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 철학이 낳은 호텔 서비스

시즈오카의 작은 여관에서 묵었는데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방이었어요. 하얀 면 시트에 누워 이불을 덮고 정말 기분 좋게 잠들었죠. 다음 날 여관 주인에게 어떤 이불인지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일 햇볕에 말렸을 뿐입니다'라고요. 이런 기분을 무지 호텔에서 느껴야 하죠.

 

- 가나이 마사아키 회장, 2009년 <Vogue> 인터뷰

서비스 디자이너는 고객이 만족할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든다. 이를 위해 기존에 없던 서비스를 설계한다. 그때마다 나에게 되묻는다. 내가 디자인하는 서비스가 세상에 꼭 필요한 걸까? 초기에 마케팅 비용을 투자해서 사용자를 모집한 이후, 1년 뒤에도 사람들이 계속 쓸까? 바로 답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오면 '무지라면 어떻게 만들까?'라는 질문으로 바꾸어본다. 

 

무지는 시대의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세대의 선호를 자극하지도 않는다. 이 제품을 반드시 가져야만 한다는 소유욕과도 거리가 멀다. 다만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일상을 관찰하고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다. 

 

시대의 유행을 따른다는 것은 다시 말해 오래 지나지 않아 모두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렌드에 충실한 브랜드의 5년 전 모습을 보면, 일관성은 고사하고 촌스럽다고 느낄 때도 있다. 시류를 따르면 실패할 확률을 단기적으로 줄일 수 있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것은 오래 지속하지 않는다.

 

유행을 선도하는 플레이어들은 또 다른 유행을 빠르게 만들어낸다. 이 늪에 빠지지 않고, 브랜드 정체성과 철학에 입각해 비즈니스를 지속한다는 일은 유행이란 파도에 맞서 나아가는 것과 같다.

 

서비스 디자인이 지향하는 목표도 시류에 편승해 일시적인 인기몰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처럼 지속가능한 본질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내가 서비스 디자인 측면에서 무지 호텔의 강점이라고 꼽은 건 앞선 챕터에서 이야기한 아래의 서비스였다.  

 

호텔 투어: 투숙객이 머물 방을 직접 보고 고른다

투숙객은 일반적으로 호텔 홈페이지, OTA(Online Travel Agency) 제휴 사이트, SNS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 사진을 보고 투숙할 장소를 결정한다. 온라인에서 본 사진과 실제 호텔이 달라 실망한 경험이 있다면 트립어드바이저(Trip Adviser) 등 후기 전문 커뮤니티를 찾아보기도 한다. 혹은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믿을 수 있는 호텔 프랜차이즈를 예약하거나 그 지역을 여행한 지인에게 추천받는 방법도 있다.

투어를 이끈 무지 호텔의 호텔리어들 ©이승준무지 호텔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고민을 이해하기 때문에 호텔 투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투어를 통해 자신이 머물 장소를 직접 살펴보고 비교한 후 결정할 수 있다. 홈페이지 사진과 큰 차이가 없는 객실과 부대시설도 인상적이지만, 직접 머물 장소를 경험하고 결정하는 방식은 기존 호텔 산업에 팽배한 정보비대칭성을 해소하는 이상적인 정책이다.

 

객실 요금: 투숙 시기, 예약 방법, 전망에 따른 요금 차이가 없다

일반적으로 호텔은 전망을 좌우하는 객실 위치, 창문 방향에 따라 가격에 차등을 두는 경우가 많다. 오션뷰, 시티뷰, 하버뷰, 마운틴뷰 등 호텔에서 바라보는 전망을 부가가치로 삼아 객실 요금를 인상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무지 호텔은 객실의 부가가치에 따른 가격 차이가 없다.

무지 호텔 객실 ©이승준정확히 말하면, 무지 호텔은 객실 밖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를 가격에 반영하지 않는다. 객실의 크기, 구조, 비품에 따른 가격 차이만 있을 뿐이다. 또한 공식 홈페이지와 호텔 프론트를 통해서만 예약을 받으므로 언제 예약하더라도 객실 요금에 가격 차이가 없다.

 

서비스: 투숙객 행동 특성을 관찰한다

홍콩, 대만, 일본 투숙객이 많은 무지 호텔은 객실 내 미니바를 운영하지 않는다. 편의점 이용에 익숙한 아시아인들이 미니바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카페인 함량이 낮은 커피 ©이승준무지 호텔은 이렇게 고객의 행동을 관찰한 후, 필요한 서비스를 디자인했다. 원하는 음료, 음식을 바로 채울 수 있도록 냉장고를 깨끗하게 비워두고, 늦은 시간에 체크인하는 투숙객들을 위해 카페인 함량이 낮은 커피와 차를 준비한다. 무지 호텔은 이런 방식으로 고객을 배려하는 서비스를 구현한다.

여백을 담은 매뉴얼

무지는 현장 경영과 근무 태도에 대한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점포 운영 매뉴얼 '무지그램(MUJIGRAM)'을 만들었다. 전 매장에 무지그램을 비치하고, 일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호텔의 운영 방식은 매장과는 차이가 있다. 철저한 공정에 따라 생산된 제품을 판매하는 일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고객의 요구사항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서비스업이기 때문이다.

 

일주일간 묵었던 무지 호텔 선전은 서비스도 훌륭했지만, 서비스를 더 돋보이게 디자인하는 것은 호텔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었다. 무지 호텔 직원들은 호텔에서 근무하기 전 무지 철학을 내재화하기 위해 일본에 가서 교육을 받는다. 호텔리어는 무지의 철학에 맞는 서비스가 제공되는지 확인하고, 명문화된 매뉴얼이 아니라 내재화된 가이드에 따라 행동한다.

 

무지 호텔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두 명의 호텔리어와 함께 세 차례 투어를 했다. 첫 날과 마지막 날은 캐리 가오가, 중간에 하루는 켈빈 첸이 맡았다.

 

첫날 투어를 맡은 캐리 가오는 중국의 IT 혁신을 주도하는 선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CEEC(Consumer Electronics Exhibition and Exchange Center)로 나를 안내했다. 전시관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꼭 소개해주고 싶은 카페가 있다며 대만식 티 카페, 경성우(京盛宇)에 들렀다.

무지 호텔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대만 전통식 티 카페, 경성우(京盛宇) ©이승준경성우에서는 찻잎의 종류에 따라 사용하는 다기의 종류와 크기가 무려 열 가지에 이른다. 차 본연의 맛을 섬세하게 우려내는 데 그만큼 신경을 쏟는다는 의미다. 얼음을 사용할 때에는 그 양을 동일하게 하기 위해 1인분씩 잘게 나누어 얼려둘 만큼 정확함을 추구한다.

 

커피와 차를 함께 파는 가게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오직 차만을 판매하고, 최적의 맛을 내기 위해 대만에서 직접 직원들이 와서 운영하는 가게였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차 본연의 맛에 충실한 모습이 '이것으로 충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제품을 만드는 무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켈빈 첸과는 호텔 투어를 하며 플래그십 스토어, 무지 다이너, 숙박동을 방문했다. 그는 각 시설의 디자인 컨셉과 역할 뿐만 아니라, 어떤 자재를 왜 사용했는지까지도 설명했다. 그는 학창시절 '지워지는 볼펜'을 사용한 이후 무지의 팬이 되었다고 말했다. 무지가 선전에 첫 번째 호텔을 연다고 했을 때, 켈빈 첸은 망설임 없이 5성급 호텔을 그만두었다. 

 

실제로 일하면서 그의 생각이 변했을지 궁금했다. 그는 바람직한 삶을 고민하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원활할 뿐만 아니라, 업무 성과가 좋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무지 호텔 직원에게는 현장에서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재량권이 있다.

 

서비스업에서 당면하는 모든 상황에 명확한 기준을 세우면,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제품과는 달리 상황에 따라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오히려 느슨한 가이드가 필요한 것이다. 

무지 호텔은 비전문가 10명 대신 전문가 2명의 협업으로 운영한다.

 

- 켈빈 첸, 무지 호텔 수퍼바이저

무지가 합리적인 공정을 통해 간결한 상품을 생산하는 것처럼, 무지 호텔에도 꼭 필요한 인력만 근무한다. 27명의 최정예 호텔리어들이 교대로 79개의 객실과 투숙객의 요구사항을 마주한다. 꼭 필요한 포지션에 전문가를 뽑고 적재적소에 배치한 덕분에, 직원들은 동급 호텔 대비 1.5~2배의 급여를 받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대도시 5성급 호텔에서는 손님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로비 안팎으로 직원들이 상주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짐을 차에서 내려주거나, 객실까지 짐을 올려주거나, 짐을 맡아주는 등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무지 호텔은 달랐다.

고객 차량의 문을 열어주거나 짐을 옮겨주는 직원이 상주하지 않는 무지 호텔 ©이승준

호텔에 도착해 디디추싱(滴滴出行,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서비스) 차량에서 내렸을 때, 짐을 받아주는 직원이 없었다. 평소 호텔에 가면 짐을 차에서 내려주고 객실까지 올려주는 벨보이에게 팁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늘 고민했던 터라, 무지 호텔의 서비스가 오히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로비에 들어섰을 때는 체크인·아웃을 돕는 프론트 직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직원은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냈지만, 다른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내가 근처에 추천할 만한 마사지 샵을 물어보자 인근 다섯 점포의 장·단점을 정리한 출력물을 전달해주었다. 마치 키다리 아저씨처럼,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다가 적절한 때에 나타나 친절을 베푼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무지 호텔 직원 중 절반은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명함을 만들지 않았다. 연락이 필요하면, 위챗을 사용한다. 나는 명함을 교환하는 대신 켈빈 첸, 캐리 가오와 QR코드로 위챗 친구*가 됐다.

* 위챗은 QR코드 혹은 주변에 있는 사람을 GPS로 검색해서 친구를 추가할 수 있다.

 

객실에 돌아와 명함을 교환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봤다. 명함은 연락처를 상대방에게 공유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단순히 형식적으로 주고받는 경우도 많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메일을 보내도 괜찮겠냐며 명함을 교환하자고 말했을 때,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과 연락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소개해주는 무지 호텔 직원의 모습에서 호텔이 돌아가듯 직원의 사고방식마저 실용적이라고 생각했다.

호텔리어와 위챗으로 나눈 대화 ©이승준호텔에서 필수 부대시설로 여기는 수영장과 사우나 시설은 없지만 '잘 자는 것'과 '잘 먹는 것'을 충실히 구현한 무지 호텔. 스스로 무지가 지향하는 삶을 살아가며, 투숙객에게 철학이 담긴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리어. 이들은 10년, 20년 후에도 유행을 타지 않는 모습으로 꾸준히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