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말

오랫동안 출판계에 몸담았던 저자는, 여행지에서 서점을 찾아다니는 부류는 결코 아니라고 말합니다. 서점 여행으로 설렘을 느끼기엔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사람일 테지요. 누구나 '자기 분야'가 되고나면 더 이상 취미가 아니게 되고, 즐거움과 낭만보다는 걱정과 소위 오지랖이 앞서게 마련입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 "사양 산업" 이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가며 무려 20년 동안, 책으로 먹고 사는 일을 해온 사람이라면, 아마 책이라면 지긋지긋한 순간도 몇 차례 겪었을지도 모르죠. 저자는 무심한 듯,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 취재를 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미 황폐해진 '책'의 세계를 충분히 경험한 사람으로서, 왜 그 제안에 응한 것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원고료 때문에, 일 리는 없고. 시애틀이란 도시에 친숙해서? '책'의 필드에 대해 꽤 아니까? 어느 서점이 정말 안 망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서점 창업할 것도 아닌데 왜 궁금했을까요. 징글징글하게 안 팔리는 책이 세계 어디라고 다를까요. 특히나 전 세계 오프라인 서점의 공적公敵, 아마존 본사가 자리 잡은 시애틀의 서점들이라니. 저자는 쿨한 마음으로 시작한 취재였지만, 결국 원고가 나오기까지 많이 고통스러웠다는 후일담을 덧붙였습니다.

아마존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대학 마을(University Village)에 '아마존 북스'라고 불리는 아마존의 첫 오프라인 서점을 2015년 11월에 열었다. ⓒShutterstock.com저자는 이미 알고 있던 것에 더해, 시애틀의 우중충한 날씨와 공기, 역사를 머금은 낡은 책들의 냄새, 각기 다른 서점들의 공간 이동과 흥망성쇠, 개성있는 주인들의 인물평까지 버무려 단순한 여행기 이상의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업자'가 아니라면 무심히 지나칠 만한 사소한 인테리어 묘사에서부터, 인터뷰 대상들의 미세한 표정까지 살펴냅니다. 장을 넘길수록 도통 취재기가 밝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빼면, 이 글은 꽤나 성공적인 서점 탐방기입니다.

 

책의 첫 목차를 장식한 '시애틀 미스터리 북숍'은 30년 가까이 역사를 이어온 서점으로 소개되었지만, 이 책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폐업을 결정합니다. 그야말로 맥 빠지는 시작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저자는 이 서점 소개를 뒤로 미루지 않았습니다. 왜 망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 서점 주인의 마지막 블로그 글의 전문을 옮겨왔을 뿐입니다.

 

책 속 다른 서점들의 목소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점 주인들은 아마존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고, 책을 찾지 않는 사람들, 기껏 찾아서는 인터넷에서 사는 사람들, 치솟는 임대료와 경기 불황을 원망하고, 입만 열면 침울한 이야기입니다. 서점 주인인 저로서는 '과한 감정이입은 아닐까', 의심도 하며, 때론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만,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안타깝게도, 우리의 특파원은 한국의 서점들만큼 시애틀의 서점들도 고군분투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외에, 뾰족한 생존 비법을 알아내기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나마 잘 나간다 싶은 시애틀의 서점들은 과감히 취재 목록에서 제외하기까지 합니다. 실상, 저자도 포기한 것일까요. 동네 서점을 살릴 방법,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게 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의외로 많은 독자들이 잊기도 하지만, 서점 역시 숭고한 일이기 이전에 '자영업'이자 '장사'라는 것을, 시애틀의 서점 주인들은 한시도 잊지 않습니다. 대략 '망하는 장사' 1순위인 서점을 뚝심으로, 때로는 타협과 호소로, 또는 창의력과 개성, 새로운 필요의 발명으로 헤쳐 나가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시애틀의 책방 지기들이 고민한,
'아마존이 할 수 없고,
독립 서점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한 과정들이
이 콘텐츠에 담겨 있습니다

어떤 것은 듣자마자, '저걸론 안 될 텐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끔은 좋다, 기발하다,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오르기도 합니다.

 

그들의 생존기를 읽다가 문득, 비록 뾰족한 수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해도, 저자가 '살아남아 있는' 그들의 모습을 한 편의 콘텐츠로 담아낸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이 콘텐츠의 제목이 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서점인지도요. 이 글은 오로지 책이 많이 읽히고, 팔리고, 만들어지고, 쓰이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으로 매일 밤 잠 못 이루는 서점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원고를 쓰던 무렵, 어느덧 저자는 시애틀 주민이 되었고 낯설고 힘든 식당 일을 시작합니다. 어느덧 책의 세계와는 한참 멀어져, 지친 하루 끝에 집에 돌아오면 책 한 줄 넘어가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우연히 깨닫게 되죠. 내 삶만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점차 잃어가는 것들이 무엇인지를요. 그것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사람을 대하는 일에 무감각해지는 자신, 점점 납작해져가는 마음과 좁아지는 시야였습니다.

 

흔히 여유가 있어야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 진정한 여유를 찾기란 더욱 어려워집니다. 책이 줄 수 있는 것은 내 삶에 대한, 타인과 세상에 대한 적절한 거리감이라는 것. 저자의 말마따나 '삶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고 그 너머를 보려는 노력과 삶을 더 잘 살기 위함, 그게 바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데 저는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Unsplash

시애틀의 서점주인들 역시, 아마도 모객이나 매출 증대에는 큰 도움이 안 될 타국의 인터뷰어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 주었습니다. 어렵지만 여전히 서점은 사람을 향하는 곳, 사람과 사람을 모으고, 직접적인 대화가 아니더라도 관계를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곳, 동네 사람들의 터전이자 누군가에겐 진정한 자유를 선물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두 마음으로 이해하고, 이를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한마음으로, 저자 역시 멋진 서점의 일면 대신 그 뒷면의 그림자들을 기꺼이 내보였습니다. 저 역시 이 모두와 한마음이 되어, 당신에게 이 콘텐츠를 추천하고자 합니다.

 

잠 못 이루며 고민하던 저자는 결국,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서점 주인이 되기보다는, '그냥 서점에 들렀다가 책 한 권씩 사 들고 나오는 서점 손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책을 산 서점 손님은, 어느 인생의 가장 지치고 외로운 날, 때로는 정신없고 뜬금없는 어느 순간, 한 권의 책이 머리를 망치로 두들기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그 후의 인생은 전과 다른 모습일 겁니다.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서점주인 같은 황당한 꿈을 꾸게 될 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 큐레이터 김소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