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포트는 시작 버튼이다

Editor's Comment

- PUBLY에서 2017년 5월 발행된 <한국 벤처캐피탈리즘 - VC가 말하다>를 바탕으로 2018년 9월 <NEW MONEY -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람들, 한국 VC 이야기>가 출간되었습니다. 개정 리포트는 책을 기반으로 정리한 것으로, 슬라이드로 발행된 기존 리포트의 사전 자료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업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각과 견해에 깊이를 더했습니다.
- 러닝메이트 팀이 제작한 사전 자료부록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러닝메이트다. 러닝메이트는 벤처캐피탈리스트(Venture Capitalist, 이하 VC) 강동민, 오종욱, 오지성, 장동욱, 장호영, 정무일 이렇게 여섯 명으로 구성된 현역 VC 그룹이다. 각각 다른 회사에서 일하지만 새로운 산업을 연구하고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2014년부터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고 있다.

고백하건대
우리는 수혜자들이다

2018년 봄, 이 책의 서문을 쓰는 지금도 우리는 벤처시장의 불황을 겪어보지 못했다. 우리가 투자한 기업들의 가치가 공격받고, 펀드 수익률이 급락하고, 유동성이 마르고, VC들이 직업의 안정성을 고민해야 하는 그런 시기를 아직 겪지 못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늘 호황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처음부터 우리는 VC로서 먹고사는 문제 이상에 관심이 많았다. 경제성장이 성숙한 사회에서는 탈성장 중심의 사회적・정치적 가치관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피어나듯, 지금까지의 벤처캐피탈과 다른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는 우리가 PUBLY 디지털 콘텐츠 <한국 벤처캐피탈리즘>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이 리포트는 시작 버튼이다

Editor's Comment

- PUBLY에서 2017년 5월 발행된 <한국 벤처캐피탈리즘 - VC가 말하다>를 바탕으로 2018년 9월 <NEW MONEY -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람들, 한국 VC 이야기>가 출간되었습니다. 개정 리포트는 책을 기반으로 정리한 것으로, 슬라이드로 발행된 기존 리포트의 사전 자료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업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각과 견해에 깊이를 더했습니다.
- 러닝메이트 팀이 제작한 사전 자료부록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러닝메이트다. 러닝메이트는 벤처캐피탈리스트(Venture Capitalist, 이하 VC) 강동민, 오종욱, 오지성, 장동욱, 장호영, 정무일 이렇게 여섯 명으로 구성된 현역 VC 그룹이다. 각각 다른 회사에서 일하지만 새로운 산업을 연구하고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2014년부터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고 있다.

고백하건대
우리는 수혜자들이다

2018년 봄, 이 책의 서문을 쓰는 지금도 우리는 벤처시장의 불황을 겪어보지 못했다. 우리가 투자한 기업들의 가치가 공격받고, 펀드 수익률이 급락하고, 유동성이 마르고, VC들이 직업의 안정성을 고민해야 하는 그런 시기를 아직 겪지 못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늘 호황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처음부터 우리는 VC로서 먹고사는 문제 이상에 관심이 많았다. 경제성장이 성숙한 사회에서는 탈성장 중심의 사회적・정치적 가치관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피어나듯, 지금까지의 벤처캐피탈과 다른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는 우리가 PUBLY 디지털 콘텐츠 <한국 벤처캐피탈리즘>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PUBLY 프로젝트에 임하기 전에 우리는 프리미어파트너스의 정성인 대표를 찾았다. 그는 국내에서 최초로 LLC형 벤처캐피탈*을 만든 선구자이자 존경받는 시니어 VC 중 한 명이다. 우리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고초를,정성인 대표가 벤처캐피탈업계를 걸어온 길을 이야기를 통해서나마 함께 걸어보고 싶었다. 정성인 대표는 우리 뜻을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우리가 과거를 닮으려 하지 말고 온전히 미래만 보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그래도 된다는 용기를 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프로젝트의 상당한 부분을 우리 마음대로 가설을 세우고, 대안을 제시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주주가 곧 경영자이자 펀드매니저인 형태로, 투자와 이익 배분에서 주주와 출자자 간 이해 상충 문제가 없어 그만큼 독립적으로 조합을 운영할 수 있다. 국내 대표적인 LCC로는 프리미어파트너스, 캡스톤파트너스 등이 있다.

 

첫걸음부터 순탄한 건 아니었다. 2016년 가을, 우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역삼동 스톤브릿지벤처캐피탈* 사무실에 처음 모였다. 점심시간부터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까지 회의가 이어졌다. 회의실 한쪽 벽은 노란 메모지로 도배되었다. 다른 쪽 벽은 푸른 마커펜으로 적은 여러 아이디어로 가득하다가, 한순간에 텅 비곤 했다.

* 국내 유명 벤처캐피탈 회사, 당시 러닝메이트 멤버인 오지성의 소속 직장

©Rawpixel/Unsplash

프로젝트를 통해 벤처캐피탈 산업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비전을 제시하길 바랐는데 콘텐츠의 컨셉과 생각의 방향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날 새벽, 12시간 넘게 머리를 맞댄 끝에 우리는 겨우 출발점을 정했다.

왜 벤처캐피탈리즘
프로젝트를 하는가
사실 우리는 레거시(legacy)가 될까 두려웠다. 과거의 유산을 뜻하는 이 단어는, 벤처 생태계에서 성장이 정체된 기업이나 기술 경쟁력을 상실한 채 현상 유지만 하는 기업을 흔히 일컫는다.

 

VC들은 늘 새로운 창업자를 만난다. 그들이 계획하는 미래를 듣고, 신뢰가 가면 자금을 투자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고, 타당한지 판단하는 게 우리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미래에 투자한다면서 정작 '나의 일은 레거시 벤처캐피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업계가 호황을 맞고 벤처캐피탈을 알리는 미디어와 PR도 늘어나며 이미지가 과거보다 훨씬 좋아진 점은 사실이지만, 한국의 벤처투자 생태계가 산업적 성숙과 사회적 성숙을 잘 이루고 있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생각이 필요했다. 그것을 철학이라고 해야 할지, 비전 혹은 소명이라고 해야 할지 정의하기는 어려웠지만, 우리를 위한 생각이 필요했다. '벤처캐피탈리스트'는 우리에게 단순히 생계를 위한 직업이 아니다. 인센티브를 목적으로 삼아 일종의 기술을 단련하는 일도 아니다. 그 자체로 거대한 흐름이다. 우리가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더 의미 있게 지탱할 철학 혹은 비전 혹은 소명이 필요했다. 우리가 VC로서 세워야 할 바른 목표와 가치가 필요했다.

 

처음에 고백했듯 러닝메이트는 벤처캐피탈 산업 호황의 수혜자다. 닷컴 버블(dot-com bubble)이 꺼지고 2000년 초반부터 2005년까지 국내 벤처투자 산업은 극심한 불황을 겪었다. 이후 약 10년 동안 서서히 기지개를 켠 벤처투자 산업은 2010년 이후 바이오 산업과 모바일 산업의 급성장과 함께 큰 호황기를 맞이했다. 시장이 좋으면 사람부터 뽑는 법. 한창 새로운 VC 채용 수요가 있던 2014년, 우리는 벤처캐피탈업계에 입문했다. 만약 벤처캐피탈 산업이 호황기가 아니었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PUBLY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된 건 2017년 봄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디어에 빈 곳이 많았다. 마치 골조만 세운 건물 같았다. 경험이 부족한 탓에, 방향이 잘못되거나 세세한 검증이 필요한 부분도 많았다. 어떤 방식과 콘텐츠로 실행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존경하는 선배들의 조언이 필요했다. 라이트하우스컴바인인베스트 고병철 대표, 소프트뱅크 문규학 대표, DSC인베스트먼트 윤건수 대표, 세마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허진호 대표. 이렇게 선배 네 명을 찾아갔다. 그렇게 이어진 발길은 뜻밖에도 '콘텐츠'가 되었다.

 

2017년 3월 31일, 러닝메이트와 네 선배는 최인아책방에서 '한국 벤처캐피탈리즘-VC가 말하다'라는 대담을 열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선배들의 경험과 통찰은 우리에게 영감과 깨달음이 되었다. 이날의 기록은 2017년 3월 PUBLY 디지털 콘텐츠 <한국 벤처캐피탈리즘>로 발행되었고, 2018년 9월 <NEW MONEY -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람들, 한국 VC 이야기>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이기문 기자가 편저로 동참해 문장을 다듬고, 업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각과 견해에 깊이를 더한 책을 다시 PUBLY 개정판 리포트로 발행한다.

(왼쪽부터)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 강동민 수석팀장, KTB네트워크 고병철 상무, 소프트뱅크벤처스 문규학 대표, DSC 인베스트먼트 윤건수 대표, 세마트랜스링크 허진호 대표

2년 전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와 지금 우리는 많이 달라졌다. 강동민과 오지성은 뮤렉스파트너스라는 새로운 벤처캐피탈을 창업했고, 정무일은 라이트하우스컴바인인베스트로 장호영은 JKL파트너스로 이직했다. 장동욱은 카카오벤처스에, 오종욱은 캡스톤파트너스에 여전히 다니고 있다.

 

그사이 우리는 꽤 많은 벤처투자를 했고 만족스러운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좀 더 많은 사람과 생각을 나누고 싶다. 좁은 의미로는 벤처투자 산업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고, 넓은 의미로는 우리가 종사하는 한국 벤처캐피탈업계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쉽고 정확하게 설명하고 싶다.

우리는 주어진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산업은 빠르게 변화한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기준도, 요구하는 역량도 빠르게 바뀐다. 따라서 과거의 틀 안에서 성취를 추구하면 단기적으로는 우수한 성과를 달성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거대한 변화의 요구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이 흐름을 자신의 기회로 만들려면 변화부터 읽어야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산업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변화 속에 내가 주도할 요소가 있는지를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가급적 누군가와 같이해야 한다. 자신이 속한 직장을 너머 산업 내외에서 좋은 파트너들을 구성해 변화를 읽고 대응할 팀을 만들어야 한다. 이 리포트가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교류하는 방식에 대해 영감을 주고, 변화를 시작하는 버튼이 되길 바란다.

왜 우리는 벤처투자의 미래를 이야기하는가

이 리포트는 한국 벤처캐피탈 산업에 관한 이야기다. 벤처캐피탈이 어떤 일을 하는지, 산업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일하는지에 대해 소개한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벤처캐피탈이나 벤처투자 개론서가 없다. 비록 이 책은 개론서라 칭할 만큼 포괄적이고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현재 VC로 활동하는 현역들이 산업 현황을 설명하고, 실제 투자한 사례를 다룬다. 따라서 독자가 국내 벤처투자 산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VC 개론'에서는 벤처투자 산업 전반을 설명한다. 벤처캐피탈, 벤처투자는 크게 대체투자(Alternative Investment)*의 한 영역이다. 투자 산업을 다루는 책이나 강의에서 벤처투자는 큰 위험을 감수하는 비상장 주식 투자 정도로 짧고 막연하게 다루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투자 이론을 학습했거나 실제 금융권 또는 투자업계에 종사자라도 벤처캐피탈의 실제를 알기는 어려울 거라고 짐작한다. 이 장은 벤처투자 산업을 처음 접하거나 금융권이나 스타트업에 종사하며 벤처캐피탈을 접한 독자가 산업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 주식이나 채권 같은 전통적인 투자 상품이 아닌 다른 대상에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대상은 사모펀드, 헤지펀드, 부동산, 벤처기업, 원자재, 선박 등 다양하다. (출처: 한경 경제용어사전)

펀딩, 투자, 사후 관리벤처캐피탈 산업은 크게 펀딩, 투자, 사후 관리(회수)라는 세 개의 시장으로 구성된다. '펀딩: 나 사실 돈 이렇게 마련했어', '투자: 빅 위너스가 되는 법', '사후 관리: 질적인 도약이 필요하다' 리포트는 각 시장의 국내 현황을 분석하고, 시장별 문제점을 진단한다. 나아가 한국 벤처캐피탈 산업이 각 시장별로 앞으로 성장 방향으로 삼아야 할 대안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리포트에서 다루는 각 시장의 문제의식과 대안은 어디까지나 우리 러닝메이트의 생각이다. 그동안 국내 벤처투자 산업에 대해서 '시장 분석 > 문제 제기 > 대안 탐색' 과정을 공론화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우리는 벤처캐피탈 산업 전반의 성장을 위해서 공론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성장하는 벤처투자 산업과 역사

벤처투자 산업은 성장하고 있다. 2017년 기준 한국의 벤처투자펀드 규모는 20조 원을 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에 처음으로 시장 규모 10조 원을 돌파한 이래 7년 만에 두 배 성장한 것이다. 벤처캐피탈협회 통계에 빠진 해외 펀드나 은행, 증권사 등의 직접투자를 고려하면 시장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한다. 벤처투자 산업 성장에 따라 벤처캐피탈 회사들도 호황을 맞이했다.


벤처캐피탈은 벤처투자 자금을 운용하는 회사다. 주로 창업 7년 이내의 중소기업, 벤처기업에 주식이나 전환사채 등의 형태로 자금을 투자한다. 자기자본으로 투자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정부, 연기금 등으로부터 벤처투자 자금을 받아서 펀드 형태로 운용한다. 한국 벤처캐피탈은 법률상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 한국벤처투자조합 운영 LLC, 신기술금융회사 등으로 나눌 수 있으나 시장에서는 모두 벤처캐피탈이라 통용하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2016년 12월, 벤처캐피탈 두 곳이 IPO에 성공했다. TS인베스트먼트, DSC인베스트먼트가 그 주인공이다. 국내 벤처캐피탈의 IPO는 16년 만의 일이었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 닷컴 벤처 붐을 지나간 이후로 벤처캐피탈들은 꽤 긴 침체기를 겪어야 했다. 2010년 이후 바이오, ICT(Information&Communication Technology) 서비스 등의 벤처 산업이 고속 성장하면서 벤처캐피탈 산업도 동반 성장기를 맞이했다. 2015년 이후에는 벤처캐피탈의 성장이 더욱 가속화되면서 벤처캐피탈 네 곳이 IPO에 성공했고, 2018년 8월 현재에도 미래에셋벤처투자 등 벤처캐피탈 다섯 곳 이상이 IPO를 준비하고 있다.

벤처캐피탈은 왜 탄생한 걸까벤처캐피탈은 비상장 초기 기업에 투자해 고위험을 감수하는 대신에 성공했을 때 큰 수익을 노리는 자본이다. 변혁을 일으킬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키우고, 지원하는 모험적인 금융기관이다. 벤처캐피탈의 기본 성질이 '하이 리스크(High Risk, 고위험) 하이 리턴(High Return, 고수익)'을 추구하는 모험가 기질을 타고났다는 말이다.

 

이 모험은 자본주의가 생겨난 이래 늘 있었던 것이다. 멀게는 "남들이 가지 않는 대서양 항로를 타고 떠나 인도 향신료를 가지고 오겠다"는 콜롬버스에게 돈을 건넨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이 벤처캐피탈의 조상이다. 19세기 후반 등장한 투자은행(Investment Bank, IB)이 이 역할을 했다.

 

투자은행은 전자, 화학 등 새로운 기술을 들고 나온 기업에게 옛날 은행처럼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대신,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하고 인수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소수의 돈 많은 부자들의 판단과 선심에 기댄 투자였다. 오죽했으면 엔젤(Angel) 투자자*란 말이 나왔을까. 가깝게는 현재 세계를 주름잡는 정보 기술(IT) 기업을 초창기에 지원했던 야심만만한 자본이 있다. 돈만 빌려준다고 벤처캐피탈이 될 수는 없다.

*기술력은 있으나 자금이 부족한 창업 초기 벤처기업에 자금 지원을 해주는 개인 투자자 (출처: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그렇다면 벤처캐피탈은 
다른 금융기관과 뭐가 다를까?

벤처캐피탈은 그냥 기업이 아닌,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벤처기업은 그저 똘똘한 몇 명이 뭉쳐 차린 동네 구멍가게가 아니다. 혁신성을 무기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거나 기존 시장을 휩쓸어버릴 장악 능력이 엿보이는 기업이다.

 

이 혁신성은 새로운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 등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기술과 시장 변혁기에 벤처기업들이 등장한다. 흔히 알고 있듯 '디지털 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컴퓨터 기술이 태동하면서 기존 제조업이나 농업 등 산업과는 다른 성격의 시대가 펼쳐졌다. 금융 또한 기업에 맞게 진화를 거듭해 오늘날 벤처캐피탈이 생겨났다.

 

'벤처캐피탈'이란 명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생겨났다. 1940년대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조르주 도리오(Georges Doriot)가 ARD(American Research & Development)란 투자 회사를 만들고 초기 기업인 DEC (Digital Equipment Corporation)에 투자하면서 생겨났다고 알려졌다. ARD는 1950년대 중반 미니컴퓨터를 만드는 DEC에 주식을 얻는 형태로 투자해 원금의 수백 배에 달하는 이익을 얻는 성공을 거뒀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투자 방식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다. 문제는 투자의 대가로 주식의 70%를 벤처캐피탈에 쥐어줬던 DEC가 피눈물을 흘렸다는 것.


이 시기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에 벤처캐피탈들이 다수 생겨났다. 이후 투자자와 투자기업, 벤처캐피탈은 투자 방식과 방향, 절차에 대한 진통을 거듭하며 모두 이득을 얻고 시장과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는 지금의 투자 형태를 만들어나갔다.


1950년 이후, 미국 서부 스탠퍼드대학 인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캐피탈은 비로소 만개했다. 1950년대 초 실리콘밸리에 스탠퍼드대학 연구단지가 문을 열고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가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세우면서 새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IT 기업으로 성장한 휴렛 팩커드(HP), 인텔(Intel)도 이때는 야심만만한 청년 벤처기업으로 시장에 나왔다. 벤처캐피탈들도 군침을 흘리며 속속 자리를 잡았다.

 

1950년대 후반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Palo Alto)에 벤처캐피탈 DGA(Draper, Gaither & Anderson)가 서부 처음으로 등장한 이래 1970년대 실리콘밸리에 KPCB(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 세쿼이아 캐피탈(Sequoia Capital) 등 세계적인 벤처캐피탈들이 사무실을 차렸다.

©Drew Beamer/Unsplash

벤처기업의 성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돈과 서비스를 가장 잘 제공해줄 수 있는 회사는 은행이나 돈 보따리를 찬 전주(錢主)가 아닌 벤처캐피탈이었다.

 

최근엔 벤처캐피탈이 하는 방식과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액셀러레이터(Accerlerator),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도 이런 흐름을 타고 나온 것이다. 2000년대 중반 등장한 액셀러레이터는 돈뿐만 아니라 경영 방법과 전략까지 돕는 곳으로, 보통 벤처캐피탈보다 투자액은 적지만 갓 창업한 기업에 투자해 보육자 역할을 한다. 투자한 기업에 대한 사후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요즘 벤처캐피탈 역시 투자기업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다양한 경영 코치나 IPO, M&A와 같은 산파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벤처캐피탈은 보통 정부나 민간에서 자금을 조달한 뒤 벤처펀드를 조성한다. 이후 펀드 자금을 7~8년간 운용하며 벤처기업들에 투자해 그 수익을 투자자와 나눈다. 벤처기업은 초기 투자를 받은 뒤 계획된 성장 단계에 따라 투자금을 계속 유치한다. 예를 들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초기 제품 개발, 시장 진출, 시장 확대, IPO나 M&A과 같은 투자금 회수 단계를 위해 매 단계 투자를 받고 그 대가로 주식의 일부를 내놓는다. 이렇듯 기업이 성장하면서 필요한 단계별 투자를 '시리즈(Series) 투자'라 부른다.

한국 벤처캐피탈이 맞닥뜨린 문제

기지개를 켠 벤처캐피탈의 의기양양함 뒤에 드리워진 그늘에서 사람들은 쑥덕거린다.

그동안 한국 벤처캐피탈이 한 게 뭐가 있어. 정부 자금에 의존해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자생력을 가진 비즈니스 구조도 만들지 못했잖아.

글로벌 벤처캐피탈에 비해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대부분의 벤처캐피탈이 독자적 성장 비전 없이 오로지 정부 출자금 공모를 통한 양적 팽창에만 집중하는 것도 사실이다. 산업의 양적 성장에 비해 벤처캐피탈에서 일하는 운용역들의 전문성도 부족한 현실이다.

 

본질로 돌아가보자. 벤처캐피탈은 창업 생태계와 자본시장을 잇는 교두보다. 스타트업은 벤처캐피탈의 자금을 통해 성장하고 IPO 등을 통해 자본시장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한다. 창업 생태계, 자본시장의 활성화는 벤처캐피탈 산업의 성장 근원이다. 좋은 창업, 스타트업의 공급이 충분해야 벤처캐피탈은 투자를 다양하고 건강하게 할 수 있다.

 

또한 증권, 자산 운용 등의 거대 자본시장이 벤처기업, 코스닥시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벤처캐피탈 투자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 벤처캐피탈 산업의 성장은 근본적으로 창업 시장, 자본 시장의 양적・질적 발전과 함께한다. 단기적인 정부의 벤처캐피탈 투자자금 증대만으로는 충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벤처캐피탈은 진입과 퇴출이 가장 빈번한 금융업이다. 지난 30년 동안 약 282개 신생 벤처캐피탈이 설립되었고 162개 벤처캐피탈이 폐업하거나 퇴출되었다. 금융업 중에서는 비교적 낮은 최소 자본 규모, 간단한 진입 규제 덕분에 많은 기업과 개인이 벤처캐피탈을 창업한다. 무주공산인 새로운 영토에서 저마다 칼을 뽑아들지만, 우수한 영주로 성장하기란 목숨을 내건 싸움에서 수차례 이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벤처캐피탈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회사 내부, 산업 외부에 무엇이 필요한가 절실한 고민을 해야 한다. 단순히 신생 벤처캐피탈 진입 장벽만 낮추어서는 오히려 시장의 혼돈만 가중할 위험도 있다.

한국 벤처캐피탈의 고민과 질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거물 취급을 받는 대표적인 벤처캐피탈 DFJ(Draper Fisher Jurvetson)의 팀 드레이퍼(Tim Draper)는 벤처캐피탈과 프라이빗 에쿼티(Private Equity)산업이 16년 단위로 호황과 불황을 맞이한다고 진단한다.

 

팀 드레이퍼가 제시한 의견에 따르면 불황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산업이 떠오르고 이와 함께 벤처캐피탈 산업이 성장한다. 하지만 8년이 지나면 구조 조정의 칼바람이 불면서 기업을 청산하는 프라이빗 에쿼티 산업이 떠오른다고 이야기한다. 벤처캐피탈과 반대인 프라이빗 에쿼티는 투자자로부터 중장기적인 자금을 조달해, 구조 조정이 필요한 부실 기업과 채권에 투자하는 청부사이자 기업들의 유품 정리인이다. 이렇게 호시절에도 불황의 그림자는 호시탐탐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Rene Böhmer/Unsplash

최근 몇 년간 벤처캐피탈은 스타트업 중심의 산업 환경 변화, 충분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위험 자본을 선호하는 자본시장 트렌드, 다양한 분야의 인재 유입 덕택에 양적・질적으로 성장해왔다. 동시에 새로운 벤처캐피탈이 늘어나고 벤처투자를 실행하는 기타 개인 투자자・기업・기관의 수도 많이 증가했다.

 

모두가 호황을 말하고 있는 지금 이 시기야말로 역설적으로 벤처캐피탈 산업의 다운 사이클, 즉 업황 하락을 예견해야 할 때다. 동시에 벤처캐피탈 산업의 질적 개선과 미래를 고민해야 할 가장 최적의 시기가 아닐까. 이제부터 업에 대한 본질적 고민, 경쟁력에 대한 깊은 고민, 회사 운영의 체질 개선 없이는 개별 벤처캐피탈이 경쟁력을 잃은 채 전반적인 침체 위기로 추락할 수 있다. 러닝메이트는 현시대 한국 벤처캐피탈이 맞이한 세 가지 거대한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 환경, 자본 시장,
벤처캐피탈 내부에 대한 변화다
우선 지금까지 벤처캐피탈 산업이 정부의 재정 정책과 창업시장 트렌드, 코스닥 시황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의존형 산업'이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운용 시스템 개선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운용 인력의 전문성을 계발하려는 체계적인 경영 전략을 세웠는지 비판적으로 물어야 한다.

 

우리는 벤처캐피탈의 업을 펀딩, 투자, 사후 관리라는 세 가지 분야로 나누고 각각의 현재를 분석했다. 기존의 관습적 패러다임과 전략 문제를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은 무엇인가도 모색했다. 이후 벤처캐피탈업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시니어 VC 네 분과 이 문제들에 대해 토의했다.

 

이 책에서 다룬 젊은 VC의 새로운 질문과 생각, 고민과 반성이 창업 생태계와 자본시장을 보다 건강하고 활기차게 구축하는 데 미약하게나마 일조하기를 고대한다. 러닝메이트 역시 이 산업에 몸담고 먹고사는 이들이기에 더욱더 그렇다. 튼튼한 토대 위에 자란 나무의 열매가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다. 그리고 열매를 오래 수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