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책, 특별하게 보관하는 방법

중국 작가 린위탕(1895–1976)은 <생활의 발견>에서 자연과 벗하며 사는 즐거움을 말하며 그 즐거움을 방해하는 열 가지 화나는 일을 나열합니다. 자신은 농부가 될 수 없고 고작 뜰에 물이나 뿌리고 풀 뜯기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라며 아쉬워합니다.

1. 책 겉장은 좀이 먹기 쉽고,

2. 여름밤은 모기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고,

3. 망월대는 비가 새기 쉽고,

4. 국화잎은 자칫하면 마르기 쉽고,

5. 소나무엔 큰 개미가 떼 지어 있기 쉽고,

6. 참대 잎은 온통 땅에 떨어져 쌓이고,

7. 물푸레나무와 연꽃은 시들기 쉽고,

8. 담쟁이 굴에는 뱀이 곧잘 숨고,

9. 시렁에 핀 꽃에는 가시가 있고,

10. 고슴도치는 독이 있어 먹을 수 없다는 것.

 

- 린위탕(임어당), <생활의 발견>, 범우사(2011)

애서가라면 린위탕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자연에서 사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책이 상하는 것이니 그가 얼마나 책을 사랑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생활의 발견>에는 수많은 책이 소개되어 있고, 특히 노장 사상과 시에 대해선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명저이기도 합니다.

옛사람들은 책이 좀 먹는 걸
막기 위해 은행잎을
책장 사이에 끼워 두기도 했습니다

가끔 책방의 책들을 살펴보다 은행잎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단순히 가을 정취를 추억하고 책갈피로 쓰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옛 선비의 지혜가 습관처럼 독서가들에게 내려온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좀 같은 벌레뿐만 아니라 책을 위협하는 것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책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요. 이태준 선생은 책을 소녀와 유부인(遺夫人)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한 표정 고운 소녀와 같이, 한 그윽한 눈매를 보이는 젊은 미망인처럼 가지가지다. 신간란에서 새로 뽑을 수 있는 잉크 냄새 새로운 것은, 소녀라고 해서 어찌 다 그다지 신선하고 상냥스러우랴! 고서점에서 먼지를 털고 겨드랑 땀내 같은 것을 풍기는 것들은 자못 미망인다운 함축미인 것이다.

 

- 이태준, <무서록>, 범우사(2010)

그만한 매력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죠. 그 매력을 위협하고 시기하는 적들을 따로 분류하고 연구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애서가이자 인쇄소 집안에서 태어난 윌리엄 블레이즈(William Blades)입니다. 그는 1824년 런던에서 태어나 부모가 경영하는 인쇄소에서 일하며 나중에 공동경영자가 되었습니다.

 

블레이즈는 서지학자인 헨리 브래드쇼와 함께 노동자를 계몽하기 위해 도서관협회를 설립했습니다. 또한 영국 최초의 인쇄업자이며 출판 대중화에 앞장선 윌리엄 캑스턴의 생애를 조사하고, 그의 성과를 기록한 <윌리엄 캑스턴의 생애와 인쇄술(The Life and Typography of William Caxton)>을 쓰고 <책의 적(The Enemies of Books)>을 남겼습니다.

 

그는 <책의 적>에서 모두 열 가지 '사악한 존재들'을 언급했습니다. 불, 물, 가스와 열기, 먼지와 무관심, 무지와 편견, 책을 먹는 좀, 해로운 동물들, 제책사의 횡포, 서적 수집광, 하인과 아이들이 바로 끊임없이 책을 괴롭히고 망가뜨리는 존재들이죠.

 

첫 번째로 불을 꼽은 것은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왜 책을 가장 사랑하는 서적 수집광을 책의 적으로 규정했는지 차례만 읽고선 의아했습니다. 그는 런던 골동품애호가협회 설립자인 존 백포드(1650–1716)를 예로 들었습니다.

 

그는 지방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희귀본의 속표지를 잘라내 수집한 다음 국가와 지방별로 분류하고 또 다른 자료들을 모아 100여 권이 넘는 2절판 크기의 책으로 펴냈습니다. 자신의 책을 살 찌우기 위해 희귀본의 살점을 도려낸 거죠.

 

당시 영국에서 그를 모방한 서적 수집광들이 희귀본들을 그렇게 훼손하고 다닌 것에 대해 윌리엄 블레이즈는 분개했습니다. 책이 가장 가치 있을 때는 서가에 꽂혀 있을 때가 아니라 책 읽는 이의 손에 들려 있을 때입니다. 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독서인이었죠.

 

다시 '좀' 이야기로 넘어가서, 이 책엔 책의 소중함을 모르는 무식한 좀을 꾸지람하는 존 도바스톤(1782–1854)의 시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두 문장을 주목해서 읽어야 합니다.

바삐 움직이는 벌레가 있어 / 가장 훌륭한 책들을 불구로 만드네. / 곳곳마다 갉아서 구멍을 내니 / 네 발길 닿는 곳마다 온통 똑같은 모양이네. / 책의 소중함을 전혀 모르니 / 무엇을 알아서 상관하리오.

 

맛도 모르는 이빨로 찢고 더럽히니 / 시인, 우국지사, 현인, 성자는 / 지혜고 지식이고 아무것도 남길 수 없네.

자, 그대가 그 까닭을 모른다면 / 내가 가장 타당한 이유를 말해 주지. / 이것이야말로 가엾은 악당의 먹을거리라는 걸.

후춧가루, 코담배가루, 담배 연기에도 끄떡없고 / 러시아 가죽마저 그들에겐 비웃음거리일 뿐. / 그런데 학문의 후예들이 / 이따위 하잘것없는 골칫거리를 두려워하랴? / 책을 펴놓고서 읽기만 한다면 / 벌레들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을.

 

- 윌리엄 블레이즈, <책의 적>, 서해문집(2005)

이 모든 책의 적을 피해 어찌 되었건 소중하게 간직하고픈 책들이 있습니다. 책방에 있는 대부분의 책을 팔지만, 팔지 않고 보관만 하는 책들도 있습니다. 되도록 책방 서가에 두지 않지만 손님들이 가끔 사무실 안쪽 서가나 책상 위에 놓인 팔지 않는 책을 발견하곤 책방에서 왜 책을 팔지 않느냐 물으면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팔기 싫어서요"라고 단도직입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에둘러 "아직 책값을 정하지 못해서요"라고 하거나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편이 더 저렴합니다"라고 합니다. 팔지 않는 책은 주로 구하기 어려운 사진책이거나 선물 받은 서명본이거나 너무 오래되어 값을 정할 수 없는 책이 대부분입니다. 지금 재밌게 읽고 있는 책도 포함해야겠군요.

 

특별하게 보관해야 하는 책은 제 경우엔 주로 1950–1960년대에 나온 책들입니다.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한적(漢籍*) 몇 권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리 오래된 책이 아닙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분단, 전쟁, 독재와 쿠데타, 혁명으로 격동기를 거친 우리 근현대사는 출판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 한문으로 쓴 책

 

1950년대 나온 책들을 가끔 만나면 종이질이 워낙 나빠 만지기만 해도 부스러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감히 책장을 휘리릭 넘겨 볼 생각은 하지도 못합니다. 이런 책은 다른 책들과 함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보관할 수 없습니다. 지식이 부족해 당장 책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 해도 더는 훼손되지 않게 잘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로 애정을 가지고 수집하거나 잘 보관하려 노력하는 책들은 옛 시절 나온 잡지 부록입니다. 예전엔 헌책방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가뭄에 콩 나듯 발견하곤 합니다. 이런 책들은 대부분 상태가 나쁩니다. 잡지 부록이니 처음부터 제대로 대접받기 힘들었겠죠. 부록이라 하면 끼워 주는 물건이라 생각하고 막 다루기 마련이니까요.

 

그렇게 막대접을 받다가 나중에 버림받아 책방까지 오게 됩니다. 책방에 와서 임자를 만나면 좋겠지만 이런 책들은 주로 구석진 곳에 버려지듯 있으니 주의 깊게 찾아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듭니다. 대부분 누렇게 색이 바랬고 표지는 갈라지고 먼지를 뒤집어썼죠.


제가 아끼는 책을 어떻게 보관하는지 사진과 함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간지를 끼우고 눕혀서

아는 분께 이 책을 구입하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고선 사진만 보곤 바로 구입하겠다고 답장했습니다. 책을 받았을 때 거의 100년이 지났음에도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기뻤습니다. 4권의 책 모두 마흔여덟 장의 컬러 도판이 실려 있습니다.

1910~1920년대 출간된 워드 록(Ward Lock & Co.) 출판사의 <그림동화> ⓒ조경국

그 시절에도 이렇게 유려하고 깔끔한 컬러 인쇄가 가능했다는 사실이 놀랍더군요. 모서리가 약간 해진 것 외엔 4권 모두 심하게 뜯어지거나 찢어진 곳이 없었습니다. 옛 양장본(하드커버)은 표지와 속지가 분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들도 그럴 가능성이 컸습니다.

책 사이마다 책 크기에 맞게
자른 간지를 끼운 뒤
세우지 않고 눕혀서 보관합니다

세우면 낡은 면지가 찢어질 수 있으니까요. 면지가 찢어지면 금방 책등도 분리되고 걷잡을 수 없게 되죠. 책 사이사이 간지를 끼우는 이유는 이 책의 표지에 표지와 다른 재질의 종이에 인쇄된 그림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책의 표지와 직접 맞닿는 걸 줄여야 표지에 있는 그림이 상하는 걸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눕혀 놓고 가능한 한 손을 대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1854년 설립된 워드 록 출판사는 이름은 바뀌었지만 오리온 출판그룹(The Orion Publishig Group)으로 역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출판사가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습니다. 대니얼 디포, 오스카 와일드, 루이스 캐럴 등 유명 작가들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루이스 캐럴의 작품이죠. 아마존에서도 가끔 이 책들을 볼 수 있지만 상태가 좋은 책들은 쉽게 보기 힘들더군요. 상태가 좋은 책들은 꽤 책값이 나갑니다.

지퍼락에 실리카겔을 넣고

단골로 다니던 헌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곤 그 시절에도 이렇게 기타 교본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나온 사교댄스 교본을 본 적은 있지만 음악과 관련된 책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으니까요. 1959년이면 겨우 한국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났지만 이승만과 자유당의 실정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유일 편저, <키타-코-드 전집> 연합출판사(단기 4292, 1959년) ⓒ조경국

어쨌거나 이 책은 암울한 시절에도 음악을 연주하고 이렇게 악보와 교본을 만든 음악가와 출판사가 있었음을 알려 줍니다. 편저자인 유일과 우구레레코드, 연합출판사에 관한 정보를 찾았지만 실패했습니다. 당시 이 책의 값은 700환이었죠.

 

화폐 단위가 환에서 원으로 바뀐 것은 1962년 6월 10일입니다. 그해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이 10환을 1원으로 교환하고 환화 유통을 금지하는 '긴급통화조치'를 실시했습니다. 그러니까 책값이 '000환'이라 적혀 있으면 1962년 6월 이전에 출간된 책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찾았지만 당시 바닥에 깔려 습기를 먹어 눅눅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경우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서 말리거나 냉동실에 넣어 습기를 제거할 수도 있지만 혹시 책이 상할까 봐 지퍼락에 제습제 실리카겔을 넣고 보관했습니다. 지금은 굳이 제습제를 넣어 둘 필요까진 없지만, 사진으로 옛 상태를 재현해 봤습니다.

비닐봉투로 포장해서

<무기여 잘 있거라>는 중환자 상태에 가깝습니다. 지금까지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놀라울 정도랄까요. 친구네 놀러 갔다 다락에서 이 책을 구했습니다. 오랫동안 빈 집이었는데 동무와 놀러 가서 하룻밤 자며 옛 책들을 뒤졌습니다.

어네스트 헤밍웨이, <무기여 잘 있거라> 동서문화사(1959) ⓒ조경국

이 책을 펴낸 동서문화사는 우리나라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출판사에 속합니다. 1956년 문을 열었고 꽤 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내며 규모를 키웠습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1929년 미국에서 초판이 나왔으니 거의 30년이 지나고서야 국내에 소개된 셈입니다. 그전에 이와나미 문고에서 상하권으로 나눠 1957년 출간되었으니 일본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 셈이지요.

 

헤밍웨이가 1954년 <노인과 바다>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후 그의 작품에 주목했겠지만 전쟁이 막 끝난 상황에서 책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없었을 겁니다. 아마 일본에서 1957년 <무기여 잘 있거라>가 번역되어 나온 이유는 그해 록 허드슨과 제니퍼 존스가 주연한 영화가 개봉했기 때문일 겁니다. 할리우드 영화가 각광받기 시작하던 시절이었으니 원작에도 관심을 가졌겠지요.

 

이 책을 번역한 박기준은 옛 신문기사를 통해 <무기여 잘 있거라> 외에 다양한 책을 번역한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정확한 약력을 찾긴 어려웠습니다. 이 책을 찾아내 책방으로 가져와선 조심스레 먼지를 털어 내고, 접힌 곳을 펴서, 한번 훑어보곤 아예 비닐봉지로 거의 진공상태에 가깝게 포장했습니다. 지퍼락에 넣는 건 책 모양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예전 책방일지에도 썼는데 헨리가 캐서린에게 데이트 신청하는 영화 속 장면과 책을 비교하니 그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시나리오를 옮겨 보겠습니다. 데이트 신청을 하고 뺨 맞으면 기분이 어떨까요.

캐서린: 저도 모르게 손이……. 아팠죠?

헨리: 괜찮아요. 익숙하니까요.

캐서린: 항상 여자에게 맞나요?

헨리: 항상은 아니에요.

캐서린: 맞아도 아무렇지 않아요?

헨리: 난 정말 괜찮아요. 특히 당신 같은 미인에겐…….

마지막 대사가 압권입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키쓰'하면 뺨 한 대 내려 갈기는 것만으론 부족할 텐데요. 다음은 책에 있는 당시 표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나는 어둠에서 몸을 굽혀 여인에게 '키쓰'했다. 그러나 날카롭게 찌르는 것이 화끈해졌다. 여인이 내 얼굴을 모질게 내려 갈긴 것이다. 손이 내 코와 두 눈을 쳐서 반사적으로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중략) "당신이 한 행동은 정당합니다." 나는 말했다. "난 아무렇지 않아요."

 

- 어네스트 헤밍웨이, <무기여 잘 있거라>, 동서문화사(1959)

크라프트지 봉투에 담아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한적(漢籍)은 모두 세 권입니다. 큰할아버지께서 읽던 것인데 낡은 <남명집>과 그럭저럭 상태가 괜찮은 <자전>이죠. <남명집>은 조선 중기 선비인 남명 조식의 문집입니다. 그는 왕에게도 굽힘 없이 직언하던 선비였고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지식과 말만 앞세우는 일을 경계했습니다. <남명집>엔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학문이란 모름지기 스스로 깨침을 귀하게 여긴다. 한갓 책에 의존하여 알게 된 이치일 뿐이고 자기 마음속에서 참되이 깨달은 게 아니라면 결국 아무 소용이 없다. 마음속에서 참되이 깨달은 것은 입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학자는 말 잘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조식, <남명집> ⓒ조경국

그의 제자 대부분이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나선 것이 증거겠지요. 그중 그의 제자인 정인홍이 앞장서 1602년(선조 35년) 합천 해인사에서 3권 2책의 초간본이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서 권과 책의 차이를 말하자면, 권은 내용을 구성하는 단위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장이나 챕터로 생각하면 빠르겠군요.

 

책은 현재 우리가 권으로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제본된 책을 말하죠. 3권 2책을 오늘날 표현대로 옮기면 세 가지 내용을 담은 두 권의 책이라 할 수 있겠군요.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에서 국역해 한길사에서 펴낸 <남명집>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렸을 적 궤짝에 든 책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가세가 기우는 동안 책들도 함께 사라졌다'고 하시더군요. 어떻게 해서 이 세 권만 남았는지 그 연유를 알 길이 없습니다. 낡고 큰 가치는 없으나 물려받은 책이니 다음 세대로 넘겨야 할 의무감이 있달까요.

 

한적은 책을 세워 두기 어렵습니다. 지금 같은 형태의 서가가 아니라 옛 선비의 사랑방에 책을 눕혀 놓기 좋은 옆 칸막이가 없는 사방탁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단 세 권의 한적을 눕혀 놓기 위해 서가 한 칸을 비울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질긴 크라프트지 봉투에 넣어 서가에 꽂는 방법입니다. 모양이 이지러지지도 않고 보관도 편리하더군요.

액자에 넣어

호리 마사토의 <독서회상>은 일본 고서통신사에서 펴낸 책입니다. 오사카외국어대학교 교수를 지낸 저자의 독서 편력이 담긴 이 책은 크기가 아기 손바닥만 하고 쪽수도 90쪽 남짓이라 어디에 두기 마땅치 않더군요.

호리 마사토, <독서회상> ⓒ조경국

다이소에서 책을 넣을 만한 저렴한 액자를 사서 아예 작품처럼 넣어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제목도 그렇지만 표지에 깃털 펜과 잉크, 그리고 스탬프 그림이 그려져 있어 책상 위 작은 소품으로 안성맞춤입니다.

상자에 보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잡지 부록들은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모아 제습제를 넣고 따로 보관 중입니다.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를 사용하는 이유는 안의 내용물을 들여다볼 수 있어 나중에라도 찾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제습제는 가끔 전자레인지에 넣어 습기를 제거한 다음 다시 재활용합니다.

1960~1970년대 잡지 부록들. ⓒ조경국

앞에도 썼지만 옛 잡지 부록은 구하기도 힘들고 따로 가치를 매길 수도 없는 묘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더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 상자를 늘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책방을 열고부턴 오히려 헌책방 출입을 할 수 없으니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