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목록을 어떻게 정리할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책이 는다면 어떻게 책 목록을 정리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방법을 써 보죠. 공책에 목록을 쓴다든가, 독서카드를 만든다든가, 일련번호를 매긴다든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어쨌거나 어느 수준 이상 책이 늘면 이런 방법조차 통하지 않습니다. 만약 공책에 자신이 구입한 책과 짧은 서평을 쓰고 오랜 세월 꾸준히 정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훌륭한 ‘책’이 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한때 이 방식으로 책을 정리해 보기도 했는데, 꾸준히 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더군요. 품이 많이 들기도 하고, 읽는 책보다 사들이는 책이 많으니 수기로 정리하는 방식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있죠. 조선시대 선비 유희춘(1513–1577)은 <미암일기(眉巖日記)>를 남겼습니다. 1567년부터 1577년까지 11년 동안 성실하게 자신의 일상을 기록했습니다. 다양한 내용이 일기에 남아 있는데, 애서가인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책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그는 일기에 자신이 책을 수집하고 옮기고 정리한 기록을 꼼꼼히 남겼습니다. 그 기록을 보면 3,500책 이상의 장서를 가진 듯합니다. 누구에게 얼마를 지급하고, 또는 어떤 물건을 답례로 주고 책을 구했는지도 상세하게 나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0년 전(1577년)에 세상을 떠난 그가 남긴 일기는 임진왜란 당시 불타 버린 사초를 대신할 정도로 치밀하고 방대했습니다. 이후 <선조실록>을 쓰는 데 바탕 자료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처럼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 전기, 유희춘은 책을 수집하고 읽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인맥, 권력, 돈)을 동원합니다. 하지만 그가 모은 수많은 책은 지금까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단지 그의 기록 속에만 존재할 뿐이죠. 만약 그의 장서가 지금껏 보존되어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해 봅니다.*
* 관련 도서: 강명관,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2007)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책 목록 정리법
어떤 방식으로든 목록을 만들고 정리해야겠다는 욕심은 있지만 '목록과 정리'의 전제 조건은 '위치'입니다. 도서관 서가와 같은 개념이죠. 목록이 단지 읽었다는 서평이 아니라 책이 어느 서가 어느 위치에 꽂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야 정확하게 정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