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를 만나다

아무것도 모르고 조선사에 입사했다. 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몰랐다. 그저 여느 취준생처럼 회사(대우조선해양)의 전략상품인 해양플랜트 품목 이름을 외웠다.

 

반잠수식 시추 리그의 스펠링 세미 리그(Semi-submersible drilling LEG)를 외웠고, 서류 전형 합격자 스터디에선 드릴십과 시추선의 차이가 무엇인지 갑론을박을 벌였다. 사실 'LEG'가 아니라 'RIG'였고, '시추선'의 일부에 '드릴십'과 '반잠수식 시추 리그'가 들어갔다. 문과라서 배가 뜨는 이유, 배를 짓는 방식은 전혀 몰랐다. 다만 조선소에 들어가기 전부터 한 가지를 기대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조선소 풍경

언젠가 아버지와 술자리에 마주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었다. 1970년대, 선배를 따라 일을 하러 간 아버지는 울산 현대조선에서 마킹을 담당했다고 한다. 도면을 보며 부재 용접 위치를 확인하고 블록을 나눠 분필로 번호를 남기는 일.

 

일을 끝내면 조선소 근처 하꼬방*이라 불리는 합숙소에서 수십 명이 칼잠을 잤다고 한다. 합숙소 근처에는 선술집이 많았고, 봉급날이면 새벽까지 술판이 이어졌다고 한다.
* 상자, 궤짝 등을 뜻하는 일본어 하꼬(はこ)와 방(房)의 합성어로 상자 같이 작은 집, 판잣집을 의미한다. - PUBLY

 

성실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들은 알뜰하게 돈을 모았을 테고 나중에 정규직이 됐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일했다면 꽤나 부자로 살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기억 속에선 늘 많은 노동자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노동의 피로를 푸는 사람들이 그려졌다.

 

회사에 합격했을 때 대학원 열람실에서 큰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돈을 많이 주는 회사였다. 또한 아버지에게 들었던 동네의 문화, 노동자 문화를 접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