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속의 서비스 디자인
[콘텐츠 발행일: 2019.09.19]
라이프스타일은 삶의 일부입니다. 고객의 삶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찾는 사람들을 연결해야 합니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는 커뮤니티, 네트워크, 공동체를 지향해야만 합니다. 제품을 만들던 브랜드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지향하면서 호텔과 카페 등 호스피탈리티 산업으로 진입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과거 비일상의 공간을 지향하던 호텔들마저 일상을 담아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2011년 카사미아가 61개 객실을 갖춘 호텔 '라까사(La Casa)*'를 가로수길에 오픈하고 작년에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처음 문을 열 때는 '도심 속의 휴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일상과 비일상의 단절을 컨셉으로 삼았지만, 신세계그룹이 인수한 후 새로운 디자인으로 다시 문을 열 때는 '도심 속으로의 여행(Journey to the City)'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습니다. 서울이라는 지역을 총체적으로 경험하는 매개로서의 호텔을 지향하기 시작했죠.
* 관련 기사: 라까사호텔 서울, 자연과 문화· 디자인 담아 새 단장 오픈(테넌츠뉴스, 2018.12.3)
저는 서비스 디자인에서 여섯 가지 가치가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 효용성: 기본 욕구를 더 나은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다.
- 일관성: 사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기대한 수준의 가치를 누릴 수 있다.
- 직관성: 서비스를 구매했을 때 누리게 되는 가치를 누구나 빠르고 쉽게 파악할 수 있다.
- 확장성: 서비스를 구매하고 이용하는 경험이 일상에서 영감을 주는 체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정체성: 서비스를 구매하고 누림으로써 내가 원하던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다.
- 호혜성: 고객, 사용자, 공급자는 물론 지역사회에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그중 호텔이라는 호스피탈리티 산업에서는 다음 세 가지 조건(효용성, 일관성, 호혜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호텔 속의 서비스 디자인
[콘텐츠 발행일: 2019.09.19]
라이프스타일은 삶의 일부입니다. 고객의 삶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찾는 사람들을 연결해야 합니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는 커뮤니티, 네트워크, 공동체를 지향해야만 합니다. 제품을 만들던 브랜드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지향하면서 호텔과 카페 등 호스피탈리티 산업으로 진입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과거 비일상의 공간을 지향하던 호텔들마저 일상을 담아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2011년 카사미아가 61개 객실을 갖춘 호텔 '라까사(La Casa)*'를 가로수길에 오픈하고 작년에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처음 문을 열 때는 '도심 속의 휴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일상과 비일상의 단절을 컨셉으로 삼았지만, 신세계그룹이 인수한 후 새로운 디자인으로 다시 문을 열 때는 '도심 속으로의 여행(Journey to the City)'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습니다. 서울이라는 지역을 총체적으로 경험하는 매개로서의 호텔을 지향하기 시작했죠.
* 관련 기사: 라까사호텔 서울, 자연과 문화· 디자인 담아 새 단장 오픈(테넌츠뉴스, 2018.12.3)
저는 서비스 디자인에서 여섯 가지 가치가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 효용성: 기본 욕구를 더 나은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다.
- 일관성: 사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기대한 수준의 가치를 누릴 수 있다.
- 직관성: 서비스를 구매했을 때 누리게 되는 가치를 누구나 빠르고 쉽게 파악할 수 있다.
- 확장성: 서비스를 구매하고 이용하는 경험이 일상에서 영감을 주는 체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정체성: 서비스를 구매하고 누림으로써 내가 원하던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다.
- 호혜성: 고객, 사용자, 공급자는 물론 지역사회에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그중 호텔이라는 호스피탈리티 산업에서는 다음 세 가지 조건(효용성, 일관성, 호혜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효용성은 "새로운 서비스를 디자인했을 때 그 서비스가 없었던 과거와 비교할 때 더 나아진 것이 있느냐?"에 대한 대답입니다. 모빌리티 시장에 비유하여 말씀드리자면, 우버(Uber)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용자들은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한 플랫폼에 환호했습니다. 승객이 지불해야 할 요금을 사전에 예상하고 기사가 제공하는 서비스 품질을 직접 평가할 수 있는 모빌리티 서비스는 처음이었으니까요. 사용자로부터 낮은 평점을 받은 드라이버에게는 운행이 매칭되지 않는 구조를 통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금요일, 강남역이나 이태원 한복판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하면 번번이 실패합니다.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면서, 기사가 원하는 승객을 골라 태우고 요금을 더 요구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납니다. 우버나 타다 등의 모빌리티 서비스는 수요가 많은 시간대에 평소보다 더 높은 요금을 책정하여, 운행에 참여하는 서비스 공급자(기사)를 늘리고 이를 통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춥니다.
모빌리티와 마찬가지로 호텔업은 서비스업입니다. 공실률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객을 어떻게 모을 것인지, 제한된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효용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방문객을 위한 공간으로 호텔을 제한하고 운영할지 혹은 방문객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시설로 공용공간을 설계하고 객실만 투숙객을 위해 운영할 것인지 의사결정이 필요하죠. 호텔이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한다면 객실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방문객이 함께 사용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효용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효용성을 갖춘 서비스라고 하더라도 운영을 지속할 수 없다면 잘 기획된, 설계된 서비스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일관성입니다. 사용할 때마다 기다리는 시간이 다르거나 요금이 들쭉날쭉하다면, 일관성에 손상을 입은 셈입니다. 한국에서는 '풀러스(Poolus)'와 '럭시(Luxi)'라는 카풀 기반 승차 공유서비스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제가 '풀러스' 드라이버로 모빌리티 서비스에 참여했던 2017년, '풀러스'는 한국에서 이제 막 태동하던 승차 공유서비스 업계의 이단아였습니다. 공격적인 프로모션 덕분에 사용자(라이더)는 택시 요금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죠. 서비스 공급자(드라이버)는 운행할 때마다 주어지는 인센티브, 주유 쿠폰 스탬프 등 금전적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택시 조합의 강력한 반대, 현행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 여론 등에 풀러스는 점점 프로모션을 줄여나갔습니다. 플랫폼 서비스에서 중요한 것이 수요와 공급 사이의 탄력적인 균형감각입니다. 인센티브가 줄자 서비스 공급자가 줄고 요금할인쿠폰이 70%에서 50%, 50%에서 30%로 줄면서 풀러스를 호출하는 사람도, 호출을 받을 사람도 없어지게 되었죠.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는 서비스는 결국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호혜성이 필요합니다. 호텔은 지역사회와 공생하기 위한 복합문화공간이자 커뮤니티로 기능해야 합니다. 지역을 고려하지 않고 외부에서 찾는 관광객만을 염두하고 만든 호텔은 예상치 못한 위기상황을 견뎌낼 힘이 없습니다.
작년 10월, 강제노역 배상에 대한 대법원판결 이후 올여름 일본은 두 차례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을 강행했습니다. 한국에서는 'NO재팬'으로 대표되는 반일감정이 고조되어 일본제품을 사지 않고 일본에 가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국가 간의 역사 인식 차이에서 시작된 경제외교 문제가 사회적 분위기로 이어져 일본 여행을 취소한다는 건 불과 몇 달 전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입니다. 일본 소도시를 찾는 주요 관광객이던 한국인의 발걸음이 줄면서 일본 지자체 관계자들은 노선이 더 축소될까 우려해 한국 항공사에 노선 유지를 요청하는 상황입니다.*
* 관련 기사: 일본 지자체, 한국 관광객 줄까 노심초사 (JTBC, 2019.8.6)
한국 호텔 산업 역시 미국과 중국 간의 첨예한 외교 문제 사이에서 '사드(THAAD)* 사태'라는 이름의 위기를 맞이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인 관광객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내리던 석촌호수 주변의 관광버스들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중국인 관광객들을 겨냥해 만드는 대로 팔리던 객실은 텅텅 비게 되었습니다. 지역을 담아내고 지역으로부터 사랑받는 방법에 대한 고민 없이 설계된 공간이 속수무책으로 외면받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
새롭게 지어진 공간들이 그 지역에 녹아들어 주민들이 오가며 들르는 곳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호텔이 자리 잡은 지역 주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려는 태도가 있었다면 과연 객실이 텅텅 비었을까?
지역을 바라보는 것은
고객이 공간을
찾아오도록 만드는 방법입니다
호텔은 물론 에어비앤비 등 여행 관련 비즈니스가 지역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에 맞는 공동체를 만들면 새로운 고객을 불러오기 위해 따로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시·지역을 연결하는 커뮤니티를 찾는 고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비스 디자인은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새로운 서비스가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철저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에게만 오롯이 집중하고, 지역주민과 환경 등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못한다면 단 한 번의 위기로 서비스는 외면받게 됩니다.
모두에게 공평한 무인양품의 서비스 디자인
무지 호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텔의 핵심 컨셉이자 브랜드인 무인양품의 사업 철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989년 무인양품 제품 개발·생산·판매를 책임지는 상품개발본부를 성공적으로 이끈 후 2008년부터 무인양품 회장을 맡은 가나이 마사아키 회장은 '단순하게, 양심에 따라, 조화로운 삶'을 강조하며 물처럼 누구에게나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것이 브랜드의 지향점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러한 철학은 무지 호텔에도 반영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호텔은 도시가 아닌 브랜드에 주목해왔습니다. '어떤 이름을 가진 호텔이냐?'가 호텔의 수준을 결정했습니다. 고객들에게는 호텔 브랜드가 곧 경험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작용했습니다.
무지 호텔은 이런 흐름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브랜드보다 먼저 도시에 주목했고, 도시의 색깔을 온전히 담아낸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운영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과 어울려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어쩌면 지역에 주목하는 호텔을 기다려왔는지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무지 호텔을 비롯해 도시와 지역 커뮤니티에 주목하며 문을 연 호텔들은 이제 기다려서 예약할 만큼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에이스 호텔과 트렁크 호텔도 같은 계열의 고민을 했다.
무지 호텔은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서 가치가 강력한 무인양품을 컨셉으로 삼아 기획·디자인된, 도시의 커뮤니티입니다. 호텔 프런트가 있는 6층은 아틀리에 무지 긴자와 연결된 덕분에 투숙객보다 방문객 비중이 높습니다. 호텔에 투숙하지 않아도 호텔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일상과 비일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브랜드가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더 많은 사용자가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무지 호텔은
공평함을 핵심가치로 삼았습니다선전, 베이징과 긴자를 관통하는 무지 호텔의 디자인 컨셉은 '화려하지도, 천박하지도 않은'입니다. 애초부터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이 적당하고 담백한 여관이 모델이었습니다.
무지 호텔 베이징·긴자의 객실 숫자와 레스토랑 좌석 숫자는 모두 UDS가 결정했습니다. 사업성을 구현하기 위해 고민한 부분은 객실 숫자입니다. 그렇게 무인양품은 무지 호텔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으로도 충분한' 수준의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하면서 최대한의 객실을 설계했습니다. 특별한 날에만 가는 장소가 아닌 일상 속 커뮤니티로서 누구에게나 충분하고 공평한 호텔을 만들었습니다.
A부터 I까지 9가지 타입의 객실은 저렴하지 않지만 호화스럽지도 않습니다. 투숙 인원, 방문 목적에 따라 투숙객이 유연하게 객실을 고를 수 있도록 79개 객실을 동일한 결로 설계했습니다. 시간이나 가격 때문에 조식을 호텔에서 먹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6층의 무지 포켓이나 지하 1층의 무지 다이너에서, 혹은 1층의 베이커리와 식품 매대에서 간단하게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마감 시간 전에는 재고소진을 위해 식품은 20%, 베이커리는 30%씩 할인해 판매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무지 호텔을 예약하기 위해서는 공식 홈페이지를 이용해야만 합니다. UDS가 운영하는 하마초 호텔(Hamacho Hotel) 등 다른 호텔들은 부킹닷컴이나 트립닷컴 등 OTA(Online Travel Agency) 사이트를 이용해 입지·시설·가격을 비교하고 예약 시에는 할인과 적립은 물론 등급에 따른 혜택까지 누릴 수 있지만 무지 호텔은 예외입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호텔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력했기 때문입니다. 1년 내내 동일한 가격으로, 무인양품의 멤버십 프로그램인 무지 패스포트(MUJI Passport) 등급이 높든 낮든, 기존에 투숙한 내역이 있든 없든 가격은 동일합니다. 서비스도 동일합니다. '쉼'이라는 것을 충족하는 데 필요한 적정 수준의 서비스를 동일한 가격으로 모두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OTA를 이용하면 더 많은 잠재고객에게 객실을 노출함으로써 공실률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 15% 수준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다 보니,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한 고민이 깊어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무지 호텔이 좋아서 호텔을 찾는 고객보다 OTA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할인과 적립, 등급에 따른 프로모션 때문에 예약하는 고객 비중이 늘어날 겁니다. 이렇게 되면 브랜드가 아닌 가격에 따른 선택이 호텔 투숙객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죠.
이런 상황에서는 무지 호텔, 더 나아가 무인양품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호텔을 운영하는 방면에서는 편리하지만, 브랜드가 지향하는 지점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죠. 무지 호텔은, 그리고 무인양품은 브랜드 정체성을 택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호텔
디자이너로서 가져야 할 이상적인 감각은 '당연히 그곳에 있어야 하는데 웬일인지 아직까지 없었던 것'을 보충한다는 정도의 감각입니다.
- 넨도(Nendo) 대표 오키 사토(Oki Sato)
긴자는 도쿄에서도 가장 번화한 거리인 만큼 새로운 것들로 가득합니다. 긴자의 거리를 걷다 보면 시선을 빼앗는 매력적인 가게와 물건들이 가득하기에 무지 호텔 긴자는 투숙객이 호텔로 다시 돌아올 때, 지쳐 있으리라 생각했죠. 자연스럽게 호텔은 편안하게 투숙객에게 충분한 쉼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디자이너의 역할은 역설적으로 '디자인을 많이 하지 않는 것', 정말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비워두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득 차 있다면, 덜어내고 비워서 숨을 쉴 수 있게 배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호텔이 위치한 지역, 무지 호텔 긴자를 찾는 사용자 행동에 무게중심을 두는 디자인입니다. 이는 디자인 역량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디자인을 단순하게 하는 것, 디자인하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것, 생략하고도 전달하는 것은 디자인의 정점입니다. 어떤 종류의 글을 쓰더라도 핵심만 응축해 쓰는 것이 가장 어려운 법이니까요.
무지 호텔은 긴자의 호텔들이 놓치고 있던 것, 긴자에 있어야 했던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묵묵하고 또 묵직하게 디자인이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베이징에 이어 긴자에서도 무지 호텔 디자인을 담당한 이토 케이아치 UDS GM(General Manager)은 "'덜 디자인하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서 신중하게 소재를 선택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호텔의 본질인 '쉼'을 위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소재를 지역에서 찾았습니다. 눈으로 전달되는 자연스러운 느낌뿐만 아니라 피부에 닿았을 때 전해지는 따뜻함까지 제공하기 위해 나무를 바탕으로 흙과 돌, 그리고 직물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모든 무인양품 매장과 제품, 무지 호텔 선전과 베이징에서도 받을 수 있는 인상이고, 일상의 소재이자 브랜드를 상징하는 재료입니다.
무인양품의 원칙, 무지 호텔의 원칙
언제 방문하더라도, 누구랑 방문하더라도, 방문 횟수와 무관하게 동일한 요금을 지불한다는 호텔 예약 정책 또한 고객 경험에 일관성을 불어넣는 요소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호텔, 호스텔 등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UDS는 수익을 내는 운영방식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UDS가 운영하는 대부분의 호텔은 OTA를 통해 예약이 가능합니다. 즉 언제 방문하느냐, 어떤 경로로 예약하느냐, 몇 번째 방문하느냐에 따라 같은 상품과 서비스를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인양품은 OTA를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동등한(Fair for All Guests)'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언제든 동일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는 호텔 운영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OTA를 통해 예약한다면 인터넷 검색에 능한 고객, 출장으로 이미 여러 차례 OTA를 이용한 고객은 상대적으로 무지 호텔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가격 비교에 서툴거나 인터넷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사용자라면 같은 상품, 서비스를 더 비싼 요금으로 이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일하게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 아닙니다.
맥도날드, 버거킹 등 많은 퀵서비스 레스토랑에서 최저임금 인상, 맞춤형 주문요구 등 환경변화에 따라 디지털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키오스크 이용이 낯설고 서툰 노년층은 그 앞에서 주문을 망설이기도 하고 사용법을 몰라 주문하는 데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쓰기도 합니다.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시간당 소화할 수 있는 주문량을 늘려 수익성이 좋아질 수는 있겠지만, 이것을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무인양품은 무지 호텔을 수익 극대화를 위한 또 하나의 사업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무인양품처럼, 수익에 도움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해 온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이런 브랜드는 매출을 높이는 것 보다 대신 지금까지 지켜온 철학, 브랜드가 만들고자 하는 세계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늘리는 것을 선택합니다.
브랜드가 엄격한 기준에 따라 서비스를 디자인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의도적으로 배제해야 합니다. 신규고객을 유입하는 숫자, 신규고객 평균 매출을 셈한 결과를 쫓느라 브랜드 철학과 세계관에 공감해온 팬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의사결정에 있어 고객을 중심에 두는 것은 중요합니다. 고객 경험의 원칙을 정했으면, 그 원칙을 우선해야 합니다.
다음 무지 호텔은 어디일까?
- 2018 MUJI HOTEL SHENZHEN
- 2018 MUJI HOTEL BEIJING
- 2019 MUJI HOTEL GINZA
- 2020 MUJI HOTEL ______
지난 6월 무지 호텔에서 묵어보기 전에는, 무인양품과 UDS가 일본 도쿄에서 네 번째 무지 호텔을 선보일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세 번째 호텔의 이름 때문이었는데요. '선전', '베이징'에 이어 도쿄가 아닌 '긴자'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오픈한 두 호텔은 도시 이름을 무지 호텔 뒤에 붙였지만, 긴자는 도쿄의 한 지역의 이름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은 무지 호텔 시부야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상상했었죠.
아직 외부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무인양품과 UDS는 네 번째 무지 호텔로 아시아 밖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오픈한 세 도시의 무지 호텔을 통해 무인양품은 호텔 방문객들의 데이터를 축적했고 아시아 밖이라면 어떤 도시가 적정할지, 지역의 색깔을 담아내기에 어떤 공간과 소재가 어울릴지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