중심이 아니라 역할 중심으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역할 중심으로 평가되고, 연봉 책정도 그에 준해야 한다.

 

가족의 가장이나 부대의 부대장은 그 집단의 절대적 힘을 가진 리더지만 스포츠 팀에서는 선수 개개인이 각자의 실력으로 평가받고, 위상도 달라진다. 한번 유능했다고, 계속 그 유능함을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변화를 계속 받아들이며 실력을 키워 가야만 유능함도 지속된다. 나이와 연차 우대가 아니라 실력 우대로 바뀔 수밖에 없다.

 

엘지씨엔에스(LG CNS)는 호봉제를 깨뜨리기 시작했다. 호봉제는 근속 연수에 따라 급여가 매년 자동으로 오르는 것으로 유능하건 무능하건 퇴사하기 전까지는 나이와 연차의 혜택을 받는다. 그동안 이 호봉제가 한국적 조직 문화에서 견고히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걸 깨는 시도가 대기업에서도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엘지씨엔에스에서는 2019년부터 직원들의 연봉 인상률을 산정할 때 기술 역량 레벨을 50% 반영하는데 2021년부터는 100%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직급과 상관없이 모두가 기술 역량 평가를 받아 레벨이 정해지고, 그것에 따라 연봉 인상률이 달라진다. 기술 인증 시험도 치르고, 현장 평가에 가까운 산업 역량 평가부터 의사소통 능력을 비롯한 기본 소양을 평가하는 공통 역량 평가도 한다.*

* 관련 기사: 30대 대기업 임원, 고속 승진 방법이 바뀐다 (조선비즈, 2019.12.01)

 

이런 연봉 제도의 변화는 나이 많고 연차 높은 직원들을 괴롭히려고 만든 게 아니다. 직장에서 윗사람, 아랫사람이 아닌 모두가 동료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기업들이 지향하는 수평화를 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원보다 팀장이 적은 연봉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팀장은 창피해서 그만두거나, 아니면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해서 더 많이 받으려 들 것이다. 나이와 연차를 중심으로 한 끈끈한 서열 문화를 버리는 게 필요해진 시대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을 법률로 명시 및 금지하고, 괴롭힘 발생 시 조치 의무 등을 규정한 소위 '괴롭힘 방지법'이 2019년 7월 16일부터 적용된 것도 시대적 변화의 일환이다. 끈끈한 서열화 문화 중심이던 과거의 직장에서는 괴롭힘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런 변화를 두고 '정당한 업무상 지시나 지적도 못 하게 생겼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과거에는 문제 삼지 않고 따라 주다 보니 정당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폭언과 성희롱, 술자리 강요, 퇴근 시간 후나 주말 직전에 업무를 지시하는 것은 정당한 업무 요구가 아니다.

 

위계 구조가 강력한 집단에서는 윗사람, 아랫사람 같은 식으로 서열을 매기고, 그게 곧 신분이자 권력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업들에서는 위아래가 아니라 서로 역할과 직급이 다를 뿐 동등한 동료로 여기는 것을 지향한다. 미국이나 유럽 스타일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변화이자 진화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물론 이런 변화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저항이다. 회사를 위해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좋으나 그 변화가 자신의 입지에 손해가 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동안 조직 문화 혁신이 이론적으론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지만, 막상 현실 적용에서 실효가 적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저항 때문이다. 이 저항을 어떻게 해소시킬 것인지가 기업의 가장 큰 숙제가 되었다.

©부키

또한 동기 부여 방법도 찾아야 한다. 과거에는 승진과 연봉, 즉 지위와 돈으로 동기 부여를 했다. 회사를 위해 몸 바쳐 충성하는 것은 종신 고용 시대의 문화다. 그렇게 충성하면 지위와 돈으로 보상해 줬고, 함께 고생하며 회사를 일군 전우애나 동지애가 생겼다.

 

그런데 이 방식은 위계 구조 중심의 조직에서 효과적인 방법이다. 수평화된 역할 중심 조직에선 개인의 성장과 성취가 중요한 동기 부여가 된다. 결국 기업으로선 일하는 방식만 바꾸는 게 아니라 평가와 동기 부여 방식도 바뀌어야 기대하는 조직 문화 혁신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겸업의 시대, 더 이상 직장은 끈끈한 연대가 아니다!

겸업 허용이 확산되고 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더 이상 한 직장이 그 사람의 모든 사회적 역할을 제한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노령화 심화와 저출산으로 노동 인구가 줄어들고, 산업 구조 변화로 일하는 방식도 변하고 있다.

 

8시간 근무가 점점 무너지고, 원격 근무와 긱(gig) 고용*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겸업 허용 또한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겸업 허용이 아니라 겸업 장려를 하고 있다. 겸업을 허용하는 게 소극적 행태라면 겸업 장려는 보다 적극적인 행태다.

* 일시적인 일을 뜻하며,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에서 단기적으로 섭외한 연주자를 '긱'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용어설명: 두산백과)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 일간지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되려면 시가총액 500억 엔(약 5000억 원)이 넘어야 한다. 주로 대기업들이 1부에 상장되어 있는데, 이들 기업의 부업 허용에 대한 태도는 아주 긍정적이다.

 

일본에서 부업 허용에 본격적으로 나선 대기업은 IT 기업들이다. 2017년 11월 소프트뱅크의 허용을 시작으로* 일본 야후도 경쟁 관계가 아닌 회사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겸업을 허용했다. 정보 서비스 기업 리크루트홀딩스(Recruit Holdings), 제약 회사 로토제약 등으로 번지며 많은 대기업이 동참했고, 2019년 하반기부터는 일본 3대 종합 금융사 중 하나인 미즈호 파이낸셜그룹(Mizuho Financial Group)이 산하 은행과 신탁 은행 직원 6만 명에게 겸업을 허용했다.

 

은행 직원 신분으로 거래처나 이해관계 충돌 혹은 기밀 정보 유출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겸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은행에 다니면서 창업을 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할 수도 있고, 다른 대기업에서 재무나 경리 파트에서 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왜 직원들의 겸업을 허용해주는 걸까?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기업도 겸업 허용으로 이득을 본다.

 

1) 고용 유연성을 위한 겸업 허용

종신 고용과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에 고용의 유연성이 중요해졌다. 필요한 인력과 필요하지 않은 인력을 효율적으로 들여왔다가 내보내는 것을 잘할 수 있길 원한다. 겸업을 허용할 경우, 언제든 직원을 정리해도 그 직원이 다른 길을 갈 수 있기에 덜 부담스럽다. 아울러 우리 직원만 다른 회사에서 겸업하는 게 아니라 다른 회사의 인재들이 우리 회사에서 겸업하는 것도 확대되는 것이기에 노동력 확보에도 효과적이다.

 

은행의 경우만 하더라도 핀테크(fintech)가 중심이 되면서 기존 은행 시스템에서는 필요했지만 앞으로는 필요성이 줄어든 인력도 많다. 반대로 핀테크를 위해서는 많은 IT 인재들이 필요해졌다. 겸업이 허용되면 은행은 IT 기업의 인재들을 대거 데려오는 것과 함께 겸업하는 IT 기업의 인재들을 고용해 일을 시킬 수 있다. 즉 겸업 허용에 찬성하는 기업들은 고용 유연성을 원하는 것이다.

 

산업적 진화는 노동의 유연성을 더욱 요구하고 있다. 긱 이코노미가 확대될 정도로, 전문성을 가진 프리랜서의 단기 노동은 중요한 노동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겸업과 부업 허용이 대세가 되는 것은 정규직 종말의 전초 단계이기도 하다. 종신 고용이 사라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노동 환경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것은 산업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2017년 11월, 일하는 방식 개혁을 내세우며 생산성 향상과 노동의 유연성, 성과 중심 보상 체계를 지향하고 있다. 그런 일환으로 2018년 1월 '부업·겸업의 촉진에 관한 지침'을 발표하며 부업을 적극 장려하기 시작했고, 2019년 5월에는 도쿄도의 직장인이 지방의 기업에서 겸업과 부업을 할 수 있는 장려 제도를 발표하기도 했다.

 

도쿄의 직장인이 지방의 기업과 겸업 계약을 맺으면, 이를 연결해 준 인력 소개 업체에 건당 100만 엔을 주고, 겸업 허용에 적극적인 기업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으로 2020년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지방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대도시와 지방 사이의 인력 교류가 필요하기에 겸업을 통한 연결을 현실적 대안 중 하나로 본 것이다.

 

2) 융통성 있는 노동시간

일본의 생산 가능 인구는 1995년 8700만 명이었으나 2017년 7500만 명으로 22년 사이에 1200만 명이 줄었다. 우리나라의 생산 가능 인구는 2016년 3778만 명에서 2018년 3755만 명으로 줄었는데, 2016년을 정점으로 감소세에 돌입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노령화를 맞았기에 생산 가능 인구 감소 시기가 빨랐던 것이고, 우리는 극심해진 저출산과 노령화로 이제부터 계속 감소세를 이어 갈 것이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2017년 기준 34.3달러, OECD 36개국 중 27위로 일본보다 훨씬 낮다. 반면 노동 시간 면에서는 여전히 OECD 최상위권이다. 정리하면 생산성과 효율성 낮은 노동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 시간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겠다며 도입한 것이 주 52시간 근무 제도와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문화다. 일본은 월간, 연간 기준만 만들었다. 그리고 연소득 1075만 엔 이상 전문직 종사자는 근무 시간 규정에서 예외가 될 수 있다.

 

미국도 오래전부터 40시간으로 규정한 공정근로기준법(FLSA, Fair Labor Standard Act)이 있지만, 2004년에 만든 화이트칼라 예외 적용(white collar exemption)이 있어서 연소득 13만 4004달러 이상의 관리직이나 IT 및 전문직은 예외 적용된다. 실리콘밸리 IT 기업의 직원들이 야근을 많이 하는 것도 이런 예외가 있어서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중 14.5%가 예외 적용을 받고 시간 적용도 월간, 연간 단위로 융통성을 발휘한다.

 

독일은 주 48시간, 프랑스가 주 35시간이지만 이들은 근로시간 저축계좌 제도가 있다. 초과 근무를 한 만큼 시간을 저축해 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것인데, 연간 250시간까지 저축이 가능하다. 영국도 주 48시간이지만 다양한 예외 규정을 통해 근로 시간 유연성을 높이고 있다. 유럽연합은 주 48시간 노동을 원칙으로 하지만 노동자가 원하면 초과 근무가 가능하다는 예외 규정을 2003년부터 마련해 뒀다.

 

노동의 유연성은 오늘날의 산업 환경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과거와 달리 대부분의 산업이 IT 중심인 지금은 회사로 출퇴근하는 것 대신 원격 근무를 하거나 긱 고용을 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이런 산업 환경에서 무조건 과거식 노동 시간 규정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최근에 개정된 우리의 근로기준법 근로 시간 규정보다 오히려 수십 년 먼저 만들어진 유럽이나 미국의 제도가 좀 더 유연하게 보인다. 산업 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는 지금, 과거 생산직 노동자를 기준으로 한 노동 시간 규정을 산업 전체에 반영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도 다양한 예외 조항을 통해 시간 적용의 유연성과 융통성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여기에 겸업과 부업 허용도 뒤이어 도입되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겸업과 부업을 장려하고 있는 일본에 비해서는 소극적이지만, 현재 미국도 겸업과 부업이 가능하다. 구글과 페이스북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직원의 부업을 조건부로 허용하고 있다. 물론 경쟁사는 안 되지만, 직무 연관성이 없고 여가 시간에 하는 조건이라면 부업이 가능하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 그룹사는 모두 부업을 금지하고 있다. 부업하다 적발되면 구두상 경고 같은 경징계부터 정직, 해고 같은 중징계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바뀔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기업들도 고용 유연성을 원하고, 긱 고용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대기업 직장인 유튜버들도 꽤 등장하고 있다. 낮에는 직장인으로, 퇴근 후에는 유튜버로 활동하는 것도 일종의 겸직이다. 유튜버 또한 영리를 목적으로 한 경제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명 유튜버 중에는 직장인으로 시작했다가 인기가 오른 뒤에 사표를 쓰고 퇴사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유튜버 활동은 유명해지기 전까진 대체로 별 문제가 없다. 그냥 취미로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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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구독자 수가 늘면서 돈을 벌어들이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영향력을 가진 '셀럽(셀러브러티)'이 되면 기업으로서도 이를 겸업 문제로 보고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유튜버 이전에 직장인이기에 그들의 행동과 대외 이미지가 소속 기업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직원의 영상에 회사 기밀 혹은 회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이 나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아직까진 기업들이 이를 허용한다거나 금지한다는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하지만 고민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유튜버 겸직 허용 문제는 다른 역할로의 겸업, 부업에 대한 허용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살롱 문화와 애자일의 공통점

17세기 프랑스에서 확산된 상류층의 사교 문화이자 예술과 취향을 소비하는 방식인 살롱 문화와,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에서 시작해 21세기 들어 실리콘밸리 IT 스타트업의 일하는 방식이자 경영 전략으로 대두된 애자일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사람과의 관계 방식을 다룬다.

 

기존의 관계 방식에 대한 진화 버전인 셈인데, 살롱은 신분제 시대임에도 수평화된 예술 교류 문화를, 애자일은 위계 구조 중심에서 수평화된 역할 구조 중심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꿔 놓았다. 둘 다 수평화되고 역할과 전문성을 중심으로 한 관계다. 지위가 높다고, 나이가 많다고, 돈이 많다고 주도권을 가지는 게 아니라 누가 더 좋은 콘텐츠와 답을 가졌냐로 주도권이 설정된다.

 

살롱에서는 예술적 능력이자 취향이 권력이 되고, 애자일에서는 전문성이자 실력이 권력이 된다. 둘 다 실력 있는 사람이 우대받고, 노력하지 않거나 진화하지 않는 자가 도태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혈연, 학연, 지연 같은 강제적 끈끈함이 있는 상황에서는 상호 간의 친밀함이나 개인적 신뢰와 무관하게 집단적 연결이 힘을 발휘했다. 직접적 교류는 없거나 적었어도 학교 선후배라는 이유로, 같은 고향이란 이유로, 같은 집안의 친인척이란 이유로도 밀어주고 끌어 주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 개인 자체를 보고 밀어주었다기보다는 혈연, 학연, 지연이란 집단적 연결의 힘 때문에 밀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나이나 학번, 촌수 같은 서열 기준이 중요해지고, 이를 기반으로 한 인간관계에서는 정치가 등장하고, 부정과 비리도 등장한다.

 

집단주의적 문화가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남의 평판이 중요하다. 남과 비교도 더 많이 한다. 자기 자신에게만 온전히 집중하기보다 집단 속에서의 존재로서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하지만 개인주의적 문화가 확산되면서 과거의 인맥관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로선 기성세대의 인맥관 때문에 겪는 손해나 피해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그들은 새로운 인맥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서열 중심의 위계 구조가 비민주적이라면, 역할 중심의 수평적 구조는 민주적이다. 개별적으로 독립되어 있지만 필요에 의해 연결되는 관계, 바로 느슨한 연대를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느슨한 연대에서는 관계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 이들은 남보다는 자신에게 더 집중하려 든다. 자신이 중심인 인맥이지 결코 자신이 조연이나 하위로 인식되는 인맥을 원하는 게 아니다. 느슨한 연대는 새로운 직장 문화이자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가족의 변화, 결혼관의 변화, 인맥의 변화 등에 모두 연결되는 패러다임이다.*

* 관련 글: [기획 리포트] 요즘 청춘들은 '소셜 살롱'에 간다 (패스트캠퍼스, 2019.5.23)

 

잠깐 관심 가질 트렌드가 아니라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메가트렌드(mega trend)이자 패러다임으로서 곧 견고하게 자리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