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가들의 책 수집과 나만의 정리법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리처드 히버의 아버지가 책 수집에 몰두하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합니다. 런던에서 중요한 책들이 경매에 나온다고 들뜬 아들의 편지에 아버지는 걱정과 질책을 섞어 답장을 보냅니다. 1789년 4월 15일의 일이었죠.

탐닉과 방종 때문에 너의 욕망은 점점 더 커지고만 있구나. 그런 욕망은 크게 자라기 전에 그 싹을 잘라야 하는 법. 쓸데없이 많은 하인, 쓸데없이 많은 말, 쓸데없이 많은 마차, 쓸데없이 많은 그림, 쓸데없이 많은 장서. 이런 것들이야말로 거지가 되는 지름길이며,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어 버리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건 신중하게 취사선택한 소규모의 장서만으로도 즐거움과 유익함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법이다. 그 밖의 모든 건 허섭스레기란 말이다.

 

- N. A. 바스베인스, <젠틀 매드니스>, 뜨인돌(2006)

30만 권의 책을 남기고 쓸쓸하게 떠난 리처드 히버

리처드 히버는 어린 시절부터 책 수집에 몰두해 아버지를 곤란에 빠뜨립니다. 기숙학교에 다니던 열 살 무렵부터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열두 살이 되던 해엔 서적상이 보낸 청구서로 아버지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물론 아들을 아끼는 아버지는 더는 쓸데없는 책을 사는 데 돈을 쓰지 말라며 신신당부합니다. 하지만 타고난 책 수집가인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책 수집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긴 장서는 최소 15만 권, 많게는 30만 권에 이르렀습니다. 정확하게 헤아릴 수 없는 이유는 "책이 잔뜩 들어찬 여덟 채의 집을 남겼는데, 그중 네 채는 영국에 있었고 나머지 네 채는 각각 헨트, 파리, 브뤼셀, 안트베르펜*에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렇게 유럽 각지에 집을 마련해 둔 이유도 책을 수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요.

* 벨기에 도시로 13세기에는 유럽에서 파리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 앞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