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작가들에게 필요한 것

패션 에디터이자 스타일리스트로 일했던 이자벨라 블로우(Isabella Blow)는 우연히 세인트 마틴의 졸업전에 참석한 한 학생의 옷에 매료되었다. 그 옷은 후에 '사비지 뷰티(savage beauty)'라는 용어의 원천이 된 알렉산더 맥퀸이 만든 것이었다.

 

이자벨라 블로우는 그 옷을 구입할 형편이 되지 않았지만, 맥퀸에게 사정해 일주일에 100파운드씩 지불하는 조건으로 5000파운드나 되는 옷들을 50회로 나누어 구입했다. 이자벨라의 이 같은 안목은 후에 맥퀸을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 미술대학 졸업전시에 작품을 출품한 데미안 허스트를 알아보고 그의 작품을 구입한 찰스 사치의 일화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영국의 광고 재벌이자 세계적 컬렉터인 찰스 사치를 통해 미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데미안 허스트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예술가들을 알아보는 컬렉터의 눈과 힘, 그리고 그들이 작가들을 향해 보내는 열렬한 정신적, 경제적 후원이 새내기 작가들의 잠재력을 세계적으로 키워내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한국의 졸업전시회는 어떨까? 미대 졸업전시회가 예비 작가들의 '예술가적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부모와 가까운 친구에게나 초대장을 보내는 가족잔치가 되어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국내 메이저 경매사가 개인전 경력이 한 번도 없는 햇병아리 작가들에게 시장 데뷔 기회를 주는 획기적인 시도를 한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