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과 비상을 가른 충족수단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8년 12월에 발간된 <끌리는 컨셉 만들기>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재구성했습니다.
1903년 10월 7일 워싱턴DC를 가로지르는 포토맥강 강가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소장이자 당대 최고의 과학자인 랭글리 박사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개발한 비행기를 선보이는 자리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비행체는 그만 강물 속으로 추락했습니다. 2달 후인 12월 8일 발사 장치를 개선해서 다시 같은 장소에서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했습니다.
그로부터 9일 후, 12월 17일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호크 해변에서 라이트 형제가 제작한 유인 동력 비행기가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동생인 오빌이 조종한 비행기는 12초 동안 37m를 비행했고, 형인 윌버는 59초 동안 260m를 날아올랐습니다.
어떻게, 왜 당대 최고 과학자인 랭글리 박사는 실패하고 자전거포를 운영하던 라이트 형제는 성공했을까요?
라이트 형제는 항공학 관련 서적들을 읽고 항공 선구자들의 실패사례들을 면밀히 분석해 동력 비행에 성공하려면 '바람'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바람을 이용하는 동력 비행'을 핵심 충족수단으로 설정했습니다. 오늘날에는 항공학에서 바람을 이용한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당시에는 검증되지 않은 방법이었지요.
한편 랭글리 박사는 오직 동력에만 의존해야 비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보다 강력한 엔진을 만드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결국 옳은 충족수단을 선택한 라이트 형제가 성공했습니다.
비록 100여 년 전의 일이지만 라이트 형제의 성공사례는 신제품 개발에서 충족수단을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모범적 사례입니다.
우선 라이트 형제는 충족수단의 방향을 잘 잡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충족수단을 구체화하는 것도 단계별로 추진했습니다. 당시 유인 동력 비행기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든 다른 과학자나 엔지니어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라이트 형제만큼 주도면밀하면서도 집념을 가지고 추진한 사람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