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이코노미스트 기자인 로잔 레이크(Roseann Lake)는 베이징에서 5년간 일하면서 많은 미혼, 비혼 여성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가졌다. 이 인터뷰를 모아 책을 출간했고, 이번 상하이 문학 페스티벌에서 세션을 진행했다. 로잔의 세션에 참여해 들은 이야기와 책에 수록된 내용을 토대로 취재해 다음과 같은 중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결혼 시장으로 모이는 절박한 부모들

  • 도서명: Leftover in China: The Women Shaping the World's Next Superpower
  • 세션 발표자 및 저자: 로잔 레이크

상하이 시내에 위치한 인민광장에서는 매주 일요일 '결혼 시장'이 열린다. 이 시장은 부모들이 미혼 자녀의 배우자감을 찾기 위해 모이는 자리다.

 

이곳에 모인 부모들은 A4 용지에 자녀의 나이, 학력, 고향, 직업, 연봉, 부동산 소유 여부, 신장 및 체중 등을 적어 잘 보이게 우산에 붙여 둔다. 그리고는 알맞은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다른 우산을 들여다보는 데 여념이 없다.

자녀의 정보를 빼곡히 적어둔 종이 ©문수미
우산마다 종이가 붙어 있다. ©문수미

정작 당사자는 그곳에 있지도 않은데, 그저 부모들끼리 마음이 맞으면 자녀들의 만남을 주선한다. 물론 상하이뿐 아니라 중국의 다른 대도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20대 초반에 결혼을 한다. 늦어도 30대가 되기 전에 결혼하려고 서두른다. 특히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압박은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하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단어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국에서는 20대 후반이 지나도록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잉녀(剩女)라고 표현한다
잉여의 '잉'이 맞다. 사전적 의미로 '남겨진 여성', 영어로는 'leftover women'이라고 표현한다. 어감 자체가 매우 부정적이다. 물론 잉남(剩男)이라는 단어도 존재하긴 하지만, 잉녀가 훨씬 많이 쓰인다는 사실만 봐도 여성 차별적 시각이 적나라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들어가며

이코노미스트 기자인 로잔 레이크(Roseann Lake)는 베이징에서 5년간 일하면서 많은 미혼, 비혼 여성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가졌다. 이 인터뷰를 모아 책을 출간했고, 이번 상하이 문학 페스티벌에서 세션을 진행했다. 로잔의 세션에 참여해 들은 이야기와 책에 수록된 내용을 토대로 취재해 다음과 같은 중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결혼 시장으로 모이는 절박한 부모들

  • 도서명: Leftover in China: The Women Shaping the World's Next Superpower
  • 세션 발표자 및 저자: 로잔 레이크

상하이 시내에 위치한 인민광장에서는 매주 일요일 '결혼 시장'이 열린다. 이 시장은 부모들이 미혼 자녀의 배우자감을 찾기 위해 모이는 자리다.

 

이곳에 모인 부모들은 A4 용지에 자녀의 나이, 학력, 고향, 직업, 연봉, 부동산 소유 여부, 신장 및 체중 등을 적어 잘 보이게 우산에 붙여 둔다. 그리고는 알맞은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다른 우산을 들여다보는 데 여념이 없다.

자녀의 정보를 빼곡히 적어둔 종이 ©문수미
우산마다 종이가 붙어 있다. ©문수미

정작 당사자는 그곳에 있지도 않은데, 그저 부모들끼리 마음이 맞으면 자녀들의 만남을 주선한다. 물론 상하이뿐 아니라 중국의 다른 대도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20대 초반에 결혼을 한다. 늦어도 30대가 되기 전에 결혼하려고 서두른다. 특히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압박은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하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단어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국에서는 20대 후반이 지나도록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잉녀(剩女)라고 표현한다
잉여의 '잉'이 맞다. 사전적 의미로 '남겨진 여성', 영어로는 'leftover women'이라고 표현한다. 어감 자체가 매우 부정적이다. 물론 잉남(剩男)이라는 단어도 존재하긴 하지만, 잉녀가 훨씬 많이 쓰인다는 사실만 봐도 여성 차별적 시각이 적나라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호기심에 바이두 백과사전에 잉녀의 정의를 찾아봤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연령별 별칭이 눈길을 끌었다.

  • 25-28세: 적극적으로 반려자를 찾아 나서려는 용기가 있음. 성두사(圣斗士, 일본 만화 세인트 세이야에 등장하는 희망의 투사)라고 불림
  • 28-32세: 기회가 많지 않으며 일 때문에 바빠 상대를 찾아 나설 여유가 없음. '필사적인 남은 사람'이라는 의미의 필잉객(必剩客, 비셩커)라고 불림. 피자헛의 중국어 표기 必胜客와 발음이 유사해서 必胜客라고도 불림.
  • 32-35세: 직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 생존하느라 바빠 여전히 싱글. 잉자위왕(剩者为王)이라고 불림. (결혼 시장에서) 이기는 자가 곧 왕이라는 의미.
  • 35세 이상: 제천대성(齐天大圣)으로 불림.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에 대한 호칭으로, 능력이 대단한 사람을 의미

공신력과 신뢰도를 자랑하는 바이두 백과사전이 대놓고 여성의 나이에 대한 비하 표현을 사용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중국인 지인들은 이런 표현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체제 순응적 교육을 하는 중국에서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공신력 있는 기관에 반감을 표시하는 일이 드물다고 설명했다.

 

로잔의 책에도 'leftover'라는 표현이 제목에 등장했다. 하지만 이 책은 여성뿐만 아니라 농촌 총각 문제는 물론 예전에는 존재조차 없었던 미혼, 비혼 현상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현대 중국의 새로운 현상을 그린 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하다.

미혼 여성에게 가혹한 중국 사회

이곳에서 3년째 생활하면서, 상하이만큼은 여성이 살기에 한국보다 낫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공산주의 사상으로 인해 성별과 무관하게 '모두가 동일한 노동자'라는 인식이 퍼져 있고, 상하이는 전통적으로 모계 사회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집안일을 도맡는 풍경 역시 자주 볼 수 있고, 많은 기업에서 나이 지긋한 간부급 여성들도 눈에 띈다. 

 

실제로 중국 대도시 여성의 삶은 뉴욕이나 런던의 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결혼에 있어서만큼은 예외다. 중국 여성은 남성보다 결혼에 대한 스트레스가 훨씬 크다. 저출산 문제의 경우 한국과 비슷하지만, 여러 면에서 미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부모와의 갈등 정도가 심하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공공연한 무시와 모독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 최근 중국에서 한 달 만에 2천만 건이 넘는 조회 수로 화제가 된 영상 ©一条

 

위 영상에서는 해외 대학 석사, 높은 소득 등 조건이 출중한 미혼 여성이 결혼 시장에서 자신을 어필했지만 34세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이 여성은 "결혼이나 행복에 대한 일관된 기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난 내 인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님도 나를 인정해주길 바란다"라고 끝을 맺었다.

 

로잔 역시 "북경에서 근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구정 연휴 이후, 미혼 여성 직원들의 표정이 어두웠다"라고 회고했다. 이는 25살 전후에 불과한 이들이 고향에서 긴 연휴를 지내는 동안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저주에 가까운 잔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주변 시선 때문에 중국에서는 최근 주남우(租男友), 즉 '남자 친구 임대'라는 신규 아르바이트가 인기를 끈다. 결혼 잔소리를 피하고 싶은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서비스다. 연휴 3일간 5,000RMB*(한화 약 85만 원) 내외의 기본 임대료를 내야 하며, 그 외 교통비, 식비 등도 전적으로 여성 부담이다.

* 중국 화폐 단위인 인민폐(런민비)의 영어 약자

로잔 레이크 이코노미스트 기자(왼쪽), 진행을 맡은 마리아 몬토야 NYU 상하이 캠퍼스 교수 ©M on the Bund

이것은 미국인 로잔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고, 로잔은 여기서 비롯한 문제의식에서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국가 차원에서 미혼 여성을 매도하는 이유

미혼 여성을 비하하는 오명은 사실 다른 문화권에도 많다. 일본에서는 '25세가 넘으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크리스마스 케이크라고 부르고, 독일에서는 여성 부족(Frauenmangel), 남미권에서는 외로운 햄(Jamona Solterona)이라 일컫는다. 한국의 골드미스라는 표현이 긍정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중국의 잉녀는 이야기가 다르다. 앞서 바이두 백과사전의 여성 연령에 따른 정의에 대해 언급했지만, 이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분위기다.

 

2007년 중국 정부 산하 여성 기관인 중화전국부녀연합회(中华全国妇女联合会)가 27세의 미혼 여성을 잉녀라고 정의한 이후, 교육부 및 관영매체에서 꾸준히 관련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국가가 앞장서서 여성 비하적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는 의미다.

전통적 남존여비 사상에
출산율 저하를 우려한 중국 정부가
여성의 결혼을 장려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한 가구 한 자녀 정책*을 폐기하고 가구당 두 명 출산을 권장하지만, 자녀 양육에 드는 비용 때문에 (특히 대도시에서는) 두 명 이상의 자녀를 원하는 부부가 많지 않다. 따라서 잉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확대해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서두르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 1950년대 중국은 산아제한정책을 도입했고, 1978년 한 자녀 정책을 헌법에 명문화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9년 정식으로 시행했다. 본문에는 헌법에 명문화한 1978년으로 시점을 통일한다. 인구 노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를 우려한 중국 정부가 2015년 35년 만에 이 정책을 폐지했다.

 

로잔은 출산율 저하에 대한 대책으로 결혼과 출산을 서두르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보다는 난자 냉동을 보편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난자를 냉동하기 위해 뉴욕 파크 애비뉴에 위치한 한 고급 난임 클리닉을 찾는 고객의 80%가 중국 여성이라고 설명했다.

 

아직은 너무 앞선 생각이라고 느낀 나와는 달리, 자리에 있던 중국인 관객들은 대부분 공감했다. 린즈링(林志玲), 미셸 예(叶璇) 등 유명 연예인이 본인의 난자를 냉동했다는 사실을 공개했을 때 많은 중국인들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부모세대 중국인의 사고방식은 아직 구시대에 머물러 있다. 젊은 층은 이런 사회적 시선과 여전히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인 사고방식의 변화는 우리나라보다 더 빠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다.

싱글 여성, 새로운 중국을 이끄는 동력

중국에서는 이미 한 자녀 정책으로 아들을 낳기 위해 여아를 낙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결과 엄청난 성비 불균형이 초래됐다. 한 연구에 의하면 2020년 기준 중국의 결혼 적령기 남성이 여성보다 3천만 명가량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 관련 기사: Why millions of Chinese men are staying single (BBC Capital, 2017.2.14)

 

숫자로만 따지면 여성이 적으니, 당연히 결혼 상대를 만나기가 남성보다 쉬워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 자녀 정책 아래 무남독녀로 자란 중국의 딸들은 아들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부모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겪었다. 

 

게다가 한 자녀 정책이 시행된 1978년 이후로 1980~90년대 중국은 엄청난 속도의 경제 성장을 자랑했다. 그 결과 이 시기에 성장하고 교육받은 여성들은 전례 없는 사회적경제적 성과를 이뤘다. 2012년을 기점으로 대졸 여성 수가 대졸 남성 수를 앞질렀다는 사실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는
물질적 부유함이 최고 가치가 됐다
로잔의 책에 따르면, 중국 사회에서 신랑감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경제력이다. 남자가 무조건 집을 마련해야 결혼이 가능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니 이미 어느 정도 학력이나 경제력, 사회적 지위를 갖춘 여성은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좀 더 나은 남성을 찾게 되었고, 높은 수준의 능력을 갖춘 여성은 배우자를 만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로잔은 잉녀가 이렇게 큰 이슈로 부상한 이유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새로운 현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선진국에서는 미혼, 비혼 또는 만혼의 개념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있었지만, 중국에서는 최근에 이르러 화두가 됐다. 게다가 중국은 세계 최고 인구 대국이니 수많은 잉녀로 인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중국의 기성세대가 여전히 우려와 불안을 나타내는 이유다.

 

최근 중국에서는 많은 여성이 결혼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고, 결혼을 위한 결혼보다는 본인의 커리어와 취미 생활을 더 중시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뷰티, 여행, 헬스, 고등 교육, 소매업 등의 시장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로잔 역시 책을 통해 중국의 젊은 여성들에게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계발하라고 격려한다.

 

물론 로잔의 미국적 페미니즘을 중국 상황에 대입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있다. 그러나 기존 중국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던 현상인 만큼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의견 또한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5년, 10년 후 싱글 여성들이 바꿔나갈 중국의 미래가 기대된다.

판단은 독자에게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뜨거웠던 쟁점은, 로잔이 저술 과정에서 레타 홍 핀셔(Leta Hong Fincher )교수의 집필 내용을 출처 표기 없이 자신의 연구인 것처럼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레타는 2014년

 

상하이 문학 페스티벌 불과 한 달 전, 레타는 로잔의 저서에서 자신의 연구 업적을 인정하는 표현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분노해 트위터에서 공개적으로 로잔을 비난했다. 여러 매체에서도 이 뉴스를 다뤘다.

레타 홍 핀셔 트위터 캡처 ©LetaHong/Twitter

실제로 로잔은 레타와 여러 번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기사 작성을 위해 연구 내용을 전달받기도 했고 그의 강연회에도 수 차례 참석했다고 한다. 중국의 미혼 여성에 관한 그의 연구 내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저서에 레타를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레타 역시 3년 전 상하이 문학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당연히 관객 측에서도 이에 대한 예리한 질문이 이어졌으나, 로잔은 "과거 기사에 이미 홍 핀셔를 수 차례 언급했으며 이는 출판사 측에서도 잘 인지하고 있다"라고 해명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문학 페스티벌 측에서는 행사 시작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로잔의 세션이 논란이 되자 진행 여부를 크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최 측에서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작가에 대한 판단은 독자가 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또다시 의문을 제기한다면 그에 대해 답변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페스티벌의 역할이라는 의미다. 논란의 가능성을 건전한 토론의 장으로 전환한 행사 주최 측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