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를 긴장하게 만드는 아트북 페어

14년 차 북 디자이너, 내 경력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내가 14년 차라니!)

 

14년쯤 일하면 눈 감고 대충 점만 찍어도 좋은 디자인이 나올 줄 알았는데, 빈 화면 앞에서 만감이 교차하며 집에 가고 싶어지는 것은 신입 디자이너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디자이너가 마르지 않는 샘도 아니니, 백지를 채우고 또 채우다 보면 내 안의 어딘가가 슬슬 고갈됨을 느끼게 된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이 만든 멋진 것을 경험하면 어쩐지 화가 나면서도 자극을 받는다. 나 자신에게 가하는 충격요법이랄까.

 

2017년, 독립서점을 돌아보기 위해 도쿄에 방문했을 때 사진 전문서점 토토도(Totodo)에 들러 점원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내 직업과 도쿄 방문 목적을 듣고 주말에 열리는 아트북 페어*에 방문하기를 추천해주었다. 아트 페어나 페스티벌 관람이 여행의 주목적이었던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언이었다. 곧바로 도쿄 아트북 페어 행사장을 찾아갔다.

* 개인이나 그룹 소속의 예술가와 독립출판사, 갤러리 등이 참여해 아트 상품을 전시/판매하는 행사로, 주로 아트북이나 다양한 종류로 제작된 굿즈를 판매한다. 국내에서는 언리미티드에디션이 가장 큰 규모이며, 매년 전 세계적으로 열리고 있다.

 

그러나 입장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내부 수용 인원을 초과한 상황이라 안전을 위해 2시간 간격으로 입장객 수를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 할 수 없이 긴 줄에 몸을 맡기고 있자니 사방이 핑크빛이다. 행사 개최를 알리는 배너부터 입 퇴장 동선에 설치된 각종 사인물, 행사 리플릿과 손목에 감아주는 티켓까지. 신나는 얼굴로 온갖 핑크를 카메라에 담는 이들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오늘 밤 도쿄 힙스터들의 인스타그램은 온통 핑크빛이겠군.'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형 사인물과 긴 입장 행렬 ©정지현

이처럼 관객의 인증 욕구(자랑 욕구)를 자극하는 포토 스팟은 단순히 사이즈나 물량 공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각 요소의 디자인이 행사의 특징과 매력을 드러내는 동시에 관객들과 미학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그들의 '자발적 마케팅'을 끌어낼 수 있다.

‘2017 도쿄 아트북 페어’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정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