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미디어, 진에 관하여

진은 자본주의 시대 출판 시장에서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라고 앞서서 얘기했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의 본능에 충실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모습이 그러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자비 출판과는 별개로, 혹은 같은 선상에서 일본은 지금 진의 흐름 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매해 10여 개의 이벤트가 개최되고, 각각의 이벤트에선 1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진을 출품합니다. 텍스트 위주에서부터 사진과 이미지 그리고 그래픽이 메인이 된 진까지, 다양한 장르로 해마다 쏟아져나옵니다. 다시 한 번 물어봅니다. 왜 이렇게 쓰고 싶어 하는 걸까요. 왜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먼저 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매거진과는 무엇이 다르고 서적과는 무엇이 차별화되는지를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진의 특성은 바로 그 차이, 다름에 있기 때문입니다.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고 싶은 방식으로 표현하는 미디어, 진에 관하여.

100% 온전한 미디어로서의 진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입니다. 기계와 산업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중개라는 시스템을 통해 배본되는 책을 읽고 그렇게 책은 우리와 시장 사이를 가로지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를 거스르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매거진(magazine)에서 앞에 두 음절을 떼어낸 책, 진(ZINE)입니다.

 

진은 1920년대 미국 SF 애호가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책 판진(Fanzine)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판진은 출판업계의 바깥에서 자본이나 권위에 간섭받지 않고 다양한 서브 컬처의 일부로 작동한 책이었습니다. 나아가 젊은이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길어내는 중요한 미디어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뺄셈이 가해집니다. 판진이 90년대로 넘어와 그간 팬 문화에 한정되었던 성격을 좀 더 포괄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판진에서 판을 빼고 진만 남겨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은 뺄셈의 미디어입니다. 더불어 진이 인지도를 얻게 된 건 1990년대 스트리트 컬처가 전성기를 누리던 때, 미국의 유명한 스케이터가 표현 방법의 하나로 일러스트와 사진 책자를 만든 것이 계기라는 설이 있습니다.스트리트와 서브,
그리고 뺄셈.
진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뺄셈의 과정 속을 들여다보면 주목해야 할 특성 하나가 있습니다. 글자를 하나씩 빼내면서 형식과 개념, 권위를 모두 벗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진은 테마도, 형식도, 내용도 자유이며, 만드는 방식도, 배포하는 형식도 제멋대로입니다. 다만 자신의 목소리를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출발점만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