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슬러의 재판과 비평의 의미
1878년 11월 26일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1834~1903)가 당대 최고의 평론가이자 옥스퍼드 미술대학 교수였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을 고소해 재판이 열렸다. 때는 1870년대의 영국 빅토리아 시대, 런던에는 진보적인 화가들을 위한 그로스베너 미술관(Grosvenor Museum)이 막 문을 열었다. 휘슬러는 그 전시관에 8점의 작품을 내걸었는데 그 중 하나가 <검정과 금빛 야상곡: 떨어지는 불꽃(Nocturne in Black and Gold – The Falling Rocket, 1875)>이라는 작품이다.
그는 작품 가격으로 200기니(현재 가치로 약 45만 원)를 책정하였다. 문제는 이 그림을 본 러스킨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평이었다. 러스킨은 이 작품을 두고 다음과 같은 일침을 가했다.
교양없고 자만심에 가득 찬 작가가 고의로 사기행각을 벌이려고 하는 것이기에 미술관에 이 자의 작품을 전시해서는 안 된다. 대중의 면전에 물감을 들이 붓고서는 200기니라니, 이런 광대가 있나!
휘슬러의 이 작품은 평평한 화면에 정성을 다해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그림을 새겨 넣는 전통적인 의미의 치열한 장인정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붓으로 화면 위에 물감을 뭉개거나 뿌려 놓았을 뿐이다.
숭고하거나 가치있는 이야기거리로 사회에 어떤 식으로라도 이바지하는 그림을 선호했던 러스킨 입장에서 이건 그야말로 장난, 호작질에 불과한 작품이었다. 러스킨은 값만 비싸게 달아놓으면 분명 대단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무지한 사람들에게 작품 선택에 대한 기준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