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픽을 위한 과감한 투자

2000년 9월, 네이버는 일본 도쿄에 네이버재팬을 설립하며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다. 자본금만 1억 엔(약 10억 원)이었다. 네이버의 첫 글로벌 도전이자, 국내 포털 해외 진출 1호여서 더욱 도드라졌다. 여기에는 "내수 시장이 작아서 고통 받는 우리 IT 기업에게 일본 시장은 기회의 땅"이라는 이해진의 소신도 한몫을 했다.

평소 준비성이 철저하고 치밀한 이해진이 다소 성급해 보이는 해외 진출 결정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기술력이었다.

 

글로벌 IT 기업이라고 해서 현지 서비스를 능숙하게 제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한국과 일본 인터넷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갔던 야후도 검색기술은 형편없었다. 전문 '서퍼(Suffer)'를 고용해 숨겨진 웹사이트 주소를 찾아내고 이를 주제별로 제공했다. '디렉토리 검색'이라 불리는 이 방식은 일종의 '노가다'의 산물이었다.

이해진에게는 '넥서치'가 있었다. 단어와 문장의 의미소를 분석해 검색결과의 정확도가 높은 기술이다. 현지 기업과 제휴·합작하지 않고 독자 진출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야후재팬이 디렉토리 검색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네이버의 지능형 검색, 자연어 검색을 도입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IT에 대한 경험을 비롯해 인건비, 개발비, 운영비 등 제반 사항들도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 기업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일본 시장 진출이 한국 시장의 파이를 키우게 될 것이라는 믿음도 존재했다. 분명 일본은 한국보다 IT 약소국이었지만 현지에서 생산된 웹페이지 수는 국내의 두 배가 넘었다. 당시에도 일본은 콘텐츠 강국이었던 셈이다.

 

이해진은 특히 번역 서비스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어로 작성된 정보를 번역해 검색결과에 활용하면 네이버의 데이터도 풍부해질 것이라 믿었다. 언어의 배열이 비슷하기에 적용하기 쉬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인지 일본과의 FTA도 빨리 진척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해외 진출이 더 늦어지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인터넷 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속도 경쟁이다. 현재의 결과에 만족하면 결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다. 5년 후에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