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독으로 가는 길
리버풀과 맨체스터는 가깝다. 서울과 인천, 거제와 창원 정도의 거리다. 대략 50km가 되지 않는다. 리버풀 라임 스트리트역에서 아침 일찍 기차를 탔다.
맨체스터는 경공업을 시작으로 산업이 발달했으나 현재는 산업이 쇠락한 곳이다. 기찻길 주변의 공동주택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안산 반월공단이나 옛 구로공단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살아남은 공장들은 이주노동자나 여성을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을까.
맨체스터로 가는 기차 안에서 본 공동주택 ⓒ양승훈
맨체스터 중심지에 자리한 피커딜리(Manchester Piccadilly)역까지 1시간이 걸렸다. 제이미 두셋(Jamie Doucett) 맨체스터 대학 지리학과 교수의 조언대로 미디어 시티 UK(Media City UK)를 가기로 마음 먹었다. 미디어 시티 UK는 산업 항구가 있던 자리다.
호출한 지 3분 안에 우버가 도착했다. 우버 기사는 시에라리온 출신이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북한인지 남한인지부터 물었다. 김정은이라는 폭군 때문에 북한 사람은 영국에 있어도 접촉하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피커딜리역 ⓒ양승훈
기사는 영국에 들어온 지 3년 가까이 됐다고 말했다. 돈은 많이 못 벌었다며 식구 몇 명은 시에라리온에, 또 다른 식구는 미국에 있다고 했다. 어떤 비자로 일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물론 묻지는 않았다.
그는 연신 갤럭시 S를 만지작거리며 한국이 대단한 나라라고 말했다. 집에 있는 TV, 냉장고, 세탁기 모두 한국산이라고, 가전 제품은 한국산이 싸고 좋다고 했다. 삼성과 LG 중 어떤 것이 좋냐고 물어보니 그냥 삼성이 좋단다.
미디어 시티 UK에 왜 가냐고 묻길래, 항만시설을 보러간다고 답했다. 그는 맨체스터 독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2010년 이후 영국에 정착한 이민자에게 산업도시 맨체스터는 낯선 이름일 것이다.
미디어 시티로의 재생은 성공했을까
맨체스터 독은 운하 상류에 위치한 제방시설이었다. 석탄이나 곡물 등 다양한 화물을 포장하지 않고 싣는 벌크선이 운하를 오갈 때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컨테이너를 싣고 대서양을 오가는 운송 사업이 무역의 주류가 됐다. 맨체스터의 쇠퇴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