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들의 콘텐츠 구독 서비스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그리고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 서비스가 있습니다. 넷플릭스(Netflix)와 스포티파이(Spotify)에서 영감을 얻은 서비스, 퍼블리(PUBLY)가 그 주인공입니다.

 

2017년, <창업가의 브랜딩>에서 박소령 대표는 "퍼스널 브랜딩이 브랜드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 팀 한 명 한 명이 인플루언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직원을 팔로우하고 있는 사람이 '이 사람이 편집했으니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끔. 글을 잘 쓰고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서 팬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콘텐츠를 펀딩한다'는 것이 무척 새로운 개념이었고, 대부분이 글쓴이와 편집자인 퍼블리에 사람들은 주목했습니다. 지금도 퍼블리가 편집한 콘텐츠는 믿고 구매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시작한 퍼블리의 콘텐츠 사업은 이제 구독 모델이 되었습니다. 퍼블리는 고객 중심으로 사고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아티스트가 아닌 프로페셔널로 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년 전 <창업가의 브랜딩>을 통해 들려준 퍼블리의 브랜딩은 2019년인 지금까지 어떻게 지켜졌을까요? 그리고 어떤 것이 변했을까요? 다음 세대에게 한 발 더 앞서서 출발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퍼블리의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Part 1: 2015년, 퍼블리의 출발점

안녕하세요. 2015년부터 퍼블리라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박소령입니다. 오늘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도움이 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2017년 여름에 있었던 <창업가의 브랜딩> 인터뷰 후, 2년간 퍼블리를 운영하며 배운 것들을 집중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The New York Times사진 속 주인공이 누군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여러분이 아주 잘 아는 회사의 창업자입니다. 두 사람은 <뉴욕타임스(NYT)>의 오너들로, 오른쪽의 젊은 사람이 현재 발행인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Arthur Gregg Sulzberger), 왼쪽이 그 이전 발행인이자 아버지인 아서 옥스 설즈버거 주니어(Arthur Ochs Sulzberger Jr.)입니다.

 

A.G. 설즈버거는 2018년 1월 1일 자로 3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뉴욕타임스>의 발행인이 되었습니다. <뉴욕타임스>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이 삼십 대 후반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최근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타임(TIME)>지에서도 A.G. 설즈버거가 어떻게 <뉴욕타임스>를 바꿔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장문의 기사를 냈습니다.*

* 관련 기사: How A.G. Sulzberger Is Leading the New York Times Into the Future (TIME, 2019.10.10)

 

A.G. 설즈버거가 갑자기 발행인이 된 건 아니에요. 미디어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뉴욕타임스>가 2011~2012년에 냈던 '혁신 리포트(innovation report)'를 기억하실 텐데, 당시 이 리포트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한국 언론사들도 번역본을 공개하며, 관련 기사를 많이 냈습니다.* 이 리포트를 만든 TF에 A.G. 설즈버거가 있었고요.

* 관련 기사: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의 교훈: 멋지게 실패하자! (슬로우뉴스, 2014.5.25)

 

그는 삼십 대 초반부터 디지털 변화에 관해 연구했고, 자연스럽게 차세대 발행인으로 거론되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일찍부터 디지털에 투자하며, 어떻게 소비자가 콘텐츠에 돈을 내게 만들지 고민한 회사입니다. 광고 매출에 의존하지 않고 소비자로부터 매출을 일으키기 위해 젊은 오너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가는 회사죠. 2018년 디지털 뉴스 구독 데이터를 보면 더욱 명확합니다.

ⓒstatista

<뉴욕타임스>를 포함해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가 상위권인데, 그중 <뉴욕타임스>가 단연 압도적입니다. 저는 <뉴욕타임스>의 혁신 리포트가 나오던 때에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어요. 아서 옥스 설즈버거 주니어의 강연도 들었던 적이 있고요. 디지털 시대에 언론의 변화에 대해 그때부터 관심이 많았습니다.

 

동시에 영상에서는 '넷플릭스', 음악에서는 '스포티파이', 그리고 한국의 웹툰 서비스 '레진코믹스'와 웹 소설 연재 플랫폼 '문피아' 등 다양한 디지털 분야에서 소비자가 돈을 내게 만드는 콘텐츠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고객의 불편을 해결해주면 무형의 서비스에도 돈을 내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 무형의 서비스가 지식이나 교육 관점으로 확장될 것이고, 그 흐름이 한국에도 곧 도착한다고 봤습니다.

이코노미스트 특별호의 표지 ⓒThe Economist이 그림은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그 의미가 와닿으실 텐데요. 성인들의 평생 교육을 다룬 영국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특별호의 표지입니다. 평생 일하고 배우며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에게 지식과 교육의 무형 서비스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퍼블리도 이에 공감하며 출발했습니다.

Part 2: 2017~2019년, 고객을 알아야 생존할 수 있다

1. 크라우드 펀딩에서 서브스크립션 모델로

퍼블리는 2015년 가을, 크라우드 펀딩으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유료 콘텐츠를 하나씩 기획해서 판매하는 모델이었어요. 이때 소비자에게 제공했던 가치는 '읽고 싶었던 콘텐츠를 디지털로 소유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퍼블리의 일은 '콘텐츠 잘 만들어서 많이 파는 것'이었습니다.

초기의 크라우드 펀딩 모델 ⓒ퍼블리크라우드 펀딩 시기에는 이런 형태의 상품을 집중적으로 판매했습니다. 해당 콘텐츠의 목표 금액을 설정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펀딩에 참여했는지 보여줬어요. 디지털 콘텐츠만 예약했을 경우와 저자와 직접 만나는 등 오프라인 상품을 함께 예약할 경우 펀딩 금액도 달랐습니다.

 

2017년 여름,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 비즈니스를 베타 테스트 성격으로 처음 도입했습니다. 월 정기구독 사업 모델을 테스트하는 과정이었는데, 이때 소비자에게 주었던 메시지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만든 퍼블리의 모든 콘텐츠를 월 2만 1900원에 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브스크립션 비즈니스는 '타임 웰 스펜트(time well spent) 서비스'. 즉, 소비자가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퍼블리의 업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이는 뒤늦게 깨달았어요. 당시에는 '그저 묶어서 팔아보자'라는 간단한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2019년 4월, 크라우드 펀딩을 서비스에서 완전히 종료하고 구독 모델만 남겨 비즈니스 정체성을 명확하게 했습니다. 소비자가 콘텐츠를 소장하고 경험도 할 수 있었던 이중적인 서비스에서 경험만 살 수 있는 서비스로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퍼블리가 서브스크립션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겪은 가장 큰 챌린지는 무엇이었을까요?

ⓒGeoffrey Moore위의 표는 <제프리 무어의 캐즘 마케팅>에 나오는 유명한 차트입니다. 이노베이터(innovators)와 얼리어답터(early adopters)로 구성된 얼리마켓(early market)에서 메인스트림 마켓(mainstream market)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캐즘(chasm)*'을 넘어야 합니다. 얼리어답터 등의 조기 수용자층과 얼리매저리티(early majority), 즉 초기 대중 사이의 단절을 뛰어넘는 기업은 성장하고, 그 벽을 넘지 못하면 얼리어답터 대상으로 소소한 서비스를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 첨단 기술이나 상품이 출시된 다음, 얼리마켓에서 메인스트림 마켓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현상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퍼블리도 이와 관련해 강렬한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얼리어답터 소비자를 대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까지 왔다고 생각했어요. 크라우드 펀딩 콘텐츠로 리스크테이킹(risk taking)하는 얼리어답터는 대부분 퍼블리를 구독했습니다. 어떻게 메인스트림 마켓으로 넘어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얼리매저리티 고객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다 보니, 이들의 니즈가 얼리어답터 고객층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콘텐츠 사용 패턴과 결제 동기도 전혀 달랐습니다.

 

얼리어답터 고객은 보통 콘텐츠 애호가입니다. 퍼블리에서 나오는 콘텐츠를 전부 읽고, 퍼블리 같은 서비스가 세상에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응원과 격려를 보내줘요. 반대로 얼리매저리티 고객에게 콘텐츠는 상품입니다. 돈을 낸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으면 굉장히 빠르게 실망하고 이탈합니다.

 

두 고객층이 매우 달라서 올해는 개인적으로 전혀 새로운 사업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고객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고객을 알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퍼블리가 고객 중심 회사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연초부터 반복적으로 강조했습니다.

 

퍼블리를 설명하는 슬로건도 이 흐름에 따라 계속 바뀌었습니다. 2015년 초기에는 슬로건의 주요 키워드가 '지적 자본'이라는 무거운 단어였고, 2017년에는 '지적 즐거움'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부터 '일하는 사람을 위한 콘텐츠'로 슬로건을 바꾸며 더 넓은 범위를 타깃팅 했습니다.

 

평생 일하고 학습하는 시대에 직면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고, 콘텐츠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현재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으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콘텐츠가 아닐 수도 있고 더 나은 솔루션이 있다면 충분히 다른 일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어요.

 

콘텐츠 플랫폼에서 고객 중심으로 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본격적으로 이 질문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퍼블리는 초기에 고객의 문제와 상관없이 '이런 콘텐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관점으로 콘텐츠를 만든 시기가 길었어요. 아티스트라면 이런 관점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겠지만, 비즈니스를 하는 조직은 다릅니다. 고객이나 시장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소재와 저자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콘텐츠는 모 아니면 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퍼블리는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해 계속 질문을 던졌습니다.

Who are the target customers?

What do you know about them?

What are the problems they have?

How do you solve those problems?

What are the use cases?

타깃 고객이 누군지, 그들을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지, 그들이 가진 문제는 무엇이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계속 질문하며 '콘텐츠를 서비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일하는 것이 고객 중심적 방식이라고, 또 아티스트가 아닌 프로페셔널로 일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콘텐츠가 저자의 자아실현 도구가 아니라 소비자가 돈을 내는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소비자 대상의 B2C(Business to Consumer) 비즈니스와 똑같이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정말 쉽지 않았어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고객이라고 착각하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데 소홀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2015~2017년에는 퍼블리 사업 모델에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디지털 콘텐츠를 누가 돈 내고 사?"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저희 역시 소비자가 누군지 잘 몰랐어요. 결국 공동창업자인 김안나 님과 우리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던 거죠. <창업가의 브랜딩>에서 인터뷰한 때가 스스로를 제1 소비자로 놓고 콘텐츠를 만들던 시기였어요.

정작 어떤 콘텐츠를 진행하자고 할 때는 대단히 직관적으로 결정해요. 타깃이 이런 사람이니까 그에 맞춰서 하기보다 '나 이거 하면 좋을 거 같아' 하는 마음으로 저랑 안나 님이 결정한 적이 훨씬 많았어요. 내 주변 사람들은 이거 좋아할 거야 싶은 것들이요.

 

- 책 <창업가의 브랜딩> 중

당시 많이 만들었던 해외 컨퍼런스 탐방 콘텐츠도 같은 맥락입니다. <2015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2016 칸 광고제> 등이 있었죠. 그런데 2018년이 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도쿄의 디테일>,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수평적 조직문화 파헤치기> 등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소비자가 좋아하는 콘텐츠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어요. 고객이 정말 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2. 새로운 고객을 직접 만나자

콘텐츠를 만들면서 데이터가 쌓이고, 잘 되는 콘텐츠의 특징도 알게 되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위기의식'이 키워드였어요. 내가 일을 잘하고 있는 것인지, 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알고 싶은 욕망을 건드리는 콘텐츠는 성공하고, 이에 적합하지 않은 콘텐츠는 공들여 만들어도 반응이 크지 않았습니다.

 

소비자 근간에 있는 페인 포인트(pain point)는 "무엇을, 어디에서, 또 누구로부터 어떻게 배워야 하지?"였습니다. 고객의 질문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고객을 알아야 했어요. 고객을 누구보다 잘 아는 팀이 되기 위해 3가지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객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떤 페인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가?

그에 대한 우리의 솔루션은 무엇인가?

일반적인 테크 회사에서 서비스를 기획할 때 많이 묻지만, 콘텐츠 회사에서는 흔하지 않은 질문입니다. 팀 내에서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술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더 정확히, 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데이터가 필요했고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는 것이 기술이 가진 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데이터가 이유까지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고객을 직접 만나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퍼블리 그로스(growth) 팀의 민우 님이 드롭박스 페이퍼(Dropbox Paper) 팀의 이야기를 공유한 것이 계기였어요.

 

드롭박스 페이퍼팀은 격주 수요일마다 실제 사용자를 사무실로 초대해 직접 의견을 듣는 '리얼월드 웬즈데이(Real World Wednesdays)' 사례로, 사용자가 팀원들과 1대1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실제 서비스를 만드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프로덕트 매니저가 주로 참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관련 글: How to stay scrappy and keep your team happy (Dropbox Design, 2018.9.6)

 

고객의 목소리를 필터링 없이 직접 듣는 것은 임팩트가 다르다며, 우리도 해보자고 팀에 제안했어요. 그래서 2018년 가을, 퍼블리도 실제 구독자를 만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올해는 작년보다 집중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고객을 만나고 있는데 이에 영향을 준 책이 <인스파이어드>입니다.*

* 관련 글: 인스파이어드: 감동을 전하는 IT 제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퍼블리, 2019.3)

좋은 팀은 최종 사용자 및 고객과 매주 직접 만난다. 최신 아이디어에 대한 고객의 반응을 확인한다. 나쁜 팀은 그들 자신이 고객이라고 생각한다.

 

- 책 <인스파이어드> 중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많았어요. 일주일, 한 달 캘린더를 보면서 고객을 직접 만나거나 고객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니, 정말 많지 않았어요.

 

2019년 9월, 퍼블리 구독자 1000명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100명과는 한 시간씩 1대1 인터뷰도 진행했습니다. 정리된 인터뷰 노트를 읽는 데만 10시간이 걸리는 대규모 고객 조사였습니다. 이외에도 신규 서비스나 특정 콘텐츠에 대한 고객 조사도 수시로, 빈번하게 하고 있어요. 이 부분이 2019년 들어 퍼블리가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타깃은 더 좁게, 기획부터 촘촘하게

왜 서브스크립션 모델을 비즈니스 모델로 선택했나요?

참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2017년 여름, 당시 B2C 콘텐츠 사업에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두 사례가 있었습니다. 영상에는 넷플릭스, 음악에는 스포티파이죠. 포맷은 다르지만 두 사례를 벤치마킹하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2018년 미국의 벌처(VULTURE)라는 매거진에서 쓴 기사가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팀이 어떻게 일하는지 한 시간짜리 긴 기사로 설명하는데, 그중 넷플릭스 최고 콘텐츠 책임자(CCO) 테드 새런도스(Ted Sarandos)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 관련 기사: Inside the Binge Factory (VULTURE, 2018.6.11)

더 많은 콘텐츠는 더 많은 시청을, 더 많은 시청은 더 많은 구독을, 더 많은 구독은 더 큰 매출을, 더 큰 매출은 더 많은 콘텐츠를 가능하게 합니다.

넷플릭스가 더 많은 콘텐츠를 갖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신규 구독자로 가입할 것이고, 기존 구독자를 더 오랜 시간 머무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구독자들이 더 오랜 시간을 보내면, 넷플릭스는 더 많은 시청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고 신규 콘텐츠의 기획을 더욱 정교하게 할 수 있습니다.

2018년 여름, 이 글을 읽고 넷플릭스의 그로스 엔진(growth engine)*을 퍼블리도 부지런히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부터 더 많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2018년 가을, 한 달에 5개 신규 콘텐츠를 발행했는데 요즘은 한 달에 20개 콘텐츠를 발행합니다. 속도를 4배 높인 거죠.

* 인용문에서 밝힌 콘텐츠→시청→구독→매출→콘텐츠의 선순환 구조

 

하지만 고객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더 많은 콘텐츠를 만들었음에도 고객 체류 시간은 늘지 않았어요. 넷플릭스와는 다르게 첫 단추부터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거죠.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고객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공통적인 의견은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는 이미 다 보았고, 오히려 관심 분야는 콘텐츠 양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고객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양을 늘린다고 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숫자로 확인했습니다.

 

넷플릭스와 왜 길이 다를까 생각했을 때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와 지식 콘텐츠의 차이가 핵심요인이라고 봤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매스 타깃팅(mass-targeting)이 가능한 분야입니다. 인간의 보편적 감정에 호소할 수 있기 때문에 콘텐츠 하나로도 글로벌 스케일의 흥행이 가능해요.

 

하지만 지식·정보 콘텐츠 시장은 좁게 타깃팅 해야 하는 마이크로 타깃팅(micro-targeting) 분야입니다. 사람마다 지식수준이 다르고, 본인이 처한 환경에 따라 콘텐츠 이해도도 천차만별입니다. 이해도에 따라 만족도도 달라져요. 각자가 처한 환경이 균질하지 않기 때문에 지식·정보 콘텐츠로 대중 전반에 높은 만족도를 제공하기는 극히 어렵습니다.

 

지난여름, 한 출판사의 편집자가 "요즘은 제목부터 이 책이 나를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아예 책을 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퍼블리가 가진 고민과 비슷한 결입니다. 기획부터 마이크로 타깃팅이 필요해요. 보통 마이크로 타깃팅이라고 하면, 넷플릭스처럼 개인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을 강화하는 것인지 묻는데, 물론 앞으로 가야 할 길임은 분명하지만 첫 단추는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퍼블리에는 '알림 신청 콘텐츠'라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초기 기획 단계의 콘텐츠를 드래프트(draft) 형식*으로 올리는 공간이에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콘텐츠, 저자가 없는 콘텐츠도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에 반응하는 소비자를 미리 알아보는 장치로, 170명이라는 기준 수치를 넘는 콘텐츠만 제작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 타깃팅을 하되 너무 니치(niche)하지 않게, 일정 규모의 소비자가 모이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노력입니다.

* 미완성 단계

퍼블리의 알림 신청 콘텐츠 ⓒ퍼블리마이크로 타깃팅을 결심하니, 데이터가 고민이 됐어요. 넷플릭스는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을 클러스터링(clustering)한다는 점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죠. 퍼블리도 넷플릭스처럼 이메일 하나만 받던 시기가 있었는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식·정보 콘텐츠에서는 행동 데이터만으로는 고객이 누구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마이크로 타깃팅이 정말 어려웠어요.

 

그래서 고객의 추가 데이터를 확보하기로 했습니다. 인구 통계학적인 데모그래픽 데이터(demographic data)부터 고객의 관심사나 라이프스타일 등의 사이코그래픽 데이터(psychographic data)를 확보해, 보다 정교하게 타깃팅한 콘텐츠, 더 선이 분명한 콘텐츠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고객 만족도가 높아지고, 그것이 재결제로 이어지니까요.

 

현재 서브스크립션 비즈니스의 전략 방향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을 마이크로 타깃팅하고, 타깃층의 고객이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꾸준히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고객 리텐션(retention)*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 고객이 서비스 내에 잔존하는 것

 

이를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인게이지먼트(engagement)*가 제일 먼저, 리텐션(retention)이 다음, 그 후에 어퀴지션(acquisition)**' 입니다. 리소스 사용 순서도 이에 따라 재정비를 했어요. 먼저 결제 고객의 인게이지먼트, 즉 얼마나 자주 들어와 어느 정도 체류하며, 몇 개의 콘텐츠를 보는지가 중요합니다. 인게인지먼트가 높은 고객의 리텐션이 높아요. 리텐션에 어느 정도 투자한 후에 신규고객을 유치하는 어퀴지션에 투자한다는 순서입니다.

* 고객이 콘텐츠에 시간을 쏟고 관여하는 것

** 더 많은 고객을 획득하는 것

 

4. 일하는 사람의 좋은 습관이 될 것

이러한 맥락 아래 퍼블리 내부에서 다양한 전략 TF(Task Force)를 운영했습니다. 먼저 타깃 세그먼트(target segmentation) TF에서 세 가지 유형의 집중 타깃 고객을 선정했습니다.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자는 의미입니다. 더불어 신규 타깃의 발굴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밸류 프로포지션(value proposition) TF로, 퍼블리 멤버십을 사용하는 고객에게 어떠한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합니다. 멤버십을 결제하고 한 달 이내에 고객이 얻을 수 있는 가치, 다음 달 재결제로 이어지는 가치와 멤버십을 계속 사용하는 고객이 얻어가는 장기적 가치를 구분해서 정리했어요.

 

마지막으로, 향후 5년 정도 프레임에서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TF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현재 만들고 있는 콘텐츠는 '일하는 지식 근로자'를 타깃으로 합니다. 여기에 비전으로 잡은 키워드는 '신뢰', '실용', '습관'입니다.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소비자가 퍼블리를 '신뢰하고 재결제하는 과정'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또 퍼블리가 제공하는 지식이 실제 일하는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 지식'이라는 점도 중요해요. 마지막 키워드는 '건강한 습관'으로 콘텐츠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만드는 일을 의미합니다.

 

고객이 아무리 시간을 많이 써도 후회가 남지 않는 서비스, 오히려 시간을 쓰면 쓸수록 강한 성취감과 동기부여를 느낄 수 있는 서비스가 되는 것이 퍼블리의 장기적인 비전입니다.

 

구체적으로 퍼블리 이용 고객의 분포도를 말씀드리면, 2019년 9월을 기준으로 밀레니얼 세대 고객이 80%, 여성이 55%입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중소기업 재직자가 80%, 나머지 20%는 프리랜서와 학생입니다. 고객의 주요 업무는 세상의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전략, 기획, 마케팅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새롭게 준비 중인 서비스는 뉴스를 큐레이션 하여 유통하는 서비스입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오늘 본 뉴스 중 공유하고 싶은 뉴스에 코멘트를 써서 플랫폼을 통해 나누는 형식입니다. 현재 이 서비스의 타깃 고객을 따로 초대해 베타 서비스(beta service)를 운영하며 서비스를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퍼블리의 새로운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퍼블리<창업가의 브랜딩>에서는 오프라인 모임 사업을 강조했는데, 2018년 여름 이후로 오프라인 사업은 하지 않습니다. 오프라인 사업이 가진 장점이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팀이 가진 DNA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두 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을 느꼈는데, 먼저 퀄리티를 균일하게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크라우드 펀딩을 하며 오프라인 모임을 250번 정도 해봤는데, 만족도 편차도 매우 컸고 이를 관리하는 방법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스케일업(scale up) 차원의 어려움이었습니다. 퍼블리는 디지털을 기반으로 빠르게 스케일업 하는 데 관심이 많지만, 오프라인 모임 사업은 잘 모르겠더라고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해 현재는 디지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