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 없다면 식문화도 없다

얼마 전 조지 오웰의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음식을 담는 자루다.

만약 인간에게 '식문화'가 없다면, 그 말은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합니다. SF 영화나 미래의 시나리오 같은 것을 보면 알약으로 식사를 대신한다는 설정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자루'로 생각한 데에서 나온 발상입니다. 식문화와 음식이 주는 쾌락을 완전히 배제한 거죠.

 

한 끼 식사를 알약 몇 알쯤으로 때우는 건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사람들이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먹어볼걸' 하는 것이랍니다. 하여간 좀 더 열심히 분발해서 먹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식문화가 발달한 곳 하면 역시 프랑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나라답게 루이 14세 때도 연회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살한 요리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케이크 장식에 쓰이는 휘핑크림을 처음 만들었다는 프랑수아 바텔은 왕에게 바치는 연회를 준비하다가 생선이 늦게 도착해 연회가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하자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살한 비운의 요리장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얘기는 롤랑 조페 감독의

 

그런데 가만 보니 영화 속에서 바텔은 단순한 요리사가 아니라 무대 미술, 인테리어, 테이블 세팅 등 정말 온갖 것을 다 하며 연회 전체를 디자인하는 아트 디렉터 역할을 하더군요. 물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카페나 식당을 직접 차리고 싶어 하는 디자이너가 많은 것도 아마 그런 이유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음식을 낼 것인지부터 그릇이나 공간 등 손님이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전 과정을 오롯이 디자인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경옥

디자인이 없다면 식문화도 없다

얼마 전 조지 오웰의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음식을 담는 자루다.

만약 인간에게 '식문화'가 없다면, 그 말은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합니다. SF 영화나 미래의 시나리오 같은 것을 보면 알약으로 식사를 대신한다는 설정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자루'로 생각한 데에서 나온 발상입니다. 식문화와 음식이 주는 쾌락을 완전히 배제한 거죠.

 

한 끼 식사를 알약 몇 알쯤으로 때우는 건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사람들이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먹어볼걸' 하는 것이랍니다. 하여간 좀 더 열심히 분발해서 먹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식문화가 발달한 곳 하면 역시 프랑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나라답게 루이 14세 때도 연회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살한 요리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케이크 장식에 쓰이는 휘핑크림을 처음 만들었다는 프랑수아 바텔은 왕에게 바치는 연회를 준비하다가 생선이 늦게 도착해 연회가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하자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살한 비운의 요리장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얘기는 롤랑 조페 감독의

 

그런데 가만 보니 영화 속에서 바텔은 단순한 요리사가 아니라 무대 미술, 인테리어, 테이블 세팅 등 정말 온갖 것을 다 하며 연회 전체를 디자인하는 아트 디렉터 역할을 하더군요. 물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카페나 식당을 직접 차리고 싶어 하는 디자이너가 많은 것도 아마 그런 이유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음식을 낼 것인지부터 그릇이나 공간 등 손님이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전 과정을 오롯이 디자인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경옥

'음식과 관련된 디자인' 하면 식기나 공간 디자인 정도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리에는 관심이 없는 '푸드 디자이너' 마르티 귀세(Marti Guixé)처럼 말입니다. 오래 전 바르셀로나에서 만났던 이 재기 넘치는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먹을 수 있는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지 요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푸드 디자인은 음식을 오브젝트로 취급하면서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는지를 해석하는 작업이다.

이 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푸드 스타일리스트'와 헷갈릴 수 있는 '푸드 디자이너'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해줍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스페인 최고의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는 훌륭한 요리사지만 푸드 디자이너는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발상이 가능한 것은
음식을 제품처럼 대량생산 가능한
오브제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음식은 소비 규모가 가장 큰 대량생산품임에도 불구하고 푸드 디자인은 음식 관련 디자인 분야에서 아직까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영역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흥미롭게도 자신의 푸드 디자인은 1990년대 중반 한국을 다녀온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했는데, 여태껏 한국처럼 음식과 디자인이 조화를 이룬 곳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음식이든 그 지역의 문화적인 사연이 담겨 있기 마련입니다. 쌀을 중심으로 한 곡류를 가리켜 밥이라 부르는 우리는 특히 이와 관련된 풍부한 표현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의 사정을 염려하는 '밥은 먹고 다니냐'부터 죽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밥숟갈 놓다', 직장을 잃었을 경우에 쓰는 '밥줄 떨어졌다', 상대가 싫을 때 던지는 말인 '밥맛 떨어진다'까지. 또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는다' '밥인지 죽인지는 솥뚜껑을 열어 보아야 안다' 같은 속담도 많습니다. 이렇게 밥은 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을 함께 하는 자연스러운 인생의 한 부분이자 문화 그 자체입니다. 

 

쌀이 주인공인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숍 아코메야부터 바이럴 아트와 기술이 만난 라이스 코드 프로젝트까지, 세계 각지의 사례를 통해 고급 식당이나 쌀가게를 넘어 가장 핫한 콘텐츠로 자리잡고 있는 쌀과 관련된 식문화, 비즈니스를 다시 한번 생각해봄 직합니다. 지금이 우리가 오랫동안 홀대해온 쌀 문화를 다시 바라볼 때가 아닐까요?

 

- 큐레이터, 전은경 편집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