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문화도시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St Pancras)역에 도착했다. 워킹 타이틀(Working Title Films)의 액션 영화 <킹스맨(Kingsman)>과 로맨틱 코미디 <노팅 힐(Notting Hill)>이 먼저 떠올랐다. 배우 휴 그랜트(Hugh Grant), 콜린 퍼스(Colin Firth) 같이 세련된 영국 신사의 이미지도 떠올랐다. 

 

중심가 소호의 조명은 은은했다. 세련된 차림의 사람들이 많았다. 샤넬,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와 유명 영국 브랜드 조 말론, 버버리 매장이 있었다. 다양한 인종도 스쳐 지나갔다. 산업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낯선 모습이었다. 글로벌 도시의 풍경이었다.

 

영국 정치의 모든 일이 벌어지는 웨스트민스터와 시계탑은 세련되고 고급스러웠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BBC 드라마 <셜록(Sherlock)>의 장면이 떠올랐다. 

 

물론 변두리는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일정상 런던 근교는 갈 수 없었다. 아쉬웠다.

대관람차 런던 아이(London Eye)에서 찍은 풍경 ⓒ양승훈

며칠 동안 머문 숙소는 블룸즈버리 거리 근처에 있었다. 낮이면 런던 정치경제대, 런던대 등 대학에서 젊은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두 대학은 대영 박물관과 도서관을 사이에 두고 15분 남짓 떨어진 거리에 이어져 있다. 대학가를 걷자 영국의 역사가 느껴졌다. 

 

런던 정치경제대 근처에 있는 서점의 간판, 북마(르)크스(Bookmarks)*에 한참 웃었다. 한국에도 예전에는 많이 있었던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이 떠올랐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이름을 음차 했으리라. 들어갔더니 역시나 사회과학 서적이 많았다. 경제학자 장하준의 책도 눈에 띄었다.
* 영국에서 가장 큰 사회주의 서점

 

활력 넘치는 대학생들을 보던 중 산업도시 출신들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까? 다니엘 튜더는 절대 돌아갈 리 없다고 말했다. 고향에 그들이 찾는 직업은 없다. 그저 추억의 공간일 뿐이다.
 

런던 사회과학도들이 반드시 거쳐간다는 북마르크스 서점. 이름부터 마르크스로 장난을 쳤다. ⓒ양승훈

런던에서는 산업도시의 노동 계급 이야기를 찾기 어려웠다. 단적으로 맨체스터에서는 노동 계급 가정의 소년이 발레리노로 성장하는 뮤지컬(빌리 엘리어트)이 지역 사투리로 공연된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파리 노동 계급과 엘리트 이야기(레미제라블)가 인기를 끈다. 

 

물론 서울에서도 노동자 마을의 서사는 자세히 소개되지 않는다. 노회찬이나 심상정 같은 노동 운동가 출신 정치인들이 전하는 경험담 외에 산업의 위기를 전하는 뉴스 정도가 대부분이다. 노동자 연극도 매우 드물다. 심지어 TV에서도 역사 다큐멘터리나 시대극이 아니면 남동임해공업지역의 이야기가 다뤄지지 않는다.

레미제라블 무대 ⓒ양승훈

도시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런던에 체류하는 동안 손정원 런던대 지리학과 교수와 산업 정책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손정원 교수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후 런던대에서 도시 경제와 도시 지역 발전론, 도시 사회학 등을 연구하고 있다.  

 

손정원 교수에 따르면, 영국은 1970년대부터 제조업의 미래를 대비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정부는 제조업 중 롤스로이스, 재규어, 벤틀리 같은 고급 차 시장에 투자를 집중했다. 기업은 생존력 있는 부문을 분사하고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인수합병을 진행했다. 노동 계급의 관점에서는 지속적인 희망퇴직과 권고사직, 정리해고가 이어진 끔찍한 시절로 기억될 것이다.

 

"영국은 금융, 소프트웨어 기반의 IT, 미디어, 그리고 생명공학 기술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했습니다. 디자인이나 관광업에 투자하는 대신 장기적으로 투자했을 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를 선점하고 수익을 내는 계획을 세운 거죠.

 

특히 블레어 정부는 집권 기간(1997~2007)에 지식기반 경제(지식의 창출과 확산, 활용에 근거한 경제)에 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에 집중적으로 투자했습니다." - 손정원 교수

 

그 결과 금융과 미디어, IT, BT 분야의 이윤이 런던에서 집중적으로 창출됐다.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등 글로벌 금융기업의 본사가 자리 잡았다. 런던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뛰어난 콘텐츠를 만드는 미디어 BBC 역시 이런 환경에서 발전했다. 

제조업 한계를 인식한 영국 정부는
70년대부터 금융, 미디어, IT에
지속적으로 투자했다

성과는 있었다. 다만 중공업과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 계급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다.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다.

 

15세기 중엽부터 영주들은 미개간지나 공유지를 사유지로 만들었다. 이윤이 많이 나는 목양업이나 대규모 농업을 하기 위해 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이상 농노나 농부들이 공유지에서 가축을 기르고 흉작을 대비해 곡식을 기르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환경 변화에 빨리 적응한 사람들은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다. 일부는 영주의 땅을 구매했다.

 

하지만 적응하지 못한 많은 이들은 소작농 혹은 영주의 농장에서 일하는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삶이 더 어려워졌다. 생계를 해결하지 못한 농노들은 도시로 들어가 임금 노동을 하게 됐다.

본업에 집중해
충실하게 살아 온 사람을
완고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다른 직업을 구할 수 있도록 퇴근 후 늘 준비하고, 새로운 산업이 와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모두 그럴 수는 없다. 결국 낙오자가 생긴다.

 

조선업이 쇠락한 후 북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노동 계급은 연금생활자로 삶을 연명했을 것이다. 손정원 교수는 이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책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발상을 전환해보자는 것이다.

 

"연금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이 나오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비용이 많이 듭니다. 산업현장에서 밀려난 이들을 재교육해서 취업시키느니, 차라리 그 비용으로 기본소득을 주는 대안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 손정원 교수

 

출산율이 줄어들어 노동 인구 수가 줄어드니, 중장년 퇴직자들이 일을 더 오래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안이 아니다. 손을 써서 일하는 단순 노동은 기계나 더 저렴한 나라의 노동력으로 대체된다. 결국 저학력 노동자들이 담당했던 정규직 생산직 일자리의 감소는 필연적이다.

손정원 교수(좌)와 런던대 근처에서 찍은 사진 ⓒ양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