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은 작곡가의 영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배수정 A&R의 역할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요? 각 레이블에서 자신들의 아티스트를 위한 레퍼런스를 제게 주면, 저는 레퍼런스를 작곡가에게 전달합니다. 그러면 작곡가는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새 곡 작업을 시작하거나 자신이 기존에 만든 곡에 작업을 더해 다시 보내오죠. 이런 곡 상태를 '데모'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데모를 레이블에 보냈을 때, 데모 그대로 마음에 들어 한 번에 레이블에 팔리는 일도 있지만 대개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칩니다. 레이블이 직접 수정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저와 작곡가가 의견을 나누면서 방향을 잡아가곤 했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프리스틴 V의 '네 멋대로(Get it)'의 데모는 지금 발매된 곡과 달랐습니다. 처음 듣고서 조금 수정하면 타이틀곡으로도 가능성이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제가 먼저 곡의 구성을 바꾸고, BPM을 조금 더 빠르게 만들어 스웨덴에 있는 프로듀서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걸스 힙합의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라는 제 의견을 반영해 프로듀서는 아주 멋지게, 무려 24시간 만에 트랙*을 발전시켜 보내왔습니다. 이후 제작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줬고, 조금 더 대중의 귀를 사로잡을 만한(hooking) 악기 소리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추가해 훅(hook)에 신시사이저 소리를 추가해 곡을 완성했습니다.

* 곡에서 보컬의 목소리를 뺀, 악기들만으로 이루어진 곡.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이라고 부르기도 함

배수정 저자가 A&R로 참여한 프리스틴V의 앨범 트랙리스트 ©Pledis Entertainment

가끔은 작곡가들에게 제 취향의 곡을 써달라고 조르기도 합니다. 정확히 트랙을 만드는 '프로듀서'에게 이런 요청을 많이 하는데요. 한 번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인 '투스텝(2-step garage)'*을 써달라고 했고, 고맙게도 프로듀서들은 좋은 트랙을 만들어줬습니다. 저는 그 트랙을 듣고 냉큼 스웨덴의 싱어송라이터에게 탑라인을 요청했고, 덕분에 너무나 좋은 투스텝 곡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