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안정감
앞서 수평적 조직문화의 요소들로 솔직함, 자율성, 그리고 존중을 꼽아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먹는다고 자리 잡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원래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강압적인 조직에서 팀장이 갑자기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솔직한 의견을 말해 달라'고 한다면 과연 의견을 내놓을 팀원이 있을까요? 허심탄회하게 말했다가 어떤 뒤끝이 있을지 모르는데 말입니다.
수평적 조직문화가 자리 잡으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그중 대표적으로 심리적 안정감, 공통된 가치관과 원칙, 그리고 신뢰에 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존중에 관한 글에서 고성과 팀의 조건을 찾고자 한 구글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를 소개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리더였던 줄리아 로조브스키는 프로젝트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성공적인 구글 팀의 다섯 가지 요소'로 아래와 같이 정리했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첫 번째 항목, 심리적 안정감입니다. 심리적 안정감은 솔직함과 자율성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위에 표현된 '리스크를 감수한다'와 '서로 앞에서 취약점을 드러낸다'는 다음과 같이 솔직함과 자율성과 연결됩니다.
각각의 질문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생각해보겠습니다.
리스크를 감수한다(1): 실패/실수할 수 있는가?
급변하는 사회에서 100%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매 순간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충분한 자료를 토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그나마 참고할 자료가 있더라도 미래가 생각한 대로 풀릴지는 모를 일입니다.
심리적 안정감
앞서 수평적 조직문화의 요소들로 솔직함, 자율성, 그리고 존중을 꼽아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먹는다고 자리 잡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원래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강압적인 조직에서 팀장이 갑자기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솔직한 의견을 말해 달라'고 한다면 과연 의견을 내놓을 팀원이 있을까요? 허심탄회하게 말했다가 어떤 뒤끝이 있을지 모르는데 말입니다.
수평적 조직문화가 자리 잡으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그중 대표적으로 심리적 안정감, 공통된 가치관과 원칙, 그리고 신뢰에 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존중에 관한 글에서 고성과 팀의 조건을 찾고자 한 구글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를 소개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리더였던 줄리아 로조브스키는 프로젝트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성공적인 구글 팀의 다섯 가지 요소'로 아래와 같이 정리했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첫 번째 항목, 심리적 안정감입니다. 심리적 안정감은 솔직함과 자율성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위에 표현된 '리스크를 감수한다'와 '서로 앞에서 취약점을 드러낸다'는 다음과 같이 솔직함과 자율성과 연결됩니다.
각각의 질문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생각해보겠습니다.
리스크를 감수한다(1): 실패/실수할 수 있는가?
급변하는 사회에서 100%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매 순간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충분한 자료를 토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그나마 참고할 자료가 있더라도 미래가 생각한 대로 풀릴지는 모를 일입니다.
이전 시대의 경영 싸이클은 '계획(Plan) - 실행(Do) - 모니터링(See)'이었습니다. 무언가 계획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의 오차 내에서 실행하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스타트업에서는 '린(Lean)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는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빨리 실행하고 빨리 성공(혹은 실패)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특히 세상에 없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하는 경우, 치밀하게 시장을 분석하며 계획을 세우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린 스타트업의 싸이클은
'창조(Build) -
측정(Measure) -
학습(Learn)'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빠르게 많은 것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라면 어떨까요? 한 번의 실패가 평가와 승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며, 두 번의 실패로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다면 누가 혁신에 도전할까요?
이런 조직에서는 모두가 기존 사업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집중하며 몸을 사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용어로 '보신주의(保身主義)'라 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존에 하던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방법이나 아예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도 아무도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픽사의 에드 캣멀도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강조합니다.
* 픽사가 창의적인 이유 ©태용
이 중 에드 캣멀이 실패와 리스크에 대해 한 말들을 모아봤습니다.*
* 출처: 에드 캣멀, 「창의성을 지휘하라」, 와이즈베리 (2014)
- 경영자의 임무는 리스크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다. 경영자의 임무는 직원들이 리스크를 감수해도 괜찮도록 하는 것이다.
- 실패는 필요악이 아니다. 사실, 실패는 전혀 나쁘지 않다. 실패는 새로운 일을 할 때 반드시 따르는 결과이다.
- 신뢰란 직원들이 일을 망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다. 신뢰란 직원들이 일을 망칠 때조차도 그들을 믿는 것이다.
- 경영자는 만사 매끄럽게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런 목표를 세우면 문제 해결 능력보다는 직원들이 저지른 실수에 따라 직원들을 평가하게 된다.
구글은 자사의 성공 비결을 누구보다도 많이 타석에 서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누구보다 많이 타석에 섰기 때문에 삼진도, 파울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홈런도, 타점도 많습니다.
테슬라(Tesla), 스페이스엑스(SpaceX), 솔라시티(SolarCity), 더 보링 컴퍼니(The Boring Company)에 이어 뉴럴링크(Neuralink)까지, 불가능해 보이는 시도를 연달아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만일 실패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혁신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실수는 어떨까요? 물론 실패와 실수는 다릅니다. 실패가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지만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이라면, 실수는 계획대로 실행하는 것 자체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그렇다면 실수는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닐까요?
특히 실수에 민감한 조직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군대나 병원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정확도가 중요한 조직들에는 실수에 대해 엄격히 책임을 묻는 조직문화가 합당하지 않을까요?
1991년 하버드대에서 조직 행동을 연구하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은 좋은 팀워크와 훌륭한 의료 서비스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종합병원을 돌며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그런데 쉽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자료는 계속 반대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각종 질문에서 팀워크가 좋다고 나온 병동이 오히려 과실률이 높았습니다.
여러 후속 설문과 인터뷰를 통해 진상을 파악해본 결과, 의외의 결론이 도출되었습니다. 팀워크가 좋은 병동이 더 실수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병동에서는 자신의 실수를 더 쉽게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팀워크가 아니라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조직문화였습니다. 만약 당신이 병에 걸렸다면 설령 실수를 했더라도 최대한 들키지 않게 숨기는 병원과, 자신의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고 팀원들과 같이 수습하는 병원 중 어느 병원에 가시겠습니까?
에드먼슨은 박사 논문을 쓰는 동안 많은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조직의 암묵적인 규범, 즉 무엇이든 과감하게 시도해보라고 독려하는 문화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1999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를 '심리적 안정감'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의 리더였던 줄리아에게 조직 규범에 대한 영감을 준 바로 그 논문입니다.
* 출처: 찰스 두히그, 「1등의 습관」, 알프레드 (2016)
레이 달리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실수를 하는 것 자체는 괜찮지만 실수를 덮거나, 분석하지 않거나, 실수로부터 배우지 않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팀원 중 누군가가 실패나 실수를 할 때마다 당신이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내고, 대책 보고서를 내라고 시키면 정확히 반대의 상황이 발생합니다. 팀원은 실수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실수를 당신에게 들키지 않는 데 집중하고, 만약 당신이 알게 되면 재수가 없어서 들켰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조직이 되는 것입니다.
리스크를 감수한다(2): 상사에게 자기주장을 펼 수 있는가?
상사가 A를 지시했는데, 당신이 보기엔 A가 아니라 B가 회사에 더 나은 결정 같다고 해봅시다. 당신이 실무자이며, A와 B의 장단점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 당신은 상사가 이미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A가 아니라 B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좀 더 극단적인 예를 들어봅시다. 만약 상사가 C를 시켰는데, C는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거나 혹은 불법적인 일입니다. 당신은 C가 옳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생존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사에게 거짓 없는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사들부터 우선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앞서 프리딕스의 아이디어를 처음엔 무시했다가 나중에 받아들인 GE 제프리 이멜트의 사례를 알려드렸습니다. 픽사의 에드 캣멀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것만큼 경영자의 시야를 좁히는 실수는 없다', 그리고 '직원들이 회의실보다 복도에서 진실을 얘기한다면, 경영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초창기에 독단적인 스타일로 많은 사람들과 반목했지만, 그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경영하는 것만큼은 본인이 픽사 경영진들보다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 출처: 에드 캣멀, 「창의성을 지휘하라」, 와이즈베리 (2014)
상사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으려면, 틀린 것을 인정해도 자신의 권위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설문조사를 보니, 25%의 응답자들은 공손한 사람은 리더십이 없다고 생각하고, 40%는 일터에서 정중하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함부로 다룰 것이라 생각한다고 합니다.*
* 출처: '무례하고 고압적인 직장상사가 회사를 망친다' (한겨레, 2015.06.22)
상사의 심리적 안정감은
팀원들의 심리적 안정감에
영향을 미칩니다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부하 직원에게 가장 강압적으로 대하고 실적으로 압박하는 상사는 자신도 똑같은 성향의 상사로부터 언제 잘릴지 모르는 압박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상사에게 자기주장을 펼 수 있는지는 상사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른 개인차도 있겠지만 조직 전체의 분위기 영향이 더 큽니다.
이런 주제로 주변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주로 일정한 패턴을 따라가는데, 상사에게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자신의 평소 이미지에 달려 있고,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일을 열심히 하고 상사와의 관계를 잘 구축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자기주장을 낼 수 있는지가 개개인의 업무 능력과 인간관계 관리에 달려 있다는 것 자체가 조직문화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입니다. 때로는 상사에게 미운털이 박힌 사람, 평소에 성과평가 점수가 그리 높지 않았던 사람이 하는 말이 시장의 진실과 가장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대안 없이 불평하지 말라'는 규범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많은 조직에서 채택하고 있는 규칙 중 하나입니다. 물론 무언가 반대 의견을 제시하려는 사람은 당연히 대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대안이 없으면 반대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무언가 마음에 걸릴 때마다 더 나은 대안을 짜내야 한다면, 그 조직은 아무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고 금세 대세에 따르는 분위기로 흘러갈 것입니다.
때로는 좋은 의도로 만든 규범이 사람들의 입을 막기도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속해 있는 조직은 자유롭게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공식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조직은 비공식적인 곳에서 이야기가 돌게 됩니다. 이는 업무의 진행 속도를 늦추며, 사람들 간의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약점을 드러낼 수 있는가?
솔직함에 대한 글에서 약점을 언급하면서 단점(Weakness)과 취약점(Vulnerability)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짚었습니다.* 'Feel safe to be vulnerable'을 의역을 담아 해석하자면 '도움을 받기 위해 자신의 취약점을 동료들에게 공개해도 (역으로 이용당하지 않고) 괜찮은가'의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IT 스타트업인 넥스트점프(NextJump)에서는 이러한 취약점을 '백핸드'라고 표현합니다(테니스에서의 백핸드 맞습니다). 조직원들은 서로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공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로 자신이 어떤 백핸드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백핸드를 갈고닦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밝히고 동료들의 도움을 구합니다.
예를 들어, 말하는 것을 좋아하며 대화를 주도하는 성향의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의 백핸드는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자신의 백핸드를 연습하는 방법은 미팅을 시작하고 20분 동안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 출처: 로버트 키건/리사 라스코 라헤이, 「An Everyone Culture」, Harvard Business Review Press (2016)
고통(Pain) + 회고(Reflection) = 진전(Progress)
성장은 취약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조직 자체가 누군가 취약점을 드러내는 순간 그것을 물고 늘어져 공격하는 분위기라면, 어느 누가 자신의 취약점을 인정하고 연습해서 극복할 수 있을까요? 동료들에게 자신의 취약점을 고백해도 그들이 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줄 것이라는 신뢰가 심리적 안정감의 핵심입니다.
심리적으로 안정되면 노력을 덜하지 않을까?
그런데 관리자 입장에서는 이런 걱정이 들 수도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안정되면 아무래도 일을 덜 열심히 하지 않을까?' 무언가 계속 긴장감을 불어넣지 않으면 조직이 해이해질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평가나 재계약 등으로 협박하는 것은 긴장감보다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업무적으로 긴장하는 것과 심리적으로 불안한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후자는 오히려 일의 몰입을 방해합니다. 겉으로는 부산하게 뭔가 하는 척 보이지만,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좀 더 안정적인 곳을 찾아 틈 나는 대로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있을 것입니다. 협박을 통해 긴장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성과는 성과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놓치는 지름길입니다.
조직에 공포가 존재한다면, 공포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영자의 임무는 공포를 유발하는 원인을 찾아내고, 이해하고, 근절하는 것이다.
- 에드 캣멀, 픽사, 디즈니 애니메이션 회장
불안감으로 조직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 중 더 윗 단계를 자극해야 합니다. 적절하게 목표를 세팅하고 지속적으로 피드백함으로써 성장에 대한 욕구와 성취감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상사의 눈치를 보며 긴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긴장을 느껴야 합니다. 상사가 아니라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미꾸라지가 모여 있는 곳엔 메기가 한 마리 있어야 미꾸라지들이 긴장해서 더 건강해진다며, 스스로 메기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메기보다 무서운 것들이 조직 밖에 수두룩합니다. 조직 안의 메기에 너무 신경 쓰다 보면 다가오는 낚시꾼의 그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심리적으로 안정되었다고 편한 회사라는 말은 전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절대 아닙니다.
심리적 안정감을 다룬 책에 언급된 여러 회사들은 한 가지 일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회사의 직원들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심리적 안정감은 성장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다는 뜻이고, 회사는 그런 환경을 제공해주는 대신 그만큼 높은 수준의 성장 속도를 기대합니다. 직급도, 정치도, 관계도 통하지 않고 오롯이 실력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넷플릭스 문화엔 퇴직수당이란 말이 왜 이렇게 자주 나올까요? 당신이 상사와 의견 충돌이 있든, 예전에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든, 심지어 도전했다가 실패해도 상관하지 않겠지만, 당신의 실력이 부족하고 성장 속도가 느리다면 문제 삼겠다는 말입니다. 주변의 동료들이 적절한 피드백으로 당신의 성장을 도와주겠지만, 원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듭니다.
회사는 가족이 아닙니다. 스포츠 팀에 가깝습니다. 적절한 예인지 모르겠지만, 운동선수 중에 결혼을 하면서 마음에 안정을 찾고 플레이가 더 완숙해지는 경우가 있는 반면, 반대로 결혼 후 성적이 부진하고 나태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리적 안정감과 보장된 미래를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한국은 좀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건 실리콘밸리의 이야기이고, 한국 사람들은 좀 다르다.
이런 사람들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은 토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비슷하게 발언하기보다는 윗사람이 방향을 정해주면 일사불란하게 따라가는 것이 편하다고 합니다. 학창 시절부터 주입식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크건 작건 국내 많은 기업들이 이런 문화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이나 일본 같은 아시아 국가들은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문화가 나은 걸까요? 저는 몇 가지 반론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우선, 한국 사람들만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유독 편한 것은 아닙니다. 막스 베버(Max Weber)와 프레드릭 테일러(Frederick Taylor)로 대표되는 관료제, 과학적 관리법 중에 한국산 이론은 없습니다.
원래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는 문화가 편합니다. 윗사람은 생각만 하고 시키면 되니까 편하고, 아랫사람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편합니다. 심지어 특정한 상황에서는 이런 문화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문화의 원산지인 미국마저 관료적인 문화에서 탈피하려 하는 것은 이러한 방식이 더 이상 기업에게 경쟁 우위를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기업이 속한 시장을 잘 예측하고 조직의 상단에서 정교한 전략을 짠 뒤 조직의 하부에서 일사불란하게 실행하는 것이 성공을 위한 최고의 미덕이었습니다.
이제는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비즈니스 모델이 해체되는 언번들링(Unbundling)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내가 지금 어떤 경쟁사와 싸우고 있는지조차 불명확한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은 소수의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내리고 나머지 대다수가 그걸 따르기만 하는 방식으로는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조직원들이 시장에서 수집하는 정보, 그리고 조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집단지성처럼 활용하는 기업만이 시장 변화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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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들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윗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문화에 익숙한 원인은 주입식 교육이나 군대 문화도 있지만, 무엇보다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조직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원래' 그런 것은 없습니다
보고 배운 것이 있을 뿐입니다
요즘 스타트업들이 유행처럼 생겨나면서 마치 기존의 기업문화와 다른 문화를 가진 것처럼 비치지만, 막상 다녀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히려 대기업 이상으로 창업자의 독단이 심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역시 한국 조직은 태양이 하나여야 한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 세대가 까라면 까야하는 조직만 경험했다고 해서 한국 사람이 원래 그렇다고 치부하기엔, 앞으로 새로운 시대에서 일할 다음 세대가 불쌍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