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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나는 무인양품입니다

생각노트 생각노트 외 1명
나는 무인양품입니다
무인양품 유라쿠초점에 가다

이제는 서울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게 된 무인양품(無印良品 MUJI). 과연 그곳에서 또 새롭게 발견할 무언가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무인양품을 찾았습니다. 제가 찾아간 곳은 도쿄 긴자 유라쿠초점이었습니다. 이곳은 지난 2015년 9월에 리뉴얼했습니다.

무인양품 유라쿠초점 ©생각노트이곳은 무인양품 플래그십 스토어 중 하나로 전 세계 무인양품 매장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무인양품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을 총망라하여 보여주는 곳이자, 한 발 앞서 새로운 실험을 해보며 소비자 반응을 체크하는 테스트 베드(test bed, 시험무대) 매장이기도 합니다. 닛케이트렌디넷은 유라쿠초점 리뉴얼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유라쿠초점 재개장의 가장 큰 테마는 '책과 잡화가 융합한 매장'

잡화가 주력 상품이던 무인양품은 2015년 '책'에 주목했습니다. 무인양품이라는 브랜드와 그들이 가진 제품 철학을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동시에 잡화를 사용하는 방법(how to)을 더욱 적극적으로 제안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방 도구 옆에 요리책을 배치하여 '주방 도구와 함께 이런 요리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떠세요'라며 제안하기도 하고, 여행용품 옆에 여행책을 배치해서 새로운 여행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더 깊고 풍성한 연결성을 갖고 콘텐츠를 제안하기 위해서는 책만 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무인양품은 매장 안에 숍 인 숍(shop in shop) 개념으로 무지 북스(MUJI BOOKS)를 운영합니다. 지금은 일본의 무인양품 플래그십 스토어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무지 북스를 처음 선보인 곳이 바로 무인양품 유라쿠초점이었습니다.

그만큼 이 매장은
'가장 앞선 무인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무인양품의 새로운 변화를 발견했습니다. 그 속에서 고객들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무인양품의 모습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무인양품표 청과 매장

유라쿠초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인양품이 자랑하는 잡화도 의류도 아닌, 바로 '청과' 코너입니다. 무인양품에서 채소와 과일을 팔다니, 저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인양품이 제안하는 신선 식품이라는 사실에 끌려 '뭔가는 다르겠지' 하는 마음으로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무인양품 청과 매장 모습  ©생각노트무인양품은 2017년 7월부터 유라쿠초점에서 청과 매장을 최초로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인양품답게 이곳에 있는 농산물들은 일반적인 농산물이 아닙니다.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농산물은 화학 비료와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거나 저농약으로 재배한 것으로, 무인양품이 직접 매입하여 산지 직송으로 가져옵니다. 주로 제철 농산물 중심으로 상품군을 꾸리고 있으며, 도쿄의 전통 채소와 같은 진귀한 상품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판매하는 채소와 과일에 잘 어울리는 조미료, 과자, 식료품 등 약 300종의 아이템도 함께 판매하고 있죠.

무인양품이 직접 산지 직송으로 가져오는 농산물 ©생각노트

의미 있어 보인 점은
'생산자의 스토리 전달'에
가장 집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청과 매장에서는 지금 소비자가 마주한 농산물을 생산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재배했는지 영상으로 보여주며, 생산자가 직접 추천하는 요리법을 POP 광고*로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냥 당근이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재배되었는지 알고, 이런 방법으로 요리해서 먹으면 더 맛있는 당근'이 되는 거죠.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시골에 있는 농부가 직접 알려주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 point of purchase advertisement. 매장에서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보여주기 위한 광고 형식

무인양품 청과 매장에서 전시 및 재생 중인 영상  ©생각노트

청과 매장 곳곳에는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각각의 농산물이 지닌 스토리와 맥락을 담은 영상들은 생산자 인터뷰와 생산지의 모습을 전달하면서 고객이 마주한 농산물을 풍부하게 설명해주고 있었죠.

 

* <무인양품 유라쿠초 카세 농장의 채소(無印良品 有楽町 加瀬農園の野菜)> ©MUJIglobal

 

* <무인양품 유라쿠초 T.Y.FARM의 채소(無印良品 有楽町 T.Y.FARMの野菜)> ©MUJIglobal

 

이를 보면서 한국의 마트에서도 채소와 과일마다 '생산자의 이야기'를 알려주는 영상 디스플레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이 가장 실제적인 느낌이 있지만, 공수가 많이 든다면 사진으로라도 POP 알림판을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할 만한 국내 사례도 있습니다. 조합원 1,088명이 모여 만든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이 대표적입니다. 이곳은 완주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농민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으로, 직매장 여섯 군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표 매장인 모악산 직매장은 연간 24만 명이 방문하고 연간 52억 원의 매출을 거두는, 일명 '잘 나가는 협동조합'입니다.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의 특징은 모든 농산물마다 생산자의 이름과 연락처가 바코드와 함께 찍혀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생산자의 사진으로 만들어진 POP 알림판도 있으며, 재배 과정을 알려주는 안내판도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농산물 배송과 상품 진열도 생산자가 직접 합니다. 당연히 상품은 산지 직송일 수밖에 없고 생산자와 고객은 매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고객에게 해당 농산물이 어떻게 재배되었는지, 또 어떻게 요리하면 맛있는지 등의 정보를 직접 이야기해줍니다. 고객도 생산자를 직접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더욱 신뢰하게 되며, 이는 구매로 이어집니다.

 

고객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구매할 상품에 대한 궁금함을 갖고 있습니다.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믿을만한 것일까,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와 같은 질문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의 '스토리'로 보여줄 때
상품에 담긴 정성과 진정성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무인양품은 왜 채소를 팔기 시작했을까?

청과 매장을 둘러보면서 들었던 또 다른 생각은 '왜 무인양품은 농산물과 식품에 주목했을까'였습니다. 식품 코너는 마트가 아닌 이상 공수가 상상 이상으로 많이 들어갑니다. 수요 예측을 면밀히 하지 않고서는 상품을 신선하게 유지하기 힘들기도 하죠. 그런데도 무인양품은 잡화, 책 카테고리를 넘어 이제는 '식품' 카테고리를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무인양품은 청과 매장을 오픈하게 되었을까?  ©생각노트여러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우선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라는 무인양품의 철학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무인양품은 지금까지 굉장히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여 왔습니다. 잡화에서 더 나아가 무지 투 고(MUJI to GO, 여행용품 브랜드), 무지 북스(서점)로 카테고리를 확장한 것이 최근 2~3년 안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전까지는 계속 잡화에 머물러 있으면서 카테고리 확장에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죠.

무인양품이 오픈한 여행 잡화 브랜드 무지 투 고  ©無印良品무인양품이 오픈한 숍 인 숍 형태의 서점 무지 북스 ©無印良品

그러던 무인양품이
카테고리 확장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이유는
'종합적인 라이프스타일을
큐레이션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의식주로 대표되는 기본적인 라이프스타일 중 무인양품은 '의'와 '주' 분야에서는 의류와 잡화, 그리고 인테리어 제품으로 제안을 하고 있으나, '식'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마땅한 제안 영역이 없었죠. 고객 역시 3개 영역으로 구성된 기본 라이프스타일 중 식 분야에서는 무인양품의 제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무인양품은 가정 간편식을 대량으로 출시하고 있으며, 일본의 도시 곳곳에 카페 앤 밀 무지(Cafe & Meal MUJI)를 오픈하여 음료와 함께 식사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라쿠초점에서는 빵을 판매하는 동시에 청과 매장에서 파는 채소를 활용한 수제 채소 수프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무인양품에서 선보인 카페 겸 식당 카페 앤 밀 무지 ©無印良品카페 앤 밀 무지에서는 커피, 빵뿐만 아니라 식사도 가능하다. 수십 개의 반찬이 있고, 이 중에서 3~5개를 골라서 먹는 방식이다. 반찬은 주기적으로 바뀌며 청과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철 농산물을 활용해 반찬을 만들기도 한다. ©Nicole Poi/PinkyPiggu이 모든 행보가 '식' 분야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기 위함입니다. 농산물은 식생활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재료이다 보니 이러한 도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무인양품이 어쩔 수 없는 '오프라인 리테일러'라는 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무인양품의 오프라인 의존도는 매우 높습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고객에게 상품을 선보입니다. 이 말은 무인양품의 최대 장점이 오프라인 공간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무인양품은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에서 확실히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지 않을까요? 그것이 바로 농산물 판매입니다.

 

이는 아마존(Amazon)이 유기농 식품 업체 홀푸드(Whole Foods)를 인수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떻게 해도 식품 분야는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 오프라인 매장을 인수하는 방향으로 온⋅오프라인을 연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약, 온라인에서 계속 강점을 가질 수 있었다면 홀푸드를 인수하지 않고 온라인에서 판매와 배송을 했을 겁니다. 현재 아마존에 있는 다른 상품들처럼 말이죠.

 

만약 오프라인에서 무언가 준비해볼 계획이라면 무인양품 청과 매장처럼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강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아이템이 무엇일지 먼저 생각해본다면 좋겠습니다. 온라인에서 상품 구성이나 유통 인프라가 정말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고객의 발걸음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유도할 법한 무언가를 말이죠.

무인양품이 하면 주거 공간도 달라진다

무인양품 매장에 가면 수많은 인테리어 소품들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침대, 매트리스, 소파, 책상과 같은 가구부터 이불, 베개, 쿠션 등과 같은 패브릭 제품, 그리고 주방 및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집안에서 필요한 대부분의 인테리어 제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유라쿠초점에서 인테리어 제품의 단순 판매를 넘어서 이를 종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주거 공간을 제안하는 무지 인필 제로(MUJI INFILL 0)라는 서비스를 발견했습니다. 무지 인필 제로는 리노베이션* 주택을 판매하는 서비스입니다. 주택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노후화된 건물을 고쳐서 새로운 주택을 만들고 이를 고객에게 판매하는 방식입니다.

* 기존 건축물을 개·보수해 사용하는 것으로, 오래된 건축물에 재투자하여 부동산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 무지 인필 제로 소개 영상 ©MUJI


과정은 이렇습니다. 노후화된 주택 또는 맨션을 무인양품이 사들인 뒤 해당 공간의 인필(INFILL, 인테리어와 설비)을 모두 제거하고 주택 상태를 확인합니다. 이후 보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공사를 진행하고 최소한의 주거 기능만 추가한 뒤, 마무리 설비 과정을 거칩니다. 이렇게 노후화된 주택은 완전히 다른 모습, 즉 제로(0) 베이스 위에서 새로운 주택으로 탄생하죠. 그리고 주택 내부는 무인양품 인테리어 제품을 활용하여 장식합니다.

 

무인양품은 리노베이션 주택에 들어갈 입주자 모집을 받았습니다. 건물을 새로 짓는 과정이 없고 꼭 필요한 설비만 넣었기에 같은 입지 조건의 신축 건물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하게 책정되었습니다. 또한, 리노베이션 건물이지만 몇십 년을 더 사용해도 끄떡없을 정도로 골격과 보강 공사를 진행했기에 안전성과 편의성 부분에서 신축 건물이나 다를 바 없었죠. 이런 이유로 무지 인필 제로는 완판 행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지 인필 제로에 입주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자신의 오래된 집을 무지 인필 제로 프로젝트를 통해 리노베이션하거나, 현재 무지 인필 제로가 리노베이션하고 있는 여러 주택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무지 인필 제로 프로젝트를 보면서
재활용(recycle)에 집중했던
무인양품의 브랜드 철학이
주거 공간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인양품은 고객이 어떤 점을 고민하는지 찾고 이를 해결해줄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선보였습니다. 주택 수요자 입장에서는 집값이 저렴한 곳을 찾으면서도 오래된 건물은 꺼리는 마음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주택은 인테리어나 자재의 노후화와 더불어 시설 안전성 측면에서도 염려되는 부분도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무인양품이라는 브랜드 이름이 안전성과 편의성을 담보하며 리노베이션했기에 주택 수요자의 걱정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객 중에는 다양한 무인양품 인테리어 제품으로 어떤 인테리어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MUJI interior'라고 검색하면 무인양품 제품으로 인테리어하는 방법에 대한 글이나 이미지가 꽤 많이 나옵니다. 무인양품은 이를 놓치지 않고 리노베이션이 완료된 주택의 가구와 생활용품 등을 무인양품 인테리어 제품으로 채운 이미지를 촬영해 올렸습니다.

 

지금 당장 주택을 사려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무인양품 제품을 활용한 다양한 인테리어를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잠재 고객의 관심을 끌어당긴 것이죠.

 

* 무인양품의 집 ©mujihouse/Instagram

 

이쯤 되면 무인양품이 인테리어 컨설팅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습니다. 리노베이션된 집을 판매하고 일반 집에서도 무인양품 제품을 이용해 인테리어할 수 있도록 상담해주는 서비스죠. 제가 무인양품 유라쿠초점에 방문했을 때도 한 부부가 컨설팅을 받고 있었는데요. 고객이 스스로 인테리어 정보를 구하러 다닐 필요 없이 이 상담을 통해 인테리어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무인양품스러운'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고객이라면 무인양품 컨셉을 그대로 집 안에 가져올 기회이기도 하죠.

무인양품에서 인테리어 컨설팅을 받고 있는 고객들 ©생각노트여기서 더 나아가 무인양품은 숙박업도 시작했습니다. 2018년 1월 18일 중국 선전에 오픈한 무지 호텔(MUJI HOTEL)을 시작으로 직접 호텔을 만들어 거주 공간 실험의 연장선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무지 호텔 역시 무지 인필 제로처럼 무인양품의 생활잡화와 인테리어 제품으로 객실을 꾸몄습니다.

 

* 중국 선전에 오픈한 무지 호텔. 무인양품 인테리어 제품으로 공간을 구성했으며 최소한의 기능만 넣어 간결함의 생활 미학을 보여준다. ©MUJI 

무지 호텔은
공간 연구소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78개의 객실은
78개의 집을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무지 호텔에서는 무인양품 제품으로 거주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보여주고, 다양한 성별과 연령층으로 이루어진 투숙객의 공간 사용 패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무인양품은 새로운 제품 개발과 인사이트를 뽑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브랜드 캠페인 'I am MUJI'

I am MUJI

무인양품에서 새롭게 진행하는 브랜드 캠페인의 이름입니다. 처음 본 순간, 정말 네이밍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무인양품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곳인 만큼, 고객이 직접 '내가 무인양품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인정하는 것처럼 큰 영광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캠페인은 무인양품이 2016년부터 시작한 글로벌 캠페인입니다. 무인양품이 주목한 것은 '자기표현(self-expression)'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현대인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무인양품은 '자신을 설명해줄 수 있는 자기표현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무인양품은 자신들의 철학을 공유하고 자신들이 만든 상품과 함께 하는 고객들이 스스로 '나는 무인양품이다'라고 외치게끔 유도합니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로 #IamMUJI를 쓰도록 하는 것도 같은 목적입니다.

 

저는 특히 I am MUJI를 소개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카페 앤 밀 무지를 둘러싼 통유리 창에 윈도우 형태로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요. 통유리 창밖에서 카페 앤 밀 무지를 보는 사람이 내부에서 식사 중인 사람들을 보면서 스티커에 쓰인 I am MUJI도 보는 방식입니다. 현장에서 무인양품을 즐기고 있는 고객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담으면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계속 변함에 따라 '나는 무인양품입니다'라고 외치는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거죠.

I am MUJI 캠페인을 설명한 안내판 ©생각노트윈도우 시트지를 통해 카페 앤 밀 무지에서 식사를 즐기는 고객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생각노트 만약 무인양품처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추천해주는 비즈니스를 지향한다면, 그곳에서 만든 상품을 구매한 고객들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떤 평판을 받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무인양품이다'라는 선언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은 어떤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를 무인양품이라는 브랜드로 한꺼번에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고객이 브랜드로 자기 자신을 설명할 때
그 브랜드는 확고한 정체성(identity)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MUJI BOOKS가 서거한 작가를 기리는 방법

무지 북스에 가면 통일된 형태의 표지를 가진 수십 권의 책이 서가 한쪽에 꽂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책을 꺼내 표지를 살펴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책의 저자가 이미 서거했다는 점입니다. 책 표지에는 작가의 출생연도와 사망연도가 함께 적혀 있습니다.

무지 북스 전면 매대에 있는 This Month's Features ©생각노트이것은 서거한 작가들을 기리는 무지 북스만의 방식입니다. 작품 대부분은 작가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고객 입장에서 처음 접하는 작가도 많다고 합니다. 무지 북스는 안타까운 작가들과 작품들이 이대로 묻히는 상황을 바꿔보고자 서거한 작가의 작품 중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것들을 골랐습니다. 이것이 This Month's Features라는 타이틀을 달고 소개된 것이죠.

프로필 사진과 함께 어떤 작가였는지 가볍게 설명되어 있다. ©생각노트여기 놓인 책들이 잘 팔린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 코너는 무지 북스가 묵묵히 추진하고 있는 작업입니다. 고객들은 이 섹션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요?

무인양품이 책을 대하는 태도,
단순히 책을 많이 팔기 위함이 아니라
책에 대한 진정성과 발견성을 높이고자
노력한 진심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인상이 결국 무인양품이라는 브랜드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책을 구매하는 감성적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이든지 진정성이 느껴지는 비즈니스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매장 안으로 들어온 100엔 커피

무지 북스 매장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매장 한가운데 커피 머신이 있고 그 주위로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기한 사실은 커피 가격이 단돈 100엔, 한화로 환산하면 1,000원 정도의 가격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저렴한 원두를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상급 원두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모든 무지 북스 매장에서 볼 수 있는 100엔 커피 머신 ©생각노트이것은 다른 서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우선, 서점에서 커피를 제공하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서점 안에 커피 매장이 들어와 있는 경우가 많죠. 사실 서점은 이 방식을 더 선호합니다. 매장 임대료를 통해 수익을 거둘 수 있고, 음료와 자리 등을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은 매장 내 회전율을 높일 수 있어 더 많은 고객을 끌어올 수도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고자 하는 고객들의 요구를 채워줄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게 되는 거죠.

 

하지만 무지 북스는 커피 머신을 매장 안으로 가져왔습니다. 게다가 비싸게 파는 것도 아니고, 원두 비용 정도를 충당할 수 있는 최소 가격만큼만 받고 있습니다. 무지 북스는 왜 이런 시설을 갖췄을까요?

무지 북스는 책은 물론
더 나아가 '책을 읽는 사람들'을
디스플레이하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무지 북스는 단독 매장이 없습니다. 모두 무인양품 매장 안이나 옆에 있습니다. 저는 매장을 둘러보며 쇼핑을 하다가 무지 북스 테이블에 앉아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는 사람들을 보았는데요. 그 모습을 보니 매장에 대한 호감도 더 커졌습니다.

 

책이 아닌 책을 읽는 사람들을 디스플레이하면서, 무인양품은 책과 잡화가 적절히 융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잡화점에 머물렀던 무인양품이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무인양품에서 저렴한 커피를 마시며 책을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고객들이 단골이 되는 현상도 일어났죠.

 

이 사례는 크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많은 리테일러들이 '상품' 판매를 최우선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점점 '상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모으면서 자연스럽게 판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스타필드 코엑스에 생긴 별마당 도서관도 비슷한 예입니다. 코엑스 안에서 가장 노른자 땅이라고 할 수 있는 센터를 임대사업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을 오픈하여 책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디스플레이했습니다.

 

이 작업 이후, 신기하게도 다른 복합 쇼핑몰에 뺏겼던 고객들이 다시 코엑스를 찾았고, 그들이 별마당 도서관에 머무르면서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어 오히려 전체 매출이 높아지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상품을 판매하는 곳은 이제 너무 많아졌습니다. 상품보다 상품을 사용하는 고객을 디스플레이할 방안을 찾으며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매출 증대를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이 되었습니다.

스타필드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생각노트

#16 나는 무인양품입니다 마침.

독자 리뷰

현재까지 505명이 읽은 콘텐츠입니다

  • 김**

    와! 이 리포트는 독자를 위한 디테일과 배려로 꽉 차있군요.
    좋은 글과 많은 정보에 감사합니다.

  • 민**

    가보지 못한 곳들을 생생하게 전달해주신 점.
    '디테일'이라는 관점으로 일본의 장점들을 장소마다의 특징으로 풀어주신 점.
    읽다가도 공유하고싶은 충동에 지인들과 페이지 공유할만큼 이 글이야말로 디테일했음.

<사소한 디테일3> 공공장소에서 발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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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9개의 챕터 180분 분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